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 끝에서 붉은 빛이 돌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경보음이 울리는 곳이었다.
벽 때문에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HNB1이 무기를 든 채 다른 쪽에 있는 HBG3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튀어나오든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 것이다.
————
잠깐!
어어!
먼지 사이로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HBG3의 가슴에 명중한 뒤, 뒤쪽 HNB1의 발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먼지가 걷히고 사람 형태가 나타났다.
스캔 프로그램 시작<<<<위험 등급 판단<<<<
공격 정지. 인간이다.
…………
정확히 말하면 인간 어린아이네.
오, 오지마!
눈 앞의 낯선 어린아이는 얼른 옆에 있던 돌멩이를 움켜쥐었다. 입술을 깨물고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타이아 두 대를 경계하듯 바라보며 언제든 달아날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안녕, 우리는 악의가 없어. 혹시 밖에서 들어왔어?
저리 가——!
또 하나의 돌멩이가 날아와 HNB1의 얼굴을 푹 하고 내리쳤다.
이봐, 꼬마야, 진정해, 난 비싼 몸이라고!
심박수가 상승하고 호흡이 빨라지며 동공이 커지고 장의 혈액이 감소했네. 감정 등급은, 공포 1등급으로 분석되며 도망갈 가능성은 97.25%로 나타나고... 우리는 너를 공격하지 않을 거고, 너도 우리한테서 벗어날 수 없으니 저항할 생각은 하지마.
HBG3는 무기를 바닥에 놓고 한 발짝 물러섰다.
...알았어, 알았어, 방법이 없네...
자, 나 무기도 버렸다고.
…………
꼬마야, 부모님은? 너 왜 혼자 여기 있는 거니? 아, 무릎 다쳤어…괜찮지? 너의 부모님과 헤어졌니? 밖은 어떤 상황이야?
HNB1, 인간 감정 모듈을 꺼줄 수 있어? 분석에 방해 돼.
다친 곳에 붕대를 감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어. 내가… 꼬마야! 잠깐만!
타이아가 재잘거리는 동안 어린 아이는 틈을 노려 미꾸라지처럼 달아났다.
그만해——
옹—! 날 또 차네! 나 비싸다고!
HBG3는 커다란 강철 손바닥을 뻗어 꼬마를 번쩍 들어 올렸다. 꼬마는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다리를 걷어찼다.
축하해. 인간 어린아이. 넌 구조됐어.
봐봐, 상처에 모래가 다 들어갔어. 이건 상당히 심한 상처로 보이는데...
흉터가 남을 확률은 82%야.
…………
너에 대한 공격 욕구가 높아졌어.
설명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꼬마가 공격하고 싶은 게 분명 너일 거야.
그런 건 나한테 아무 소용... 아야!
함부로 움직이지 마. 상처를 씻는 건 필수야. 그렇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어.
인간의 습관적 행동 분석에 따르면, 정말 아프다면 상처에 바람을 불어서 실용도 없는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어.
그렇지만 넌 바람을 불 수가 없잖아!
내 등뒤에 최고의 추진체 바람구멍이 있는데, 어떻게 시도해 볼래?
HNB1, 그 추진체에 인간 어린아이가 큰일 날 가능성은 35%야.
농담이야. 난 어린 여자아이를 괴롭히지 않아. 됐다! 예쁜 리본을 묶었어. 대성공이다.
... 너희는 좀 이상하지만.... 침식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어쨌든 고마워.
침식이라는 건 '퍼니싱'을 얘기하는 거야? 그건 뭐지?
......아빠가 말하길 퍼니싱 바이러스는 인간과 기계를 병들게 한대.
기계를?
병든 기계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
밖에는 병든 기계들이 엄청 많고, 모두가 그들과 싸우고 있어.
아빠가 우리를 대피시켜 줄 큰 배가 있다고 해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는데, 길이 막혀서 중간에 내릴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아빠가 나중에 데리러 갈테니 먼저 도망치라고 했는데...
아빠는 기계들을 벗어나 계속 달려서 살아남으라고 했어.
그리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계속 달렸어... 끊임없이...
여자아이는 눈시울을 붉히고 콧방울을 벌름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계속 달려서 여기까지 온거야.
방금 안전한 곳을 언급했는데 그 곳이 어딘지 알아?
...모르겠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로는 뭐지? 공기 전파라든가...
난....난 모르겠어.
…………
…………
배를 타고 철수한다라... 도심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이동 경로와 도시 내 부두 지점을 합쳐서 계산해보면 대략적인 범위를 가늠할 수 있어.
지금은 인간 어린아이를 그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는 게 급선무야.
우리 복귀하던거 아니였어?
우리는 타이아야. 인간의 안전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최우선 임무야.
하지만 우리는 이 바이러스의 특성을 잘 모르고... 만약 다른 기계가 통제불능이 된다면...
근데 우리는 지금까지 문제가 없던거 아닌가?
쾅——
멀리서 폭발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세 사람 모두 굉음이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최대한 빨리 임무를 완료해야겠어.
기존 정보를 결합하면 주요 도시 지역은 통제 불능의 기계가 있을 거야. 우리가 안전하게 가려면 여기를 우회해서 가야 해.
HBG3는 가슴에 튀어나온 컨트롤 스크린을 조작해 구룡성의 홀로그램 지형도를 투영했다.
지도가 보여?
잠깐... 나는 아직 같이 가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는데!
나는 도심으로 돌아갈 거야! 아빠가 분명히 나를 걱정하고 계실 거고, 나를 데리러 올 거라고 했어!
바보같은 소리, 방금 소리 못 들었어? 그것은 전쟁의 소리야. 거기서 왔다면 넌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너 같은 인간 아이… 아니, 설사 우리가 너를 따라간다고 해도 너를 보호하지 못할 수도 있어.
난...나 스스로 지켜낼거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아... 그래서, 돌아가겠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왜 너희들을 믿어야 하지!
…………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을... 어쨌든 난...
그래, 알았어. 어쨌든 우리가 너를 데려다 줄 수 있게 해줘. 우리랑 함께하면 분명히 더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어.
이봐, G3!
구룡 상회의 포뢰파 경비대 규정 제1조. 타이아는 허가 없이 인류를 해치거나 인류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
쯧...
이것은 우리 프로그램에 설치된 명령어야. 나는 거역할 수 없어, 너도 마찬가지고.
알아! 하지만 그냥 막상 접전 지역까지 데려다 준다면...
바깥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너도 나도 몰라.
됐어. 내가 졌어.
어때, 꼬마야. 네가 가고 싶은 데까지 데려다 줄까?
…………
그럼, 지도 볼 줄 알아?
그게...
한번 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