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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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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슬픈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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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정원 9.30 p.m.

5가지 기능을 상징하는 로고가 다시 한번 차가운 빛으로 켜졌다.

어두컴컴한 공간은 의원들의 초조한 기색을 감춰주었고 이 로비로 하여금 카메라 앞에서 장엄함과 통일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침묵 속에서 시민의 뜻을 대변하는 빛이 약속대로 스크린에 나타났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하산은 일어나 새로운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의제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회의에서 우리는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공중 정원으로 데려오는 것에 대해 토론했고 대다수의 동의를 얻었지.

그동안 우리는 막대한 희생을 치렀지만 그에 대비해서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하산은 손을 들어 모두의 시선을 전방의 하늘색 투영 스크린으로 돌리게끔 인도했다. 일련의 명단과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녹색 데이터의 추세 그래프가 나타났다.

지난번 구조 실패로부터 3시간이 지났다.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 재해가 나타난 이후 공중 정원은 총 374번의 구조 작전과 765대의 수송기를 투입했다.

재난 발생 첫째 날, 총 587명을 구조하고 수송기 13대를 잃었으며 조종사 및 호송 인원 21명이 희생됐다.

둘째 날에는 중상 11명, 경상 42명, 수송기 27대 손실, 조종사 및 호송 인원 36명 등 493명이 희생됐다.

셋째 날에는 총 271명을 구했다. 그중에는 중상자 21명이 포함되었고, 공중 정원에 도착한 뒤 응급처치 중에 7명이 사망했다. 구조 중에 수송기 53대 손실, 조종사 및 호송 인원 71명이 희생됐다.

구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케르베로스를 투입했고,

차징 팔콘 같은 엘리트 소대도 같이 투입했다.

이 소대들은 수송 도중 발생한 대부분의 습격에 맞섰고 수송 인원도 보호했디.

하지만 이합 생물의 공세가 심해지고 엘리트 소대마저 힘겨워져 비행 중 손실을 대비하기 어려웠다.

카메라의 시선 아래, 추세 그래프는 뒤로 스크롤 되며 날짜의 변화에 따라 녹색 데이터 추세 그래프가 최저점으로 내려갔다.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구조 성공률이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전술을 변경하고 무인 공중 투하선도 사용하면서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그것들은 현재 폭동 상태로 변해서 감지 범위 내의 모든 것을 공격할 것이다.

최근 데이터의 통계를 보면 12일 동안 성공률은 3.12%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구조를 위해 희생되는 구조체, 소모되는 물자, 수송 수단이 점점 증가되고 있다.

제대로 된 수송기 한 대가 없어 엘리트 소대마저 지상에 갇혀 공중 정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빨간색 데이터 추세 그래프가 상승세를 그리며 녹색 그래프 위에 겹쳐졌다. 두 선이 교차하며 과장된 X자 모양을 그려냈다.

구조 작전 지속 여부에 대한 의견은 회의 전에 이미 수집했을 거라 믿는다.

네. 57%의 시민들이 구조 작전에서 구한 생명이 희생자보다 훨씬 적다며 이런 무의미한 행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예상보다 낮은 찬성 비율에 많은 의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토론하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57%란 말입니까?

손실이 이렇게 커서 100%에 가까울 줄 알았는데.

그리고 43%의 시민들은 구조 작전을 지속해야 한다며 최소한 지상에 머물고 있는 엘리트 소대만이라도 공중 정원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게슈탈트, 이 두 가지 방향에 대한 결과를 도출해 줘.

현재 전술로 구조 진행 시 성공률은 여전히 0 혹은 마이너스에 가깝습니다. 엘리트 소대의 전투력으로 연산해 볼 때 미확인 인간형 생물체와 직접적인 교전이 없을 경우 지상에서 생존할 확률은 97.1%입니다.

…………

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지상에 대한 구조를 중단하고 우선적으로 공중 정원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고 운송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지구와 지구상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포기한다는 건 아니다.

의회는 집행 부대에 구조 성공률 제고와 신속한 전술 수정을 독촉하고 2차 시도를 진행하길 바란다.

