하늘에서 비행할 수 있는 운은 이미 15일 동안 사라졌다.
시간이라는 가마솥 속에서 지상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배고픔과 병의 고통으로 진한 국물을 한 그릇, 또 한 그릇씩 끓여 냈다.
인간형 생물체는 피해를 입은 뒤 전진 방향을 바꿔 다시 북쪽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서해안을 따라서 가지 않고 동쪽의 평원에서 북쪽으로 향했다.
남쪽 구역이 잠시 평화를 되찾자 047호 도시의 지하 거점에는 조금씩 돌아갈 곳이 없는 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거점에 보관된 물자는 풍부했지만, 소진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합 생물 출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구조체가 없는 구역을 두려워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레이 레이븐은 다른 엘리트 소대와 협의한 끝에, 차징 팔콘과 케르베로스 소대는 자신이 맡고 있던 보육 구역을 다른 체류 구조체와 교체하고 047호 도시에서 모두와 합류하는 걸로 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3개 소대의 대부분 대원은 별다른 감정 없이 각 대원의 상태와 복귀 상황을 급하게 확인했다.
그런 환경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각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태양 같은 밝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원 둘! 잘 지냈어?
넌 매일이 신나 보인다?
하하, 동료를 보면 신나는 게 당연하지. 신나야 할 일 아니야?
…………
왠지 모르게 리는 대답을 포기했다.
재난 발생 이틀째, 차징 팔콘과 케르베로스 소대는 왕복 수송기를 호송하는 임무를 동일하게 같이 받았다.
처음에는 엘리트 소대의 인솔로 구조 성공률이 대폭 상승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도 비행 중 발생한 수많은 공격에는 견딜 수 없었고, 당시 대원들은 보호했지만 수송기가 지상으로 추락하는 것은 막을 순 없었다.
여러 차례 계속 시도했음에도 성과가 없자, 호송 임무는 지상 구조로 바뀌었다.
적어도 공중 정원으로 돌아온 리브와 그곳에 선 구조체들은 무사하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다음 임무를 배정하자.
그래.
세 리더는 사람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했고, 각자 잘하는 역할에 따라 047호 도시에 남은 687명의 사람을 8개 팀으로 나눴다.
그레이 레이븐, 케르베로스, 차징 팔콘의 각 대원은 이곳에 머물고 있는 구조체 두 명과 함께 새로운 소대를 만들어 그 8개의 팀을 별도의 보육 구역으로 인솔했다.
분산된 사람들은 비상사태에 더 쉽게 대처할 수 있었고, 물자가 부족한 구역의 경쟁을 줄여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의견이 통일된 후 사람들은 각자 짐을 챙기고 거점 바깥쪽에 서서 구조체들을 따라 떠날 준비를 했다.
잠깐.
녹티스가 갑자기 군중의 행동을 끊고는 800m 떨어진 곳에서 통신으로만 연락할 수 있는 카무를 가리켰다.
여기에 임무를 배정받지 않은 인원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은데?
미안, 내 설명이 늦은 것 같네. 카무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인원과 협력할 수가 없어. 앞으로 반즈를 따라 행동할 거야.
반즈 팀의 환자 비율이 더 높고, 게다가 부상자를 돌봐야 해서 전투에 집중할 수 없어.
카무는 거점에 들어가지 않고 밖을 순찰할 거야.
……
저 녀석…… 그 무슨 무기가 개발되면, 이참에 저 ‘특수성’에서 벗어나려는 거 아니야?
그 점에 대해서는 통지를 받았을 때 카무와 협의했어.
Ω무기가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는 지금의 상태를 바꾸고 싶지 않을 거야. 더구나 그런 효과가 있을지도 알 수 없고.
하, 모두에게서 소외되는 느낌을 좋아하나?
바보 같은 것들이랑 같이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아.
카무는 단지 중도 재난 지역에서 계속 행동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때도 ‘너희들에게 그곳은 너무 위험하지만, 임무는 누군가 해야 하니까’!라며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말했지.
시끄러워.
리더 쪽의 부상자가 많아서 아무도 협조하지 않았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다수의 무장 난민을 수용한 거야.
이제 준비 다 했지?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서해안에 인접한 3개 도시다.
적조가 모인 곳이나 이합 생물들을 감지하면 곧바로 다른 대원과 연락하고 공유한다.
알겠다.
알겠어.
그리고.
베라는 갑자기 조롱 섞인 웃음을 지으며 리를 바라보았다.
시간 있을 때 집에 있는 동생에게 안부 전해 주는 게 어때?
?
임무 보고할 때 스트레스 받기 싫거든.
……
가자.
케르베로스 소대가 떠나갈 무렵, 루시아의 통신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려왔다.
사, 살려주세요. 으아아아악!!!
와타나베, 그쪽에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우리 거점에 [치직] 인간형 생물체가 [치직]
인간형 생물체로부터 습격당했다고?
단말기에서 교전과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와타나베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와타나베?! 와타나베??
여기에 [——치직——] 부상자가 많아 [——치직——] 지원 [——치직——]
신호가 불안정한 탓에 와타나베의 목소리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구조체는 그 작은 키워드에 침묵에 빠졌다.
그들은 과거의 입장을 말하지 않더라도, 다른 곳의 구조를 위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너희 어디야?
동부의 [——치직——] 37호 [——치직——] 대량의 이합 생물 [——치직——] 인간형 [——치직——]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037호 도시는 여기서 너무 멀어서 우리가 전력으로 달려가도 늦을 거야.
아딜레 [——치직——] 지원 [——치직——]
아딜레 상업 연맹도 이번 구조에 참여한다고?
[——치직——] 끝까지 쫓아오니 [——치직——] 그것들을 떼어 놓을 [——치직——] 43호 [——치직——]
043호 도시의 역에서 합류하자고?
[——치직——] 5시간 후 [——치직——]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단말기의 화면은 폭발의 영향으로 검게 변했다.
……저쪽 상황이 안 좋아 보이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리더!
그래. 지금은 더 이상 입장을 고집할 때가 아니야.
그럼 팀을 나눠보자.
나랑 리가 팀의 구조체 3명을 데리고 043호 도시의 역으로 가서 오셀럼호를 기다리는 거야. 대신 우리랑 같이 떠나기로 했던 난민들을 좀 부탁할게.
둘만으로는 너무 위험해. 나도 같이 갈게.
하지만…… 아니, 네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아직 와타나베 쪽의 상황을 알 수 없지만, ‘계속 쫓기고 있다.’는 말을 꺼냈어.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야. 우리도 한때 인간형 생물체에게 쫓긴 적 있는데, 속도만으로는 절대 거리를 벌릴 수 없어.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은 지난번 사용으로 소모되서, 이번에는 다른 생각 말고 그들과 싸울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해.
나도 따라 갈게!
여기 너무 많이 모였어. 우리 셋이 이끄는 소대가 출발하는 데에는 한계야.
네가 참여할 순 없지만, 내 쪽 인원 90명을 너한테 맡길게, 인솔할 수 있겠어?
그래, 내가 임무를 분담할 수 있다면 좋아.
나랑 리의 팀에 있는 인원들은 의사가 아닌 두 명에게 맡겼어. 의사 팀 안에 대부분은 부상자여서 돌봐야 할 부분이 많아.
문제 없다.
나한테 한 번 빚진 거다.
좋아,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