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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R15-1 공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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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직... 지직...

안녕, 안녕! 현재 시각은 ▇▂▅▆, 위치는 공중 정원 ▆▃▅▂ 구역, 그리고 날씨는...

어어어? 왜 이래! 제일 중요한 멘트가 녹음이 안 됐잖아. 몇 번이나 고쳤는데 왜 아직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거야!

엥?! 깜빡거리지 마. 이 황금시대의 "골동품" 녀석아! [player name]이(가) 임무 때문에 얼마나 오래 자리를 비웠는지 알아?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려면 네 협조가 필요하다고!

이 영상은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지휘관의 복귀 기념 선물이라고! 여기서 뻗으면 안 돼.

낡은 기계는 카무이의 불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소음만 내뱉으며 자신의 유구한 연식을 뽐낼 뿐이었다.

흥, 그렇다면 황금시대의 "진리"를 맛보게 하는 수밖에!

쾅!! 쾅!!

묵직한 타격음이 몇 번 울리자, 골골대던 골동품 캠코더가 마침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계에 쌓여 있던 두꺼운 먼지가 흩날리면서 카무이의 호흡 시스템이 기습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카무이는 쿨럭거리며 기침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텅 빈 방 안에 거친 기침 소리가 유난히 크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에휴... 그렇다고 복수를 하냐? 속이 참 좁아.

음, 뭐 됐어! 어렵게 정신을 차렸으니, 이번만큼은 봐줄게.

대신, 네 성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나의 가장 멋진 모습을 담아줘야 해!

왜냐면...

카무이가 캠코더의 렌즈 캡을 열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렌즈는 정확히 그의 얼굴을 향했다.

카메라 화면엔 찬란하고 과장된 미소가 활짝 피어올랐다.

오늘은 [player name]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니까.

내가 직접 찍은 이 환영 영상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서프라이즈가 되어야 하거든!

캠코더가 더 이상 잡음을 내지 않는 것을 보니, 긍정하는 듯했다.

으흠, 이 각도가 괜찮네. 몇 초 더 찍고...

와, 이 각도가 진짜 대박인데! 너무 잘 생겼잖아? 그럼, 무조건 클로즈업을 해야겠지!

어라, 왜 화면발이 안 받지? 표정 관리가 부족해서 그러나?

으아악?!

전자 스크린 속 활짝 웃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섬뜩한 "우두둑" 소리와 함께 카무이는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아파, 아파, 아파...

기체 정비를 너무 오래 안 받아서 그런가? 구조체도 턱이 빠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카무이는 멀쩡한 금속 턱을 세상 무너진 듯 문질러 대느라, 캠코더의 붉은 경고등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엄살 부리던 카무이는 고개를 돌려 손목의 단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침 일찍 보낸 메시지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카무이는 집요하게 새로고침을 반복했지만 화면은 냉정하게도 그대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카무이의 시선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전자 스크린으로 다시 향했다. 삐삐 울리는 경고음이 캠코더의 메모리가 거의 다 찼음을 알리고 있었다.

뭐? 벌써 메모리가 꽉 찼다고?! 카메라가 낡아서 그런가? 얼마 찍지도 않았는데...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어쩔 수 없지, 중간 과정은 스킵해야겠다. 아쉽네. "카무이의 간지 폭발 댄스"와 "카무이의 감성 라이브" 파트가 진정한 하이라이트인데!

됐어, 바로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야지—— 가자! 지금 애들을 찾아서, 다 같이 지휘관을 위해 복귀 축하 메시지를 찍는 거야!

캠코더를 손에 든 카무이는 이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길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다시 단말기를 확인했지만, 카무이가 간절히 바라는 알림음은 울리지 않았다.

뭐야, 아무도 나한테 답장을 안 하네...

설마 신호탑에 또 고장이 생긴 건가? 정비 부대 쪽에 연락해서 수리부터 해야 하나? 역시 지상은 공중 정원만 못하다니까, 이번 달만 벌써 다섯 번째야.

됐어. 가뜩이나 일손도 부족한데. 다들 순찰 지원을 나갔을지도 몰라.