회의가 끝난 뒤 하산의 개인 사무실에는 예상했던 손님이 찾아와 그가 예상했던 주제를 꺼냈다.

나도 그 문제를 생각했어.

쿠로노 측은 구조 전술 수정에 대한 검토보다는 전면 철수를 선호할 거야.

이번 지지율은 그들의 예상 이하라서 반가운 소식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2차 시도’라는 자네의 말을 무시하지 않을 거야.

짧은 고민 끝에 하산은 다시 손을 들어 앞에 놓인 스크린에 한 영상 기록을 투영했다.

이 기록을 본 적 있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리더 루시아입니다. 지휘부에 임무 보고합니다.

저희는 이곳에 모여든 이합 생물들을 성공적으로 제거했으며, 현재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의 오염 범위 밖으로 안전하게 철수했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이합 생물이 많이 존재하고 퍼니싱 농도도 매우 높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북극 항로 연합 방향만 농도가 낮을 뿐, 다른 구역의 상황은 모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대량의 난민을 데리고 도보 이동이 불가하고 북극 항로 연합의 비축된 물자도 대량 인원들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미확인 인간형 생물체가 서해안으로 이동한 후 저희는 지휘관과 67명의 인간을 데리고 043호 도시의 보육 구역 지하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의 비축된 물자로는 15일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물자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테슈는 아직 실종 상태이며 지휘관 바네사와 백로의 밤비나타는 저희와 함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약간의 부상을 입었지만 리브가 치료하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입니다.

…………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저희 [player name] 지휘관은……

……아무래도 이 부분은 저희와 방금 합류한 리브가 보고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단말기 방향을 리브에게 돌렸다.

지휘관 복부의 상처는 중요 장기까지 미치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만 철수 도중 머리에 심한 타격을 입어 두개골 외상, 경막하혈종이 발생했습니다.

저희는 043호 도시의 보육 구역으로 이동하여 이곳의 의료 시설을 이용해 지휘관에게 뇌수술을 진행해 혈종을 제거했습니다.

수술 가능한 보육 구역을 찾기 위해 이동하던 중 이합 생물들의 습격을 받아 시간이 지체되어 현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지휘관은 현재 혼수상태이며 상처 침식도 심각합니다……

이곳의 의료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의료 물자도 다른 인원들에게 사용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지휘관이 침식성 쇼크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지휘관을 공중 정원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싶지만, 지금의 수송기 안전 상태로는 무사히 귀환하더라도 운송 과정의 흔들림으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과 043호 도시 보육 구역의 다른 부상 입은 주민들을 위해 의료 보급 지원을 가능한 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이상 저희 구역에 대한 보고입니다. 빠른 지원 부탁드립니다.

영상은 여기서 끝났다.

이건 방금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서 철수할 때 받은 임무 보고다.

일단 한차례 물자와 구조 지원을 통해 급한 불은 껐지만, [player name]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아틀란티스의 복귀 행사는 시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동시에 영웅에 대한 걱정도 불러일으켰어.

삼림 공원 유적 화재 이후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행방을 알려달라는 민원이 적지 않아. 그들의 현재 상태를 적절하게 공개해도 된다고 보는데 난.

이번엔 피해가 막심해. 지휘관 해리조와 팔지가 의식을 잃은 시몬을 데리고 가까스로 공중 정원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아직도 생명의 별에 있고 심지어 시몬은 깨어나지도 못했어.

백로 소대와 많은 구조체도 지상에 머물고 있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player name] 지휘관까지 이렇게 큰 부상을 입었다는 걸 알게 되면 승리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이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게 되면 구조 포기에 찬성하는 시민은 더 많아지겠지.

시민들은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소문을 믿게 돼. 때로는 솔직함이 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어.

더 절묘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어.

이 카드로 쿠로노와 협상을 한다면?

혹시 Ω파일 말인가?

바로 그거야. 과학 이사회의 보고에 따르면 ‘Ω테스트형 무기’는 이미 완성됐어.

퍼니싱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지.

