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메인 스토리 / 17 인멸잔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17-0 세계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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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어머니의 고난 속에서 태어나 고통과 함께 자란 뒤 슬픔 속에서 떠나간다는 말이 있다.

슬픔과 고통이 없다면 성장도 있을 수 없다.

운명의 선물은 고난의 길 양쪽에 숨겨져 있어 그것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여정에 발을 디뎌야 할 것이다.

... 하지만 이것은 결국 타인의 논조일 뿐이다.

만약 본인이 곧 태어날 신생아라면, 혹은 곧 죽음을 맞이할 생명이라면.

자신이 곧 맞이할 인생에 대해, 혹은 자신이 겪어온 인생에 대해...

기대와 환희로 차오를 것인가? 아니면 깊은 내면에서 두려움이 엄습해 올 것인가?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

여전히 지금의 인생을 선택할 것인가?

???

어떤가? 갑자기 대화를 나누고 싶은 행인을 만난 적이 있는가?

아니. 난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당신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거 같아서.

그럼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 결정이 되길 바란다.

???

당신은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야!!

6.20 p.m.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마지막 구조용 수송기도 어김없이 바닥으로 추락됐다.

수많은 이합 생물들이 짙은 연기를 뚫고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향해 승리를 선포했고 이는 인간이 하늘의 통제권을 잃었음을 의미했다.

황야에서 한 생존자가 부축을 받으며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그들의 포위망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모두 다 제정신이에요? 이런 상황에 구조하러 오다니!

불평할 체력이 있으면 차라리 빨리 움직이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어 부상 대원에게 숨 돌릴 틈을 주는 동시에 기회의 틈을 노려 공중에서 달려드는 이합 생물을 향해 연달아 총을 쏘았다.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의 재난이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지상에 머물고 있는 인원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이런 식으로 구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위험한 탈출 방안을 제시하다니. 성공 확률 자체가... 하...

그는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벌벌 떨면서 쉴 새 없이 말을 건넸다.

루시아더러 그런 외장 연결 설비로 강화한 분사기로 낙하병 요원과 접선하게 하다니... 참...

그의 말은 리의 단말기 안내음 때문에 끊겼지만 리는 고개를 숙여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경계를 유지하며 다가오는 이합 생물을 끊임없이 처리했다.

루시아가 교통수단을 찾아서, 현재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만에 하나 그녀의 구조 신호면 어떡해요?

그녀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대장이니까요.

...

그렇죠. 그 어려운 전투까지 해낼 수 있는 구조체이니...

그럼…루시아와의 접선을 위해서 계속 전진합시다.

그는 한숨을 쉬며 긴장한 몸을 좀 풀었다.

리는 대답하지 않고 하늘의 이합 생물을 관찰하며 예정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선 적들을 따돌려야 보육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콜록콜록... 그것들이 아직도 모이고 있나요?

물론이죠.

추락 현장에 구조하러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수송기를 둘러싼 괴물들이... 이제 당신들만 공격할 겁니다.

당신들은 공중 정원에서 파견한 지원병이자 우리의 동료입니다.

이런 설명까지 해야 하는 현재 상황이 그는 한숨짓게 만들었다.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만약 우리 지휘관님도 깨어 있었더라면 똑같이 말했을 겁니다.

그러니 저도 그쪽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보육 구역에는 중상 환자를 치료할 의료 물자가 부족하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출발하기 전에 희생과 의식 회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다 했습니다.

리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상대방을 부축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의료 물자를 너무 많이 소모하면 경상을 입은 대부분 부상자들의 회복에 영향을 줄 텐데요...

그로 인해 팀의 구조 속도가 지연되면 구조받을 수 있던 사람들도 전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요!

저희는 결코... 지상 거점에 부담을 주기 위해 공중 정원에서 내려온 게 아니에요!

그런 것까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이랑 루시아가 데리고 있는 다른 한 명의 부상자 모두 보육 구역으로 데려갈 거고, 구조에 필요한 물자는 전문가 측에서 판단할 겁니다.

혹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또 다른 대원 리브를 말하는 건가요? 리브는 함께 오지 않았나요?

