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꿈은 서늘한 그늘을 엮어내어,</i>
<i>천사가 지켜주는 침대를 덮었다.</i>
<i>꿈에서 길 잃은 개미를 보았고,</i>
<i>나는 풀밭에 누워 있다고 생각했다.</i>
<i><순수와 경험의 노래></i>
균열을 빠져나온 순간, 눈앞의 빛과 그림자는 빠르게 모여들어 선명한 풍경을 이루었다.
주변에는 흙 내음과 꽃향기가 은은히 감돌았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뚫고 오솔길에 부드럽게 내려앉으며,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감싸안았다.
알파에게 이곳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숲을 수없이 누비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때로는 나무 위에서 우는 매미를 바라보기도 했고, 때로는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이곳은 그녀의 고향이었다.
마치 그 어떤 재난도 일어나지 않은 듯, 이곳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멀리 우뚝 서 있는 거대한 건물만은 예외였다. 그 윤곽은 더욱 선명해져 있었고, 둘이 "그림자"에 더 가까워졌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
인간 역시 이곳을 알아본 듯했다. 예전에 인간은 케르베로스 소대와 함께 이곳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온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 모든 것은 황폐하게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둘은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 시아?
알파의 몸은 순간 굳어버렸고, 이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검은 긴 머리에 온화한 얼굴의 여성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놀라움과 혼란, 그리고 믿기 어려운 듯한 기쁨이 서려 있었다.
수년간 내뱉지 않았던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엄마...?
어떤 고난과 변화를 겪더라도, 어머니는 기억만으로 바로 자식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여인은 조심스레 다가와 알파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
하지만 알파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돌아올 거면 엄마한테 미리 말했어야지.
이리 와봐. 얼굴 좀 보자.
여인은 자연스럽게 알파를 어루만지며, 늘 그랬듯 이마를 알파의 이마에 맞댔다.
음... 많이 변했네. 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느낌이야.
당연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이미 수없이 이마를 맞댔었기 때문이다.
집에 온 걸 환영해, 루시아.
밤이 내려앉은 침실.
루시아, 루나, 이제 잘 시간이야.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이야기...? 루시아도 듣고 싶어?
네!
어머니는 자신의 이마를 루시아의 이마에 살며시 맞댔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오후의 정원.
엄마...
또 루나랑 물총놀이 했어? 어디 보자... 옷이 다 젖었네.
어머니는 몸을 숙이며 루시아와 이마를 맞댔다.
정말 못 말려...
아침의 거실.
어머니는 막 침실에서 나온 루시아를 안아 올리며,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루시아와 이마를 맞댔다.
우리 딸 아직 잠 덜 깼어?
어서 세수하고 와. 아침밥 다 차렸어.
<i>기억은 비열한 물보라처럼 알파를 휘감았다.</i>
<i>그녀의 망설임도 거부도 아랑곳하지 않고,</i>
<i>가장 부드러운 감촉으로 하나의 사실만 전했다.</i>
<i>어머니는 알파를 사랑했다.</i>
루시아?
어머니의 부름에 알파는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옆에 있는 분은 누구야? 엄마한테도 소개시켜 줘.
이쪽은 [player name], 내 친구야.
잘됐네.
자, 얼른 집에 가자. 마침 저녁밥도 함께 먹을 수 있겠어.
셋은 숲속 오솔길을 따라 길 끝에 있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짧았지만, 어머니는 끊임없이 알파에게 당부의 말과 최근 집안 소식을 들려주었다.
네 동생은 지금 집에 없고, 아빠도 출장 중이야.
루시아가 지금 구조체가 돼서 엄마보다 훨씬 튼튼하다 해도, 일상생활 습관은 잘 지켜야 해.
자꾸 밤새우지 말고, 물 마실 땐 꼭 끓여서 마시고, 따뜻한 물 많이 마셔.
그리고 편식도 하지 말고...
평소에 돈을 헤프게 쓰지 말고, 꼭 모아둬.
...
인간은 조용히 들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간은 알파 어머니의 눈빛이 가끔 희미해지는 걸 눈치챘다.
셋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아늑하고 생활의 흔적으로 가득 찼으며, 알파의 기억 속 모습과 거의 다를바 없었다.
일단 앉아 있어. 엄마가 차를 따라서 가져올게.
알파는 시선을 2층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한때 그녀와 루나가 함께 썼던 방이 있었다.
알파의 기억 속에서, 퍼니싱은 그녀가 아직 어릴 적에 폭발했다.
알파는 문득 이곳의 어른이 된 "루시아"가 어떤 방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에서 전사가 되었던 그 세계와 같은 것일까?
잠깐... 위층에 다녀올게.
알파는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고, 2층에 도착한 뒤 잠시 망설이다가, 오른쪽 방문을 열었다.
소녀의 침실이 눈에 들어왔다.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침대, 책상, 소파, TV...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던 적막함이 배어 있었다.
벽면의 코르크 보드에는 크고 작은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고, 알파는 다가가 한 장 한 장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사진들은 "루시아"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교복 차림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초등학교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트윈테일을 묶고, 디자인이 다른 교복을 입은 루시아가 아침밥을 먹는 사진. 중학교 시절로 보였다.
그 뒤로 사진의 배경은 병원으로 바뀌었다.
앙상한 몸에 맑은 눈빛을 가진 소녀가 카메라를 향해 힘겹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에서 환자복 차림의 루시아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고개를 들어 병원 정원의 살구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루시아가 구조체가 된 모습이었다. 기체는 홍련임을 알 수 있었고, 사진 속 그녀는 더 이상 병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
알파는 벽에 걸린 사진에서 시선을 거두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의 서랍을 열자, 캠코더 한 대가 눈에 들었다.