상관없어, 괜찮아! 통신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출동해서 다 찾아내면 되잖아!

야호! 카무이, 출발!

좁은 창고에서 튀어나온 카무이의 환호성이 텅 빈 복도를 가득 채웠고, 그는 황야의 야생마처럼 거침없었다.

덮개 없는 화면 위로 카무이가 달릴 때마다 명암이 빠르게 교차하며 스쳐 지나갔다. 렌즈를 돌려야한다는 걸 깜빡한 카무이는 여전히 셀카 모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공중 정원에 있을 때는 수송기의 눈치 보랴, 비싼 장비를 피해 다니랴, 이렇게 마음껏 뛸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규칙 따위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사실 카무이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서서히 무너져 붕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공중 정원은 대행자에게 다시 격추당했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의 퇴각을 선언하며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다.

질서가 느슨해진 건 그저 피로와 과로의 결과였고, 인간은 더 이상 옛날의 규칙을 유지하는 데 쏟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카무이는 우선 누구보다 스케줄이 뻔한 크롬을 찾아가기로 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뒤 인간의 가용 전투력은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크롬은 수비와 순찰 계획을 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크롬은 수면 캡슐을 아예 사무실로 옮겨 놓고 며칠씩 두문불출했다. 그래서 사무실에 가면 반드시 크롬을 찾을 수 있었다.

대장! 대장!

카무이는 문틀에 매달려 캠코더를 사무실 의자 쪽으로 들이대며 소리쳤다. 물론, 여전히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 못한 탓에 화면에 담기는 건 카무이의 해맑은 얼굴뿐이었다.

카메라 좀 봐줘, 대장!!! 딱 한 번이면 돼. 눈길 한 번만 주면 된다니까!

잠깐, 그게 아니라. [player name]한테 환영 인사를 남기기로 했잖아. 그러니 멘트도 좀 해달라고!

금방 끝나니까, 얼른!

카무이가 목청껏 한참을 부르고 나서야, 방 안의 상대는 겨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크롬은 여전히 일을 멈추지 않았고, 스크린의 알림음은 계속해서 들렸다.

스톱! 딱딱한 공식 멘트는 거기까지! 이건 환영 인사야. 대장, 그렇게 영혼이 가출한 말만 하지 말라고!

자, 이제 크롬으로서 다른 말을 좀 해봐. 예를 들면...

하지만 숨 가쁘게 울리는 알림음은 점점 빨라지기만 했고, 그 소음에 카무이의 질문도 크롬의 웅얼거림도 묻혔다. 이내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래, 알았어. 대장이 지금 바쁘다는 걸 알겠다고.

그럼, 난 다른 애들 찾으러 갈게. 대장도 일이 끝나면 바로 와. 기지 입구에서 만나서 다 같이 [player name]을(를) 환영해 주자고!

카무이는 축 처진 모습을 크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조금 전보다 더 빠르게 자리를 떴다.

어쩔 수 없었다. 지상에 온 뒤로 인간의 상황은 더욱 가혹해졌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이들은 쉴 새 없이 바쁜 일상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굶주림, 질병, 침략, 죽음... 온갖 재앙과 싸우는 데 모든 시간과 힘을 쏟아야만 했고, 살아남는 것 자체가 가장 고단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카무이는 [player name](이)라면 이런 상황을 분명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게다가 다른 동료들도 있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업무 처리 소음이 멀어지자, 발소리와 숨소리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러다 카무이는 더 조용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반즈! 일어나! 기상 시간이야!!!

수면 캡슐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들어간다!

반즈의 수면 캡슐도 차징 팔콘 소대의 전용 휴게실 밖으로 옮겨진 지 오래됐다. 지상으로 내려온 후, 반즈는 다시 의사 가운을 입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돌봐야만 했다.

장시간의 과도한 업무로 반즈는 아무 데서나 잠들 수 있는 여유마저 잃어버렸다. 그래서 아주 잠깐의 틈이라도 생기면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도록, 자신만의 휴게실을 따로 마련해야만 했다.