기록 속의 메모에서 알다시피 그건 멈춰 있는 수면과 같아서 떨어지는 빗방울만 흡수할 뿐 퍼니싱을 능동적으로 포획할 수는 없어.

실제 제작된 형태를 봤을 때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양산해도 원하는 효과를 얻기는 어려워.

만약 대량의 퍼니싱을 ‘Ω테스트형 무기’ 쪽으로 ‘유인’한다면 효과는 크게 달라지겠지.

구조체가 어떻게 퍼니싱을 유인하지? 그건 승격자의 특기 아닌가?

설마......쿠로노와 손을 잡으려는 거야?

과학 이사회는 반격 시스템을 통해 쿠로노의 일부 연구 정보를 빼내 대행자의 데이터로 새로운 특화 기체를 개발하고 있어.

아시모프 측에서 Ω무기가 특화 기체와 결합할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방금 보여준 상황을 이용해서 ‘협상’을 진행하는 거야.

어두컴컴한 오후,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4명의 멤버 한 달 넘게 지상에 머물러있다.

그동안 리브가 세심하게 간호했지만, [player name] 지휘관은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하실 밖의 빗물이 길 위의 짙은 핏자국을 희석시켰다. 폐허에는 더 이상 사람의 흔적이 없었고, 침식체와 이합 생물만이 아무런 목적 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버려진 040호 여과탑과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 불이 나기 전, 사람들은 공기 중의 퍼니싱 농도가 적조와 함께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 현상을 단순히 ‘흑성’과 ‘적조’로 결론지었지만, 그것들은 수많은 퍼니싱의 응집과 진화의 한 가지 현상일 뿐, 주요 원인은 아니었다.

그 누구도 소리 없이 다가오는 재앙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의 신경은 오로지 적조에만 머물렀고, 적조만 소멸시키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 무기의 폭격으로 밀물처럼 밀려온 포식자는 소멸되었지만 적조 속의 퍼니싱은 소멸되지 않았고 소멸될 수도 없었다.

퍼니싱은 물처럼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어 공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공중에 떠있는 퍼니싱은 ‘모체’에 흡수되고 ‘모체’는 퍼니싱의 농도를 낮추고 새로운 재앙을 탄생시켰다.

040호 여과탑과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을 태운 불길. 그 속에 갇혀있던 퍼니싱들이 철저히 해방되면서 이미 거의 임계점에 다다른 세상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했다.

드넓은 적색의 심해 속에서 인간형 생물체가 나타난 것은 오로지 퍼니싱의 일종의 생명 진화 방향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였다.

그것들은 가장 큰 위협도 아니고 모든 재앙이 맺어낸 최종 결실도 아니었다.

현재, 적조라는 온상은 여전히 땅에 ‘씨앗’을 뿌리며, 신선한 핏자국이든 오래된 핏자국이든 개의치 않고 짓밟으며 즐거운 빗소리 속에서 전진하고 있었다.

한때 지구의 아이였던 인류는 지금 어쩔 수 없이 동양 바다에서 겨우 목숨을 붙들고 있는 방랑자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보육 구역’이라는 좁은 ‘선실’에 웅크리고 앉아 여과탑의 미약한 보호에 의지하고 있었다.

보육 구역 봉쇄된 지하실 9.30 p.m.

공중 정원에서 구조 철회 결정에 대한 회의가 열리는 그 시각, 지구의 인간들은 봉쇄된 지하실에서 좋은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가 중단된 며칠 동안 식량과 약물 보급은 눈에 뜨일 속도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어느 보육 구역의 사람이든 알고 있다. 봉쇄된 지하실을 떠나 예전처럼 폐품 주우면서 연명하는 건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보육 구역에 남아 같은 곳에 머물고 있는 구조체들에게 신변 안전을 맡겼다.

구조 물자가 온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상처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봉쇄된 지하실에서 얼굴이 초췌한 어떤 난민이 갑자기 동료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또 실패했을지 누가 알겠어?

그의 동료는 덜 초조해 보였다. 손에 든 낡은 기타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기타줄을 튕겼다.

척! 이런 상황에서도 기타가 쳐져?!

