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소원의 여정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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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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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구슬" 세계

리브의 의식의 바닷속

시간 미상

궁전 문 앞, 마지막으로 쇄도하던 가시가 경륜의 참격과 총격에 가루가 되었고, 사방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지휘관이 자세를 낮춰 자세히 관찰하려 하자, 리브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지휘관의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

리브

먼저 제가 확인할게요, 지휘관님.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은발 소녀가 가시 한 토막을 집어 들자, 창백한 가시들이 그녀의 손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며 마치 얼음 결정으로 빚어낸 듯한 얇은 나뭇가지로 변했다.

리브가 손을 떼는 순간, 가시들이 다시 가지를 덮었다.

리브

정화 효과가 영구적인 건 아닌가 보네요...

리브의 시선이 어두컴컴한 궁전 안쪽을 향했다. 리브가 등 뒤에서 망가진 기계 부품 하나를 꺼내 손에서 놓자, 부품은 거짓말처럼 스스로 떠올라 위태롭게 흔들리며 대문을 향해 날아갔다.

문 안쪽 그림자 속에서, 다리가 망가지고 눈에서 붉은빛을 뿜는 소형 기계체 하나가 비틀거리며 달려 나왔다. 부품을 받아 든 녀석은 일련의 잡음을 내더니 종종걸음으로 다시 궁전 안으로 도망쳤다.

리브

네. 그리고... 전 저것들을 기억해요.

리브는 얼굴을 들고 생각에 잠긴 듯 정교한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리브의 시선이 얼음 호수와 호숫가의 백조 조각상을 스쳐 지나갔고, 이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리브

이 궁전과 호수는 제가 어릴 때, 저를 위해 그렸던 꿈이에요.

잘 자라고 인사를 건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죠. 가사 기계들이 다과회를 열고, 고드름과 눈꽃이 식물처럼 자라나며, 수많은 백조가 춤을 추는...

이곳은 원래 위험이 없는 낙원이어야 했어요.

지휘관이 미처 생각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검은 깃털 뭉치 하나가 허공에서 곧장 뚝 떨어졌다.

리브

앗, 조심하세요!

???

흑흑... 공주님, 드디어 다시 뵙게 되었군요...

리브는 집사 복장의 여자아이를 두 손으로 받아 내려놓았다. 짧은 다리가 땅에 닿자마자 그녀는 울먹이며 리브의 다리를 와락 껴안았다.

오델

저예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절하신 각하.

오델은 말을 마치고 다시 시선을 리브에게 돌렸다. 한 걸음 물러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눈을 깜빡였다.

오델

공주님, 키가 엄청 자라셨네요. 아주 멀고 긴 길을 걸어오신 것 같아요... 밖의 시간이 많이 흘렀나요?

리브

응... 돌아오는 방법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아주 오래.

리브는 허리를 굽혀 오델과 눈을 맞췄다. 흑조 집사는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 두 손으로 리브의 뺨을 감싸 쥐더니, 눈빛이 갑자기 확고해졌다.

오델

그럴 리가요! 이 세계는 공주님의 소원으로 만들어진걸요. 공주님이 어떤 모습이 되든, 오델은 여기서 기다리기로 약속했으니까, 공주님은 반드시 돌아오는 길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린 서로 아끼는 동료고, 동료는 언제나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가는 법이니까요! 전... 전 이제 "붉은 마법사" 따위는 무섭지 않아요. 우린 맞서 싸워야 해요!

두 쌍의 맑은 눈동자가 지휘관을 향했다. 오델은 리브의 옷자락을 붙잡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금세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오델

죄송해요! 친절하신 각하의 성함을 묻는 걸 깜빡했네요. 공주님께서 외부 사람을 이곳에 데려오신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리브의 눈에 놀라움이 섞인 미소가 스쳤다. 지휘관이 이렇게 빨리 수정구슬 세계의 말투에 적응할 줄 몰랐던 건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살짝 건드리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리브

이분은 아주 훌륭한 대마법사야. 바깥사람들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이라고 불러.

오델

와아! 어떤 마법을 쓰시는데요? 동시에 여러 장소에 나타나기? 시간 되돌리기? 설마... 세계를 구하는 마법인가요!

리브

지휘관님의 가장 위대한 마법은, 희망으로 가득 찬 "마음"이야.

은발 소녀는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평온하면서도 자랑스러움이 듬뿍 묻어나는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리브

깊은 물 속에서도, 칠흑 같은 밤에도,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지휘관님의 마음은 언제나 반짝이는 등대처럼 우리 모두를 살길로 이끌어 줬어.

내가 다시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능력을 일깨워 주신 분도 바로 지휘관님이야.

흑조 집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얼굴에 제법 진지한 표정을 띠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이내 지휘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델

공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우린 이제 전우네요!

오델

그럼, 처음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공주님이 오랫동안 돌아오시지 않자, 붉은 조수가 밖에서 스며들더니 붉은 마법사를 데려왔어요.