카무이는 안에서 인기척이 전혀 없자, 반즈가 또 깊이 잠들었음을 알아챘다.

흥,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또 수면 캡슐을 잠가놨지? 이게 벌써 몇 번째야!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옛날 방식대로 깨워주마!

반! 즈!

일! 어! 나!

으아아악?!!

강력한 음파가 장치를 건드리자, 육중한 금속 격벽이 순식간에 내려와 발을 들이려던 카무이를 강제로 막아 세웠다.

어? 아니, 반즈!! 내 말 들려?!

문 좀 열어봐! 문을 열라고, 반즈!! 엊그제 네가 준 열쇠를 잃어버렸단 말이야. 네가 열어주지 않으면 난 들어갈 수도 없다고!!

반! 즈!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교하게 설계된 냉혹한 금속 차단벽은 그 어떤 소리도 들여보내지 않았고, 카무이의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됐어... 하긴 작정하고 만든 방음문인데, 열릴 리가 없지.

장치가 다시 켜진 걸 보니, 반즈가 또 한계를 넘을 만큼 무리했나 보네. 푹 자려고 작정했구나.

아... 뭐, 됐어. 이렇게 고생하는데, 약속을 잊어버린 건 용서해 준다!

문에다 쪽지를 남겨 놔야지. 메시지도 적어두고... 좋아!

됐어!

반즈, 너도 대장처럼 바로 입구로 와! 카무랑 내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푹 쉬어라, 반즈.

[player name]이(가) 돌아오면, 같이 보러 올게.

그리고 그때는 쌩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 반즈.

고생했어. 지난번에 봤을 때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했거든.

나도 [player name]도, 다들 네가 그렇게 지쳐 있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카무이는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지만 꿀꺽 삼켰다. 어차피 지금의 반즈에게는 닿지 않을 테니, 나중에 보게 되면 직접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작부터 꼬이네. 적어도 우리 차징 팔콘은 다 모여서 참여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퉤퉤퉤! 말이 씨가 된다고,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대장과 반즈는 조금 늦게 합류하는 것뿐이잖아!

그래도 좀 섭섭하네. 카무! 넌 꼭 있어야 해. 이제 우리 "짠 내 나는 콤비"는 서로 의지해야 한다고!

설마 오늘도 긴급 임무가 떨어진 건 아니겠지? 카무! 카무!

평소 상황을 떠올린 카무이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상으로 온 뒤, 카무는 퍼니싱 내성이 있다는 이유로 크롬이나 반즈보다 더 바쁘게 굴려지고 있었다.

인간 세계로 추락한 에덴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고, 더 많은 어둠을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어둠이 있는 곳에선 언제나 카무가 필요했다.

모든 부서에서 카무를 필요로 했기에 언제 어디서 호출이 올지 몰랐다. 그러다 보니 카무를 찾지 못하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훈련실, 의무실 심지어 식당까지 돌아봤지만, 카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카무이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차징 팔콘 휴게실로 돌아왔다.

카무는 매번 똑같은 쪽지에 메모를 남겼기 때문에 카무이는 이 메시지의 작성 시간을 판단할 수 없었다.

카무를 찾는 이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물어보고 다니면 늦을 거야. 게다가... 걔네도 카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고.

아... 됐다, 됐어. 이젠 익숙해. 카무가 돌아오면 환영식이라도 열어줘야겠다!

지금은 우선... 입구로 바로 가야겠다! 메모리가 남았나 확인 좀 하고... 어?

어?

이건... 내 눈, 내 코, 내 입이잖아? 잠깐, 그럼 방금 찍은 건 전부...

으아악, 이게 뭐야! 왜 죄다 나만 찍혀 있는 거야?!!

어, 이 마크는... 아, 렌즈 돌리는 걸 까먹고 계속 셀카 모드로 설정해 놓았네.

흥, 이 정도는 뭐!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애들 반응은 내가 다 기억하니까. [player name](에)게 내가 직접 설명해 주는 것도 나름 재밌을 거야!

