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수송기가 떠나는 걸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선발 부대가 이미 도시의 골목에 임시 주둔지를 구축한 상태였고 여러 소대가 주둔지 밖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방어 시설을 강화하고 통신 선로를 조정하고 있었다.
주둔지 밖에 가득 쌓은 침식체들의 잔해들이 주둔지를 구축할 때 이미 소규모 전투가 일어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의 구조체가 사람들과 운송 장비가 진입할 수 있도록 잔해들을 거리 양쪽으로 정리했다.
이곳은 지상의 대부분 인류 도시처럼 이미 전화에 모두 타버려 폐허가 된 모습으로 침묵하며 외롭게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때때로 도시 속 깊은 곳에서 침식체가 출현했지만, 곧바로 캠프에 설치된 로켓포에 의해 격퇴되고 있었다.
침식체가 나타났어요.
도시 외각에서 움직이는 침식체가 몇 마리 보이긴 하지만 주둔지에 구축한 장비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맞아요. 대부분 침식체는 아직 도시 안쪽에 있어요. 그게 바로 이번 작전의 주요 목표예요.
네. 임시 지휘부가... 아, 저쪽이네요.
루시아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주둔지 중간에 우뚝 선 임시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건물 외각을 둘러싼 흰색 생화와 핑크색 리본은 회색을 띄고 있는 폐허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였다.
이상한 취향이네.
리, 그렇게 말하지 마. 특별한 기능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럴지도 모르지.
너희들은 보고를 드리러 가. 난 주위 환경을 정찰해 봐야겠어.
그래, 정보 수집은 너한테 맡길게.
루시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리는 이미 주둔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
음... 아, 아니에요. 일단 보고부터 드리러 가죠.
지휘부 내부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쾌적했다. 여성 한 명이 디지털 스크린 앞에 앉아있었다. 스크린에는 도시 곳곳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스크린 앞에 있는 여성은 스크린 위의 버튼을 빠르게 클릭했다. 그와 동시에 침식체 분포, 무기 배치, 물자 조달 등 데이터가 도시 홀로그램 위로 나타났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보고합니다.
가장 앞에 선 루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루시아의 말을 들은 여성은 스크린을 클릭하던 손길을 멈추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질문과 동시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지휘부 안으로 들어온 그레이 레이븐 소대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아, 그레이 레이븐 소대였구나~ 이번 임무 리스트에서 보긴 했었지.
오랜만이야, [player name].
지휘관님, 두 분 아는 사이세요?
하하하, 기억을 못하는 게 당연하지. 수석이잖아.
수석이니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사람을 기억할 리가 없지.
무슨 뜻이죠?
별뜻은 없어. 수석 지휘관에게 옛 추억을 좀 알려준 것뿐이야.
수석 지휘관이 날 기억해 주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나?
무슨 뜻이죠?
별 뜻 아니야. 그저 예전 파오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말이야.
어쨌든 다시 소개하자면 난 백로 소대 지휘관이자 이번 작전의 총 지휘관 바네사다.
과거 [player name]이(가) 어떤 성적을 거두었든 이번 임무에서는 장관님의 지휘를 따라야 할 거야~
백로 소대, 거긴...
이와 동시에 바네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허공에 떠 있는 도시 홀로그램을 지나쳐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바로 앞으로 걸어왔다.
그래. 리브가 소속으로 있었던 소대지.
바네사...
아직도 내가 조정해 준 기체를 쓰고 있네.
유광을 착용하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날 줄이야.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그런 게 아니에요.
쯧, 말대답 같은 건 가르쳐 준 기억이 없는데.
[player name]이(가) 지휘하면 모두 무례해지는 경향이 있는 건가?
바네사는 말하면서 천천히 손을 뻗어 리브를 만지려 했다.
바네사의 의도를 알아차린 나는 앞으로 다가가 바네사의 손목을 잡았다.
루시아도 바네사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언제든지 칼을 뽑아들 수 있도록 칼집을 천천히 들었다. 충돌이 일어나기 전 내가 먼저 앞으로 다가가 바네사의 손목을 잡았다.
하하, 수석이 그렇게 날 불러주니 기분이 참 좋네~
음? 나와 대화하는 게 싫은가 봐?
쳇, 여전히 재미없다니까.
하지만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는 인형에게는 벌을 줘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교훈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동료? 정말 하나도 안 변했군.
뭘 네가 리브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리브는 이제 네 거잖아. 나도 딱히 간섭하고 싶지 않아.
동료로 생각하든 장난감으로 생각하든, 가족으로 생각하든, 도구로 생각하든 상관 없어. 모든 팀마다 각자 어울리는 방법이 있는 법이니까.
어쨌든 상부에서는 그딴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 너희들은 임무만 제대로 완료하면 돼.
그래도 한 마디 충고는 해야겠어...
바네사는 내 옆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보여주기식인 거 나도 알아.
언젠가 싫증나면 버려도 돼.
말을 안 듣는 장난감은 아무리 예뻐도 소장 가치가 없는 법이지.
그런 장난감들에게 어울리는 곳은 정교한 장난감 집이 아니라 쓰레기 더미지. 안 그래?
바네... 지휘관님, 일단 임무부터 얘기하시죠.
리브는 나와 바네사 사이에 끼어들더니 눈짓으로 지휘부 밖을 가리켰다.
방금 전 소동으로 인해 밖에는 이미 수많은 소대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음? 이렇게 쉽게 놓는다고? 좀 더 잡고 있어도 괜찮아. 수석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거든.
바네사는 다른 손으로 방금 전 잡힌 손목을 만지작거리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나와 리브를 바라보았다.
총 지휘관님,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말씀해 주세요.
루시아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바네사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바네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돌아서서 루시아를 질책했다.
누가 끼어들라고 했지?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밖에는 여전히 수많은 침식체들이 존재합니다. 지금은 임무를 먼저 생각해 주세요.
직무 유기나 소극적인 업무 태도는 작전 진행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상부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당신은 총 지휘관으로서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되겠죠.
...흥.
바네사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스크린의 중간을 향해 걸어갔다.
스크린을 가볍게 터치하자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표식이 도시 홀로그램 위에 나타났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B구역 35-42 블럭으로 돌진한다.
그곳의 침식체는 주위보다 훨씬 더 많지만 수석이 통솔하는 팀이라면 이 정도 임무는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좋아.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랄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
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출발하자 지휘부 밖에 모여있던 다른 소대들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바네사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떠난 곳을 바라보며 스크린을 클릭했다.
[player name], 언제까지 그 순진한 환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두고 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