리브는 보육 구역에 남아 다른 중증 부상자들을 간호하고 있어요, 그곳에 전문 의료 자격을 가진 자는 리브밖에 없거든요.

...

탈환한 물자가 많지는 않지만 이정도 박스면 며칠 버티기 건 충분할 거예요.

당신들을 구하러 가지 않았다면 이 물자들도 얻을 수 없었겠죠.

보육 구역에 남아 있는 인원들은 공중 정원 구조대가 좋은 소식가 함께 도착할 거라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 구하는 일에는 망설임 따윈 필요 없죠.

하지만 저희의 지상 구조 계획은...

구조체 대원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이중합 모체의 비명 소리가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에 울려 퍼지는 순간, 세상의 악몽은 비로소 ‘서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모체 주변에 저장된 고농도 퍼니싱도 폭발의 파도와 함께 퍼져 삼림 공원 전체를 죽음의 잿더미로 뒤덮었다.

우주 무기가 그 빛을 거두어들이자 삼림 속을 배회하던 인간형 변종과 이중합 모체는 화염과 함께 잔해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퍼니싱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미 오래전에 발현된 이합 생물과 인간형 변종의 폭동 성향도 결코 그 불길로 멈출 수 없었다.

파괴된 040호 여과탑은 더 이상 공기를 정화할 수 없게 되었고, 다시 한번 바람에 올라탄 퍼니싱은 한층 더 악화된 상황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재난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퍼니싱이 가득한 공기를 떠돌아다녔다.

지구 생명의 빛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철수 때의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해. 인력과 수송기를 총동원해 부상자들을 더 멀리 있는 안전 구역으로 대피시키기 바란다.

공중 정원의 주민 투표를 통과한 결안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왕복 비행 시 이합 생물의 습격에 대비한 구조 작전은 차징 팔콘과 케르베로스 소대의 인솔에 따르도록. 지금 즉시 출발한다.

초기 구조 작전은 나름 순조로웠다. 비록 적지 않은 공중 정원의 주민들은 여전히 낯선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행운의 생존자들은 하나둘씩 공중 정원에 옮겨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재앙이 들이닥쳤다.

작전...실패입니다.

지난달부터 여러 소대의 보고가 있긴했는데... 일부 날개를 가진 이합 생물이 고농도 퍼니싱 속에서 비행하는 장면이 목격됐습니다.

현재... 이러한 개체들이 떼를 지어 저희 수송기를 습격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희의 마지막 임무 보고입니다... 동행한 수송기도 연락이 단절되고... 엘리트 소대의 상황은 현재 파악이 안 됩니다.

...

하...

여러 우려되는 점을 뒤로하고 공중 정원 주민들이 지상의 생명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그 시각…

하늘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군...

오가는 통로마저 차단된 지금, 사람들은 이젠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가?

돌아갈 수단을 잃게 되면 지원 요청을 해봤지만 무용지물이다. 아직 지상에 있는 엘리트 소대는 보육 구역을 지키기 위해 날뛰는 이합 생물과 인간형 변종에 맞설 수밖에 없다.

베라, 내가 맡은 구역은 깔끔하게 처리했어.

근데 이것 좀 봐.

임무 영상 속의 녹티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뒤에 있는 적조를 가리켰다.

이합 생물은 솟구치는 적조 속에서 연이어 재생됐다.

그럼 저 적조를 증발 시키자.

영상 속의 세 사람은 무기를 들고 적조를 향해 가다 이내 곧 통신의 안내음에 동작을 멈췄다.

전체 집행 부대 대원들에게 공지한다.

수집된 데이터에 따르면 적조는 계속 모이고 있다.

적조를 증발시킨다 해도 퍼니싱은 사라지지 않고 공기 속으로 되돌아갈 뿐이야.

퍼니싱에 침식되어 인간의 몸이 썩기 시작하면 그 썩은 피와 살은 인간형 변종의 몸에서 흘러내린 액체처럼 천천히 어딘가로 모여들어 새로운 적조를 형성하게 되지.

적조가 모이는 것을 반드시 경계해야 해. 규모가 커지면 엄청난 재해를 초래할 거야.

다만 아직 포착되지 않는 작은 흐름에는 많은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어. 사상자와 퍼니싱이 있어야 생성되는 속도가 빨라질 거야.

