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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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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생사와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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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 a.m.

이합 생물들이 보육 구역으로 밀려들어오기 전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구급차 2대를 몰고 이곳으로 돌진했다.

도로도 익숙해지고 차에도 부상자가 없어서 곧바로 질주하여 돌아오는데 3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돌아왔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대원들과 차량을 운전한 샌드카가 함께 봉쇄된 지하실에 뛰어들어갔을 때, 대부분 사람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격리실 안쪽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그곳의 비참함은 화재로 인한 연기같이 눈과 코를 시큰거리게 했다.

리브가 격리실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피범벅이 된 병상에 생기를 잃은 사람이 누워 있었고, 코토는 그녀 옆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

리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짐작 가능하게——린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코토 씨……

고개를 든 상대방의 눈빛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이합 생물이 곧 올 거예요.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해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린지의 싸늘한 손목을 꼭 쥐었다.

…………

지금까지…… 린지가 왜 저를 구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그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리브 아가씨가 미울 때도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다 같이 떠날 수 있었다면, 이별과 부상의 시달림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한 사람이 ‘반드시 죽게 되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요?’라고 리브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평화로운 죽음에 이르기 전에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사실 그들의 고통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린지의 눈 밑에서 발버둥, 삶에 대한 갈망 그리고 하지 못한 그 말을 보았다.

그래서 리브는 ‘잔혹’을 선택했다.

……린지씨가 깨어난 적이 있었나요?

떠나기 전에 깨어났지만, 몇 마디만 전하고서……

뭐라고 말했나요?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내 목숨이 아깝지 않게 됐어’……

‘나를 너무 빨리 찾아오지 마’……

그녀에게 무엇이 이런 방법으로 나를 살려야만 했는지 물어봤어요.

그녀가…… ‘나는 겁쟁이니까’라고 말했어요.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린지!

그녀의 눈물은 끝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

……겁쟁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여기 자신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이 죽을지언정 다른 한 사람을 보호하려 했다.

린지 씨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제 생각엔……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은 분명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녀는 분명…… 당신의 죽음을 깊이 두려워했고, 그 말을 전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을 거예요.

……그런가요……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린지……

쏟아지는 슬픔에 젖어 코토는 리브의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니…… 꼭 살아남아주세요…… 그게 린지 씨의 소원일 거예요.

네……

그녀는 울음 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다 늦겠어. 리브, 어서 모두 데리고 떠나자.

코토 씨, 저희 어서 가요……!

……

그녀는 여전히 울음을 멈출 수 없었지만, 린지의 침대 곁에서 일어나 리브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네, 갈까요?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있나? 설마 저 차량 두 대에 사람 전부를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바네사의 말이 현실로 되돌아오게 했다.

게다가 여기에 예상 인원 외의 사람과 개 한 마리도 있어.

제, 제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철수하는 본대를 놓쳐서요. 거기다 발도 접질리고……

소년은 주위 사람들과 샌디 옆에 있는 성냥을 둘러보았다.

……제가 차에 탈 수 있을까요?

그건 그들이 제 시간에 돌아올 수 있는지에 달렸어.

하지만……

이합 생물이 곧 도착할 예정이지?

맞아. 현재 관측된 수가 너무 많아서 우리만으로는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대처할 수 없어.

그럼 이게 마지막 기회겠네.

지하실 안은 순간 적막에 휩싸였고,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다음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너희 지휘관을 데려가고 다음은 아무나 탑승시켜, 차에 못 탄 사람은 여기 남고.

그리고 중상을 입어서 들 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사람들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지하실 출구로 달려가 하마터면 바네사를 땅에 쓰러뜨릴 뻔했다.

……하, 어서 너희 지휘관을 구하러 가.

그들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을 데리고 지상에 나왔을 때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밀지 마세요……!

이합 생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에 빠졌다. 리브는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어 차량이 전복되지 않도록 보호했다.

질서 있게 줄 서주세요!

상처의 영향으로 리브의 모습이 사람들 속에서 흔들렸다.

