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또 시작이네.
음, 왼쪽 뒤...
일단 숨어.
롤랑과 라미아는 가까운 곳에서 두 사람의 몸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무너진 벽을 찾았고, 이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아침 햇살의 그늘에 몸을 숨겼다.
…………
롤랑의 예상대로 침식체 몇 구가 그들이 방금 향하던 왼쪽 뒤쪽에 나타났다.
수는 많지 않았으며, 걸음걸이도 엉성해 얼핏 보면 그냥 흔한 침식체였다.
몇 시간—— 구체적으로 말하면 날이 밝은 후, 롤랑은 아직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알고 있는 단서를 따라서 찾아보자'라는 논리로 롤랑과 라미아는 먼저 길을 나서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마다 어슬렁거리는 이상한 침식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침식당할 만한 대상이 없는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롤랑과 라미아가 가는 길에는 침식체들이 어슬렁거렸다.
비록 조금만 손을 대면 쉽게 정리될 수 있는 숫자이지만 롤랑은 뭔가 걸리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쫓아버릴 목적을 가지고 롤랑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은 다음 우두머리 침식체의 방향을 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이 몸의 문제인 거야. 아님...)
침식체 몇 마리가 돌아다닐 뿐인데... 그냥 처치하면 안 돼?
그래서?
?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이 침식체들은 우리를 찾아내서 공격하는 듯한 느낌이야.
침식체가 나올 수 없는 지역이든 우리가 의도적으로 여러 차례 동선을 바꾸든.
(어? 아깐 전에... 길 잃은 거 아니었어?)
어——!
상대방이 뭘 하고 싶은지... 단순히 떠보려는 건가?
(아니야. 탐색이라면 더 강한 놈들을 보내야지. 어쩌면 상대방의 진짜 목적은 우리의 경로를 바꾸는 것이 아닐까?)
(뭐, 조금 있다가 또 나타나면 라미아 보고 제어하라고 해야겠어. 내가 침식체를 제어할 수 없다는 걸 지금 그녀가 알아선 안 돼.)
그럼 빨리 해치우자!
?
상대방이 굳이 약한 놈들을 보내 떠보려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롤랑은 영혼이 없는 껍데기를 가지고 노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상황 파악이 안된 라미아를 데리고 롤랑은 몸을 숨겼던 벽의 잔해를 뚫고 나왔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미 계획을 세웠다.
!!
롤랑과 라미아의 연합 공격으로 목적 없이 떠돌던 침식체들은 빠르게 소멸됐다.
또다시 자신의 발밑에 쓰러진 침식체 잔해를 마주한 롤랑에게 승리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빈번하고 순조로워.
(이상하네...)
무슨 일이야?
(이런 무의미한 탐색. 도대체 원하는 게 뭐지?)
(우리를 없애려고 하든 떠나보내고 싶든 상대방이 원하는 결과는 일어나지 않아.)
승격자에게 소모전은 무의미해. 이건 인간의 전투가 아니니깐. 상대방이 침식체를 조작할 수 있다는 건 그들도 같은 물건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그렇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런 방식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어. 다 같이 덤비면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뭔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그럼... 그 뭔가란 도대체 무엇인 거지?
재밌네...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내가 끼어들 수 있는 말을 좀 해봐.
어쩌면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있어서인지, 롤랑이 말하는 사이 또 새로운 침식체들이 비틀거리며 거리의 다른 한 쪽에서 나타나, 롤랑과 라미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어...
또 시작인 건가?
(이전처럼 같은 지점에서 왔어. 한 바퀴 돌면서 확인해 봤으니 틀릴 리가 없어.)
롤랑이 황량한 땅 가장자리에서 침식체가 자신들을 향해 휘청거리며 달려오는 걸 보던 그때, 롤랑의 마음속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라미아, 저것들을 멈춰 줘.
?
롤랑이 왜 직접 나서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라미아는 일단 그의 지시를 따랐다.
하지만 침식체는 멈추지 않았다. 그보다는 침식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
역시 그런가.
