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방송에서 울려 퍼지는 경고음과 기괴한 감시 카메라까지... 생태 정원의 이상 징후들은 겨우 가라앉은 난민들의 마음을 다시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짧은 평온은 순식간에 깨졌고, 불안이 다시 조수처럼 모두의 얼굴 위로 밀려왔다. 웅성거림과 거친 숨소리가 난민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고, 공포는 맑은 물에 떨어진 먹물처럼 빠르게 번져나갔다.
환... 영... 합... 니... 다...
둥글둥글한 구형 기계 집사가 갑자기 밝아진 안내 데스크 뒤편에서 버벅거리며 튀어나왔다. 고장으로 인해 전자 외눈에서 불안정한 파란빛이 깜빡였고, 전류 잡음이 섞인 합성음이 흘러나왔다.
필레몬 생태 실험 정원에서... 새로운 구성원들의... 합류를... 환영합니다... 저는 이곳의 집사 로봇입니다... 새로운 구성원을... 모시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낡고 망가진 기계체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왜곡되고 끊어지는 전자음을 내고 있었다. 이 기괴한 광경은 많은 난민들을 소름 돋게 했다.
카무이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지휘관과 뒤에 있는 난민들을 모두 자신의 등 뒤로 가렸다. 금빛 눈동자에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날카로운 긴장과 경계가 어렸다.
[player name], 물러서. 목표 유닛은 구형 민간용 모델이지만, 무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리고 침식되었을 가능성도.
"침식"이란 단어가 끓는 기름에 튄 불씨처럼 난민들 사이에서 단숨에 번졌다. 공포에 짓눌려 있던 침묵은 그 순간 와르르 무너졌고, 소란과 비명이 난민들 사이에서 폭발했다.
기계체? 기계체가 여기에 왜 있어? 저 기계체 설마 침식된 거야? 여기는 안전하다고 했잖아!
제가 뭐라 그랬어요? 공중 정원에서 온 어른들은 다 가식적이라 믿을 게 못 된다니까요… 읍…
누군가가 제롬의 입을 틀어막았고, 바로 이어진 노인의 호통에 소란은 잠시 가라앉았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조용히들 하게! 제롬, 너도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입 좀 다물어!
루크는 큰 소리로 외치며 손으로 뒤에 있는 여자와 아이들을 보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지만, 난민들의 리더로서 끝까지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공중 정원의 내비게이션이 여기로 안내해 준 건데, 설마 자기네 일행까지 함정에 빠뜨리겠어?
난민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고, 불안감이 공기 속에서 점점 부풀어 올랐다. 지휘관은 카무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말에, 도망치려다 카무이에게 제지당했던 몇몇 난민들이 망설이다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돌렸다.
지휘관은 카무이가 팔로 만들어낸 방어선을 넘어 그의 앞에 섰다. 카무이는 놀라며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고, 이런 무모한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player name], 조심해. 내 엄호 범위를 벗어나지 마.
카무이는 지휘관의 행동을 막지는 않았다. 가볍게 주의를 주는 동시에, 말없이 자세를 정비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지휘관의 걸음에 맞췄다. 그리고 함께 경계하며, 그 기묘한 기계체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지휘관과 카무이는 나란히 서서 수상쩍은 둥근 기계체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 뒤의 난민들은 서로 바짝 기대어, 마치 둘의 보호를 받는 아이들처럼 보였다.
집사 로봇은 외눈으로 둘을 훑어보더니, 이내 시선을 난민들에게 고정했다. 원래 깜빡이던 파란 불빛이 몇 번 번쩍이더니…
부드러운 분홍색으로 변했다.
삐!
스캔 완료! 특이 개체 둘이 보호 의무를 수행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행동 패턴 판정 결과, 이타적이고, 용감하며, 고도의 호흡을 자랑합니다.
신분 확인 완료. 현재 등록 대기 중인 새 가족의 "핵심 구성원" 여러분, 환영합니다.
가족? 핵심 구성원?
평온했던 카무이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어느새 얼굴 전체에 혼란과 의심이 스며들었다.
카무이는 옆에 있는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말투는 여전히 냉정하고 절제되어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더해졌다.
이 로봇... 어디 고장 난 건가? 나와 [player name]은(는) 상하 관계의 전우지, 무슨... "가족 관계"가 아니잖아?
하지만 집사 로봇의 생각은 달랐다. 분홍빛을 띠고 있던 외눈은 그 말을 부정하듯 노란빛으로 변했다.
