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은 허리를 펴고 지휘 함교의 거대한 창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앞쪽에서 창문의 시야를 반이나 차지하며 말없이 자전하는 푸른 행성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하산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함교의 구성원들을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명령을 내리거나, 전술을 짜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거나 하는 하산이었다. 그게 다른 사람들을 북돋아 주는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지금처럼 그저 입을 꾹 닫은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다.
눈앞의 짜증 날 정도로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는 각종 아이콘과 파일을 바라보던 세리카의 머릿속에서는, 주변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서로 겹치면서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엄청난 큰 소음으로 변해버렸다.
물자 목록, 부대 조정, 세력 협의 주의 사항, 정찰 부대에서 보내온 보고서 및 지도, 망각자와의 회색 물자 거래, 아딜레 정보에 보내는 의뢰 협약...
세리카는 각종 복잡한 파일 내용을 빠르게 읽은 후, 그중에서도 중요한 정보를 뽑아 200자 이내의 결재 요약으로 정리했다. 하산은 세부 사항을 읽을 시간이 없기에 세리카는 언제나 정보를 빠짐없이 완벽하게 요약해야 했다.
세리카는 이 일이 오늘처럼 견디기 힘들 줄은 몰랐다.
(퇴근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왜 벌써 졸린 거지...)
(하아... 대체 결재 올려야 할 게 얼마나 더 있는거야...)
세리카씨, 이건 항로 연합 핵심에 주둔한 후방 근무 대원이 제출한 지원 물자 요청 상세와 후속 강화 방비 설계도입니다...
아... 죄송한데 이쪽에 압축해야 할 최우선급의 HUMIT 정보가 있어서요...
(후... 지금은 짜증 부릴 때가 아니야.)
네, 기밀 규칙 Omega에 따라 규정 링크로 데이터베이스에 전송하세요...
…………
…………
…………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다.
…………
통신이 끊겼다.
의장님.
무슨 일이지?
하산이 세리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세리카는 눈앞의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다.
실의, 망설임, 심지어 조금의 공포까지... 세리카는 그런 표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처음 살인을 저지른 소년처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곧 하산의 얼굴에서 사라졌다...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하산은 마치 그런 표정은 지은 적 없는 것 같아 보였다.
10분 전에 총 76부의 결재 요약을 기밀 단말기로 전송했습니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알겠다.
하지만 제가 훑어본 결과 오늘 바로 결재해야 할 정도의 긴급 사항은 없었습니다.
오늘 다른 일을 집중적으로 처리하고 싶으시거나... 쉬고 싶다면 그래도 될 겁니다. 공중 정원이 그 때문에 무너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가...
하산은 단언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설득하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올렸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의장님, 어제 얼마나 주무셨나요?
... 잠을 못 잤어.
... 가서 주무세요.
그럴 필요 없어.
하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기밀 단말기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세리카가 먼저 빼앗아갔다.
가서 주무세요.
하지만 처리할 결재 건이 76개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오늘 바로 결재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렇게 말한 하산은 그 틈에 세리카가 손에 들고 있는 기밀 단말기를 빼앗은 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누워서 결재하지. 그것도 휴식이니까.
그렇게 말한 하산은 살짝 비틀거리며 지휘 함교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체력이 거의 떨어졌는지 계단을 내려가는 속도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그로 인해 그는 계단에서 위로 올라가는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무슨 일이지? 벌써 자리를 비우려 하다니... 자네답지 않군.
지금 이 시간에 지휘 함교까지 온 자네도 자네답지가 않은거 같은데.
자네와 함께 확인할 게 있네.
니콜라가 손에 든 저장 장치를 흔들었는데, 그 위에는 "극비"라는 붉은 표식이 선명하게 보였다.
... 회의실로 가지.
하산이 뒤도는 모습을 본 니콜라는 그를 따라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러자 세리카는 한숨을 내뱉었다.
... 어쩔 수 없지.
