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카무이·에테니언·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카무이·에테니언·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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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name], 들려? 나 카무이야.

폭우가 쏟아지면서 황무지의 진흙 길은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씻겨 내려갔다. 하늘은 괴이한 납빛을 띠었고, 구름 사이에 엉겨 붙은 번개와 뇌우는 통신 채널을 끊임없이 교란했다.

장갑차의 와이퍼가 미친 듯이 움직였지만, 시야를 가리는 빗방울을 닦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통신기에서 귀를 찌르던 백색 소음이 마침내 잦아들자, 카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상황을 보고할게. 호송 임무 중 침식체 무리의 습격을 받아 원래 경로에서 이탈했어. 아군 운송 장비 두 대가 파손되었고, 일부 인원이 경상을 입었어.

현재 난민들을 데리고 좌표 (342, 115) 지점으로 철수했어. 버려진 생태 정원처럼 보이는데, 주변 안전은 확보한 상태야. 지원 요청을 부탁할게.

카무이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안정적이었으며, 발음마저 교본에나 나올 법한 정도로 완벽했다. 이 낯설고 이례적인 상황에 지휘관은 문득 통신 너머의 평소 카무이를 떠올렸다.

[player name]! 좋은 아침! 오랜만이야!

우와, 반가워! 지휘관! 나 엄청 보고 싶었지?

지휘관은 통신기에 뜬 발신자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카무이"가 틀림없었지만,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왼쪽 어깨에 가벼운 손상이 있지만, 전투에는 지장 없어. 기체 지표도 모두 정상이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우선 지원 경로 확보에 집중해 줘. 지휘관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게. 이상, 통신 끝.

통신이 종료되었다. 지휘관은 어두워진 화면을 바라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카무이가 언제 저런 격식 차리는 말을 배운 거지?

의구심으로 마음이 복잡해진 지휘관은 핸들을 꺾고, 걱정에 휩싸인 채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식량과 의료용품을 가득 실은 운송 장비는 빗줄기를 뚫고, 단말기에 표시된 넝쿨과 세월에 뒤덮인 거대한 반구형 건축물을 향해 포효하듯 달려갔다.

버려진 생태 정원

지휘관이 생태 정원에 도착했을 때, 빗줄기는 놀라울 정도로 거세졌다. 단말기에는 악천후로 인해 각 주둔지의 물자 지원이 지연되고 있다는 메시지가 떠 있어, 지휘관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생태 정원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방호 천막에는 넝쿨이 뒤엉켜 늘어져 있었고,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두꺼운 격리문과 천막이 몰아치는 비바람을 단단히 막아 준 덕분에, 내부만큼은 건조하고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에너지 제어 센터에서 희미한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아, 이곳의 설비는 아직 작동하는 듯했다.

조금만 참아 줘, 할아버지. 진통 스프레이를 뿌렸으니 곧 괜찮아질 거야.

다 됐어. 당분간은 무리해서 움직이지 마.

로비의 혼란스러운 광경이 누런빛을 내뿜는 비상 조명 아래 드러났다. 난민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공기 중에는 축축하고 불안한 냄새가 감돌았다.

카무이는 지휘관이 도착한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군중 중심에 서 있는 금발의 구조체는 빛과 열을 내뿜는 태양처럼 주위의 불안과 그늘을 몰아내고 있었다.

공중 정원에 도움 요청을 했으니, 지원과 물자가 곧 도착할 거야. 다들 조금만 더 버텨 줘.

카무이의 얼굴에는 환하고 따뜻한 미소가 번졌고, 눈빛에는 안도감을 주는 열기가 가득했다. 능숙하게 주변 난민들을 다독이는 그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기차 보였다.

지휘관은 가슴 속 깊이 남아있던 걱정을 조금 내려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까지 느껴졌던 거리감과 냉담함은 어쩌면 급박한 상황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지휘관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카무이의 이름을 가볍게 불렀다. 목소리를 들은 구조체는 아이를 달래다가 잠시 멈추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관을 돌아보았다.

[player name], 비까지 맞으면서 오느라 고생했어. 지원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네. 도와줘서 고마워.