어디 보자~ 메모리는 간당간당하게 버틸 수 있겠고, 캠코더도 문제없어! 시간이...

으악, 안 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player name]이(가) 도착하기까지 3분밖에 안 남았잖아?!!

지금 당장 뛰어가면 늦지 않을 거야! 돌격! 카무이! [player name]을(를) 마중 나가자! 야호!

카무이는 아예 셀카 모드를 유지한 채 질주하기 시작했다. 화면은 미친 듯이 흔들렸고,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카무이의 표정은 흥분과 찡그림을 끝없이 반복했다.

어어어, 첫마디가 뭐였지? 앗, 내가 대본 같은 거 써봤자 못 외운다고 했었는데! 뭐, 몰라! 즉흥으로 하자!

일단 [player name](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야겠지? 헤헤, 나 완전 스윗하잖아!

그런 뒤에 지휘관에게 그동안 기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쫙 브리핑해 주는 거야. 분명 흥미진진해할걸!

아니지. 제일 중요한 "어서 와."를 맨 처음에 말해야지? 순서를 좀 짜야겠다!

걱정할 거 없어! 최고의 서프라이즈는 역시 "그것"이니까...

어느새 목적지인 지상 기지의 정문에 도착한 카무이는 시선을 문틀의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마법처럼 웃음꽃을 피워줄 신기한 선물이 그곳에 있었다.

행복한 <복귀>를 맞이할 준비는 끝났다.

어서 와! [player name]!!

카무이는 두 팔을 크게 벌려 달려올 사람을 안으려고 준비했다. 흙먼지가 묻은 지휘관을 안아주기 위해 위로 뻗은 카무이의 손은 마침내 찾아온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품 안이나, 손바닥은 <텅 비어> 있었고,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시간을 잘못 알았나? 내가 이런 걸 틀릴 리가 없는데.

혹시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시간이 지체된 거라거나...

게다가 이 폭죽 볼은 또 왜 이래! 하필 이럴 때 고장 나고, 난리야.

카무이는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썰렁한 입구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 머릿속에 온갖 추측을 늘어놓아 봤지만, 답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계속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통신이라도 보내볼까?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비슷할 것 같아서, 어떻게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음... 됐어, 일단 돌아가자. 시간 보니까 잘 때 됐네.

[player name]의 수면 캡슐에 가서 기다려야지! 거기야말로 진짜 서프라이즈 장소니까.

카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느 때처럼 소란스럽게 [player name] 휴게실의 수면 캡슐을 향해 달려갔다.

"쿵!!"

카무이는 인간을 위해 제작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온몸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켠 카무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익숙한 냄새를 탐욕스럽게 맡았다.

헤헤, 역시 이 느낌이야! 하도 몰래 와서 잤더니, 이제는 내 수면 캡슐 같네.

자, 마지막으로 오늘 찍은 것 좀 확인해 볼까?

카무이는 골동품 캠코더를 가져와 오늘 찍은 영상을 돌려보았다. 화면에는 온통 자기 얼굴뿐이었지만, 카무이는 그것도 신이 나서 들여다보았다.

스스로의 행복을 되새기며, 그 찰나에 함께했던 이들의 흔적을 읽어내는 것. 어쩌면 이것 또한 하나의 "기억"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날렵한 턱선! 화질이 좀 안 좋긴 해도 내 잘생김은 화면을 뚫고 나오는구먼!

근데 대장 사무실의 장비가 너무 많단 말이야. 조명이 사방팔방에 있어서 내 완벽한 얼굴이 이상하게 반사되잖아!

반즈 깨울 때 이건 좀 아닌데. 입을 너무 벌렸나? 하나도 안 멋있어. 컷. 이건 무조건 편집!

잠깐, 차징 팔콘 휴게실 책상에 저게 뭐야? 왜 내 추한 사진이 저기 있는 거야?! 이건 백 퍼센트 카무이 녀석이 몰래 찍어서 갖다 둔 거야! 돌아오기만 해 봐. 가만두지 않겠어!

앗, 캠코더 메모리와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어! 어디 보자. 그럼, 마지막으로 쿠키 영상이나 남겨 볼까?