E.T.I——Eden Tatical Interface— Version1.417
로딩: 심층 시스템[>>>>>>>>>>]100%
로딩: 지형 정보[>>>>>>>>>>]100%
로딩: 기록 파일 <Serial-3394275-β>[>>>]33.1%
로딩: 기록 파일 <Serial-3394275-β>[>>>>>>>]74.8%
로딩: 기록 파일 <Serial-3394275-β>[>>>>>>>>>>]100%
재생을 시작합니다...
테스트, 테스트합니다. 공중 정원 집행 부대 소속의 팔렉스입니다.
우로보로스 지휘부, 여기는 우로보로스 소대입니다. 예정된 계획대로 임무 지점에 진입해 신무르만스크의 감시 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팔렉스라는 구조체가 말을 마친 후 자신을 비추던 카메라를 먼 곳의 눈과 산을 향해 돌렸다.
현장 지휘권은 특공급 팔렉스에게 귀속되며, 수행자는 부사관급 노벨입니다.
노벨! 위치에 도착했나?
팔렉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메라에서 살짝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위치에 도착해 탄도표를 채우고 있습니다!
알겠다! 지금부터 감시 위치에 진입한다!
카메라는 팔렉스의 움직임에 따라 팔렉스와 함께 전방의 적당히 위장된 감시 엄폐물에 들어섰다.
위치에 도착했다. 예정 기준치는 다 입력했나? 다 됐으면 동기화하도록.
일곱 개의 예정 포인트와 두 개의 핫존을 단말기로 전송했습니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말해봐.
왜 신무르만스크로 임무 목적이 다른 두 공중 정원의 부대가 파견된 겁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도록 해.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누구의 직속인지 기억하지?
니콜라 사령관님 아닙니까?
좋아, 너 스스로 자신의 질문에 대해 답을 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도록 해.
그 시각, 신무르만스크 공항 유적인 제1 터미널의 현재 북극 항로 연합 선장 사무실.
선장님, 함대의 재정비 보고서입니다.
그럼... 이제 일단락되었군. 봄이 되기 전에 모든 일을 마쳐서 다행이야.
슈테센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의 그늘에서 새하얀 외투를 걸친 낯선 사람이 걸어 나왔다.
네, 이 다음은 연구소 유적과 엠베리아의 잔해만 "처리"하고 당사자의 입만 막으면 끝입니다.
연구소의 일은 내가 처리하지. 입을 막는 일은... 네게 맡길게. 이런 [삐——] 같은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지... 첫 출항 시기에 영향을 미치면 식량이 끊기고 말 거야.
걱정마세요. 이번에 공중 정원이 개입한 덕분에 이 역사는 자연스럽게 땅에 묻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를 그 역사와 연결해 내는 사람만 없으면 우리는 변함없이 평화롭게... 망각자와 공중 정원... 도덕성이 넘치는 녀석과 어울릴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숲을 지키는 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장님.
연구 책임자같이 생긴 사람이 몸을 일으켜 슈테센의 어깨를 툭툭 친 후에 뒤돌아 나갔다.
선장님, 이건 대체 무슨 일이죠?
저 사람은... 구연구소의... 연구 책임자 카프란이야.
거주 지점의 건물부터 시작해 우리가 소지한 배의 수리와 재정비까지... 구연구소 사람들의 지원이 필요해...
그러니까... 지금까지 모든 죄를 저지른 사람과 협력했다는... 겁니까?
... 내가 항로 연합을 지금까지 어떻게 유지해왔다고 생각하나?
…………
됐어, 이제 연구소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건 다 가지고 나오도록 해. 그리고 적절히 배분한 후에 연구소를 파괴해. 그러면 우리도 이제 자연스럽게... 이 망할 역사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 거야.
공중 정원 쪽은 어떻게든 얼버무렸지만, 이제부터는 숲을 지키는 자는 죄가 아닌 정으로 항로 연합을 위해 일하게 해야겠지.
난 "숲을 지키는 자의 죄인이라는 신분을 없앤" 사람이니까. 그걸 봐서라도... 해주겠지.
