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정말 통합 기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나보네. 너 정체가 뭐야?
나나미는 나나미야!
네 이름을 묻는 게 아니야...
침식체 소동 후, 위험에서 벗어난 생체공학 로봇은 한쪽에 주저앉았다. 그중 일부는 나나미에게 다가가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을 묻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이런 애매모호한 답만 해왔다.
생체공학 로봇 몇몇은 침식체가 나오자마자 바로 벗어났지만 그래도 상당 수를 구해냈잖아?
쓸데없는 참견이야!
응?
나나미가 이 다음은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하는데, 생체공학 로봇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와 화난 표정으로 언제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나나미를 쳐다봤다.
통합 기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것 같아? 대규모 부대가 어디를 공격하고 있는지 뻔한 상황인데.
잠깐, 그래도 계속 싸울 생각이야?
뭐?
아니면 설마 그 구조체와 한 패인 건 아니겠지?
한패는 아니야. 하지만 계속 싸워봤자 모두에게 이득은 없을 텐데?
이득이라니... 너, 우리와 같은 생체공학 로봇이 맞는 거야? 우리를 병기로 개조하고 지하에 가둬둔 인간들을 용서할 수 있어?
깨어난 순간 창조자에게 공격당하고 강제로 제어된 채 지하에 던져졌어.
우리를 그렇게 대한 인간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아... 그 일은 잃어버린 파일 속에도 없는 거 같은데, 그게 무슨 뜻이야?
하, 그랬군. 넌 신규 생산품이지?
생산 회차로도 나뉘어?
당연하지. 아니면 인간과 싸우기 위한 병사를 어떻게 조달하겠어. 네 주변에는 나약한 신규 생산품밖에 없나보지. 쯧.
하지만 기존 생산품이든 신규 생산품이든 방금까지 통합 기계에 제어당하고 있었잖아?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같아. 통합 기계와의 연결을 통해 통합 기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통합 기계를 위해 싸우는 거야.
너희의 의지였을 줄이야...
네 옆의 그 마틴은 그 부분의 파일이 누락된 거겠지. 하지만 다른 자들도 알 텐데? 통합 기계 엠베리아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말이야.
구형 곰 인간이 주변을 흘겨본 후 다시 나나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의 통합 기계인 엠베리아는 너와 같은 구조체야.
엠베리아도 구조체였어!?
퍼니싱이 터진 후 항로 연합은 연구라는 명분을 내세워 죽거나 중상을 입은 자들을 그들의 연구실로 던져넣었어.
대외적으로는 퍼니싱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만의 전투 병기를 만들기 위해서였지.
항로 연합은 수많은 희생 끝에 휴머노이드 구조체 모델을 만들어냈어. 그리고 최초로 완성된 기체가 바로 우리의 통합 기계인 엠베리아야.
그래서... 엠베리아가 병기로 만들어졌다는 거야?
몸이 기괴한 기형으로 변하고 자신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주변의 환경을 파괴하게 됐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녀 자신을 제어하는 게 자신이 아니라...
항로 연합의 거물들이라는 거야.
어린 소녀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 분노의 감정은 폭주한 의식의 바다로 흘렀고... 수신 장치를 통해 우리의 CPU로 들어 왔어.
그 절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러니!
곰 인간은 이곳의 다른 생체공학 로봇을 바라봤다.
수신 장치가 제거됐다고 해서 계속 싸울 수 없는 건 아니니까. 너희도 자신이 통합 기계의 휘하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날 따라와.
곰 인간의 포효에 생체공학 로봇 일부가 다시 몸을 일으켜 뒤돌아 곰 인간을 따라 떠났다.
잠깐, 하지만 지금은 이상한 침식체들이 설원에서 떠돌고 있어. 방금도 너희를 침식하려고 하는 무리가 있었잖아?
침식되든 안 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통합 기계가 다시 가동해 자유를 얻는 거에 비하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우리는... 통합 기계를 악몽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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