지휘관은 열정적인 포옹을 기대했지만, 카무이는 평온한 표정으로 몸을 바로 세운 뒤 정석적인 군례를 올렸다. 카무이의 얼굴에는 방금과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어딘가 중요한 것이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나? 차징 팔콘 소대의 카무이잖아.

카무이의 어깨를 두드리려던 지휘관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카무이의 눈빛은 맑고 밝았지만, 지휘관을 마주할 때만 드러나던 그 특별한 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일반 스태프를 대할 때도 보이는, 흠잡을 데 없는 "친절함"이었다.

지휘관은 눈앞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구조체를 다시금 살폈다. 카무이의 기체에는 진흙과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왼쪽 어깨에는 전투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자국이 여기저기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지휘관은 무의식적으로 카무이의 왼팔에 난 상처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카무이가 먼저 지휘관의 손을 잡아 끌어 자리에 앉혔다. 두 사람 사이에는, 교묘하면서도 정교하게 반 걸음 정도의 간격이 남겨졌다.

그 반걸음은 매우 정중한 사회적 거리였다.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지휘관의 접촉을 피할 수 있었다.

가벼운 외상일 뿐이야. 기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어.

[player name], 그것보다... 상처 약은 더 있어? 다친 난민들이 많아서 지금 모두 예민해져 있어. 우리가 나서서 도와줘야 해.

카무이가 몸을 옆으로 비키자, 그 뒤에 서로 기대어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난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침식체를 피하다가 다친 사람도 있고, 비를 맞아서 아직 열이 나는 아이들도 몇 명 있어.

카무이의 말투에는 난민들에 대한 걱정과 배려가 가득했다. 예전처럼 진심이 담긴 듯했지만, 지휘관의 귀에는 마치 카무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억지로 맞춰 하고 있는 듯하게 느껴졌다.

기본적인 처치는 해뒀지만, 약품이랑 식량이 부족해. [player name], 추가 물자 지원이 더 올까?

...

괜찮아, [player name]. 이렇게 비를 뚫고 와 준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워. 이 정도 물자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야.

여기는 임시 주둔지일 뿐이야. 나중에는 모두를 다른 보육 구역으로 옮겨야 해.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방금 치료를 받던 노인이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카무이의 팔을 잡으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player name], 이쪽은 루크 할아버지, 난민들의 리더야.

할아버지, 이쪽은 [player name]. 공중 정원에서 도와 주러 왔어.

고맙네, 카무이. 그리고 공중 정원의 [player name]도 고맙네. 그런데 자네 혼자뿐인가?

눈앞에 홀로 서 있는 "지원군"은 난민들을 안심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player name]은(는) 내 통신을 받고 즉시 비를 뚫고 와 줬어.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다른 지원과 물자는 조금 늦어질 거야. 양해 좀 해줘.

양해라니... 무슨 그런 말을 해. 좀 전의 카무이는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공손하진 않았는데 말이야.

노인은 카무이의 정중한 태도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슬쩍 지휘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를 보호하는 게 내 책임이자 임무야. 할아버지는 먼저 저쪽으로 가서 좀 쉬어. 내가 부축해 줄게. 이따가 [player name]와(과) 물자를 확인하고, 약품과 식량을 바로 가져다줄게.

카무이는 고개를 숙인 채, 차분하게 노인을 부축했다. 카무이의 태도는 친절함과 책임감이 묻어났고, 흠잡을 데 없는 신뢰감을 주었다.

하지만... 카무이는 왜 평소처럼 지금까지 겪은 고생담이나 활약상을 열정적으로 늘어놓지 않는 걸까?

왜 이렇게... 절제하고, 철저하며, 예의 바른 모습이 된 걸까? 이 모든 게 좋긴 하지만, 지휘관이 아는 카무이답지는 않았다.

[player name], 여기 방어 시설을 좀 점검해 줄 수 있어? 침식체가 침투할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게 좋겠어.

