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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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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외딴섬의 난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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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와 리는 구조에 실패한 구조체 부상자들을 보육 구역의 봉쇄된 지하실로 데려왔고 어느새 꼬박 하룻밤이 지났다.

리브에게 간단한 정비를 받은 그는 기본적인 행동력이 회복되어 새로운 구조 임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공중 정원으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체들은 오랜 전투를 겪어 기체가 손상된 데다가 휴식실 부족으로 생긴 문제 때문에 계속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차갑고 습한 보육 구역 지하실에서 웅크린 채 외부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퍼니싱 농도 하락 소식, 구조 관련 소식, 새로운 물자 소식, 혹은 구조 받은 사람들의 이관 소식... 사람들은 이러한 소식을 기대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기다렸다.

——새로운 난민만 오지 않으면 뭐든 좋았다.

그러나 굶주림과 질병의 고통은 실망과 함께 닥쳤고 164명의 난민이 비좁은 봉쇄 지하실에 함께 주둔하게 되었다.

164명의 난민에는 구조체 10명과 지휘관 2명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멤버 3명과 [player name] 지휘관, 백로 소대의 밤비나타와 지휘관 바네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6명의 구조체는 구조 작전에서 살아남은 소수 생존자들이었다.

그 6명 중 중상을 입은 2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구조체는 리브의 간병으로 간신히 행동력을 회복했다.

그들은 인근에서 수색 작업을 진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찾을 수 있는 난민은 줄어들었다.

서해안 활동 단위 수색 완료.

공중 정원의 구조 작전이 재차 실패한 둘째 날 오전 6시.

리는 구조체 2명을 데리고 주변 수색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지하실에 잠든 사람들을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봉쇄식 대문 밖에 서서 몸에 묻은 빗방울을 털며 손에 든 2개의 작은 박스를 구조체에게 건넸다.

물자가 많지 않으니 우선 창고에 넣어두는 게 좋겠어.

네.

루시아는 044호 도시에서 임무 수행 중인데. 내가 그쪽으로 가서 루시아를 도울 거야.

상황은 어떤가요?

서해안에 인접한 보육 구역이 전부 파괴됐어.

전부요?

응, 바네사의 예측대로 그 두 인간형 생물체가 서해안을 지나가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혔어.

최근 그들은 삼림 공원에서 서해안으로 이동해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 다음 북극 항로 연합 부근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어.

그들은 북극 항로 연합으로 진입하지 않고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

현재 인간형 생물체는 041호 도시 근처에 도착했어. 만약 그들이 풀리아 삼림 공원으로 돌아가면 우린 태세 전환의 기회가 있을 거야. 우리가 있는 043호 도시와 040호는 인접 도시가 아니니까.

혹여 그들이 042호 도시에 진입하면 다음 번에는 이곳으로 올 확률이 어느 정도 있어.

그래서 루시아가 돌아온 뒤에 우리도 서둘러 계획을 세워야 해.

서해안의 몇몇 도시에는 아직 생존자가 있나요?

많은 편은 아니야.

3명을 구조했고 그중 2명을 데려왔어. 다른 한 명은 친구를 찾겠다며 다른 보육 구역으로 갔어.

리 뒤에서 두 소년이 걸어 나왔다. 한 명은 다리가 심하게 침식되어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몰골이 파리했지만 건강한 편이었다.

침식 정도가 심각해서 혈청이 필요할 거야.

네, 초기 물자 보급 중에 아직 혈청이 좀 남았어요, 하지만 지하실에는 격리실이 한곳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성냥이는요?

소년은 두 사람의 어조에 따라 목소리를 낮추었다.

성냥이?

뒤에.

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틈 사이로 털이 복슬복슬한 형체가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모색이 더러워지고 체구도 말라 보였지만 그건 확실히 국경 목양견이었다.

성냥아...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성냥이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죄송해요. 제가 성냥이를 데려올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할 수 있는 건 제가 다……

비상식량은 꼭 챙겨야지!

그 옆에서 또 다른 소년이 분한 듯 냉소를 터뜨리자, 멀지 않은 곳에 선잠에 빠져 있던 몇몇 사람들이 놀라서 깨어나 문 쪽을 기웃거렸다.

성냥이는 내 가족이야…… 먹는 게 아니라고!

그래, 그래, 네 가족을 위해서라면 넌 누구든 다치게 할 수 있잖아.

소년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실내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침대 옆에 있는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맞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잖아요. 얘가 오는 길에 개한테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줬지 뭐예요.

