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서브 스토리 / EX05 미경각흔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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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5-3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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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하늘은 회색을 띠고 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짙은 안개는 온몸을 감싸고 이 숲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21호, 진행 상황 보고해줘.

응.

임무 좌표 표시를 봤을 때 현재 전진 속도로 30분 후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으아, 왠지 좀 추운데... 이 안개는 언제쯤 걷힐까?

공기 중에 촉촉한 안개가 자욱했고 물기는 구조체의 인공 피부에 달라붙었다. 구조체의 발걸음이 짙은 안개에서 갈라지며 흔적을 남겼고 까마득한 물안개는 마치 차가운 손가락이 맨살을 스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섬뜩함을 자아냈다.

…그냥 정상적인 안개일 뿐이야. 가시도는 낮지만 퍼니싱 농도는 이상 없으니 긴장할 필요 없어. 서둘러 움직이자.

...하!

맨 끝에 있던 21호가 갑자기 놀란 동물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외침과 함께 옆에 떠있던 소형 광선포가 한줄기 빔을 방출했다.

어!? 저게 뭐야?!

불빛과 포연이 사라지면서 21호가 공격한 곳의 모습이 점차 드러났다. 그것은 거의 메마른 큰 나무였는데 광선포의 공격으로 나무줄기에 시커먼 구멍이 생기고 자작자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슨 문제야?

...21호, 눈이 느껴졌다.

야, 나 좀 놀라게 하지 마! 깜짝 놀랐네!

조용히 해봐, 녹티스. 너 누군가를 본 거야?

21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21호... 눈이 느껴졌어.

시선?

그니까 누군가 너를 보고 있다는 거야.

응,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어.

나무 뒤로 돌아가 간단히 확인해 봤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베라는 고개를 저었다.

장치가 경보를 울리지도 않았고, 나도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어. 다들 경계를 늦추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 다시 가보자.

네가 착각한 거네... 21호. 너무 긴장한 거 아니야? 이런 작은 안개에 그렇게 놀라다니.

21호는 반박하지 않고 나무 앞에서 손을 내밀어 불빛에 그을린 부분을 살살 어루만졌다.

손을 다시 뗐을 때 소매에는 피 같은 짙은 갈색 자국이 묻어 있었다.

……

21호가 소매에 코를 가까이 대자 녹슨 쇠 냄새가 났다. 그것은 혈액이 아니라... 녹슨 금속이 습할 때 내뿜는 냄새였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나무뿌리 옆의 풀 더미에 낡은 인형 한 개가 누워 있었다.

모양으로 봤을 때 동물 인형처럼 생긴 거라는 걸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인형의 몸은 본래의 색깔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입꼬리까지 갈라진 입술만 새빨갛고 어색하게 얼굴에 꿰매놓은 눈동자는 두 개의 슬픈 유리구슬처럼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녹티스

야, 빨리 따라와!

멀리 떨어진 녹티스가 그녀를 불렀다. 21호는 고개를 흔들며 안갯속에 묻힌 시선을 잊으려 했다.

어느 정도 전진한 뒤 안개를 빠져나가자 작은 마을의 차가운 풍경이 모두의 눈앞에 점점 나타났다.

숙연하고 적막한 유럽식 건물, 주변의 드문 경물, 덩굴이 얽힌 벽, 쇠락한 나무의 온몸은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것에서 기운이 없는 듯한 병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안개가 드디어 걷히려 하네...

...응? 21호는?

옆에 21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모두가 고개를 돌려 보니 여성 구조체가 막 지나간 사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길가의 진열장을 집중해 보고 있었다.

진열장 안에는 몇 개의 인형이 던져져 있었다. 구형 관절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파손되었고 팔다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인형은 그 정교하게 만들어진 얼굴만이 겨우 알아볼 수 있었고 화려함의 흔적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칠흑같이 어두운 눈가는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길 뿐이었다.

21호

……

21호의 모습에 예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에도 두 명의 소녀가 임무 수행 도중에 이렇게 인형 때문에 멈춰 섰었다.

21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힐끗 보고는 그대로 진열장 유리로 손을 뻗었다. 너덜너덜한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인형을 손에 쥐었다.

21호는 갑자기 그 인형의 머리를 뜯어냈다. 인형 목에서 끊어진 전선 여러 가닥에서 불꽃이 튀면서 눈동자가 힘없이 감겨졌다.

21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형의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고 그 광경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움직였어.

응? 그럴 수가 있나?