이내 둘은 묵묵히 역할을 분담했고, 지휘관은 다시 한번 주변 환경을 점검했다. 생태 정원의 방호 및 경보 시스템은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주변 점검을 마치고 카무이와 합류하려던 찰나, 난민들 사이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또 이동한다고요? 전 안 갈래요! 새로운 보육 구역 같은 건 다 거짓말이잖아요!

한 아이가 눈앞에 서 있는 카무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제롬! 그만해. 카무이가 우리를 얼마나 도와줬는데...

제가 왜요? 올해만 벌써 세 번이나 옮겼단 말이에요! 매번 새집이 생길 거라고 했지만 결국은요? 석 달 넘게 머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냐고요!

매번 안전할 거라고 했지만, 결국 다 똑같았잖아요!

공중 정원에서 별의별 이유로 이리저리 옮기게 하거나, 아니면 퍼니싱이랑 적조에 쫓겨서 도망치기 바빴다고요!

아이의 분노 섞인 말에 카무이의 시선이 노인에게 향했다. 죄책감 때문인지, 루크라는 이름의 노인은 카무이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노인은 시선을 피하며 카무이를 외면했지만, 이쪽으로 걸어오는 지휘관에게 끝내 걸리고 말았다. 지휘관을 발견한 노인은 황급히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다.

헛소리하지 마라. 보육 구역에 도착하면, 우리도... 새 집이 생길 거다.

헛소리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보육 구역으로 가봤자 또 쫓겨날 텐데, 그런 곳이 집이라고요? 이제 집 같은 건 없어요!

아이는 노인의 손을 뿌리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잠잠해졌던 주위 난민들의 눈빛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것은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쌓인 절망과 피로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맞장구쳤다.

그러게... 보육 구역에 가봤자 며칠이나 편하게 지낼 수 있겠어?

공중 정원이 좋은 뜻으로 그러는 건 알겠지만, 우릴 너무 들볶는 거 아니야? 이전에 이동할 때도 꽤 많은 사람들이...

분위기는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숨 막히는 기운이 난민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었다.

지휘관은 카무이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카무이는 어떻게든 아이를 웃게 만들려고 애쓰며, 가슴을 두드리면서 이런 약속을 했을 것이다.

걱정 마! 나만 믿어!

설령 버거운 일이라고 해도, 카무이는 최선을 다해서 해낼 것이다. 서툴지만 진심 어린 그의 열정은 변함없는 태양처럼 따스하게 빛나며, 항상 모두를 포근히 감싸 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카무이는 그저 자리에 가만히 서서, 온화하면서도 절제된 미소를 지은 채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차분히 바라봤다.

다들 진정해. 지금 조치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거야. 그리고 바깥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지금 이동하는 건 위험하다고 보고받았어. 날씨가 풀리면 예정됐던 보육 구역으로 다시 옮길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그리고 방금 말한 우려 사항이랑 요구는 이미 다 상세히 기록해 뒀어. 나중에 목표 보육 구역에 제출해서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할게.

카무이의 대답은 이성적이고 타당했지만, 카무이다운 느낌은 전혀 없었다. 감정을 털어놓으려던 제롬은 그렇게 차갑고 공식적인 대답이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는지 순간 멍해졌다.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지휘관은 한숨을 내쉬며 난민들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들어가, 몸에서 압축 비스킷 하나를 꺼내 제롬에게 건넸다.

하지만 아이는 지휘관의 호의를 거절하며, 무릎을 끌어안은 채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지휘관은 무심코 카무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으로 카무이의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지만, 이내 곧 가라앉았다.

제롬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지휘관이 내민 비스킷을 받아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콩알만 한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흐르더니, 아이의 지저분한 손등을 톡톡 적셨다.

지휘관은 손을 뻗어 아이의 얼굴에 묻은 얼룩을 가볍게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리 사이에서 다시 수군거림이 일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폭발 직전의 상황이 지휘관 덕분에 가라앉자 카무이가 감사의 시선을 보냈다.

아주 효과적인 소통이었어. 도와줘서 고마워, [player name]. 나였다면… 이렇게 빨리 모두의 감정을 진정시키진 못했을 거야.

난 자원을 마저 나눠주고 올게. [player name]도 고생이 많았으니, 잠시 쉬고 있어.

