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됐는데?
아주 순조로웠어. 배신자는 결국 세상에게 배신을 당했고 결국 어릴적 꿈 속에서 죽어버렸지.
그리고 쇼메의 최후는 배후에 있는 단체에게도 좋은 메세지가 될 거야.
우리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는 경고겠네.
그런데 왜 기뻐보이지 않는 거지?
응?
알파의 말에 루나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발견한 루나는 바르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야.
괜찮아. 말하고 싶을 때 나한테 말하면 돼.
...응.
그 얘기는 그만하자. 이번 작전의 목적을 달성하면 다음 임무는 뭐야?
……
알파의 질문에 루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고개를 숙이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알파는 그 자리에 서서 섬을 둘러보았다. 여름의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모래사장 변두리에 있는 야자수가 사르륵사르륵 소리를 냈다.
딱히 생각난 게 없다면 여기서 좀 쉬는 게 어때?
좋아요. 동의합니다.
라미아는 갑자기 모래사장 근처의 해수면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흥분한 채 손뼉을 쳤다. 하지만 얼마 치지 못하고 그녀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알파의 칼이 그녀의 목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윽...
내가 너한테 물은 줄 알아?
여러 번 경고했을 텐데. 은신 상태로 내 곁에 있지 말라고. 분위기를 무시한 채 갑자기 나타나는 짓은 더욱 하지 말고.
죄송해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그 말은 이미 몇 번이나 들었어. 네 다리를 뽑아버려야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윽...
그 말을 들은 라미아는 발버둥을 치며 루나를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루나는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
알파와 라미아는 루나의 웃음소리에 동작을 멈추었다. 루나는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언니의 제안이니 그렇게 하지 뭐.
공중 정원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푹 쉬자.
여름은 저녁도 꽤 무더웠다. 바닷바람에 뜨거운 기운이 밀려왔지만, 모래사장 위에 있는 사람들의 열정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공중 정원의 사람들은 모래사장에서 성대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모래사장의 다른 한쪽 산책로는 여전히 썰렁했다.
산책로 끝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면서 이 적막한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드디어 좀 쉴 수 있겠네요.
드디어? 평소와 딱히 다른 점은 모르겠는데.
음... 적어도 평소처럼 일과 임무에 대한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마음이 훨씬 더 편하다고요!
하지만 곧 다른 임무를 맡아야 할 걸 생각하면... 절망스럽네요...
감정 모듈에 문제 있는 거 아냐?
라미아의 모든 데이터는 전부 정상이에요!
왜 우리는 포스터 속의 사람들처럼 수영복 차림으로 디저트를 먹으며 모래사장에 누워있을 수 없는 걸까요?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절망적이지 않을 거예요.
……
왜 우리를 그렇게 빤히 보는 거지?
계속 말을 이어가던 라미아가 갑자기 침묵하더니 루나와 알파를 빤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수영복을 입고 백사장에 누워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좀 끔찍한 걸요. 없던 일로 하죠.
……
아아... 그러고 보면 수영복도 우리한테 별 의미가 없잖아요. 수영복은 역시 귀여운 인간에게 어울린다니까요...
불꽃놀이 할래?
...비록 불꽃도 별 의미가 없지만 내 답은 "예스"에요.
알파는 계속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라미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불꽃을 라미아에게 건넸다. 라미아는 바로 입을 다물고 불꽃을 들고 백사장으로 걸어갔다.
우리 저쪽 가게로 한번 가보자
뭘 본 거야?
그래.
알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루나를 데리고 산책로 옆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의 진열대에는 크기와 형태가 다양한 샥스빌 인형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벽 위에는 샥스빌의 홍보 이미지와 포스터들이 가득했다. 가게의 계산대에는 "개업 이벤트, 70% 할인"이라는 글귀가 걸려있었다.
샥스빌 기념품을 파는 곳인 것 같네.
그것 뿐만이 아니야. 이걸 봐.
알파는 샥스빌 인형의 뒤에서 작은 바보 개구리 인형을 꺼내 루나에게 건넸다.
왜 어디든 쟤가 있는 거야?
그것도 괜찮잖아. 안 그래?
하긴. 언니가 나한테 기념품을 선물로 줬으니 나도 하나 선물할게.
필요 없... 그래.
기분 어때?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아. 어디까지나 옷일 뿐이니까.
난 좋아 보이는데.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
……
언니, 만약 우리가 구조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할 거야?
지금이랑 별 차이가 없겠지. 신분이 아무리 변해도 난 네 옆에 있을 테니까. 그것뿐이야.
그리고 그런 만약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알파는 갑작스러운 루나의 질문에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루나는 한참 동안이나 침묵했다. 돌아서보니 루나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알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가능성이 있긴 해.
쇼메의 연구?
맞아.
쇼메는 한 방향만 발견했지만 이 연구에는 다른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한 면이 존재해.
그 길의 끝에 진짜 "근원"이 존재하지.
……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늦은 밤이 되자 더 이상 아까처럼 후덥지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뼈를 깎는 추위가 밀려왔다. 루나는 고개를 들어 알파에게 말했다.
언니, 나 좀 피곤하네.
그래. 저쪽에 가서 좀 쉬자.
말을 마친 알파는 루나의 손을 잡고 산책로 옆의 벤치에 앉았다. 루나는 알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두 눈을 감았다.
멀리 모래사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을 바라보니 침식체 몇 마리가 백사장 위에서 악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공연할 시간이 돼서 준비하고 있는 건가?
좀 시끄럽네.
곧 돌아올게.
가볍게 속삭인 뒤 알파는 칼집에서 무기를 꺼내 모래사장의 침식체를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