그는 핸들 위에 두 손을 얹는 시늉을 하며 오는 길에 소년이 설명할 때의 동작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성냥아, 이렇게 하면 왼쪽으로 가고 이렇게 하면 오른쪽으로 갈 수 있어. 대단하지? 우리도 차 한대 주우면 좋겠다!’ 하하하하!

지쳐 있던 사람들은 그의 과장된 모방에 웃으며 소년과 그의 개를 쳐다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오랫동안 답답했던 지하실이 쾌활한 공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흉내를 내던 그 소년은 이내 웃음을 거뒀다.

여기 계신 형님 누님들, 제가 이곳은 처음이라 미처 물자를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며칠 동안 신세 좀 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년은 난민들과 어울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물자를 나눌 사람이 생기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적개심을 자신의 연기와 예의 바른 인사로 신속하게 풀어냈다.

지금 바깥 상황은 어떠한가?

공원 유적에서 서해안까지의 보육 구역이 전부 없어졌습니다.

그 말을 듣고 주변의 난민들은 떠들썩하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두 놈 때문에?

그들 외에도 적지 않은 이합 생물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숨어 지내다가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서쪽은 전멸한 것 같군. 과연 그 두 놈은 앞으로 어디로 이동할지......

덩치가 큰 난민 대장은 소년에게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과자를 던져줬다.

받아라. 이건 정보에 대한 답례다. 이 구조체들은 매일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우리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해주지.

…………

루시아 쪽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으니 도우러 가야겠어. 여기는 너에게 맡길게, 리브.

리가 리브에게 손을 흔들고 움직일 수 있는 구조체 몇 명을 데리고 대문을 나섰다.

네, 걱정 마세요. 다들 조심히 갔다 오세요.

격리실에 계신 그 여성 장관님은 일부 소식은 우리를 더 절망하게 만들 수 있으니 당분간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지.

흥, 어이없네요.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절망스러운 게 아닌가요?

저희가 계속하여 탐사하고 있지만 외부는 아직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태입니다.

상황이 좋아지거나 철수해야 할 정도로 위급해지면 반드시 여러분과 의논할 거예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른 소년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안쪽 방으로 안내해 휴식을 취하게 했다.

고마워요……

두 사람이 방을 지나가려 할 때, 방금 과자를 먹었던 소년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아 참,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게 있어요.

형님 누님, 다들 자기 식량을 잘 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보육 구역이 파괴된 후 창고에 비축해 둔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아니야……! 나한테 없어!

왜 호들갑이야? 난 너라고 말한 적 없어. 네가 창고로 갔다면 퍼니싱에 부식된 건 그 다리뿐만이 아니었겠지.

제가 말하려는 건 저 녀석이 키우는 개예요!

방금과 같은 구조체 몇 명이 물자를 구하러 가기도 전에 이 개가 뛰어들어 통조림 몇 개를 먹었어요!

제 친구가 목숨으로 바꾼 것마저 저 개가 다 먹는 바람에 저는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니야! 성냥이가 먹지 않았어. 누군가 안에 갇혀 있어서 그랬을 거야!!

……우웅.

구조체가 물자를 가지고 나올 때 그 안에 시체 2구랑 빈 통조림들만 있었다고 말했어.

난민15

그 두 사람이 창고에 쳐들어가 음식을 먹다가 고농도 퍼니싱에 의해 죽은 게 아닐까?

그 상황에 창고로 들어가면 죽을 거란 걸 누구나 알고 있을 텐데, 설마 배고프다고 거기에 들어갔을까요?

제가 봤을 때, 그 사람들은 분명히 이 개를 막기 위해 창고로 들어갔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왜 창고로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나와 성냥이는 물자를 가져간 적이 없어요. 우리는 그냥——

야, 꼬마야.

…………

난민 무리에서 대장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어두운 그늘에서 일어나 소년을 향해 두 걸음 다가갔다.

난 어떤 개가 그 통조림을 먹었는지 논쟁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먹어버렸으니 얘기해 봤자 의미가 없잖아?

하나만 묻지. 식량을 얼마나 가지고 있지?

죄송해요. 가지고 있는 식량이 없어요……

그럼 네 개는 이제 어떡하려고?

그의 현실적인 질문에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년의 당혹스러워하는 눈빛과 겁에 질려 진흙처럼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이 사람들 눈에 들어왔다.

저는……

그러니까 개를 여기에 두면서 우리 식량을 먹이로 줘야 한다는 거지?

죄송해요……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

준비? 어떻게? 넌 방호복도 없잖아. 다리도 다쳤고.

알아서 준비하겠다고? 말은 그렇게 해놓고 밤이 되면 도둑질할지 누가 알아?