말을 마친 카무이는 지휘관과 루크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한 뒤, 다시 바쁘게 무리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지휘관과 노인의 시선이 마주쳤고,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 뒤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player name], 이전의 카무이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흠... 제롬도 저런 카무이의 모습을 좀 무서워하는 것 같더군.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노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무이가 우리를 호송해서 철수하던 중에, 침식체 무리한테 습격을 당했네.

그때 카무이가 우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서 시간을 벌어줬어. 나중에 우리를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다친 상태였고, 그때부터 말투도 깍듯해졌더군.

노인의 걱정 어린 말은, 사고 이후 카무이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에 대한 불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player name]... 카무이 그 친구, 괜찮은 거 맞겠지?

난민들이 하나둘 음식과 약품을 받고 나서야, 지휘관과 카무이에게 짧은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이제 다들 안정 됐으니, 주위가 안전한지 내가 순찰하고 올 게.

지휘관은 쉴 틈 없이 움직이려는 카무이를 불러 세웠다. 카무이가 평온하면서도 의문이 담긴 눈빛을 보내자, 지휘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휘관은 다짜고짜 카무이의 손목을 잡았다. 카무이는 감전된 듯 흠칫 몸을 떨었지만, 이내 의사에게 진찰받는 환자처럼 순순히 손을 내맡겼다.

없어.

알겠어.

의식 연결이 완료된 뒤, 지휘관은 전에 있었던 전투가 카무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살폈다. 이상하게도 가벼운 찰과상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상처라고 부를 만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카무이의 의식의 바다는 지나치게 평온했다. 평소 지휘관을 만났을 때 일렁이던 흥분된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의 바다는 잔물결 하나 없이 잠잠했고, 백지장처럼 깨끗했다.

[player name], 무슨 결론이라도 나왔어?

지휘관은 연결을 끊고, 곧바로 아시모프의 통신 채널에 연결했다. 그러고는 카무이의 상태를 아시모프에게 보고했다.

투영이 펼쳐졌고, 아시모프는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연락한 걸 보니 무슨 일이라도 있나 보군. 응? 카무이? 새로운 기체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어디 보자... 기체 손상은 심각하지 않은데, 의식의 바다 파동이 좀 신경 쓰이는군.

확실하진 않아. 원인은 중요하지 않지. 지금 각종 지표로 봤을 때...

지휘관과 투영 너머의 아시모프는 눈앞의 카무이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카무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불안한 기색 하나 없이 진단이 끝나길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감정 논리 이상"일지도 모르겠군...

일종의 "감정 혼란"이지. 이 파형을 봐.

아시모프는 도표 하나를 띄우고, 그중 아무런 파동도 없는 직선 하나를 가리키며, 차분하고 전문적인 어조로 설명했다.

쉽게 말하자면, 카무이의 감정 인식 기능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가중치" 분배 능력을 잃어버린 거야. 본인의 주관적인 판단 속에서, 모든 이들의 중요성이 강제로 평준화되었다고 이해하면 돼.

보통 구조체의 의식의 바다 감정 곡선은 상황에 따라 파동이 생기기 마련이지.

너나 차징 팔콘 소대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카무이의 감정 곡선은 늘 변동을 보였어. 그만큼 너희들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이 선이 완전히 평평해.

지휘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옆에 있는 카무이를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카무이의 예의 바르고 절제된 미소뿐이었다.

지휘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그럴 필요는 없어. 지금 카무이가 저런 모습이긴 해도, 인격, 기억, 그리고 모든 기체 기능은 영향받지 않았어. 카무이는 여전히 네가 아는 카무이야.

카무이는 여전히 남을 돕는 걸 좋아하고, 인간을 먼저 보호하려는 마음도 변함없어. 다만, 지금은 너에게만 특별히 적용되던 "필터"를 잠시 잃은 상태라서, 겉으로 너와 다른 난민들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어 보일 뿐이야.