일부는 그녀의 통제에 따라 간신히 질서를 지켰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친 부위를 이끌고 앞다퉈 차 안으로 동시에 밀고 들어가려고 해서 구급차 전체가 흔들렸다.

부상 입은 난민23

어떻게 안 밀어!! 이 차로 저 많은 사람을 다 태울 수 없는데!!

부상 입은 난민24

왜 밀고 난리야?! 너 겨우 이까짓 상처로! 차에 타겠다는 거야!

부상 입은 난민25

당연하지! 그런데 이 지진 일어난 것 같은 소리는 뭐야! 그 괴물들이 오고 있는 거 아니야?!!

부상 입은 난민26

너희들이 밟아서 난 소리야! 기어올라가겠다고 내 어깨를 밟아?! 이러고도 너희들이 사람이냐?!

부상 입은 난민27

오늘 난 사람이 아니야! 으아! 꼭 탈고 말 거야!

아수라장의 현장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짐 삼아 차량을 꽉 채웠다.

그럼에도 구급차에 올라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

저한테도 자리 하나만 주세요!

부상 입은 난민27

꺼져! 넌 다치지도 않았잖아. 이건 다 자업자득이야.

부상 입은 난민35

그런데 여기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아니면 개를 내보내고 쟤를 타게 할까?

장관이네. 난 또 무슨 고기를 가득 채운 샌드위치를 본 줄 알았어.

바네사는 지하실 입구에 서서 조롱하는 듯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자, 이렇게 과적된 차의 속도가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이합 생물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차 안에서는 아무도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모두가 숨만 죽이고 있었다.

너희들이 다른 중상자 몇 명에게 자리를 주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에게도 자리를 내주지 않는데,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너희들을 위해 봉사할 거라 생각해?

지휘관님은 제게 맡겨주세요. 제 무기는 손으로 제어할 필요 없어서 다른 인원보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내게 맡겨줘. 넌 우선 너부터 신경 쓰는 게 좋겠어. 게다가 부상자도 있잖아.

좋아.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럼 그렇게 해.

그럼, 차에 타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쉽지만 여기 남아야겠어. 다음 생에 보자고.

안 돼요!!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저는 형을 찾아야 해요!! 형을 찾아야 해요!!

죄송해요!! 제가 그렇게 경솔하게 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제발 어디라도 좋으니 저도 데려가 주세요!!

…………

절망하며 구급차 뒤에서 무릎을 꿇은 그는 고개를 들어 차량 안과 지붕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간청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울음소리와 요청을 무시했다.

이게 제 유일한 소원이에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겁낼 필요 없어요. 방호복 잘 입고 숨어 있으면, 우리가 다시 돌아와서 꼭 데리고 갈게요!

저,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제발요! 부탁이에요!!!

그는 황급히 리브의 발 밑에 엎드려 그녀의 동정을 간청했다.

……내가……

리브 누나, 정말 다시 돌아올 거죠?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그럼…… 제가 자리를 양보할게요.

샌디는 성냥을 데리고 붐비는 사람들을 뚫고 차량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기다릴게요. 저 친구를 먼저 가게 해주세요.

샌디……! 고마워…… 그리고 미, 미안해…… 내가 너를 오랫동안 오해했어.

그는 샌디를 껴안았고, 눈물과 콧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아니야…… 괜찮아.

다 결정한 거지? 이제 남을 사람 없는 거지?

코토 씨……

괜찮아요. 린지랑 같이 여기 남는 것도 전 좋아요.

???

괜찮긴 뭐가 괜찮아!

늙은 목소리가 그 주인과 함께 차량에서 빠져나왔다.

가거라, 아가. 넌 젊잖아…… 또 목숨을 걸고 지켜낸 거야.

아주머니……

난 늙었어. 그리고 원래부터 저 영감이랑 헤어지기 싫었어. 남아서 같이 있을 거야.

……

하지만……

아줌마한테 미안하면 내 부탁 하나 하마.