나가라고 해! 우리끼리 먹을 것도 없는데 개한테 먹일 식량이 어디 있어?

맞아! 내가 얼마나 배고픈지 알아?! 네가 내 친구가 남겨준 것까지 가져갔잖아!

소년의 울음소리는 사람들의 연일 쌓인 슬픔과 절망에 불을 지폈고, 그들은 부상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켰다.

보육 구역은 연달아 파괴되고, 식량은 하루하루 소모되고 있는데 난민만 늘어나고!! 우리는 배고파 죽을 것 같은데!

꼬마야, 너도 우리를 원망하지 마. 난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목숨을 내놓더라도 이런 고통을 다신 겪고 싶지 않다고!

굶주림, 절망, 전부 지긋지긋해!! 그런데 넌!! 아직도 개한테 먹이나 주고 있다고?!

아니면 네 개를 그냥 구워 먹던가. 감사의 의미로 형들이 과자 한 봉지 더 줄게.

그건 절대 안 돼요!

겁에 질린 소년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성냥이는 제 가족이에요!

흥, 가족? 남의 식량을 훔쳐서 네 ‘가족’을 키운다고?

누군가 양보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충돌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난민12

……어, 쟤네들 곧 싸우겠는데……

난민13

아휴, 신경 쓰지 마…… 진짜 싸우면 대장이 말리겠지.

제가 떠날게요…… 절대 성냥이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 그럼, 지금 당장 꺼져. 너한테 손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

그 난민은 일어서 소년에게 다가가 소년의 멱살을 움켜쥐고 주인을 호위하러 온 성냥이를 걷어찼다.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 같자 늘 부드러웠던 리브는 손에 들고 있던 약을 내려놓고 소년을 자신의 뒤에 세웠다.

어? 의사 아가씨, 지금 저 개를 지키겠다는 건가?

이 아이의 가족이라고 했잖아요.

하하, 가족? 뭔 천진난만한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개 같은 세상에서는 약탈이 살길이야!!

난민15

퀴나 저 녀석, 또 아무 말을 뱉고 있네.

난민17

그냥 내버려 둬. 어느 구조체가 더는 못 봐주겠다 싶어서 한 방 먹이면 얌전해질 거야.

누구한테 한 방을 먹인다는 거지??

지금 의사 아가씨는 팀원도 곁에 없고 나머지 구조체는 움직일 수도 없잖아. 게다가 다리까지 부러졌으니 제아무리 구조체라고 해도 뭘 할 수 있겠어?

약육강식이야말로 진리라는 것을 알려주마! 우리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오늘 반드시 저 개를 처리해야겠어.

전투에서는 약육강식이 진리지만 이곳은 전쟁터가 아닙니다.

뭔 상관이야? 살기 위해서라면 개 한 마리는 말할 것도 없고 진짜 가족이라고 해도 난 손쓸 수 있어!

…………

리브는 더 이상 논쟁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앞에 있는 중년의 난민을 똑바로 쳐다봤다.

칫! 공중 정원의 개 같으니!

그는 거칠게 침을 뱉으며 허름한 소매를 걷어 올리고 리브를 향해 힘껏 한 방 날렸지만, 면전의 ‘다리가 부러진’ 소녀는 뒤로 살짝 한 발짝만 밀려났을 뿐이었다.

……

하, 공중 정원이 키운 너희들은——

다친 의사를 괴롭히는 짓은 더 이상 보기 힘들구나. 퀴나.

그 말을 들은 퀴나라는 난민은 마저 하려던 말을 마지못해 삼키고 리브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자신의 손을 감싸 쥐고 노여운 기색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들이 어떤 진영에 속해있든, 저 구조체들, 특히 이 의사 선생님은 여기서 우리를 구해줬어. 다리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며칠 동안 우리를 간호해 줬다고.

약육강식이 정말 세상의 진리라면 넌 진작에 구조도 받지 못하고 퍼니싱에 의해 썩은 고기가 돼 저 아이가 키우는 개의 먹이로 남았겠지.

……젠장……

퀴나는 이를 갈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먼저 시작한 거잖아!

맞아. 하지만 난 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어. 다만 의사 선생님과 꼬마가 과연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지 묻고 싶을 뿐이었어.

모두의 시선이 다시 소년과 그의 ‘가족’에게 쏠렸다.

……제 몫만 수령해서 성냥이랑 같이 나눠 먹을게요……

저희는 절대 물건을 훔치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안심할 수만 있다면 저는 격리 당해도 괜찮아요!

됐어. 그렇게까지 얘기한 이상 한번 믿어보도록 하마. 격리는 필요 없어. 어차피 격리할 곳도 없고. 난 이 방안에 동의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조용했다.