이 몇 마디 진단은 마치 가시처럼 지휘관의 마음에 정확히 꽂혀,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지휘관의 찌푸린 표정을 본 카무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은 맑고 친절했지만, 예전처럼 뜨겁고 거침없는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는 보통 일시적인 거야. 압박이 감도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반응일 수도 있고, 이전 전투에서 입은 손상의 여파로 자아 방어 메커니즘이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도 있어.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할 수 있는 강렬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해 버린 거지.

지금 그곳 날씨로는 수송기가 이착륙하기 힘들고, 앞으로 며칠간 뇌우가 이어질 예정이야. 게다가 이 정도의 감정 혼란이면, 안정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회복하는 것이 유지보수나 조정 못지않게 효과적일 수 있어...

그리고 네 근처에 추가로 파견할 수 있는 소대도 없어. 지금 있는 생태 정원 환경이 괜찮은 편이니, 우선 임무 완수에 집중해.

아시모프는 말을 멈추고 손에 든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의 대화를 조용히 다 듣고 있던 카무이를 힐끗 보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어쩌면 지금의 카무이에게는 네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통신이 끊기고 홀로그램 투영이 사라졌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고, 빗방울이 천장 위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카무이가 조용히 지휘관 곁으로 다가와 물병 하나를 건넸다. 평소처럼 지휘관이 마시기 편하게 병뚜껑을 살짝 열어둔 상태였다.

[player name], 수분을 보충하면 체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방금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서, 목이 마르지?

지휘관은 물병을 받아 들고,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달라진 카무이의 표정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순간, 둘 사이의 거리가 꽤 멀게 느껴졌다.

[player name]...?

어떠냐고?

카무이는 지휘관을 바라본 채,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흔들림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만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아무 문제 없어. 우리가 여기서 며칠 더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만 빼면...

현재 물자, 식량, 약품이 부족한 거 외에 걱정되는 건 없어.

왜 그래? [player name], 어디 불편해?

카무이의 말투는 절제되고 예의를 갖췄으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지휘관의 입꼬리가 살짝 틀어졌다.

카무이는 지휘관의 미묘한 실망을 눈치챘지만, 그저 의아함이 섞인 시선으로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철컥, 철컥, 웅...

지휘관의 미묘한 감정은 갑작스럽게 울린 기계음에 끊겼다. 생태 정원에 줄곧 잠잠하던 안내 방송이 아무 예고도 없이 소름 돋는 경고음을 뿜어냈다.

경고음은 이내 거친 전류 잡음으로 변하더니, 곧 끊어질 듯한 기침 같은 소리가 불안정한 신호의 떨림과 함께 퍼져 나왔다. 마치 낡은 장비가 갓 깨어나 힘겹게 목을 가다듬는 것 같았다.

칠흑 같던 안내 데스크가 마치 눈을 뜨기라도 한 듯 갑자기 환해졌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고장 난 줄 알았던 감시 카메라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 깜빡이는 파란 불빛은 이 센서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카무이는 즉각 몸을 날려 지휘관 앞을 가로막았다. 동작은 깔끔하고 단호했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그 안에서 어딘가 미묘한 차이를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카무이는 먼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player name]의 안전을 확인하고, 작전 계획을 세운 뒤, 지휘관의 안전을 가장 빨리 확보할 수 있는 위치로 움직였을 것이다.

카무이는 이번에도 능숙하게 지휘관을 안전하게 보호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지휘관과 소통하지 않고 바로 가장 완벽한 행동을 취했다.

가족 구성원 로그인 감지... 지지직... 생체 정보 식별 중... 필레몬 생태 정원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광학 센서가 거의 고장 난 듯한 둥근 로봇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지휘관을 주인으로 잘못 인식한 후 삐걱거리며 스캔 장치를 카무이 쪽으로 돌렸다.

지지직... 새로운 방문자 로그인. 환영합니다. 신분 정보 스캔 중... 삐... "가족 구성원" 등록 완료.

카무이는 손가락으로 자신과 카메라 사이를 번갈아 가리키며, 방금 언급된 "가족 구성원"이 바로 자신임을 확인했다.

카무이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지휘관은 오랜만에 카무이의 눈에서 색다른 감정을 읽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