... 항로 연합의 멤버로서는 그런 행위에 대해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우리가 그들을 연구소로 보낸 것도 아니잖아?
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뿐이야.
…………
아무튼 이 일은 이걸로 끝이야. 더 이상 이 일로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자네도 항로 연합이 끝난 이 일로 흔들리는 건 싫잖아?
... 알겠습니다.
... 곧 봄이 오니 식량이 끊기지 않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
봄에 출항할 때 나도 데려가 줘. 정어리 좀 잡아서 절일 생각이거든!
절이다니? 소금은 어디서 났는데?
선장 쪽 사람이 구연구소 유적에 생활 물자 창고가 두세 개 남아 있다고 하더군. 운이 좋으면... 생활용 소금을 봉지째로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생각했지... 영감의 생선 절임을 다시 팔아볼까 하고.
너희 집 영감이 절인 생선을 먹은 지도 참 오래됐지. 나중에 내가 가장 먼저 점수를 매겨주지!
그리고 시끌벅적한 두 사람 앞에 하얀 빛이 나타났다.
하늘 끝에서 뻗어지는 하얀 빛이 두 어부의 앞에서 빠르게 퍼져나가자 어부는 두 눈이 갑자기 확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 강렬한 열기에 두 사람은 간판 아래로 웅크리며 열기에 눈이 타지 않도록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이게 무슨... 해가 떴나?
뭔 헛소리야... 지금은 대낮이라고! 저것이 무엇이 됐든 해는 아니야!
그리고 두 사람 옆의 항구 건물도 계속해서 강해지는 빛에 완전히 뒤덮였다. 태양에 뒤처지지 않는 고온에 강철 구조물까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두 어부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 때문에 갑자기 전해진 경고 사항조차 듣지 못했다.
하지만 경고를 전한 사람은 이미 전했다.
여기를 떠나라.
…………
…………
... 흠.
하얀 형체가 허공에서 궤도포 같이 생긴 무언가를 소환해 주변을 무시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궤도포에서 발산되는 열기에 어부는 드디어 정신을 차려 하얀 형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아악!!! 으아아아아아! 사람 살려!!!!!
…………
승격 네트워크의 힘을 사용한 지 오래돼서 제어하기가 힘드네...
뭐, 경고하는 걸로 쳐야지.
게다가...
하얀 형체가 궤도포 같은 물체의 에너지를 완전히 충전하자, 다른 방향을 향해 하얀 빛의 광선을 발사했다.
하얀 형체가 보이는 전투는 단순한 습격이나 제압이 아니고 여유로웠다. 전투라고 하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처벌을 내리는 것 같았다.
처벌당하는 측의 모든 움직임을 무시하고 공격하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삐——]!
저... 게 뭐야...
시각 특징을 비교해 봐! 어서! 녹화한 영상을 단말기로 전송했다!
그 "루나"입니다!
... 제길, 왜 "그녀"가 여기에 온 거지? 이곳은 승격자에게 전략적인 가치라도 있는 건가?
아니, 있다 해도 내 권한으로 열람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야... 아무튼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수 밖에.
... 공중 정원에 연결 신청을 보냈지만 그쪽에서 협력 프로토콜을 기다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겁니다.
그런 건 기대하지도 않아.
일단 근처의 보전 구역에 있는 서버에서 데이터 전송을 시도해.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 연결되지 않으면 보전 구역에 데이터라도 남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가져온 두 드론을 모두 날려서 여러 각도에서 "루나"의 영상 정보와 에너지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자.
... 그러고 나서는요?
그러고 나서라니? 공중 정원의 결정을 기다려야지.
하지만...
특수 장비를 입었다 해서 영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
이곳에서 의미 없이 죽는 것보단 정확한 정보를 공중 정원에 보내는 게 더 중요해.
... 알겠습니다.
