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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남아서 지키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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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호 도시 보육 구역, 봉쇄된 지하실 격리실. 3.00 a.m.

리브 일행이 출발한 지 5시간이 지난 뒤 움직일 수 있는 난민들은 전부 이곳에서 철수했다.

그들은 이미 5시간 동안 도보로 이동했지만, 전체 인원의 이동 속도로 인해 아직 043호 보육 구역에서 철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량의 이합 생물들이 그들의 ‘예정’대로라면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고, 앞으로 3시간 후면 보육 구역의 범위 안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사람들로 가득 찼던 지하실은 이제 수십 명의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고, 보육 구역에 있는 모든 구조체는 지상을 지켰다. 지하실에 남은 사람들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네사는 어두컴컴한 격리실에 홀로 앉아 수많은 전자 스크린 가운데서 이합 생물의 방향을 감시 및 분석했고, 이를 보고서로 작성해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는 공중 정원에 보냈다.

이어 그녀는 보육 구역의 구조체 전술 배치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 복귀 후 최적의 철수 경로를 재확인했고, 이합 생물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다.

모든 일을 끝낸 뒤에야 그녀는 스크린에서 일어나 한쪽의 병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 수석.

그녀는 조롱 섞인 웃음을 내며 ‘수석’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날, 자신의 무모함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할 줄 알았다면, 또 그렇게 할 건가?

바네사는 손으로 상대방의 귓가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넌 분명 ‘동료를 지키기 위해 바치는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겠지?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천천히 귓가에서 내려오는 손끝을 따라 그녀는 그렇게 상대방의 목을 졸랐다.

네가 깨어있었다면 지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겠지.

지금의 넌 이렇게 약해. 이런 일격에 견디지도 못했고, 내 손을 밀어내는 것조차 할 수 없어.

고작 인형 몇 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바람 속의 촛불로 만들다니. 전에 너를 칭찬했던 교관이 이런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그녀는 지하실의 곰팡이 냄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향기를 풍기며 몸을 숙인 채 정신을 잃은 사람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는 분명 너에게 했던 칭찬을 거둬들일 거야. [player name], 너는 자신을 지키지 못한 멍청이니까.

바네사는 자신 앞에 뜨지 않는 눈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고, 오랜 병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얼굴은 어두운 조명 아래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진짜 보기 흉한 거 알아? 네가 지금 깨어나도 아틀란티스 사건 후에 스크린 너머로 널 지켜보던 사람들이 네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거야.

그런 조롱이 상대방의 귀에 전달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 무의미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거야.

이 일이 시작되기 전에 너의 뒷모습은 하나의 목표이자,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 그리고 하나의…… 허무한 환상이었지……

하, 지금은 너를 목표로 삼았던 게 우스울 뿐이야.

그거 알아? [player name], 내가 지금 널 이렇게 죽일 수도 있어.

갑자기 상대방의 목을 조르던 손이 곧 풀렸다. 그녀는 웃으며 자신의 따뜻한 손바닥으로 환자의 창백한 피부를 위로하듯 덮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 난 너를 비웃었어. 모든 사람을 돌보고 싶다는 게 너무 순진해 보였거든.

나는 네가 곧 패배를 맛보고 그 순진한 이상이 이 세상과 어울리지 않다는 걸 깨달을 줄 알았어.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너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전투가 되었겠지.

환자의 차가운 목덜미가 손바닥의 온도로 따뜻해지지 않자, 손을 들어 손끝으로 경동맥이 뛰는 빈도를 확인했다.

간단한 전투에 불과했는데 목숨을 잃을 뻔했어. 수석…… 대체 뭐가 너의 마음을 움직인 거지?

아니면 과거에 내가 너를 신경 쓴 시간이 전부 헛된 낭비인 건가? 수석이 될 자격도, 다른 사람의 본보기와 목표가 될 자격도 원래부터 없었던 건가?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멀지 않은 곳에 놓인 전자 스크린과 접이식 거울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3시간 후면 이합 생물이 보육 구역에 진입할 거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이곳에서 완전히 죽게 되겠지.

난 밤비나타만 데리고 가면 언제든 안전하게 떠날 수 있어.

거울에 비친 모습에 다시 한번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어 정리했지만, 눈빛은 그 정교함과 전혀 다르게 공허하고 목적 없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건 지휘관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

파오스 학원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전술과 신념은 언제나 적에 맞서 가능한 한 살아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거였어.

외로운 혼잣말이 적막한 지하실 격리실을 울리게 했지만 여전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전장은 그렇게 인자하지 않아. 모든 사람을 돌볼 수는 없어. 누구든 희생을 치르게 되고, 너도 예외는 아니야. 수석.

사람은 죽으면 명예, 권리…… 그리고 우스운 인연도 전부 물거품이 되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네가 지켜주던 사람도 곧 너를 잊을 거야.

바네사가 전자 스크린으로 가득한 간이 테이블로 향하자 자신의 주의력이 일각 뒤에 있는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주워 담기 위해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변함없는 병상을 바라보았다.

[player name], 어리석고 순진한 멍청이. 네가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건, 그들이 이상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야.

지금의 넌 모든 의지력을 잃었으니 내가 어떻게 생존자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알려주겠어.

4.30 a.m.