21호, "착각"이 아니었어.

지난 길목의 유리 안에서 그것을 본 적 있어.

"착각"이 아니라면, 나를 따라오고 있어.

그만해.

베라는 21호에게서 인형의 머리를 빼앗았다. 그리고 이마의 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리자 동공에 비친 긴 빛이 그 머리를 위아래로 스캔하고나서는 녹색으로 "CLEAR"가 표시됐다.

쳇.

베라는 두 손가락으로 머리의 인조 머리카락을 집더니 뒤로 내던졌다.

21호, 너의 직감을 믿지만, 지금은 이런 실증 없는 사소한 일로 우리의 리듬을 끊을 때가 아니야.

...응. 알겠어.

21호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듯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21호, 잘 모르겠어.

또 왜 그래?

손이 가려워.

21호가 손을 높이 들어 손을 가린 큰 소매를 걷어 올렸는데 소매가 21호의 머리를 덮으며 약간 어설픈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1호는 꿋꿋이 베라를 향해 손을 보여줬고 녹티스도 다가와 손을 봤다.

하지만 그 두 손에는 방금 실수로 묻은 약간의 먼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와—— 너 손 씻어야겠다. 21호. 지저분한 것 좀 봐.

……

베라는 눈썹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손을 흔들었다.

임무에 집중한다. 21호, 더 이상 뒤처지지 마.

그렇게 일이 마무리된 후, 모두가 거리를 전진하던 중 길가에서 행동 능력을 잃은 기이한 모양의 기계 잔해를 발견했다.

이건...

21호는 그 망가진 기계 앞에 웅크려 앉았다. 구형 기계는 대부분 파괴되어 기계의 절반만 남아 있었다. 갈라진 틈에는 전선과 금속의 날이 벗겨져 있었고 그 중 부러진 기계 촉수가 몇 개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뭐지...

21호 곁으로 다가간 녹티스는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그 부러진 촉수를 건드렸다.

접촉 반응인지 그 구형 기계가 갑자기 맹렬히 경련을 일으키더니 중심부에서 부러진 촉수를 내밀었다. 촉수 끝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햇빛 아래 차가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녹티스는 민첩하게 두 손가락으로 그 바늘을 집어 들어 가볍게 바늘을 부러뜨렸다.

이게 뭐지?

내가 한 번 볼게.

베라는 녹티스가 손에 들고 있던 긴 바늘을 건네받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냄새를 맡고 바늘을 혀에 대고 핥기도 했다.

그냥 평범한 인간용 약제일 뿐이야. 아마 수만 년이 지나 보이지만 이 냄새는 틀림없어.

그럼 잘 포장해서 아시모프에게 보내서 분석해야 하나? 지휘관은 어떻게 생각해?

베라는 그 부서진 기계를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돌려 보았다.

녹슬기는 했지만 그 외각을 자세히 보면 기계 내부에는 날카로운 도구가 가득 차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기계 중 가장 크게 파손된 절단면이 덜컹거렸는데 날카로운 것으로 절단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원형 기계의 기반은 완전히 망가졌지만, 그 접속 단자의 구조로 봤을 때 아마도 기계 몸체를 지탱하는 "다리"가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런 기계 구조의 분석과 재현은 대부분 리가 맡았지만, 여러 번 임무를 맡으면서 스스로도 간단한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보조 기계?

우리 "꼬마".

동그란 거 빼고 닮은 게 어디 있어.

그러고 보니... 정말이잖아.

날카로운 핀셋과 칼날, 그리고 끊어진 혈관 집게까지 있었다. 베라가 발견한 주사 바늘과도 딱 들어맞았다. 이건 인간의 응급처치에 사용되는 수술용 의료기기다.

황금시대 말기에 성행했던 수행 의료기 같아. 지금은 완전히 낡아 공중 정원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이지.

……

그녀의 침묵에 약간의 이상을 느꼈다. 이쪽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알면 또 뭐?

케르베로스 멤버를 관찰한 결과, 21호는 이상 징후를 감지한 것으로 보였다.

21호는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상했다. 잠재의식에 미치는 영향인지 아니면 한때 작전 경험이 자신에게 경고하는지... 이 마을은 평범한 마을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평범했더라면 "그 사람들"도 나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녹티스, 그 지도 좀 봐봐.

응. 어, 잠깐...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지? 여긴가?

21호, 우리 임무 좌표가 지도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해 봐.

응.