반대합니다. 주인님이 남긴 판단 기준에 따르면 오직 가족만이 서로를 이타적으로 보호합니다.
"가족"... 이라?
카무이는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고, 둘의 시선이 잠시 맞닿았다. 하지만 카무이는 마치 피하려는 듯, 다시 시선을 뒤에 있는 난민들에게 돌리며 맑고 이성적인 눈빛을 되찾았다.
[player name], 이 집사 로봇을 계속 여기에 두면, 모두에게 안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어.
집사 로봇은 눈앞에 있는 지휘관과 구조체의 대화를 무시한 채, 고장 난 듯한 외눈으로 노이즈 가득한 홀로그램 영상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전 주인님이 남긴 메시지를 재생합니다.
이어서 재생된 영상은 흐릿해서 구시대 연구원 흰 가운을 입은 여자의 모습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여자의 얼굴은 시간에 마모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카메라 너머를 향한 그녀의 눈빛만큼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이 되어도, 당신은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어요.
설령 지금 당신 눈앞에 보이는 게 잡초만 무성한 생기 없는 폐허뿐일지라도, 그 광경에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는 반드시 보금자리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거예요.
이 소망과 임무를 가슴에 품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예전에 우리가 이곳의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렸듯이, 다시 함께 이 땅에 생기와 불빛을 되살려 넣을 수 있을 거예요.
흐릿한 영상이 갑자기 뚝 끊기고, 영상 속 절절한 여자의 목소리 대신 집사 로봇의 무미건조한 전자음이 들려왔다.
사전 설정된 시스템 규정상, "가족 핵심 구성원"이 돌아왔을 때, "가족 인증"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행동을 통해 가족 공헌도를 교환하여, 생태 정원의 일부 권한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의 의문에 집사 로봇은 비교적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시스템에 사전 설정된 "가족만이 수행할 수 있는" 상호작용 임무를 완료하면 됩니다. 임무 진행 상황에 따라 권한이 단계적으로 해제되며, 기본 임무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생존 유지용 기본 시설만 이용 가능합니다.
각 "가족 구성원"이 보금자리를 재건하려는 결심과 서로를 지키고 돕고 의지하려는 진심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필레몬 생태 실험 정원이 이곳을 여러분에게 온전히 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카무이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휘관의 기습적인 질문에 카무이는 다소 당황한 듯했다.
응? 흠...
이 인증 절차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야. 게다가 생존 유지용 시설의 개방과도 관련되어 있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절차에는 이른바 "가족"이 아닌 대상을 대비한 방어 계획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런 경우 현장에 있는 모두의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카무이의 보고에 지휘관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관찰한 결과, 굳이 이런 소꿉놀이 장난에 맞춰 줄 필요는 없는것 같아. 지금 당장 저 집사 로봇을 제거해 위협을 없앨 수도 있어.
하지만 이후에 생태 정원 전체의 통제권을 확보하려면, [player name], 네 도움이 필요해.
지휘관과 카무이는 뒤돌아서 지쳐 있는 난민들을 바라보았다. 흩어진 무리 사이에서 불안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밖에 아직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는데, 설마 또 이동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어떡해? 저기 [player name]와(과) 카무이가 망설이는 걸 보면, 저 로봇이 뭔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러면 여기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뜻인데...
그럼 안 되는데... 물자도, 식량도 다 떨어졌는데... 진눈깨비까지 맞으면서 다시 가라고? 게다가 바깥에는 침식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난 더 이상 못 걸어!
쉿! 조용히 해!
수군거리던 일부 난민들은 지휘관과 카무이가 둘러보는 시선을 눈치채고 목소리를 낮췄다.
지휘관, 더 좋은 해결책이 있어?
말투는 차분하고 냉정했다. 지금 상황이 해결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카무이는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릴 권한을 눈앞의 지휘관에게 맡겼다.
난민들의 눈에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런 상태로 악천후 속에서 다시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지휘관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세부 사항들을 눈치챘다. 현재 생태 정원의 주요 구조는 꽤 견고해 보였고, 천장 역시 악천후를 충분히 막아낼 만큼 멀쩡했다. 게다가 구석에 있는 정수 순환 시스템도 여전히 작동 중인 듯 보였다.
여기? 난 여기가 이상적인 주둔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카무이는 여러 가지 방안의 득실을 저울질하듯 잠시 침묵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거두었다.
지휘관은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판단을 내렸다.
알겠어. 현재로선 확실히 더 좋은 방안이 없는 것 같네. 네 말대로...
