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때론... 어리석기도 하지.
죽어야 할 때 죽기 싫어하고, 죽지 않아야 할 때... 모든 일이 순조로울 거라고 생각하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난 지금까지... 언젠가 이것들을 땅에 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숲을 지키는 자는 조금씩 자유를 찾아가고, 우리는 더 이상 구연구소의 기술의 지원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망할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모두 마음을 놓고... 햇볕 아래에서 살아가는 거야, 어쩌면... 나도 가능하고.
이제야 깨달았어. 아직 그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 그게 유언이야?
... 후회하는 거야.
슈테센은 떨면서 외투에서 기폭 장치 같은 걸 꺼냈다.
사실... 네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난 이미... 이곳과 함께 떠날 준비가 됐어.
난 단지... 더 이상 항로 연합을... 해치지 않기 바랄 뿐이야.
…………
루나는 침묵하며 손을 칼날로 바꾼 후 세 개의 기둥을 베어버렸다. 잘라나간 기둥에서는 검은 금속 기계 구조와 안테나 모형이 드러났다.
... 그건 네 문제겠지.
... 그래, 그건 내 문제야.
슈테센이 기폭 장치를 누르자 벽에서 끊임없는 진동 소리가 들려오면서 홀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슈테센은 순식간에 잔해에 완전히 뒤덮였다.
…………
루나는 한때 슈테센이었던 잔해 더미를 흘겨본 후 뒤돌아 들어온 구멍으로 나갔다.
…………
망각자와 숲을 지키는 자의 공격이... 많이 서두르고 있네.
바라던 바야. 언니는 일단 물러나서 그들이 들어오게 해.
그래, 이렇게 계속 싸워봤자 나도 제어하기 힘들 것 같거든.
네가 할 일은... 다 마쳤어?
응, 화서의 말대로 기둥에 실험형 고성능 안테나가 숨겨져 있었어. 확실히 손에 넣었어.
알겠어.
하지만... 기뻐 보이지는 않네.
그냥 평소처럼 바보같은 일을 봐서 그래.
그래?
다른 사람에게도 철수하라고 전해줘. 난 금방 뒤따라갈게.
다른 방향을 맡고 있는 롤랑과 라미아와는 연락이 됐지만, 가브리엘은...
됐어, 내버려 둬. 나도 좀 있다가 철수할 거야.
……
통신을 끊은 루나는 자신이 만든 처참한 광경을 묵묵히 바라봤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녀의 의식의 바다에서는 여전히 처음부터 품고 있던 의문이 맴돌고 있었다.
화서.
네, 여기 있습니다.
네가 보여준 정보를 봤지만, 난 그래도 인간의 가능성이라는 게 뭔지 이해하지 못하겠어.
인간이라는 종족은 성질이 매우 복잡한 생물이어서 하나의 정의로는 설명하기 힘듭니다.
이건 네가 전에 곡을 위해 한 그 판단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
그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명령자 루나는 보조 연산을 위한 승격 네트워크의 본질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인간이 만들어낸거라, 네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됐어, 여기까지 해.
명령자 루나가 문의한 질문에 대한 유효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필요 없어.
모든 것의 미래는 승격 네트워크뿐이야.
나와 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만이...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이 세상에 살아남을 자격을 얻을 수 있어.
그전에 쓸데없는 생각은 불필요한 것이야.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기까지야.
인간의 거점을 적극적으로 공격할 줄이야. 승격자가 보여왔던 움직임과는 다르군.
순환 도시를 잊은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는 건가?
우리도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바탕으로 판단하자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
그보다 다른 게 신경 쓰이는데 말이지...
하산은 조작 화면을 몇 번 두드렸는데, 하나의 필터 모듈을 띄운 것 같았다.
홀로그램 창의 이미지는 곧바로 루나의 전신 모습을 확대해 루나의 몸 중에 한 하이라이트 부분을 나타냈다.
뭘 한 거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덕분에 얻은 자료가 있는데, 그쪽은 이쪽보다 느린 것 같군.
내가 가져온 건 원본 데이터고, 자네가 가지고 있는 건 연구 자료이지 않나? 그걸 같은 선상에서 논하면 안 되지. 게다가 우리는...
방향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목적은 같지 않나?
