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서브 스토리 / EX04 영탄회성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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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04-6 먼지는 먼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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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도 아까 그 놈들을 봤겠죠. 이곳에 남아있다면 폭격이 진행되기 전에 저 놈들한테 죽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운명이 내려준 결정이라면 어떠한 원망도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흙이 되고, 우리의 영혼은 땅으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무슨 운명... 당신들과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는군요.

이런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합 생물의 출현으로 양측 모두 초조해졌다.

대치 상황에서 소대와 난민들은 동문서답 식의 아무런 의의 없는 대화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째는 듯한 비명 소리가 서로의 대립을 깨트린다.

레이——! 레이는?!

누가 레이를 봤나요! 내 손주... 내 손주는?!

동료들이 고개를 젓는 것을 보고 나서, 그녀는 소대로 눈을 돌렸다.

예전의 경계심은 보이지 않고, 얼굴에는 초조함 만이 남아있다.

제 아이를 본 사람 없나요?

그녀의 시선은 소대의 모든 구조체를 훑고 지나다가 루시아와 리브에게 고정됐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더니 마치 마지막 구명줄을 붙잡 듯 루시아의 어깨를 강하게 짚었다.

혹시 레이를 보셨나요?

어디있죠? 아이가 어디있는지 알고 있죠? 그렇죠?

그 아이는...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있었는데——!

진정하세요.

레이라면?

그녀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의 일 때문에 놀라서 어디 숨은 거 아닌가?

못찾았어요.

여기에도 없는데.

음...

... 만약 당신들이 아까 그 꼬맹이를 찾고 있었던 거라면.

아까 혼란한 틈에 서쪽으로 갔어.

서쪽... 그곳은...

……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 여성은 쿵 하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안돼, 안돼... 레이를 내 곁에서 뺏어가지 마!!!

루시아와 리브는 고개를 돌렸다.

저기, 그러니까... 어린아이라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테니 지금 쫓아가도 늦지 않을 거야.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금은 이따위 일을 처리할 때가 아니다.

한가하게 여기서 빈둥대지 말고 얼른 이합 생물의 습격에 대비할 준비나 해.

총지휘관님, 방금 03소대에서 통신이 왔는데 필드 포인트 설치를 완료했답니다.

좋아, 다른 소대들은?

02소대와 05소대도 이합 생물의 공격을 받아 필드 포인트가 전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04소대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고, 07소대와 08소대는 적조의 변두리 구역을 조사 중이라 언제 필드 포인트를 진행할 수 있을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부대 손실 상황은?

30퍼센트입니다.

들었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 너희들이 이곳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때 무수한 사람들이 전방에서 싸우고 있다.

이 때문에 부상을 입고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고 있지.

내가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너희들은 본인들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

지금 누구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아나?

너희들은 동료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고 동료의 생명을 낭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따위 하찮은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들을 떠나도록 설득할 수 없다면 무력을 쓰도록 해.

무력을 쓰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죽음을 기다리라고 하던가.

우리는 이 사람들보다 훨씬 중대한 사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어.

수석 기술관의 말을 잊은 건 아니겠지? 적조가 해변가까지 퍼진다면, 죽는 것은 이곳 사람들뿐만이 아니야. 지구 전체가 함락당할 거다.

눈앞에 놓인 작은 일로 알량한 동정심을 베풀고 있을 때, 한순간이라도 전 인류의 운명을 생각해본 적 있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집단의 이익을 버리다니.

내가 보기에 자넨 파오스 학원으로 돌아가 군인의 규범을 다시 공부해야 될 것 같네.

참으로 실망스럽군. 소문이 자자한 파오스의 수석이라기에 기대를 했건만, 이렇게 쓸모 없는 자식일 줄이야.

내 눈에 띄지 않게 구석으로 가 있어. 공중 정원에서 철수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물론 자네가 저들과 함께 여기에서 죽으려고 한다면, 그건 내 알 바 아니네.

역시 에덴으로 올라간 행운아들이 할 말이구만.

집단 이익이라고 했나? 대의라는 명분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만드는구만.

동포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도 대의라는 명분을 외쳤었지.

대의라는 명분으로 우리의 마지막 소원을 짓밟겠다?

한스는 말없이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다.

반즈는 그를 힐끗 보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몸을 돌리더니 뒷짐을 지고 초점없는 눈빛으로 멀리 서쪽을 바라본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들이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 걸 이해해. 이곳에 떠나보내기 힘든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한스 총지휘관님이 무엇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이해해. 모든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는 거니까.

소수의 의지와 집단의 이익이라.

왜 항상 우린 이런 처지에 놓여,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무거운 분위기에 숨이 막힌다.

소대원의 동행 요청을 거절하고 홀로 야영지 밖으로 걸어갔다. 차가운 바람이 입술과 얼굴이 갈라지도록 불고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혼자서 머리를 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홀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려 하고 있을 때.

코너에서 익숙한 그림자를 보았다.

음...하아...

그는 팔짱을 끼고 오두막 문 앞에 반쯤 기대서서 곁눈질로 이쪽을 힐끗 보더니 길게 하품했다.

또 너야? [player name], 대원들은?

하긴... 저 안은 확실히 숨이 턱턱막히지.

아...

응? 그 표정은 뭐야? 설마 내가 여기서 지휘관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리더가 한가할 때 나와 카무이한테 가르쳐 준 거야. 파오스 지휘관 만이 알고 있는 공용 수신호라면서.

그냥 기억해뒀던 건데, 설마 도움이 될 날이 올 줄이야...

이럴 때는 지휘관이랑 리더가 같은 파오스 학원의 출신이라는 게 느껴지네.