21호가 단말기에 부착된 홀로그램 지도를 펼치자, 케르베로스 소대가 있는 지점의 광점이 붉은빛이 끊임없이 깜빡이는 임무 좌표 거리까지 이미 매우 가까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지점은 바로——

베라는 낡은 종이 지도에 그려진 길에 손끝을 대고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더니 끝내 한 단어 위에서 멈췄다.

21호

리더 보고. 이상 없음.

나무에 두 다리를 걸치고 있던 21호가 몸을 뒤로 젖히자 머리가 나뭇잎 사이로 들어가더니 몇 개의 잎이 그녀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거기까지 올라갈 필요 없어. 녹티스, 너 또 뭘 가르친 거야?

녹티스

야, 너 이거 선입견이야.

나무에서 내려온 다음 다시 말해!

붉은 머리의 남자는 나뭇가지 위에 쪼그리고 앉아 흥분한 듯 코를 찡그렸는데 마치 야생동물이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번뜩였다.

녹티스

곧 도착이야.

이 구역의 끝, 멀지 않은 곳에서 하얀 건물이 짙은 안개에 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녹티스가 재빠르게 나무에서 뛰어내리자 21호도 두 손 두 발로 그의 옆에 착지했다.

우선... 앞에...

그때 갑자기 다른 이들의 대화 소리가 희미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순식간에 시야가 뒤틀렸다.

귀에서 들려오는 이명 떄문에 모든 감각이 사라져 갔다.

시야 속의 건물은 조용히 높이 솟아오르더니 서로 섞이며 변형되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 묻힌 씨앗이 싹이 터 흙을 뚫고 나와 큰 나무가 된 것 처럼.

이곳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익숙함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기이한 소리?

히히... 히히히...

큰 나무의 수관 부분은 마치 신경 시스템처럼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빠르게 전달되었다.

기이한 소리?

...날... 기다려...

소음 속에서 순간 그 말이 들렸다.

그러나 이런 환각은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눈앞의 광경은 원래의 적막한 모습을 되찾았고 청각도 점차 회복됐다.

왜 그래?

...뭘 본 거야?

보통 지휘관과 구조체의 동기화 연결은 구조체와 지휘관의 감각에 영향을 미치지만 베라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루나와의 마지막 전투 이후, 마인드 표식 오염으로 인한 기억 재생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났지만... 이렇게 시각이 혼란스러운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런 감각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방금 느낌은 기억 재생 증상이 나타난 느낌과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그 순간에 "비슷한"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치 내가 이곳에 온 적이 있고, 또 다른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감염 증상이 심해진 것일까? 아니면 그저 긴장한 나머지 환각이 생긴 것일까?

[player name], 왜 그래?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기 전에 팀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

익숙하다고? ...데자뷰?

베라가 말한 것은 일종의 생리 현상으로 환각 기억이라고도 불리며, 경험하지 못한 일이나 장면에 대해 어딘가에서 경험해 본 듯한 낯익은 느낌을 뜻했다.

베라, 이 동네 어딘가 이상해. 21호가 이상한 건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 지휘관까지 이렇지? 진짜 왠지...

진짜 왠지 너무 재밌는데?! 빨리, 빨리 그 이상한 게 뭔지 나도 보여줘!

녹티스는 신나게 주변을 서성거리기 시작했고 눈은 사냥개처럼 밝아졌다.

확실히 뭔가 이상해. 아무리 퍼니싱 농도가 정상 범위 안이라고 하지만 침식체가 하나도 없다니... 너무 순조로워... 이상해.

...베라, 쉿... 정말, 정말 소리가 들려!

킁, 킁...

...리더, 침식체야.

이건 천부적인 재능이야. 인간 때부터 타고난 재능. 동물적인 감각.

녹티스는 과장된 자세로 온몸을 바닥에 엎드리며 귀를 땅에 밀착시켰다.

동물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어. 잠자는 폭풍우를 계측기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감각은 예측할 수 있어. 기계는 안 되지만.

이게 바로 우리 고효율의 이유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우리를 따라오고 싶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걸? 늦어도 기다려주지 않을 거야.

그들이 왔어.

21호가 양손을 벌리고 다리를 뒤로 뻗었다. 마치 우리에서 뛰쳐나와 덤벼들려는 늑대 같은 자세로 보였다.

동시에 단말기의 스크린에 수많은 붉게 빛나는 점이 나타났다—— 그 모습은 마치 무리로 달려드는 메뚜기 같았다.

작은 마을에 들어선 뒤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침식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