니콜라는 아무 답도 하지 않고 화면을 조작했다. 하이라이트 구역을 전체 전투 중에서도 에너지 분포에 따라 시간축 도표로 정리해냈다.
두 사람이 도표를 한참 노려보던 중 니콜라는 갑자기 무언가 떠올린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왜그래?
생각난 게 있어서 먼저 실례하지.
……
하산은 활짝 열린 회의실 문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잠시 쉬어야 할 때가 된 것 같군. 하지만 그전에... 이걸 아시모프에게 가져가야겠군.
하산은 단말기에서 저장 장치를 뽑은 후 회의실을 나왔다.
루나가 북극 항로 연합을 파괴한 지 몇 시간 지난 후...
재앙이 닥친 국경의 폐허와 먼지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은 비린내가 계속해서 와타나베와 로제타의 후각 센서를 자극했다.
……
곳곳이 무너진 잔해와 새까맣게 타서 뒤집힌 진흙투성이였다. 시야에 닿는 모든 곳이 형태를 알 수 없는 잔해 조각과 고열 광선으로 남은 붉은 흔적으로 가득했다.
로제타와 다이아나는 한때 북적이던 거주 지점이 지금은 불타는 비명과 잔해가 폭발하는 소리밖에 남지 않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이건 대체...
…………
로제타가 침묵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바닥 위의 폐허를 묵묵히 뒤지면서 생존자를 찾았다.
일행은 로제타의 그런 행동을 본 후에야 깨달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1m 간격으로 흩어져서 수색 라인을 펼쳐! 바깥을 향해 수색해 나간다!
네!
…………
... 로제타.
무슨 일이야?
로제타는 다이아나의 시선을 받으면서 거리낌 없이 거대한 바닥을 들어 올려 종이를 날리는 것처럼 옆의 빈터로 던져버렸다.
정말 생존자가 있을까?
...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지.
하지만...!
말할 시간이 있으면 움직여.
공포에 빠져 희망을 잃어버려서는 안 돼. 희망은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
응.
다이아나는 생각에 잠긴 것처럼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로제타와 함께 숲을 지키는 자를 데리고 폐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편, 막 보고를 마친 클라크는 와타나베가 평소처럼 진지하게 답하지 않고 폐허의 한가운데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더?
가서 할 일 해. 로제타의 말대로 공포에 빠져...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니까.
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겠어.
폐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와타나베는 고개를 들어 검은 연기로 단절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치 그곳에 있던 적을 바라보는 듯했다.
"우리는 망각자, 우리는 기억한다"...
지금까지 싸워오면서 죽은 사람들을 충분히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서 있다.
구조체의 몸이든 인간의 몸이든, 인간은 결국... 나약한 존재이다. 거주 지점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버리다니.
그리고 우리의 멸망을 바라는 적은 너무나도 강하다. 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조차도 이런 적을 어떻게 쓰러뜨려야 할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승격자", 대체 어떻게 해야 너희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여러 번 무너뜨려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다시 잿더미 속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야.
너희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너희들이 이해하든 못하든, 여기까지 손을 뻗은 이상 우리도 가만히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없어.
우리... 언제 나갈 수 있어요?
선장님이 나쁜 사람을 쫓아내면 나갈 수 있을 거야. 그전까지는 얌전히 기다리자.
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공격은 처음이야. 슈테센은 겁쟁이라... 그렇게 순조롭지 않을 것 같은데...
…………
그렇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우리... 우리... 이제 죽는 거예요?
아니, 분명 누군가가 우리를 구하러 올 거야!
이반 형, 우리... 이제 어떡해?
슈테센 아저씨는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야! 항로 연합은 우리뿐만이 아니잖아?
숲을 지키는 자와 망각자도 있어! 공중 정원에서도 우리를 도우러 올 거야!
모두... 분명 괜찮을 거야!
... 정말이야?
엠베리아와 신소피아 도시를 잊으면 안돼요!
…………
이반 형, 소리가! 소리가 들려!
아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묵직한 방어 강철 문을 통해 전해져왔다.
이반이 앞으로 뛰쳐나가 강철 문의 구멍을 통해 밖을 살펴보는데 외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있어요? 우리가 구하러 왔어요!
……
우... 우리...
여기... 우리 여기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