언뜻 보기에 둘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니까.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과학 이사회에서는 적조의 정체를 분석할 시간이 전혀 없었어.

하지만 지휘관도 눈치챘겠지.

응, 그 소리.

적조에서 지류가 생긴다는 것을 내가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 정보를 공중 정원에 전달했지.

좀 더 주도면밀한 계획을 갖고 올 줄 알았더니, 결국 거칠고 난폭한 광역 타격이라니.

뭐 이해해. 그건 됐고.

궁금한 것이 있어. 지난번 승격자들과의 전투에서 그레이 레이븐은 지하 벙커에 진입해 승격자들과 마주쳤었지?

역시...

침묵을 지켜야 할 사항인가? 위에서는 이 일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군.

상관없어. 어차피 지휘관의 표정이 답을 한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까, 당신들은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거지?

그러니까 이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거지.

음... 정찰병의 입장에서 보면, 전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정보가 확실하지 않은 거야. 사소한 게 최악의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지체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건 이해하겠는데,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 전에 폭격 계획을 세우다니...

공중정원은... 어떻게 폭격으로 적조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거지?

그러니까 광역 폭격은 현재 얻은 정보에 근거해 결정된 최적의 선택이라는 거잖아.

하지만 무조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

반즈는 돌연 말을 멈추고 구석을 힐끗 봤다.

방금 전의 여성이 구석에서 나오더니 자신의 앞으로 걸어와 꿇어앉았다.

제발 부탁이에요...

제가 무례하게 대했던 걸 용서해주세요.

제 부탁을 들어만 준다면 제게서 무엇을 가져가도 상관없어요.

아니... 우리의 물건은 당신들의 눈에 차지 않겠죠. 그러니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고마워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이제 와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졸렬한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흑——

저를 도와... 저를 도와 레이를 찾아주세요.

당신들도 그 아이를 본 적 있어요. 그 아이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다 제 탓이에요. 아버지가 부근의 도시로 먹을 것을 찾으러 갔다고 아이에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그 곳으로 간 거 같아요.

그 아이는 매번 겁을 먹으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찾거든요. 내가 그 일을 숨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네.

맞아요. 제 아들이에요.

며칠 전, 폐허 저쪽으로 비상용 통조림을 찾으러 간다고...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죠.

그를 찾으려고... 시도하다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거기 적색 물속에서.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요. 우리의 많은 동료가 그 안에서 죽거나, 튀어 오른 조수에 침식된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지요.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었어요. 그 후 알게 됐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도 절대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걸요.

"세이렌의 소리"에 현혹되면 안돼요.

하지만 그 아이는... 그 아이 레이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 아이에게 차마 얘기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가 죽었다구요. 흑——

얼굴을 감싼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그녀는 진정했다.

우리의 행동이 황당무계하다고 여기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제발... 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주세요...

적어도,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 저랑 레이가 함께 있게 해주세요.

난... 마지막까지 여기서 외롭게 죽어가고 싶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어요. 이젠 모든 걸 잃었다구요... 그 아이마저 내 곁에서 뺏어가지 말아 주세요.

흐느낌 소리가 통곡으로 변한다.

응? 알았다고?

읍——

난 아무 말도 안했어.

난 홀로 움직이는 정찰병이라서 한스라는 총지휘관은 내 상관이 아니야.

리더가 다음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꾸물대지 않는 성격은 마음에 드네. 리더가 지휘관을 높게 평가하신 이유가 있었군.

하지만 잘 생각해야 돼.

아무도 우리가 하는 일이 옳다고 보장할 수 없어. 아무도 이 모든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지휘관이 한 일은 아무도 모를테니, 그 누구한테도 고마움을 받지 못할 거야.

심지어 지휘관은 이 일 때문에 벌을 받게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같이 할 거야?

거기, 뒤에 숨어있는 너.

들었지? 너희들 지휘관이 얘기한 거다.

리가 텐트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자리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지휘관님, 안됩니다.

허락받지 않고 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전장에서 탈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독단적인 행동은 명령 불복종으로 간주되기에 심하면 당장 처형까지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위험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마지막 필드 포인트 설치가 끝나면 공중 정원의 철수 명령이 곧 내려올 겁니다.

... 평생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인가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구한다.

지휘관님은 그런 사람이죠.

좋아요,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 목적이 달라서 그런가요?

지휘관님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모든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데리고 떠난다면 탈영으로 간주되겠죠. 하지만 지금은 부대 규범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어느 누구도 군사 법정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어떠한 벌도 함께 감당할 수 있습니다.

……

힘을 비축해두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라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루시아와 리브에게는 제가 설명하도록 하죠.

지휘관님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저희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그레이 레이븐은 영원히 하나입니다.

리는 앞으로 다가오더니 힘주어 어깨를 잡는다.

이 물건도 함께 가져가세요.

리는 육각기둥 형태의 검은색 긴 바늘과 통신 장치 하나를 건넸다.

쓸 수 있는 부분은 오직 끝부분이에요. 제가 아예 해제해서 일부 개조했습니다.

어차피 지휘관님의 인증이 있어야만 개방할 수 있으니 가지고 가세요.

통신 장치는 이미 수리를 마쳤지만 이곳의 채널은 불안정해요. 30킬로미터를 초과하면 통신이 안정적이지 못할 겁니다.

물론 통신이 안 터지는 곳까지 가셔서 상관없겠지만...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기억하세요. 지휘관님이 돌아오지 않으면 저희도 철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

음... 왜?

우리의 지휘관——

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 반즈가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휘관님 잘 보호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