그녀는 품에서 단단히 묶인 주머니를 꺼냈는데, 안에는 그녀와 칼리가 죽을 만들 때 남긴 벼 이삭이 들어 있었다.

나중에 네가 이 벼 이삭을 심을 장소를 찾아줘…… 괜찮다면 이후에 뭘 먹든 씨앗을 남기고, 우리 대대로 전해지는 규칙을 모두에게 알려줘.

…… 알겠어요.

그래. 그럼 충분해.

그녀는 주머니를 코토의 손에 건네주고 어깨를 툭툭 쳤다.

어서 가, 착한 아가. 잘 가.

코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벼 이삭이 든 주머니를 품에 넣고 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저희 이제 가요. 유키는 제가 업을 테니 카나타는 대장님에게 맡길게요.

알았다.

노부인은 웃으며 모두에게 손을 흔들었다. 소년은 떠나기 전 서둘러 자신의 노트를 꺼내 마지막 여백을 찢은 뒤 펜과 함께 샌디에게 건넸다.

이건 고마움에 대한 선물이야. 그게 너의 소원을 이뤄줄 거야.

고마워…… 잘 가.

그곳에 남은 이들은 루시아와 바네사가 운전석에 올라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았고, 과적된 차량은 무거운 소리를 내며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로 먼 곳을 향했다.

차량이 보육 구역을 빠져나가는 순간, 리브는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과 린지가 있는 쪽을 돌아보며 차가운 생각이 불쑥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정말 늦지 않겠지?

…………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아니야, 다른 방법이 없어……

한 명이라도 더 태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리브는 고통스럽게 억지로 자신의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부러진 다리는 걸을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지만, 차량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빨리 돌아간다면…… 모든 게 늦지 않을 거야!

5.58 a.m.

과적된 구급차 2대가 6분 동안 폐허 속을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고개를 돌려 보육 구역을 보면 여전히 완전한 윤곽을 볼 수 있었다.

바네사가 계기판의 주행 속도를 보니 현재 시속은 37km였다.

의미 없는 도망을 바로잡기 위해 그녀는 주행 중이던 차를 멈춰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이 속도로 가면 이합 생물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그녀는 차량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았고, 사람들도 일제히 차량 밖의 그녀를 보았다. 같은 인간으로서 입장이 같아야 했지만, 차량 안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저들을 끌어내려. 각 차량에 15명만 남겨놔. 그래야 제때 떠날 수 있어.

부상 입은 난민35

15명?! 장관!! 여기 40명 넘게 타고 있는데!! 내린 사람은 죽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여기서 죽을 거야.

사람들로 가득 찬 차량 안에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항의가 터져 나왔는데, 바네사의 눈에는 그것이 수많은 입이 생겨난 비틀린 상자처럼 보였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래? 너는 어떻게 하고 싶지?

루시아는 바로 답하지 않고 옆에 있는 동료들을 보고는 눈빛으로 리브와 리의 동의를 구했다.

우리가 여기에 남아 이합 생물들을 저지하고, 그것들을 다른 쪽으로 유인해 모두가 철수할 시간을 버는 거야.

대답이 정말 내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어. 역시 [player name]이(가) 배출한 인형답군.

그런데 그게 무슨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아? 너희들의 순진함이 지휘관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어.

그 위험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실력을 더 믿고 싶어.

지칠 때로 지친 구조체 3명과 부상자 1명이 전부인데, 실력?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순진함과 오만함은 정말 일맥상통하는구나.

우리는 이미 많은 사람을 잃었어……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거야.

이게 ‘수석’의 지도인가? 네 품에 있는 그 멍청이가 자신의 실력을 잘못 평가해서 너희 같은 쓸모없는 것들을 구한 거야.

지휘관님을 모욕하지 마!

그 ‘멍청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여기에 없었고, 당신도 구원을 받지 못했어.

…………

……하, 그래서 너희들은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지휘관을 버리고, 저 살릴 가치도 없는 난민들을 구하겠단 얘기야?

