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17 인멸잔주 / Story

본대가 철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에서 알 수 없는 폭발로 인한 진동과 소리가 들려왔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가 사라진 후 세상은 30분간 조용해졌고, 근처에 수많은 이합 생물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합 생물들은 지하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육 구역을 넘어 폭발음이 들려오는 쪽으로 달려갔다.

발자국 소리는 무려 30시간 동안 이어졌고, 더 먼 곳에서 몇 차례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빨간색 표시등이 어떤 손상을 입은 건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작동이 중단되었다는 것만 알았다.

잠시 후 안전한 공기 배출을 멈춘 여과탑이 고농도 퍼니싱을 끊임없이 흘려보내자, 지하에 숨은 의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노부인은 칼리를 부축해 지상으로 올라갔지만, 30분 후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자자. 좀 자고 일어나면, 안 아플 거야.

본대 철수 5시간 후.

지난번 속도를 생각했을 때, 지금쯤이면 이미 돌아오고 있겠지?

그걸 생각하자 샌디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손을 들어 성냥의 머리를 문지르며 그 부드러운 감촉으로 배고픔을 달래려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노부인이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렸는데 퍼니싱에 의해 그녀의 두 다리가 완전히 부식되어 있었다.

리브가 떠나기 전에 얼마 없는 재고에서 혈청 2개와 통조림 1개를 남기고 갔었다.

세 사람은 서로 양보하며 결국 통조림은 샌디에게 혈청은 밖에 나갔다 온 노부부에게 주기로 했다.

하지만 샌디는 바로 통조림을 뜯지 않았고, 그 귀중한 자원을 어쩔 수 없을 때 먹기 위해 남겨 두었다.

칼리가 잠에 들 때까지 그 노부인은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계속 눈을 뜨고 있었다.

본대가 떠난 지 10시간이 지났다.

방호복을 입고 있어도 샌디는 두 다리의 아물지 않는 상처가 빠르게 부식돼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퍼니싱 농도 측정기가 어디 있는지 몰라 상처에서 계속 나오는 고름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행 속도가 느려진 건가? 샌디는 이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는 리브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인원이 여과탑을 수리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녀가 말한 ‘안전 경로 계획’을 통해 적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그런 안전 경로를 찾을 순 없을까?

044호 도시의 퍼니싱 농도도 여기처럼 높을까?

그는 이 두 가지 문제를 이리저리 생각했지만, ‘아니오’라는 답만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다리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그는 침대 시트와 베개를 잡아당기며 주의를 분산시켰다.

그래도 떨리는 손을 들어 그를 품에 안으려 애썼다.

괜찮아. 잘 될 거라고 믿어. 리브 누나가 돌아온다고 말했으니까.

……여기를…… 떠나서…… 자유롭게……

의식을 잃을 것 같은 가운데, 샌디는 붉은색 진주가 종이 위에 떨어져 날개 위에 절망의 꽃을 피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건 피였다.

어둠이 내린 뒤 피로 가득한 대지는 지하실과 함께 캄캄한 적막에 휩싸였다.

15시간의 긴 기다림에도 보육 구역 밖에는 희망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칼리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곁에 있는 아내를 툭툭 쳤지만 이상한 냉기가 느껴졌다.

희미한 빛 속에서 노인은 그녀의 늙은 피부를 몇 번이나 건드렸고, 짓무른 상처는 마치 기억의 윤곽을 재구성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다. 비록 질병과 노쇠가 많은 추억을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그 조각들은 소리 없이 같은 이름을 속삭였다.

따스한 미풍이 아침 햇살과 함께 수많은 재난이 발생한 땅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상징은 부식에 시달리는 소년에게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그를 유일하게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밤에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본대가 철수한 지 24시간이 지났지만, 지하실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희망에 관한 어떠한 소식도 받지 못했다.

아니면…… 돌아오지 않으려는 건가……

그는 몸부림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쇠약해진 몸에 꽉 묶여 실패를 거듭했다.

가는 사람이 많아서…… 무슨 일이 생긴 거면…… 큰일인데……

하지만 난…… 괜찮아…… 내가 살아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그 길고 절망적인 밤을 겪기 전, 샌디는 한때 겪은 고통이 병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줄 거라 여겼고, 샌디는 단지 그것만 기억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면, 죽음을 안아보자……

하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도 아프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어르신?

그는 노부부의 옷자락을 살짝 들춰보니 두 사람의 피부는 이미 썩은 적조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상처와 똑같았다.

그러나 봉쇄문 뒤의 희망을 위해 그는 다시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문을 향해 걸어갔다.