그자가 지나간 자리는 식물들이 길을 막는 가시로 변했고, 보금자리를 지키던 동료들은 도리어 보금자리를 파괴하기 시작했어요. 호수는 얼어붙고, 다른 백조 요정들마저 모두 사라져 버렸죠!

리브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이내 지휘관의 귓가에 다가와 나직하게 자신의 추측을 얘기했다.

리브

아무래도 그 붉은 마법사는... "수정구슬" 외곽 풍경의 화신일 거예요. 퍼니싱 그 자체는 아니지만, 제 의식의 바다에 비친 퍼니싱의 그림자인 셈이죠.

오델

안 돼요, 세계가 이미 그자에게 장악당했어요. 무턱대고 찾아갔다간 끊임없이 골칫거리들이 몰려와 방해할 거라고요!

골칫거리가 계속 다시 생겨나는 건, 공주님이 세계를 창조할 때 빌었던 세 가지 마법 소원이 모두 붉은 마법사에게 봉인 당했기 때문이에요.

붉은 마법사가 만든 오염을 모두 깨끗이 정화하고 공주님의 소원을 되찾아 드리면, 그자를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예요!

오델

위치는 알고 있어요. [앞으로 나아가는 소원]은 가시 미로에, [보금자리의 소원]은 궁전 깊은 곳에, [함께하는 소원]은 얼음 호수 아래에 봉인되어 있어요.

봉인을 푸는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자랑 싸워 이길 순 없지만 분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그냥 정찰이나 하고 다녔거든요...

흑조 집사가 시무룩해진 것을 눈치챈 리브는 웃으며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리브

넌 이미 우리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었어. 걱정 마, 나와 지휘관님은 임기응변에 아주 능해.

소원을 되찾는 작전을 이 세 곳 중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정찰병 아가씨의 의견을 들어볼까?

오델은 그 말을 듣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델

방금 공주님께서 가시를 베어 넘기시는 모습이 정말이지 우아함 그 자체였어요. 원예 솜씨가 조금도 녹슬지 않으셨던걸요! 미로를 첫 번째 목적지로 삼는 건 어떨까요?

경륜 비도가 소녀의 곁을 맴돌았고, 그녀는 지휘관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확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브

이곳을 대대적으로 청소할 때가 온 것 같네요.

가시 미로의 입구는 마치 거대한 맹수의 목구멍 같았다. 뒤틀린 가지들이 아치 모양으로 엉켜 있었고, 짙은 안개가 자욱해 빛조차 스며들기 어려웠다.

오델은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으나, 가시가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흑조로 변해 날아가 버리고 싶은 눈치였다.

리브

너무 무서우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오델

하지만, 하지만 유능한 집사는 언제나 공주님 곁을 지켜야 하는걸요...

리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훌륭히 해내는 것이야말로 "유능한"게 아닐까.

여기 상황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준 것만으로도, 넌 이미 훌륭한 역할을 했어. 이제 우리가 잘하는 걸 할 차례야, 어때?

오델

네!

조심하세요. 이 미로는 환각을 만들어 두 분을 속일지도 몰라요. 절대 떨어지시면 안 돼요!

지휘관과 리브는 오델에게 손을 흔들며 미로로 발을 들였다. 그 순간, 등 뒤에서 가시가 미친 듯이 자라나더니 순식간에 빈틈없는 벽을 만들어 퇴로를 막아버렸다.

리브

미로의 길은 끊임없이 변하고 안개도 짙은 데다, 오델이 말한 환각까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겠어요.

은발 소녀는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머리 장식에서 리본 하나를 풀어냈다. 그리고 리본을 자신의 손목에 감아 고정하고는, 리본이 묶인 손목을 지휘관 앞으로 내밀었다.

리브

손목을 함께 묶으면 돼요. 손 좀 들어주시겠어요, 지휘관님?

리브의 손놀림은 마치 상처에 붕대를 감을 때처럼 집중력 있고 매끄러웠다. 각자 행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길이를 조절해 매듭을 지었다.

리브

네, 됐어요.

은발 소녀의 뺨에 옅은 분홍빛이 돌았다. 리브는 서로 연결된 손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숙인 채 리본을 감는 그녀의 동작은 여전히 매끄러웠고, 한 손으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은 지휘관이 거들었다. 아무런 말 없이도, 둘은 묵언의 호흡만으로 맞잡은 손을 안정적이고 단단하게 묶었다.

리본이 다 묶이자 서로의 손바닥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빛은 발밑까지 굽이치더니 찬란한 금선으로 변해 앞쪽 미로의 안개를 뚫고 나아갔다. 마치 둘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았다.

리브

어쩌면 제 의식의 바다에서는 마음이 향하는 곳이 곧 올바른 방향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지휘관님 곁에 있으면, 저는 언제나 그곳에 닿는 길을 선명하게 볼 수 있거든요.