라미아는 승격자의 역방향 제어를 할 수 없었다. 그건 상대가 사용한 것이 승격자와 같은 수법을 썼거나,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걸 확인하니 이 녀석들은 상대방이 던진 "어떤 메시지"로 밖에 이해되지 않아.)
어쩌면 통제를 벗어난 자동 공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승격자인 라미아와 내가 침식체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
보아하니 이제 나름대로의 판단이 선 것 같군.
아마도.
그럼 왜 행동하지 않는 거야?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아마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한마디일지도 몰라.)
그것이 너의 단점이야.
(칫.)
그럼 우리는 상대의 함정에 들어가 보자.
...?
우리가 찾고 있는 물건은 아무 스캐빈저나 공중 정원의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가브리엘에게 물어보는 거지만... 아직 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앞서 자비로운 자와의 대화에서 롤랑은 알파가 그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다면 가브리엘은 죽은 게 틀림없을 것이었다.
그럼... 저 "연극"의 배후를 찾으러 갈 수밖에 없겠군.
어... 그들을 찾으러 간다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운이 좋은 것 같아. 그들이 먼저 우리를 찾기 시작했어. 이 침식체들이 바로 증거야.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아.
그래.
라미아도 롤랑의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오는 방향을 따라 이 침식체들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보자.
"Fortis Fortuna Adiuvat(행운은 용감한 자를 돕는다)."
황폐한 땅과 폐허 사이로 롤랑과 라미아는 침식체가 오는 방향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침식체는 계속해서 나타났으며, 이들의 행진에 따라 나타나는 빈도가 계속해서 증가했다.
그러나 롤랑은 오히려 흥분했다. 적어도 "침식체가 의도적으로 같은 곳에서 왔다."라는 점에서 롤랑의 생각이 맞았던 것이다.
그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선봉에 서서 명령하는 이가 있어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야.)
(이러면 살 가능성도 높아지겠지... 음...)
롤랑과 라미아는 한동안 계속 전진했지만, 원래 나타나야 할 침식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오백 미터, 천 미터, 이천 미터...
하지만 일정 빈도로 계속해서 나타나던 침식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뭘 설명하는 걸까? 롤랑은 이렇게 생각했다.
침식체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다음은...
그 순간, 하늘 위의 윙윙거리는 엔진 소리가 롤랑의 생각을 끊었다. 어쩌면...
이건가?
롤랑과 라미아는 엔진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들리지 않을 때까지 쫓아갔다.
그 방향을 따라 롤랑과 라미아는 무너진 건물 두세 채를 넘었고, 그 소리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자리에 도착했다.
빌딩이 무너진 틈새에 공중 정원 표식이 있는 수송기가 멈춰 서 있었다.
어... 이거 공중 정원의 수송기 맞지? 왜 이곳에 혼자 있지?
단독으로 나타났다면, 안에 있던 것은 대부분 물자나 설비가 아니라...
세 명의 모습이 수송기 너머 길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임무 수행을 위해 온 집행 부대 대원.
너네 뭐 하는 거야?
이 정적을 깬 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베라였다. 그녀는 단말기의 홀로그램 투영을 끄고 두 대원을 향해 돌아섰다.
멀쩡한 문을 제대로 열지도 않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아, 원래 바로 열 수 있는 거였어? 몰랐지.
장비를 내려놓고, 임무나 준비해.
알겠어.
몇몇 구조체는 짐을 내리기 시작하여, 들고 다니는 상자에서 원격 연결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지점 장치를 옮겼다.
공중 정원의 집행 부대? 그들은 뭐 때문에 이 황량한 땅에 온 건지?
"그녀"를 위한 건가... 아니, 아니야.
그 여성의 상태를 떠올리며 롤랑은 곧 이 생각을 단념했다.
"그녀"는 공중 정원의 관심을 끌 만한 대행자로 보이지 않아.
우리 때문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우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할 수 있어. "그녀"가 없는 곳에서 행적이 드러난 적도 없잖아.
냉정하게 생각하면 집행 부대는 자신들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주요 임무가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 그들을 멀리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갑자기 집행 부대가 나타났고, 롤랑은 그 배후에 숨겨진 것이 어쩌면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과 관련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면으로 접촉할 필요성은 크지 않지만, "누군가"를 제외하고는 아마 내 말을 들어줄 이는 없을 거야.)