아시모프, 그럼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건 적조인 거야? 아니면 이미 침식된 죽은 자들이야?

...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재난은 우리를 지옥으로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었고, 우리는 피할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삼림 공원 유적의 불이 꺼지자 세상 곳곳에서 이합 생물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무참히 학살했다.

겹겹이 쌓인 죽음 속에서 미지의 인간형 생물체로 인한 피해는 미미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이합 생물 떼들은 목적 없이 황야를 떠돌아다니며 부패한 대지에 슬픔에 잠긴 비명과 죽음의 발자취를 가득 퍼뜨리고 있었다.

잿더미에서 떠난 두 인간형 생물체는 죽은 인간과 구조체로부터 언어와 지식을 빼앗아 서해안 쪽으로 향했다.

서해안에 도착한 뒤 바다를 건너는 대신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전진했다.

그들은 인간과 이합 생물의 전투에도 참여하고 이합 생물들과 함께 방어 구역에 주둔 중인 구조체 부대와도 교전했다. 그렇게 총 37개 도시의 보육 구역을 소멸시켰고 그곳에 있던 주둔 부대는 아무도 생존하지 못했다.

승산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 주둔 부대는 회피 전술을 구사해 그들의 동선을 예측하고 미리 철수했다.

예측이 항상 정확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가끔 별도로 행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구역에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경우에 인간형 생물체와 이합 생물들은 한 도시에서 1~3일간 ‘탐색’한 후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인간형 생물체와 이합 생물들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 그들이 새로운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인접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이주해야 했다.

제때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남은 미래를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에 미리 철수한 주민들은 기타 도시의 원주민들과 자원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곤경에 빠지곤 했다.

이합 생물들의 광기 어린 학살에 그들이 약탈하고 간 땅에는 정적만 남을 뿐이다.

거대한 재난 속에서 유일하게 무사했던 보육 구역은 ‘인간형 생물체’ 혼자서 지나간 곳이었고, 다행히 지하에 위치해 있어 그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있었다.

그다음에 위치한 보육 구역의 주둔 부대는 동일한 전술로 대응하려 했지만 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지하실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로 도구 사용법을 배웠고 조금씩 진화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판단이 불가한 사항은 그들이 과연 생물의 감정과 태도를 보유하고 있는가이다.

인간이 식물을 대하듯 그들도 인간을 지구에 살고있는 천연자원으로 여겼다.

그들은 씨앗을 소중히 대하듯 홀로 남겨진 인간을 들어 올려 사람들 무리로 돌려보냈다.

비록 그 인간들은 인간형 생물체와의 접촉으로 퍼니싱에 침식되어 사망했지만, 누군가는 그들의 ‘악의 없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꽃을 감상하듯 팔다리가 부러진 구조체를 걸쭉한 적조에 ‘꽂아’ 적조 속에서 온전해지라고 차가운 목소리로 당부하기도 했다.

인간은 그들이 진정한 감정과 자비를 깨닫기 전까지 소통을 기대할 수 없었다. 약탈 당하기 전에 최대한 그들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처음에는 지상의 고농도 퍼니싱을 피하기 위해 북극 항로 연합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벌써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인간형 생물체와 이합 생물들의 활동으로 서북쪽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정반대인 동남쪽에 남아있었다.

보육 구역 지상 건물의 봉쇄 정도는 온전치가 않아 이런 고농도의 퍼니싱속에서 여과탑의 안전을 더 이상 보장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모두 보육 구역의 봉쇄된 지하실에서 살게 됐으며 자원 수색과 구조 작업은 구조체에게 맡겼다.

스캐빈저는 전신 방호복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합 생물의 위협 속에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기엔 어려웠다.

보육 구역 밖의 땅이 전부 가시덤불 위로 물이 찬 수면으로 변하자 물자 소모는 새로운 문제로 부상했다.

사람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구조대를 기다렸지만, 구조 수송기는 한 번 또 한 번 화염의 연료로 생을 마감했다.

궁지에 몰린 우리는 죽음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 서광을 태우는 불길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몸짓으로 똑같은 포효를 내뱉었다.

어둠 속에서 곧 꺼져가는 그 등불을 살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