카무이의 담담한 표정 속에 어딘가 미묘하고 어색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 임무가 카무이를 조금 곤란하게 만든 듯했다.
이런 카무이의 반응에서 뭔가 익숙한 느낌이 스쳤고, 지휘관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가족 역할극" 임무에 협조할게.
둘이 합의에 이르자, 지휘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불안과 초조함에 잠겨있는 난민들을 향해 돌아섰다.
앞서 불안에 찬 수군거림은 침묵으로 바뀌었다. 난민들을 마치 어떤 결정을 기다리는 듯, 지금 발언하고 있는 지휘관을 응시했다.
다들 여기를 일단 임시 거처로 삼으시게! 더 이상 밤비 속에서 이동하지 않아도 되네.
지휘관의 말을 듣고, 노인이 최종 결정을 대신 전달했다.
난민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몇 초 뒤 토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며 불안과 두려움을 덮어버렸고, 이내 많은 이들의 눈에 다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한편, 지휘관과 카무이가 집사 로봇과 임무의 세부 사항을 모두 확인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주거 구역을 오늘 중으로 해제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밤을 보낼 야영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둘은 즉시 행동에 나섰고, 이어진 몇 시간 동안 카무이는 유난히 바쁘게 움직였다. 자갈을 치우고, 해충을 내쫓으며, 멈출 줄 모르는 팽이처럼 일에 몰두했다.
지휘관은 카무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전해액 한 병을 건넸다.
[player name], 고마워.
카무이는 예의 바르게 병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둘의 손끝이 잠깐 스쳤다.
그 순간, 카무이는 마치 감전된 듯 손을 급히 움츠렸고, 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전해액을 꽉 쥔 카무이는 절제된 표정을 되찾고, 돌아서서 작업에 몰두했다.
이상하네. 방금은 뭐였지? 산열 시스템의 출력이 왜 이렇게 높은 거지?
밤이 점점 깊어 갔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빗소리가 촘촘히 이어졌고, 멀리서 천둥소리가 두꺼운 구름층 너머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생태 정원 안의 조명은 스스로 어두워졌고,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만이 야영지에 잔잔히 퍼져갔다.
생태 정원은 공중 정원의 신속한 대응 범위를 벗어난 위치에 있었다. 이를 고려해, [player name]와(과) 카무이는 밤이 되기 훨씬 전부터 함께 결정을 내렸다.
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둘은 앞으로 며칠 밤 동안 번갈아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모닥불의 불꽃이 춤추듯 일렁이며, 멍하니 앉아 있는 카무이의 옆모습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고 카무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휘관인 것을 확인하자, 팽팽히 굳어 있던 어깨가 서서히 풀렸다.
[player name]? 안 잤어? 아직 교대 시간이 아니잖아.
지휘관은 음료 두 병을 들고 카무이 옆에 앉았다. 카무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살짝 옆으로 움직여, 자연스럽게 주먹 하나 정도의 거리를 남겼다.
없어. 외곽 경계선을 확인해 봤는데, 저 기계 집사는 지금 정상 대기 상태고, 공격성은 딱히 없어 보여. 당분간 위협은 없다고 생각해.
지휘관은 전해액 병뚜껑을 열어 카무이에게 건넸고, 이번에 카무이는 허둥대지 않고 침착하게 병을 받았다.
기체 기능에 손상이 있지만, 제어 가능한 범위 내야. [player name], 네가 정한... "가족 역할극" 임무 말이야...
카무이는 모닥불에 비친 지휘관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업무 계획을 논의하듯 차분하고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그 말투에서 어딘가 드러난 미묘한 망설임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지금 내 상태가 임무 수행에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돼. "가족"처럼 연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지휘관은 카무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불빛을 머금은 카무이의 눈동자에는 예의 바른 의문이 담겨 있었다.
[player name]...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지휘관은 카무이와 함께 일어나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다들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고, 여기저기서 피곤이 묻은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player name], 그러니까 네 말은...
카무이는 손을 가슴에 얹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가족이라...
행동 패턴으로 보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확실히 집사 로봇이 말한 가족의 모습에 부합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 이런 "가족" 간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느끼진 못하겠어.
이런 문제 때문에… 혹시라도 모두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카무이의 말은 진심이 담겨 있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네. 그래야 앞으로의 임무 수행이 더 수월해질 테니까.
카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시간을 확인했다.
[player name], 지금이 우리가 약속한 교대 시간이긴 한데, 너 오늘 정말 고생 많았잖아. 불침번은 내가 이어서 설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계속 쉬어.