금선을 따라 나란히 걸었다. 길은 구불구불 이어졌지만 꽤 평온했고, 그저 발밑에서 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너무 오래 걷다가 현실감을 잃을까 걱정됐는지, 리브가 나직이 말을 걸었다.

리브

가시에 둘러싸인 궁전을 보니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이야기 속에선 어느 나라의 공주가 물레 가시에 찔려 마법에 빠지고, 성안의 모든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들어요.

어머니께서 절 재워주실 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어요. 그때마다 검지를 세워 이야기 속의 물레 바늘인 척 제 이마를 톡 건드리셨죠.

소녀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고, 과거의 따스함이 마음에서 미간으로 번져 나갔다.

리브

참 이상하죠. 어머니께서 그렇게 해주실 때마다 전 항상 아주 깊고 달게 잠들었거든요.

이토록 동심 가득한 대답은 예상치 못했는지, 리브는 놀란 기색을 비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브

그럼 다음번에 지휘관님이 파일 처리하시느라 밤을 새우실 때, 저도 이 방법을 써봐야겠네요.

요즘엔 건강한 생활 습관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손을 들어 맹세하려던 찰나였다. 시야 끝에서 미로의 가시 벽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며, 희미한 윙윙 소리가 들려왔다.

윙윙거림은 하나로 이어져 귓가에 밀착된 듯 가까우면서도, 다른 시공간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수없이 겹친 그 소리는 모두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미안해요...

???

저를 대신해서 남길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요...

???

[player name]... 지휘관님...

리브

지휘관님!

시야가 돌연 맑아지더니, 보석처럼 영롱한 소녀의 두 눈동자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리브는 애타는 표정으로 지휘관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리브

느껴져요, 봉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미로의 의지가 우리의 금선 때문에 화가 났나 봐요. 저희 인지를 방해하고 있어요.

제 목소리를 들으신 거죠? 과거의 저 말이에요.

소녀의 눈빛에는 지휘관이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를 들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리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의 의식의 바다에서 고통스러운 속삭임이 다시금 아련하게 메아리쳤다.

리브

다 지나간 일이에요. 우린 이미 그 험난한 길을 다 통과했고, 전 지금 지휘관님 곁에 있는걸요.

리브

지휘관님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네요.

안 되겠어요.

리브의 음성은 여전히 부드러웠으나, 세월의 흐름에도 깎이지 않는 강물 속 바위처럼 단호했다.

리브

그게 누구든, 어떤 형태이든, 제 세계 안에서 제 지휘관님을 슬프게 만들 순 없어요.

리브는 손가락 끝으로 지휘관의 귓불을 어루만지며, 지휘관이 고개를 살짝 숙여 자신과 이마를 맞대게 이끌었다.

리브

눈을 감으세요. 지금 제 목소리만 들린다고 상상해 보는 거예요.

남은 길은 제가 지휘관님을 이끌어 드릴게요.

시각을 차단하자 다른 감각들이 무한히 확장되었다.

리브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익숙하고 청량한 금은화 향기, 그리고 리브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피부를 간지럽히는 미세한 숨결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리본으로 이어진 손목이 앞으로 이끌려 갔다. 환영도 속삭임도 모두 차단되었다. 지금 이 우주는 오직 리브의 인도와 목소리만을 담을 정도로 아주 작게 느껴졌다.

리브

앞으로 세 걸음, 왼쪽으로 두 걸음이요.

네, 맞아요.

리브는 지휘관을 이끌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때쯤, 리브가 멈춰 섰다.

리브

이제 눈을 뜨셔도 돼요.

눈이 덮이지 않은 꽃밭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연푸른색의 투명한 작은 꽃들이 마치 별처럼 흩어져 있었고, 초봄에나 볼 수 있는 연둣빛 풀밭 위에 수놓인 풍경은 마치 겨울이 잊고 간 어느 한순간에 영원히 멈춰 있는 듯했다.

꽃밭의 중앙에는 꽃잎이 깔린 침상이 고요하게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리브

조금 전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공주는 평온히 잠든 채, 운명의 영웅이 가시밭길을 헤치고 다가와 모두를 꿈에서 깨워주기만을 기다리죠.

전 그저 기다리고 싶지만은 않아요. 전 이미 스스로 깨어날 힘을 얻었거든요.

저는 영웅과 함께 가시를 뚫고 이곳에 온 거예요.

리브는 지휘관을 데리고 공터 중앙으로 걸어가 몸을 낮추었다.

서로 묶인 두 손을 함께 꽃 침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순간, 꽃 침상은 수많은 빛의 알갱이가 되어 흩어졌고, 지휘관과 리브를 중심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꽃밭의 꽃잎들을 싣고 미로를 향해 날아갔다.

바람과 꽃이 지나가는 곳마다 가시들은 잎사귀로 변했고, 뒤엉킨 줄기들은 가느다란 덩굴로 풀어졌다. 가시를 뒤덮었던 저주가 사라지며 원래 있어야 할 생명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드름이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고 서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풍경은 봄날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리브

[앞으로 나아가는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