그럼 이렇게 합의하지. 이 아이가 약속을 지키는 한, 다들 더 이상 괴롭히지 않도록 해.

그리고 퀴나,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

이름이 뭐예요?

식량 부족 문제는 해결할 수 없으니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따뜻하게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샌디라고 해요. 얘는 제 가족, 성냥이고요.

멍.

보더 콜리는 인사라도 하듯 부드럽게 짖어대더니 소년 샌디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고마워요. 착한 구조체 누나.

고맙긴요. 난 리브라고 해요.

리브 누나, 고마워요. 제 친구를 구해준 것도 고마워요. 누나 덕분에…… 성냥이를 지킬 수 있었어요. 여러모로 성가시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별 쓸모는 없지만 도울 일이라도 있다면……

그는 겸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뭔가 잘못 말했을까 봐 조심스럽게 감사와 사과의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이런 환경 속에서 다른 생명의 무게를 짊어지는 건 용감한 일이에요.

굶주림과 고통을 성냥이와 함께 분담하고 있잖아요……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았어요.

멍.

다리는 괜찮으세요?

네, 간단히 조치했어요. 물자가 부족해서 완전히 수리하지 못한 것뿐이에요.

아, 맞다……

그녀는 자신이 휴대한 포켓에서 군용 식량을 한 봉지 꺼냈다. 포장 봉지는 이미 찢어졌고 핏자국도 묻어 있었다.

이건 원래 지휘관님 드리려고 가져온 식량이긴 한데.

철수할 때 포장이 손상됐지 뭐예요. 이제 유통기한도 다 되어 가고……

괜찮다면 성냥이에게 주고 싶은데.

정말요? 진짜 감사해요!

그런데…… 누나네 지휘관님은 식량 없어도 괜찮은 건가요?

…………당분간은 괜찮아요.

지휘관님의 쾌유를 빕니다.

고마워요.

성냥은 리브의 슬픔을 느낀 듯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리브 쪽으로 향해 그녀의 손을 핥으려 했다.

성냥아, 안 돼!

샌디는 재빨리 성냥을 끌어당겼다.

이 누나는 의사 선생님이야. 네가 손을 핥으면 다시 소독해야 한다고. 지금은 물자가 부족한 시기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쳐선 안 돼.

성냥은 알아듣고서 곧 귀를 쫑긋 세우더니 고개를 숙였다.

……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따돌림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소년은 성격이 소심해 보였다. 리브가 소독제와 붕대를 꺼내자 소년은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렸고, 침식으로 인해 짓무른 다리 상처를 드러내며 리브의 일을 자진해서 도왔다.

성냥이를 계속 데리고 다녀서 성격이 이렇게 변한 걸까?

샌디, 혹시라도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그땐 어떡하려고요?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잠시 침묵했다.

리브 누나, 고마워요.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아요……

동물은 퍼니싱을 휴대할 수 있지만 침식은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성냥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낼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저를 만나기 전부터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익숙한 애라서 지금 놓아주면…… 성냥이는 예전처럼 다른 사람과 친해지려 시도할 때 공격만 당할 거예요.

제 이기심인 걸 알지만…… 저는 성냥이가 정말 필요해요. 제 삶의 의미이자 원동력이에요.

그냥 저와 함께 있게 해주세요.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면 전 성냥이 대신 제 자신을 포기할 거예요.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거예요?

리브 누나, 고마워요.

소년은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지 않고 진심 어린 감사의 말만 반복했다.

…………

지상을 떠도는 모든 인간은 저마다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물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소년의 처지를 바꾸고 싶다면 지구가 본래의 생기를 되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노력도 그저 잠시나마 고통을 지연시키는 것뿐이었다.

다만 그 목표는 아득히 먼 훗날의 일이기에 사람들은 현재의 개인의 삶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추억의 상처가 다시 벌어지지 않게, 그리고 지금의 고통을 잠시라도 늦추기 위해 리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능숙하게 샌디를 도와 소독을 하고 상처에 붕대를 감겨준 뒤 혈청을 주사했다.

지금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이 순간 최고의 위안이었다.

보육 구역의 봉쇄된 지하실에 머무르는 한, 침식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성냥이가 혼자 떠돌아다니는 걸 원치 않으면 꼭 살아남아야 해요, 알겠죠?

더 이상 자신을 포기할 거라는 말은 쉽게 하지 말아요. 성냥이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성냥이도 당신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네……

성냥이 얘기가 나오자 소년의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그는 다시 리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성냥이와 서로 기대어 곧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