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인건지 그냥인건지 알 수 없지만, 루나는 손을 뻗어 가볍게 라미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루, 루, 루나 아가씨...
수고했어. 아주 잘해줬어. 저쪽에서 모든 게 끝나길 기다리고 있어주면 돼.
이제 네 차례야. 네 패는 이제 다 쓴거야?
읍... 너희들에게 잡힌 이상 그 어떤 패도 의미가 없겠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을테지요.
그래. 나도 진작 알고 있었어. 하지만 루나가 숨긴 진실에 닿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쇼메의 말을 들은 루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브리엘은 무표정으로 쇼메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 머리를 잡고 바닥에 세게 내리꽂았다. 강력한 충격에 바닥에 균열이 생겼다.
——!
이런 충격을 견뎌낼 수 없었던 쇼메의 기체는 불꽃을 내뿜었다. 이건 그의 기체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역시 너는 네 주제를 모르는군. 미지에 대한 공포와 존경심도 부족하고.
루나는 팔을 들었다. 붉은 전류가 루나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와 쇼메의 몸에 닿았다. 쇼메는 바닥에서 거세게 꿈틀거렸다. 기체는 가브리엘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졌지만 루나 때문에 억지로 흥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후, 후, 후.
난 아직도 기억해...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가문의 정원에 벚꽃나무를 심으셨지.
가족들 모두가 벛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어.
뭐라고 하는 겁니까?
쇼메는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가브리엘의 의아한 표정에도 쇼메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한번도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 없어. 내 머릿속에는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
아름다운 정원에, 아름다운 벚꽃이 흩날리고... 그렇게 나는 갈기갈기 찢기고...
그 결과가 어떻든 그건 전부 내가 한 선택이야...
후... 내가 한 일은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일 뿐이야.
하하, 도대체 뭘 알고 싶은 거지?
후... 승격 네트워크의... 본질.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인터페이스, 즉 단자를 개방하고... 기본 접속 방식은 그렇지... 그러나 승격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계속 선별되어, 승격자를 계속 만들어 내야만...
승격자는 승격 네트워크로 인한 힘을 즐기지... 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어. 선별을 버티지 못하면 지적능력이 없는 침식체로 될 테니까.
이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야. 네 연구가 겨우 그 정도인 건가?
그럼 모든 승격자들이 승격 네트워크 또는 당신이 선별한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나?
?!
"자장가".
맞아. 그 실험으로 처음 인공적인 승격자가 탄생했지. 첫번째 선별에 살아남아... 승격 네트워크에 접속한 승격자......
비록 승격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계속된 선별로 인해 고통스러웠지만 다른 방식으로 탄생한 승격자들과 능력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지...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승격자였지.
진실된 승격자——쇼메.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론 그 실험은...
가브리엘은 자신의 의아함을 루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가브리엘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모자를 벗어 가슴 앞에 내려놓더니 몸을 일으켜 쇼메를 바라보았다.
수 많은 노력을 거쳐 드디어 그때 실험방안을 재현하려고 해.
이 유원지에서 그 방안을 사용하면 더 많은 승격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 그럼 그 지독한 선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승격자들이 대량으로 탄생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당신도 알고 있겠지, 루나.
쇼메의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까지 술술 말을 이어가던 쇼메는 루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양적인 변화는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마련이지. 대량으로 생산된 승격자들은 지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되어 뜻을 거스르는 모든 자들을 제거하겠지.
우리... 우리 손을 잡을 수 있어. 그래, 우린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어때?
됐어.
쇼메는 힘껏 손을 뻗어 초대의 제스처를 보여줬지만 동작을 채 마치기도 전에 루나는 바로 그를 저지했다.
멍청하군. 네가 추구했던 진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거였어.
그럴 리가 없어. 나도 승격 네트워크가 부여한 힘을 누리고 있지. 권력만 가지고 그 역할을 다하지 않는 승격자들과는 달라.
슬프군.
루나는 쇼메 앞으로 걸어가 손으로 그의 머리를 꽉 눌렀다. 쇼메의 표정은 공포에서 흥분으로, 흥분에서 묘연함으로 바뀌었다. 묘연함이 걷히고 쇼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루나를 바라보았다.
봤지? 그 사람이 현장에서 너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때... 그랬던 거였나... 그렇다면 그때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이 다 말이 되는군.
모든 건 멍청한 망상일 뿐이야. 네가 지금까지 한 실험은 허공에 지은 건물과도 같은 거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라고.
네가 첫 선별을 버텨낸 진짜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어? 바로 네 병적인 집착 때문이야.
말을 마친 루나는 쇼메의 머리에서 손을 떼더니 경멸섞인 표정으로 쇼메를 바라보았다.
인공 승격, 하, 재능도 없이 나대는 광대의 어리석인 짓일 뿐이지.
이 말만을 남기고 루나는 거대한 상어 조각상 앞에서 죽어가는 쇼메를 남겨둔 채 멀리 있는 공중 정원 일행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