이합 생물이 보육 구역에 진입하기 1.5시간 전, 지휘관 바네사와 보육 구역에 주둔 중인 4명의 구조체는 지상에 나가 전투 준비를 마쳤다.

봉쇄된 지하실에는 그레이 레이븐의 [player name] 지휘관과 거동이 불편한 경상자 41명 그리고 중증 환자인 유키, 카나타, 린지, 칼리 이상 4명이 남아 있었다.

그 외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

뭘 봐? 계단에서 넘어진 사람 처음 봐??

……아, 아니야.

사람들과 함께 철수해야 했던 이 소년은 떠나기 전 지하 3층 창고로 몰래 들어간 뒤 황급히 올라가려다 넘어져 튀어나온 계단에 뒤통수를 부딪혔다.

발목을 접질렸을 뿐 아니라 그는 한 시간 동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의식을 잃었었다. 성냥에게 발견되어 구조됐지만 사람들을 따라 떠날 시기는 놓치고 말았다.

네 개는 역시 이럴 때 창고에 들어가네!

……성냥이는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감지했을 뿐이야. 그런데 넌? 왜 창고 안에 있었던 거야?

당연히 너랑 네 개가 창고에 들어갔는지 감시하려고 왔지!

……철수 시기를 놓치면서까지?

그냥 한 번 보고 올라가려는 것뿐이었어!

그는 자신의 뒤통수를 주무르며 접질린 발목도 주물렀다.

넌 분명 믿고 있지 않겠지.

…………

왜 그렇게 나를 경계하는 거야?

네 개가 내 통조림을 다 먹었으니까! 그건 내 친구가 죽기 전에 내게 남겨준 건데, 그 통조림 때문에 내 친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데 네 개가 다 먹었잖아!

마음 아픈 얘기를 꺼내자 소년은 약간 울먹였다.

말했잖아. 성냥이는 먹지 않았다고!

……흐응.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난 내가 본 것만 믿어!

그 거지 같은 보육 구역,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만 아니었다면 들어가지도 않았을 텐데!

무슨 ‘동고동락’ 하자고 하면서 내 통조림은 창고로 빼앗아 가고, 너 같이 아무것도 없는 녀석도 받아주고!

…………

흑흑…… 저 통조림 몇 개로 버텨서 형을 찾으려 했는데……

소년은 아무도 없는 병상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넌 형이 있잖아.

맞아…… 세상에서 가장 좋은 형인데……

소년은 흐느끼며 품에서 허름한 노트를 한 권 꺼냈다. 페이지 절반은 이미 벗겨져 있었고, 남은 종이도 여러 겹의 종이테이프로 간신히 붙여 노트에 남아 있었다.

형이 매일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도 그려줬는데……

그는 손으로 얼마 남지 않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만졌는데, 그 위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풍성한 닭구이, 새로운 옷, 온전한 오두막, 침대, 축구공, 정원…… 그리고 상냥한 여성.

그림 말고도 글자들이 적혀 있었는데, 같은 말이 중복되어 있었다.

글자 읽을 줄 알아?

조금, 너는?

좋겠다. 우리 엄마는 글씨 쓰는 법은 못 가르쳐주고 떠났거든. 그래서 나랑 형은 지금까지도 글씨를 못 알아봐.

그는 애써 흐느끼던 것을 멈추고 코를 훌쩍이며 페이지의 상냥한 여성과 그녀 옆에 있는 글자를 가리켰다.

형은 이 노트가 하늘에 있는 엄마한테 소원을 전달해 주고 엄마는 그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말했어.

봐. 이게 엄마가 형이랑 나한테 가르쳐준 주문인데, 그림 옆에 이걸 적으면 엄마가 내 소원을 들어줄 거야.

샌디가 소년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지만, 거기에 적힌 것은 어떠한 주문도 아니었다.

……‘미안해’……

네?

……‘이렇게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샌디는 입을 벌려 자신이 읽은 그 빽빽한 글씨들을 설명하려다 뭔가 알아차린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잠깐, 딴생각이 나서.

쳇, 지금까지 이 소원 노트는 아무에게도 보여 준 적 없었는데, 기껏 보여줬더니 이상한 말이나 하고.

미안…… 그런데 나한테 왜 보여준 거야?

네가…… 나를 구해줘서?

그는 어색하게 담요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몸을 돌려 웅크렸다.

됐어. 엄마도 가족도 없는 녀석한테 이런 말 해서 뭐해. 어쨌든 네가 개한테 몰래 먹으라고 보낼 때 나를 본 거잖아.

……성냥이는 그런 짓을……

시끄러!

……알고 있어.

……최근 며칠 동안 너랑 개만 지켜보고 있어서…… 알고 있어.

진실을 알아차린 건가? 샌디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얼른 잠이나 자!

그는 초조하게 침대에서 몸을 뒤집었고, 다친 뒤통수와 발목은 아직도 은은히 아팠다.

알았어.

샌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지하실 깊숙한 곳을 바라보며 창 밖의 풍경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가 빈 침대에 누워 잠시 쉬려고 할 때, 반대편 격리실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아아!! 가지 마!! 린지!!!

그 비통한 외침 속에서 황혼을 배회하던 또 한 명의 사람이 영원한 밤에 안겼다.

……밝은 날이 언제쯤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