새벽의 따스한 미풍이 악취와 섞여 지하실로 스며들면서 희망이 깨지는 듯한 느낌이 번져가고 있었다.

방금 그 기척들은 어디서 들려온 걸까? 바람과 폐허가 합쳐진 장난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모두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해도, 이곳에 무심코 들어온 청소부가 있을 수도 있어……

그는 지하실을 떠나 보육 구역 전체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그 건물의 맨 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본대가 출발한 지 28시간이 지난 후였다.

모두가 죽었고.

한 달여 동안, 그와 성냥은 한 끼도 배부르게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운동량이 그에게 어떻게 작용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고, 성냥도 가지고 있던 힘을 전부 소모해 꼼짝도 못 하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대부분 청소부의 눈에 28시간은 그저 보잘것없는 시간 조각이라고 생각했고, 샌디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배고픔과 병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24시간의 고통과 4시간의 수색은 그를 삶의 끝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죽음의 끝에 선 소년은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는 통조림을 바라보며 침묵에 빠졌다.

통조림 반 개로는 체력을 회복할 수도, 상처를 아물게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보육 구역의 탑 꼭대기에 갇혀 걸어서 돌아갈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퍼니싱 침식으로 온몸이 부식돼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식사는 그에게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차라리 더 필요한 생물에게 남겨주는 게 나았다.

소년은 망설임 없이 통조림을 열어 성냥의 앞에 놓았다.

어떻게 아직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자신의 처지가 나아졌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그 웃음은…… 단지 성냥이의 기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저는 성냥이가 정말 필요해요. 제 삶의 의미이자 원동력이에요.’

‘정말 어느 날 궁지에 빠진다면 저는 성냥이를 버리지 않고 제 자신을 포기할 거예요.’

……생각났어. 그때 리브 누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래서……

삶의 끝에 선 이 소년은 환상의 날개를 등에 붙이고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이게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소년의 몸은 빠르게 지상으로 떨어져 산더미처럼 쌓인 빈 상자에 부딪혔다.

만약 이것이 이야기라면 그의 고통은 여기서 멈춰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부서져 있던 폐품이 죽음이 다가오는 속도를 늦춰주었고, 통증과 영면도 그의 예상처럼 빨리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말을 듣지 않아서 다음 변화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물 흐르는 소리였다.

빗물이나 수도관에서 나오는 맑고 잔잔한 흐름과 달리, 그건 우유가 엎질러졌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 차이는 매우 작았지만 물보다는 더 걸쭉하게 느껴졌다. 샌디는 그것이 자신의 피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저린 통증이 사지에 스며들어 그의 의식을 삼키기 시작했다. 아픔이 다시 사지를 가득 채웠을 때, 샌디는 자신이 더 이상 소리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은…… 희생자 명단의 숫자나 이름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담은 몸이 서서히 갈리는 지옥이었다.

사지가 끊어진 듯한 극심한 통증이 초침의 이동 속에서 무한대로 늘어났고, 피가 떨어지는 속도도 함께 느려졌다.

심장이 고통 때문에 마구 잡아당겼다——그는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빨리 끝나는 걸 선택했을까?

죽음은 지금까지 쉽고 수월한 적이 없었고 해방을 의미하지 않았다.

난민 중에 ‘걷지 못하는 건 죽은 것과 다름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보육 구역을 지날 때, 그는 한 안경을 쓴 보육 구역 직원으로부터——지속성 자살 환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런 부정적으로 보이는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퇴로’를 찾게 함으로써 조금 더 나아갈 용기를 얻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퇴로’가 아니었다. 거기에 한번 발을 디디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외상의 깊은 고통 속에서 소년의 마음은 소리치지 못하는 목구멍을 대신해 머릿속에서 비통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떠올린 의문도 울음 속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난 정말 죽음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면, 그건 단지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포기하게 된 것뿐이었다

모든 피와 살의 고통이 그의 결정에 호소했고, 극심한 고통은 끌어당기며 그에게 일어나 구원하라고 간청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건 애초에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그는 본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샌디는 철수의 기회를 내준 것에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 선택의 기회가 한 번 더 있다면, 그는 지금의 자신으로 태어나지 않길 원했다.

이런 후회는 마음속에서 계속 발효되어 그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포기하게 했고, 타인의 눈치를 보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태어난 건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을 버리려는 아이들은 죽음이 자유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파멸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평생 사랑의 대체품을 찾아다닌다.’

끊임없이 버림받아 온 이 아이는 자신이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했다.

죽음의 고통과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자신이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모든 피가 몸에서 빠져나갔을 때, 그 몸은 정체된 감옥에 갇혔다.

——그의 영혼이 지상을 지나 흙 속에서 비상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