(적어도 그 녀석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들어볼 수는 있어.)
라미아! 네가 나설 차려가 됐어. 그들이 뭘 위해 여기 왔는지 가서 들어 봐.
어... 내가?
나는 은신할 줄 몰라.
음... 그래.
아마 상부가 머레이를 지옥견에 배치한 모양이야. 그들이 너보다 쓸모가 많으니까.
베라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평소와 같은 어조로 돌아가며 말했다.
하!? 용납 못해. 절대로!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음... 발전했구나? 이제 놀리는 것도 알아들을 줄 알고. 내가 말하면 불평 좀 하지 마. 이 사람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야.
마음에 안 들어.
21호, 이건 임무야.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나만 할 수 있어.
알겠어.
라미아는 계속 엿들어보았지만, 케르베로스 소대의 대화에서 이번 지휘관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라는 정보 외에는 다 가치가 없었다.
케르베로스 소대가 갈 곳의 방향과 거리를 대략 파악한 뒤, 라미아는 케르베로스 소대에서 멀어졌다.
(확실히 뭔가를 위해 온 것 같은데...)
(돌아가서 롤랑에게 알리자...)
(롤랑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곳"에 가는 건...)
(어... 그럼 이제 롤랑을 따라 같이 행동하자.)
…………
...
그렇구나.
케르베로스 소대,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과거 접했던 인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둘이 뭉쳤다고 볼 수 있었다.
이 기괴한 조합은 롤랑으로 하여금 미묘한 뭔가를 연상케 했다.
루나 아가씨 때문에 왔나?
그들이 무엇을 발견하든 이번 행동은 루나 아가씨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다.
시작부터 계속 나타나던 침식체들이 왜 이곳에 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도 이제 알게 됐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됐기 때문이었다.
재밌네...
배후에서 누가 모든 것을 조종하든지 간에 끝까지 탐구할 가치가 있었다.
특히, 그가 거의 길을 잃을 뻔했던 시점에서 눈앞에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다. 너무 공교롭고 위험해서 이는 반짝이는 함정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롤랑은 결코 함정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이 단서는 과연 그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그렇다면 유일한 문제는...
쌍방의 속도.
?
구조체랑 승격자는 지칠 줄 모르고 먼 길을 갈 수 있지만, 결국 모두 인간의 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라미아는 더 먼저 도착할 수 있었지만, 롤랑은 지금의 라미아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30분 후...
아! 무겁고 힘들어! 이제 못 참겠다고!
이 속도로 계산하면, 우리가 공중 정원보다 두 시간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이건 너와 나 모두 윈윈하는 상황이야!
이게 무슨 윈윈이야! 아! 바위다!
허리에 고삐를 맸는데도 라미아는 믿기 어려운 민첩한 움직임으로, 길 위의 바위를 뛰어넘었다.
그러나 라미아가 끌던 낡은 마차는 운이 좋지 않았다. 마차는 그 위에 앉아 있던 롤랑과 10센티미터 정도 떠오르고는 땅에 세게 떨어졌다.
라미아! 조심해! 이건 오래된 거라서, 망가지면 더 구할 수 없다고!
그럼 마차를 끌지 말라고 하든가...
그와 동시에 한편으론...
정기적으로 연락해.
예전과 다름없이 순항 감시 중이다.
육천오백 미터, 이 몸은 이 고도에서 가장 편안해. 이전에 목표를 잘못 추적해서 더 날긴 했지만.
하지만 "로키"는 날개 타입을 좋아하지 않아... 이해가 안 돼.
...
임무와 상관없는 목표를 더 이상 추적하지 마.
"로키"한테 조금만 나와서 놀라고 했을 뿐이야.
이전의 그것 또한 그분이 말한 가치가 높은 목표야. 비록 그녀는 물건이 이미 없어졌다고 말했지만, 나는 안 믿어.
알았어.
계획대로 해.
너의 의식의 바다는 다른 것에 쉽게 영향을 받으니 주의해.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