루나의 공격은 항구 구역을 반 이상 파괴했지만, 또한 거주 지점 사람들에게 충분한 경고와 집결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피해 정도가 너무 커서 루나가 아직 거주 지점 근처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도 항로 연합의 집결 지점은 이미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어디서 공격하는 거지?
집이! 내 집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누가 좀 설명해 봐!
궤도포입니다! 무언가가... 궤도포 같은 걸 가지고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
어서! 모두에게 출발하라 전해! 신소피아, 국경 공사, 근처의 망각자에게 알려! 거짓말을 해서라도 지원군을 움직여야 해!
너무 늦었어!
선장님, 우리에게는 배가 있습니다! 차라리...
척후의 보고에 의하면 적과의 거리는 5km 정도라고 합니다. 배를 움직일 시간은 없습니다...
제길! 설마 이렇게 가만히...
당황할 필요 없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초조해하며 선원을 달래고 있던 슈테센은 갑자기 연구 책임자가 하얀 외투를 입은 사람 몇몇을 데리고 거주 지점 바깥으로 향하는 걸 발견했다.
거기 서! 카프란! 어딜 가려는 거야?
이런 거지 같은 거주 지점에서 같이 죽을 수는 없다고!
연구소에서 잠시 대피한 후 남쪽으로 향해 아딜레를 찾을 거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헛소리 같아? 당신이 어떤 골칫거리에 휘말린 지는 모르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 카프란!
슈테센, 언제부터... 네가 나와 동등한 위치라고 생각한 거지?
…………
... 쯧, 알아서 해. 전 갑니다.
... 그래 가버려.
슈테센의 답을 들은 연구 책임자는 사납게 슈테센을 노려본 후 바로 뒤돌아 떠났다.
선장님...
...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아무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자고.
게다가 덕분에... 연구소의 벽은 모두 방어용 아머층이 있다는 걸 생각나게 해줬어. 아머 문을 열 수 있는 비밀 코드는 그뿐만 아니라 내게도 있거든.
의리를 저버린 녀석에게 의리를 지킬 이유는 없지. 방어선이 무너질 것 같으면 바로 연구소 쪽으로 대피하도록 하자.
... 알겠습니다. 그럼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어린아이는 어쩌죠?
구극장 지하의 대피소로 대피시키는 거야. 대피소 세 개면 백 명 정도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이긴 후에 그들을 꺼내주면 돼. 우리가 지면... 누군가는 꺼내주겠지.
... 지금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하아, 왜 난 아직도 이런 엉망진창인 일 때문에 고생해야 하는 건지...
30분 후...
전투는 시작하자마자 끝났다. 너무 빨리 끝나버려 슈테센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들의 시야에는 녹아버린 건물, 꿰뚫린 강철, 폭발한 탄약, 증발한 몸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리케이드와 돌로 쌓은 보루가 어떻게 무너진 지 알 수 없었으며, 파멸의 하얀 빛이 어떻게 터미널을 마치 녹아버린 버터처럼 반을 무너뜨린 지도 알 수 없었다.
끝없는 추격과 도주 속에서 슈테센은 모든 전투 인원을 데리고 연구소 쪽으로 철수했다.
그 새하얀 형체는 끝까지 뒤를 따라왔는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가 대체 무엇을 위해 왔고, 누구에게 빚을 갚으러 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슈테센은 그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은 연달아 쏟아지는 파멸의 하얀 빛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어서 가자!
저 엄폐물로 들어가세요!
일행은 끝없는 불과 폭발 속에서 폐허를 엄폐물로 삼아 그 근처에 있는 연구소를 향해 나아갔다.
선장님, 연구소에 도착한 후에는... 어떡할 겁니까? 우리에게는 저런 녀석에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하... 카프란 녀석...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위협이 다가오고 있으니, 자기가 쥐고 있는 비장의 카드를 쓸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슈테센의 예상대로 연구소 벽에서 뻗어져 나온 여러 개의 포탑과 로켓 발사기가 루나를 공격했다. 루나는 순식간에 폭발과 연기에 뒤덮였다.