가치 없는 생명은 없어요.

우리는 힘을 합쳐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을 거고, 곤경과 두려움 때문에 전장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도망치지 않을 거다…… 하……

그 단어를 들은 그녀는 사라진 테슈가 떠올랐다.

그가 중상을 입어 돌아오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탈영병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인지 바네사는 관심 없었다.

예전부터 백로 소대는 전술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에 팀의 사상률은 낮고 목숨을 아끼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이길 수 없는 전투에 직면하면 중상이든 탈영이든 모든 게 가능했다.

그녀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을 처음 본 건 아니지만, 도망치려다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는 인형들은 전부 바네사에 의해 잘 조련됐다.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는 인형에게는 벌을 줘야 해 그래야 교훈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녀는 그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도 부하 인형의 탈영은 막을 수 없었는데, 그때 그녀는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았고, 그들은 뼛속에 비열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새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player name]이(가) 의식을 잃은 후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살기 위해 그곳에서 도망칠 기회를 찾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레이 레이븐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녀를 구했다. 인근의 난민을 구했고, 주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목숨을 바치려 했다.

해리조, 시몬…… 팔지, 일레나 일행들도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고,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가능한 한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전부 구하고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갔다.

왜……

파오스 학원에서 졸업하기 전, 그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교관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모든 생명은 그것만의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작더라도 그들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한 사람이었다.

최고의 지휘관이 되려면 꼭 명심해라——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가치 없는’ 것을 가볍게 보면, 언젠가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교관이 철두철미한 이상주의자로, ‘팀원 협력’을 권장하기 위해 수업 시간에 일부러 과하게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전술이 실패해 궁지에 몰렸을 때 그녀는 ‘팀원 협력 권장’이란 말이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봤을 때 그에 걸맞지 않은 ‘멍청이’가 조용히 구조체의 품에 안겨 잠이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인형’들이 묵묵히 규칙을 지키는 것을 보니……

그녀는 그 말이 떠올랐다.

……이게 우리의 다른 점인가?

그녀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어떤 환영을 잡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너희들이 가. 이합 생물은 백로 소대가 맡아 유인할 테니 전속력으로 철수해.

……뭐? 하지만 너희들——

맞아. 밤비나타랑 나만 남았지. 하지만 준비가 안 된 건 아냐.

그녀는 자신의 전술 가방을 흔들었는데, 거기에 마지막 승부수가 들어있었다.

밤비나타는 수많은 ‘인형’의 소멸과 함께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를 거둔 전적이 있어 절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그 목표를 뛰어넘어 인형이 곁에 남아 있는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바네사는 밤비나타에게 가방 속의 물건을 건네지 않고 자신을 바둑판 위에 올려놓았다.

무엇을 준비했든 간에 그렇게 많은 이합 생물을 상대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하, 뭔 소리야? 난 너희들의 순진한 지휘관과 다르게 내 실력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

[player name]와(과) 저 사람들을 데리고 가. 내가 이 성가신 일을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 너희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어.

……하지만……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너희가 여기 남아도 그것들의 폭발 범위 안에 서있는 화염의 잔재가 될 뿐이야.

그럼 넌?

나만의 방법이 있어.

걱정 마. 난 여기서 죽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수석에게 전해줘……

오늘 내 구원의 은혜를 잘 기억하고, 내가 돌아갔을 때 모든 것에 감사하라고.

바네사……

가자. 이건 그녀의 결정이야.

고마워요……

그녀는 일관된 웃는 얼굴로 그들을 향해 나른하게 손을 흔들었고, 침묵 속에서 차 두 대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량이 그녀와 밤비나타의 시선 끝에 서서히 사라지자 이합 생물들의 발자국 소리도 뚜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선 저 녀석들의 주의를 끌자.

밤비나타

네, 주인님.

밤비나타는 바네사를 안고 단거리 비행체를 이용해 뛰어올랐다.

새벽녘의 하얀 빛을 빌어 그녀들은 도시의 비탈길이 붉게 물든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