그럼 어떡할까? 하…… 인생은 원래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 깃든 거야~ 이럴 때 기타를 안 치면 그럼...... 기타 대신 널 칠까?

척이라는 난민 청년은 기타의 음절에 맞춰 약한 목소리로 자유롭게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노래는 상대방의 마지막 이성의 끈에 불을 붙여 분노를 일으켰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수송기에 올라타는 거였는데!

리브

…………

갑자기 높아진 언성에 리브는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환자를 돌보면서 곁눈질로 그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때 침식체랑 그 뭐야…… 이합 생물? 그것들이 수송기를 공격하지 않았으면 벌써 탔을 건데!

맞아. 내가 그때 가자고 했는데 네가 말렸잖아! 수송기가 도중에 추락할까 무섭다면서!

하…… 공중 정원도 어렵게 결정해서 우리를 받아주기로 했는데……

그럼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거야? 그 수송기 결국에는 공격받아서 추락했잖아!

저기 봐. 이곳을 지키는 구조체도, 그들의 지휘관도 타지 않았잖아.

머리에 중상을 입어 수송 중 흔들림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래서 나도 며칠 관찰하다가 안전해지면 저 지휘관이 돌아갈 때 같이 가려고 했다고! 이렇게 갈수록 심해질지 나라고 알았겠어!

그럼 지금 뭘 후회하는 거야? 이게 우리의 운명이야. 못 살아남는 운명…… 여기에서 죽을 거야. 수송기를 타도 마찬가지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 위험한 곳에서 모두 도망쳐 나왔잖아!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 쪽의 보육 구역! 그 위험한 곳에서 말이야!

그 재난 속에서 발생한 폭발을 과장되게 이야기 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것 봐. 밖의 퍼니싱 농도가 치솟으니까 원래 보육 구역에 가지 않으려 했던 ‘방랑 난민’들도 이 기타 치는 형처럼 필사적으로 보육 구역으로 몰려오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남았어!

앞으로도! 쭉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척의 화난 눈초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벅차오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다른 보육 구역의 주민을 잡고 흔들며 격하게 소리를 질렀다. 자기 마음을 다잡으려 하는 발악 같았다.

…………

그래. 그래. 내가 다른 데로 가면 되지?

지하실이 요만한데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상대방은 대답하지 않고 기타를 들고는 지하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아휴…… 아직 소리 지를 힘이 남아 있으면 내일 식량을 내게 좀 덜어줘.

그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앞에 있던 동료를 밀어내고 다친 다리를 끌며 어렵게 자세를 바꿨다.

식량이 떨어졌으면 나가서 찾아봐. 방호복도 있잖아…… 콜록콜록.

방호복이 무슨 소용이야? 그걸 입으면 괴물을 때려잡을 수 있어? 머리를 다쳐서 정신이 어떻게 된 건가. 그냥……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동료의 저조한 기분을 알아차린 중년은 몸을 가누고 일어나 다독이듯 상대방을 토닥였다.

고작 100km쯤 떨어진 페기 여과탑이 폭파됐을 뿐, 별 큰일도 아니야, 다 괜찮아질 거야.

터진 게 그 탑뿐이었으면 우리 다 같이 여기 쭈그리고 앉아 있을 리가 없잖아! 난……

공포에 질린 젊은이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의 이미 이성을 잃은 정신으로 안정을 되찾기 어려웠다.

야야…… 그만 울어. 의사 선생님…… 콜록콜록…… 제 뒤통수의 상처가……

리브

상처가 또 벌어졌나요? 잠시만요.

네…… 선생님도 고생이 많네요. 며칠 동안 선실에 가지도 못하고 눈도 붙이지 못했잖아요?

리브

괜찮아요. 저는 구조체라 며칠 동안은 버틸 수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해요. 그리고 이렇게 상처를 긁으면 안 돼요.

하, 아프고 가려워서 못 참겠네요.

중년 환자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려 리브를 쳐다봤지만 눈의 초점은 마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야, 코흘리개, 너…… 그 후로 우리가 여기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알아……?

어렴풋이 들리는 그의 질문은 사람들의 잡음 속에 묻혀 어떠한 대답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