…………
목표가 폭발과 연기에 감춰졌지만, 포탑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 구역을 계속해서 폭격했다.
선장님,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어쩌겠어, 알아서 싸우라 하고 우리는 도망쳐야지.
슈테센은 일행을 데리고 포격이 이어지는 틈을 타 연구소 바깥쪽의 입구에 이르렀다. 슈테센이 비밀 코드를 입력해 열자, 일행은 지하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에 빠르게 올라탔다.
됐어, 지하로 가면 안전할 거야.
그들이 서로 치고받는 게 끝나면 다시 카프란을 찾아서... 이 빚을 천천히 갚도록 하자고.
…………
선장님...
말해.
여긴... 어디죠?
이 연구소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이야. 아머층이 두껍고 설계도에도 없는 곳이지.
연구소가 실험 목표를 초기 선별할 때 쓰는... 처형장이야.
... 그게 무슨 소리죠?
이 기둥, 보이지? 카프란 녀석은 이곳이 "평화를 대표하는 홀"이라고 말하면서 봉쇄된 관찰실에 들어가... 이곳에 실험용 약제를 주입하지.
한 번에 200명이 넘는 인원 중에서 다음 실험에 적합한 실험체를 선별해낼 수 있지.
카프란 녀석은 아마 지금쯤 관찰실에 있을 거야.
선장님, 이곳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으시다니, 설마...
2급 항해사의 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슈테센은 그의 입을 황급히 막았다.
쉿...! 조용히 해! 지금 그는 "그것"을 상대하는데 바빠 관찰실 뒤의 이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거야... 하지만 전투가 끝나면 관찰실로 몰래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해했지?
읍! 읍...
손을 놓을 테니 소리 좀 줄여.
...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난... 죽이는 거에 동참한 적은 없어.
... 모든 것이 끝나면 털어놓을 것이 많을 것 같군요, 선장님.
…………
저건 뭐죠?!
그럴 리가 없는데...
여긴... 강철 구조로 위장한 방어 아머가 여섯 겹이나 있는 구역인데... 궤도포라 해도 이곳은...
... 우리는 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거지...
관찰실 쪽의 벽에서 전해져오고 있어요!
... 어서! 일단 기둥 뒤로 숨어!
슈테센 일행이 기둥 뒤에 숨자 관찰실 쪽의 벽에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붉은 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발했다. 대량의 조각이 산탄총처럼 홀 전체를 쓸었는데, 그중 홀에 우뚝 서 있는 세 개의 기둥이 가장 먼저 피해를 받았다.
그리고 검은 무언가가 홀에 던져졌는데, 그 뒤에는 슈테센 일행이 익숙하면서도 두려운 하얀 형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카프란이잖아...!)
바닥에 던져진 신체의 반은 하얀 외투에 감싸져 있었는데, 콘크리트와 강철의 잔해 속에서 간신히 숨을 내뱉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대... 대체 뭘 원하는 거지?! 뭐든지 다 할 테니...!
필요 없어, 오히려 예상 밖의 수확이야... 네가 알려준 이 홀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해.
필요한 건 이미 찾았거든.
바닥에서 숨이 간당간당한 연구 책임자를 바라보던 루나는 너덜너덜해도 여전히 우뚝 서 있는 세 개의 기둥으로 시선을 옮겼다.
……?
넌 이제 쓸모없어.
루나가 손을 휘둘러 궤도포를 소환하자 연구 책임자는 놀란 채 기둥을 향해 몸을 끌며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안 돼! 안 돼! 안 돼!!!
굳이 무의미한 행위에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나는 막지 않았다. 심지어 궤도포의 포구조차도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연구 책임자를 향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연구 책임자은 마침내 반쯤 무너진 기둥 옆까지 기어갔다. 하지만 기둥 뒤로 몸을 숨기려는데 다른 기둥 뒤에 숨어 있는 슈테센이 보였다.
당신...
그리고 하얀 파멸의 광선이 그를 집어삼켰다.
나와, 여기까지 도망쳤다고 해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