캠코더를 TV에 연결하자, 화면이 밝아지며 가정의 일상이 담긴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조금 흔들리는 화면 속, 잔디밭에서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귀여운 원피스를 입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화면 밖에서는 젊고 웃음이 담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뛰어, 루시아, 넘어지지 말고.
여자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비틀비틀 카메라 쪽으로 달려와 어머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다음 영상.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며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다음 영상.
생일 파티에서 얼굴에 생크림이 잔뜩 묻혀져 있었다.
다음 영상.
노을빛이 드리운 방 안,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루시아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석양빛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였다.
이 시절 루시아의 얼굴에는 이미 차분함과 안정감이 깃들어 있었다.
화면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아.
네?
루시아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과일 좀 먹어.
카메라가 어린 루시아에게 접근했고, 화면 밖에서 누군가의 손이 보이더니, 과일 한 그릇을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고마워요, 엄마.
루시아, 뭘 보고 있어?
이야기책이에요. 이 책에는 옛날에 위대한 여왕이 있었고, 그녀가 살고 있는 왕국의 하늘에는 신들이 살고 있었어요.
신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폭우를 내리거나 폭풍을 몰고 왔어요.
백성들은 신들의 변덕 때문에 힘든 나날들을 보냈어요.
그래서 여왕은 전설 속, 신에게 맞설 수 있는 왕관을 찾기로 결심했죠.
수많은 고난을 거친 끝에, 마침내 왕관을 찾았어요.
하지만 여왕은 왕관을 쓰고도 신들을 내쫓지 않았대요.
"만약 재앙을 내리고 싶다면, 내게 내려라. 내 백성은 다치지 않게 해줘."라고 여왕이 말했어요.
신들은 그녀의 정신에 감동했고, 그때부터 백성을 괴롭히지 않기로 했어요.
듣고 보니 아주 대단한 사람인 것 같네.
하지만... 불쌍한 사람이기도 해.
저는 여왕이 참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루시아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린 루시아는 잠시 생각한 후,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화면을 꿰뚫어 알파를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는 커서...
뚝!
TV가 꺼지며 루시아가 사라졌고, 검은 스크린에는 알파의 얼굴만 남았다.
...
다 봤어?
알파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인간이 문 앞에 한참 서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한번은 온실 안에서 엄마에게 노란 꽃 하나를 가리키며 물어본 적이 있어. 이게 무슨 꽃이냐고.
그랬더니... 민들레래.
나중에 알았는데, 대다수 사람은 민들레 하면 솜털만 떠올리고, 민들레꽃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
바람 한 번에 흩어져 버리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알파는 늘 차디찬 얼음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을 에둘러 하고 있었다.
넌... 민들레꽃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야?
서둘러 대답할 필요 없어.
알파는 고개를 저었다.
밥 다 됐어~
아래층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대로였다.
따뜻한 노란빛 조명 아래, 한 상 가득 채운 가정식 반찬이 눈에 들어왔다.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셋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알파는 이런 일상적인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듯, 젓가락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알파의 어머니는 다정한 눈길로 알파를 바라보며, 연신 음식을 덜어주었다.
...
알파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릇 안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player name] 님은 군인이신가요?
알파의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딸 옆에 앉은 인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서로 만난 건지 얘기해줄 수 있어?
난 입대했고, [player name]이(가) 내 지휘관이야.
알파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 루시아?
알파는 잠깐 멈칫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에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
어머니는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내가 아는 루시아가 아니라는 걸 알아. 그래도 엄마는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
...
모두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 갑자기 입 밖으로 나오자, 식탁 위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엄마한테 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알파는 말없이 인간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차가운 얼음일지라도, 언젠가 녹는 법이다.
난...
따스한 노란빛 조명 아래, 알파는 어머니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고, 그 대화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야기는 이미 한참 전에 마무리되었고, 식탁도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아무리 따뜻한 보금자리라 해도, 둘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떠나야 하는 거야?
응.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 수납장에서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럼, 떠나기 전에 사진 한 장만 찍을까. 이 "집"에 남기는 기념사진이라고 생각해...
알파는 거절하려 했지만, 어머니의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눈빛에 못 이겨 결국 지휘관과 함께 어머니 옆에 서게 되었다.
찰칵.
따스한 노란빛 아래, 사진이 천천히 인화되었다. 사진 속 어머니는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알파는 표정이 굳어 있었으며, 인간은 반대편에 서 있었다.
나란히 선 세 사람은, 마치 피를 나눈 진짜 가족처럼 보였다.
인간과 알파는 사진을 챙기고, 짐을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마쳤다. 어머니는 둘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떠나기 전 알파가 고개를 돌리자, 어머니가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player name] 님.
[player name] 님.
어머니는 앞으로 다가와, 곧 먼 길을 떠날 자식을 배웅하듯, 인간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루시아는... 차갑고 말수가 적어 보이지만, 여기까지 함께 와줬다는 건... 당신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어떤 말은 루시아가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당신은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렇죠?
어머니는 만족스러운 듯 빙긋 웃으며, 알파를 바라보았다.
<i>넌 앞으로도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널 사랑해 줄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i>
<i>그러니 조금 더 솔직해져 봐, 루시아.</i>
<i>조금 더 많이 사랑해 봐, 루시아.</i>
<i>넌 언제까지나 내가 축복하는 아이야.</i>
<i>이제 딱정벌레의 소리를 따라,</i>
<i>얼른 집으로 돌아오렴, 길 잃은 아이야.</i>
<i><순수와 경험의 노래></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