카무이는 몸을 돌려 옆으로 누운 뒤, 캠코더를 베개 옆에 고정했다. 그리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누워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처럼 렌즈를 진지하게 응시했다.

이건 지휘관한테만 하는 비밀 얘기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이야?

딱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거야.

지휘관의 이번 임무 말이야. 진짜 오래 걸렸잖아. 물론 엄청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건 알아. 지휘관도 어쩔 수 없었겠지.

하지만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었어. 얼마나 오래됐냐면... 어떤 이들은 지휘관이 영영 못 돌아올 거라고 하더라.

당연히 난 믿지 않았어! 그래서 계속 기다렸어. 다행히 지휘관도 마침내 돌아온다고 연락해 줬고.

난 진짜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단 말이야.

근데 약속을 왜 또 어긴 거야?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하암... 갑자기 졸리네. 이러다가 잠들 수도 있으니까 미리 말할게.

잘 자...

카무이가 크게 하품했고, 캠코더의 작은 경고음은 그 소리에 묻혀버렸다. 눈꺼풀이 무거워진 카무이는 어두운 방 안에서 캠코더의 배터리가 다 닳아 꺼지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괜찮아. 지휘관이 그랬잖아.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되면 한숨 자라고, 말이야. 꿈에서 깨면...

꿈에서 깨면, 지휘관이 눈앞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후우...

말소리가 잦아들자 카무이도 잠이 들었다.

카무이는 자신을 깨워줄 달콤한 꿈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인간이 잠드는 과정을 모두 흉내 냈는데도, 카무이는 그저 어설프게 자는 척만 할 뿐이었다.

카무이에게 허락된 꿈은 없었고, 그 꿈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거센 바람 소리를 뚫고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가 방 안으로 스며들더니 카무이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 빛줄기는 정확히 카무이의 눈가에 내려앉았다. 방 안을 짓누르던 어둠 탓에 그 가느다란 빛줄기조차 시리도록 눈부셔서 카무이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빛이 있다는 건, 아직 낮이라는 뜻이었고 꿈을 꾸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카무이는 꿈꿀 수 없었다.

그리고 [player name]의 귀환을 더는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정신이 든 카무이는 본능적으로 영상을 확인하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에 닿는 찰나, 깨달았다. 아니. 차가운 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영상은 이미 셀 수도 없이 찍었다. 기록된 내용은 언제나 똑같았기에 더 이상 서투른 거짓말로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늘 같은 경로, 똑같은 상황, 되풀이되는 환영식. 다른 것이 있다면, 지난 모든 기록 속에서 렌즈는 오직 카무이 자신만을 비추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영상 속에 남겨진 것은 적막한 폐허와 있지도 않은 재회를 혼자 연기하며 독백을 내뱉는 가련한 광대뿐이었다.

카메라 좀 봐줘, 대장!!! 딱 한 번이면 돼. 눈길 한 번만 주면 된다니까!

반즈! 일어나! 기상 시간이야!!!

수면 캡슐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나 들어간다!

설마 오늘은 긴급 임무가 떨어지지 않았겠지? 카무! 카무!

기억은 본능적으로 카무이를 보호하고자 믿고 싶지 않은 진실들을 도려냈다. 그래서 카무이는 그 깨진 기억의 조각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며, 모두가 여전히 곁에 있는 것만 같은,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었다.

카무이

어째서... [player name]. 난 정말 꿈을 꾸고 싶었어. 깨어나면 바로 눈앞에 네가 있을 것만 같았거든.

왜 더는 기다리면 안 돼? 싫어. 인정하기 싫어. 내가 기다리고 싶어도,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싫어.

모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눈을 뜬 카무이는 창문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눈앞의 현실을 끝내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어둠 속에 숨어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은 끝났다. 카무이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곳은 자신 혼자만이 남겨진, 죽은 도시라는 사실을...

카무이는 알고 있었다.

지상 기지로 퇴각한 뒤, 인간은 잠시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에 머물던 시절보다 파멸의 순간을 그저 조금 늦춘 것뿐이었다.

