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구역 1-13 블럭 토벌 진행도는 32%입니다.
……
A구역 57-65 블럭 토벌 진행도는 45%입니다.
A구역 20-34 블럭 토벌 진행도는 29%입니다.
D구역 1-45 블럭 토벌 진행도는 83%다.
아, 작전이 시작되고 첫 날인데 벌써 이렇게 빠르단 말이야?
뒤처진 팀은 내일부터 더 힘내야 할 거야~
밤이 되자, 도시에 잠깐 동안의 적막이 드리웠다. 하지만 멀리있는 블럭에서는 여전히 간간히 교전을 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노력 덕분에 나와 루시아, 리브, 리는 B구역에서 비교적 안전한 건물을 찾아 임시 휴식 지점으로 정했다.
첫 날 작전 진행도 보고를 마친 뒤, 나는 휴식 지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리가 문 뒤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를 끝내신 겁니까?
그럼 이것 좀 보십시오.
리가 손으로 단말기 스크린을 가볍게 드래그하자 파일이 허공에 떠올랐다.
낮에 도시의 단말기에서 암호 해독을 통해 획득한 정보입니다.
파일에는 외부에서 왜 이 도시에 관한 정보를 전혀 조회할 수 없는지 그 이유가 적혀있습니다.
이곳은 아카디아 작전의 철수 지점 중 하나였습니다.
시간 데이터는 복구가 불가능해 정확히 몇차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만 말씀드리면 철수 작전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침식체가 도시 전체를 점거했죠.
자료, 물자, 인력 모든 것들이 이 도시에 묻혀버렸습니다. 그 누군가 그 기록을 의도적으로 지웠고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죠.
그리고 오늘에서야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 거죠. 이곳은 이미 페허가 되어버렸지만 말이죠.
파일에 남은 정보를 확인한 결과 리가 말한 것과 거의 일치했다. 흐릿한 문서에는 철수가 시작되고 갑자기 침식체들이 기습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고 이 도시를 지켰던 인간들의 마지막 단말마가 담겨있었다.
내가 파일을 전부 확인하자, 리는 파일의 귀퉁이를 살짝 터치했다. 그러자 파일이 바로 자취를 감췄다.
지휘관님께서도 보셨으니 바로 파기하겠습니다.
상부에서는 이 도시에 대한 단서들을 저희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루시아는 위층에서 경비를 서고 있고 저도 블럭으로 내려가 다시 순찰을 하겠습니다. 지휘관님은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도 또 힘든 싸움이 될 테니까요.
말을 마친 리는 내 곁을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앞으로 작전 계획을 확인한 뒤 휴식 지점의 낡은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이 소파는 건물에 유일하게 남은 가구인데 루시아가 어디에서 찾았는지 이곳으로 옮겨왔다.
벽은 탄흔으로 뒤덮였고, 창문은 대철수 때 파손돼 유리 조각만 남아 있었다. 달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내려 어둑어둑한 방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소파에 앉자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었던 몸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휘관님?
리브의 목소리가 소파 뒤편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리브가 날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주무시는 건가요?
그렇군요... 손은 좀 어떠세요?
네? 제가 상처를 다시 봐드릴게요.
하나도 안 웃겨요.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많이 좋아졌어요. 부유 캐논에 대한 제어력도 완전히 회복되었고요.
네?
음...
음,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백로 소대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전술 스타일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분위기가... 달라요.
외부인들은 백로 소대의 성과에 대한 정보밖에 모르죠. 팀 내부의 분위기에 관한 소문은 바네사가 전부 눌러버렸으니까요.
네... 바네사는 아마, 제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있는 자체가 그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거라고 생각하겠죠.
네? 아, 아니에요. 지휘관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
지휘관님은 바네사와 정말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요즘 지휘관님과 함께 지내면서 훈련실에서 루시아가 그때 왜 그렇게 훈련에 집착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네? 지휘관님은 모르셨어요?
아...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 기회가 된다면 루시아가 직접 얘기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
이것도 [player name]님만의 특징인 걸요.
아마... 구조체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아닐까요?
상대방이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은 더 이상 묻지 않으시고 하고 싶지 않다는 일은 강요하지 않으시잖아요.
모든 구조체들은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어요. 모두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해요. 저희는 무기나 도구 같은 게 아니라고요...
당연하죠!
가끔씩 깜짝 놀랄 만한 행동을 보여주시죠. 그래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전 지휘관님이 자신의 몸을 더 살피셨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고요.
……
표현이 서툴어 말로는 틱틱 대지만 누구보다 동료를 생각하는 리.
가끔은 망설이기도 하지만 항상 앞으로 나가아는 루시아.
어쨌든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서 모두를 알게 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리브는 방금 전 한 말에 부끄러운지 당황하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푹 숙였다.
지휘관님....
내가 뭘 표현을 잘 못하고 틱틱거린다는 거야...
리, 왜 안 들어가는 거야?
휴식 지점의 문에 기대고 있던 리는 루시아가 계단을 내려오는 걸 발견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루시아는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기웃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휴식 지점에 도착한 그녀는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루시아.
왜?
아까 순찰을 돌다가 물건을 거리에 떨어트린 것 같아. 나랑 같이 가서 확인해 보자.
그래, 알겠어.
음, 어쨌든 나랑 같이 좀 가줘.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떴다. 리는 루시아가 계단을 내려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라나섰다.
리는 떠나기 전, 휴식 지점의 문을 힐끗 뒤돌아보았다. 임무가 시작된 후로 항상 찌푸리고 있었던 미간에 살짝 힘이 풀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