며칠간 쌓인 피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의식의 바다를 짓누르는 깊은 피로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카무이의 입에서 길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알겠어. 불침번 서다가 무슨 돌발 상황이 생기면 바로 깨워.
일렁이는 모닥불이 카무이의 실루엣을 따뜻하게 비췄고, 카무이는 난민들이 쉬고 있는 구역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무이의 고요한 숨소리가 부드러운 실처럼 모두의 꿈결 속에 스며들었다. 하루의 피로에 완전히 지쳐 긴장이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주위에는 다 타지 않은 장작이 내는 탁탁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그때, 잠든 이들 사이에서 갑자기 가벼운 자갈 마찰음이 들려왔다.
지휘관은 단말기 스크린의 희미한 빛이 얼굴을 비추게 내버려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낮에 보았던 남자아이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얼굴에는 여전히 고집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쳇, 재미없네요. 귀는 왜 그렇게 밝은 거예요?
그게... 일부러 엿들으려 한 건 아니에요.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남자아이의 말투가 한순간 누그러졌다.
근데 카무이 형은… 어디 아픈 거예요? 괜찮은 거 맞죠? 그리고 지휘관님과 형은 가족이에요?
제가 카무이 형을 몰래 관찰했는데, 투영이 그... 뭐였지... "감정 혼란"이라고 말할 때 지휘관님의 표정이 좀...
그 표정은 누군가 떠날 때 루크 할아버지랑 버니 형의 얼굴에서만 봤어요.
그리고 또...
아이는 무슨 결정적인 증거라도 잡은 듯, 진지하게 어떤 확실한 답을 도출해 내려는 것 같았다.
카무이 형이 예전이랑 달라졌어요. 우리를 데리고 철수할 때나 여기까지 호송해 줄 때 늘 카무이 형이 모든 결정을 내렸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휘관님이 오고 나서 카무이 형은 계속 지휘관님만 바라보면서 의견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건 분명히 지휘관님의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거나, 지휘관님을 엄청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일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는 호기심이 잔뜩 묻은 얼굴로 지휘관 옆으로 고개를 쑥 내밀더니,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두 분... 가족 맞죠?
어른들은 빙빙 돌려 말해서 너무 복잡해요.
지휘관의 빈틈없는 대답에 아이는 불만이 많은 듯 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랑 루크 할아버지처럼 계속 같이 지낸 게 아니었어요?
지휘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중 정원은 임무가 많아서 다들 모여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오랫동안 "계속 함께 지냈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중 정원은 그냥 엄청 큰 비행선 아니에요? 제가 말한 건,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지낼 수 있는 그런 집이에요.
제롬은 양팔로 열심히 집 모양을 그려 보였다.
네? 가족이 아니었다고요?
당연하죠! 예를 들면, 저랑 루크 할아버지, 버니 형은 이미 여러 곳을 옮겨 다녔어요. 비록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전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은 절대로 떨어지면 안 되는 거라고요!
지휘관의 질문을 듣자, 남자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주할 때마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이번이 그나마 순조로운 편이에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처음에는 많았던 가족들이 점점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어요.
그 후에는 서로 연락이 끊긴 경우도 많았어요. 뭐, 연락이 끓긴 건 그나마 나은 편이죠.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고, 습격받아서 무리랑 떨어졌다가 결국 실종된 사람도 있었어요.
저기요...
남자아이는 다시 지휘관을 불렀다.
만약 언젠가 지휘관님이랑 카무이 형이 다시는 못 만나게 되더라도, 괜찮아요? 기쁘거나 그렇진 않겠죠?
저도 제 가족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남자아이는 뒤에서 깊이 잠든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잠든 루크가 마침 몸을 뒤척이며 자세를 바꾸고 있었다.
루크 할아버지는 나이도 많고 몸도 안 좋아서, 이번 습격을 받았을 때 다 포기하려고 했거든요.
카무이 형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카무이 형에게 화까지 내서 정말 미안했어요.
...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지휘관과 마주 앉은 남자아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잠든 숨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만이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
지휘관님 말이 정말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위로해 주셔서 고마워요.
졸려서 먼저 자러 가볼게요.
남자아이는 지휘관의 약속이 그저 허상일 뿐이라고 느꼈다. 진흙탕 같았던 지난날의 현실 때문에 남자아이는 선의로 약속된 미래를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보금자리라는 것은 너무나 멀고 희미한 존재였기에, 남자아이는 결국 꿈을 믿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