크롬은 쉴 새 없이 전장을 누비다 결국 침식을 당해 희생되고 말았다.

반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투와 치료를 감내하다 쓰러졌고, 부서진 기체를 채 수습하기도 전에 영원한 잠에 들었다.

카무는 퍼니싱 농도가 가장 극심한 사지로 파견된 뒤, 소식이 끊긴 지 오래였다.

파일에는 진작에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찍혀 있었지만, 오직 카무이만이 고집스럽게 지휘관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홀로 남겨진 기지 외곽에서 카무이는 마침내 외면해왔던 진실과 마주했다. 그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차가운 잔해였다.

카무이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인간이든, 구조체든, 숨을 쉬는 그 무엇이든... 이 폐허 위에 남은 생명은 오직 자신뿐이란 걸 인정해야만 했다.

카무이

이제 정말 못 보는 거야, [player name]?

카무이

괜찮아. 꿈에서 만나면 되니까.

지금의 카무이에게는 지휘관을 볼 수 있다면 그게 꿈이라도 상관없었다.

더 이상 죽은 도시의 공상가로 남고 싶지 않았던 카무이는 밤낮없이 혼잣말을 내뱉으며, 모두가 살아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일에도 이제는 지쳐버렸다.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숨어서 스스로에게 의미 없는 안부를 묻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안녕, 카무이.", "또 보자, 카무이.", "잘 자, 카무이." 카무이는 이렇게 누군가와 목소리를 나누던 시절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카무이는 조각난 기억을 헤집으며, 누군가 자신에게 들려주던 다정한 "잘 자."라는 목소리를 찾아내려 애를 썼다.

잘 자, [player name].

카무이는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평온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기 가득한 품도 이 목소리들처럼, 늦게라도 찾아와 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다정하지 않았다. 몸을 뉘었던 침대는 끈적한 늪으로 변해 카무이를 덮쳤고, 숨조차 쉴 수 없는 거대한 무게가 되어 그를 짓눌렀다. 그건 영원히 어둠 속으로 침잠하라는 선고였다.

카무이는 저항할 수 없었다. 아니. 저항하고 싶은 의지조차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아직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다고?

그 목소리에서 묘한 힘을 얻은 카무이는 힘겹게 손을 뻗었다. 몸은 여전히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다행히 위에서 내려온 따뜻한 손길이 카무이를 기꺼이 끌어올려 주었다.

[player name]?

그렇구나... 또 이렇게 된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player name].

이제... 깨어나야지.

다시 눈을 떴을 때, 카무이가 본 것은 더 이상 어둠이나 희미한 빛이 아니었다. 의식의 바닷속 익숙한 마인드 표식을 따라, 따뜻함이 전해져 왔고 카무이는 다시 깨어났다.

카무이는 다시 한번 [player name]이(가) 놓아준 계단을 한 걸음씩 밟으며, 자신을 옥죄던 고통스러운 굴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익숙한 공중 정원 실험실, 그리고 익숙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카무이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모든 게 전부 가짜였고, 다들 여기 있었다.

난...

뼈 깊숙이 스며든 악몽의 잔상은 여전히 몸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공포는 그림자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카무이는 떨치지 못한 한기를 느꼈다.

그 모든 게 가짜였을까? 눈앞의 넌 진짜일까?

카무이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확인하려 했다. 다행히 인간 지휘관이 먼저 그의 손을 잡고, 미세한 떨림을 다독여 주었다.

나... 이번엔 본 것 같아.

전체 과정을 기록해 뒀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 없어. 의식의 바다 복구 진도가 조금 나가긴 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야. 의식의 바다 진동으로 인한 가성 악몽 현상은 지난번과 똑같군.

게다가 현재로선 발생 빈도나 영향력 면에서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명심해, 카무이. 힘든 과정이란 건 알지만, 반드시 극복해야 해.

이건 "태양 코로나 유전자"에 따른 필연적인 부작용이야. 이 기체를 완전히 다루려면, 네가 이겨내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