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발걸음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만이 들려올 뿐이였다.
공기 중에는 오일과 녹슨 냄새로 가득했다. 이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여기 텅 비었네......
원래 있던 대형 기계를 모두 제거됐네.
저길 봐.
길가 벽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한 기계 모양의 그림 몇 개가 있고, 그 위에는 검붉은 페인트로 원을 그리고 섬뜩한 X가 그려져 있었다.
이건...우리를 그린건가?
싱크로율은 14%에 불과하지만 84%의 가능성으로 타이아를 그린 것 같네.
이 그림은 조금도 멋지지 않잖아. 내가 좀 더 그려봐야겠어!
나도 할래!
우리 이럴 시간이 없는거 같은데...
HBG3가 막기도 전에 HNB1은 여자아이와 함께 바닥에 있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집어 들었다.
…………
——
몇 분 뒤 벽의 타이아는 모자를 쓴 두 개의 카우보이로 변했고, 가운데의 X는 하트로 그려졌다. 오른쪽 하단에는 양갈래 머리를 한 작은 사람이 있었다.
HNB1의 어깨에 앉은 여자아이는 활짝 웃었다.
쾅——
다시 한 번 도시 쪽에서 묵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
짧은 장난은 천둥 같은 굉음으로 인해 사라졌다.
서둘러 움직여야 해.
그래 맞아. 미안.
…………
아, 봤어? 앞에 차가 있어!
우리 아빠 차와 비슷해!
잠깐만...
자, 빨리 움직이자!
차량은 비틀거리며 다운 타운을 지나 구룡성의 햇빛 속에서 질주했다. 그 햇빛은 창백하고 적개심에 차 있었다.
공업용 공터를 지나니 거인의 손가락처럼 하늘을 가리키는 빌딩이 즐비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더 깊게 들어갈수록 흔적이 많아지면서 전쟁의 기운이 점점 짙어졌다.
멀리 도시에는 불빛이 여러 군데 있고, 몇 개의 연기 기둥이 피어올라 마치 도시에 꽂힌 검은 깃털 같았다. 이 검은 '깃털'들은 때로는 도시의 뜨거운 불빛으로 붉게 물들었고, 때로는 호광으로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그 검은 점들과 거리들, 그리고 도시 전체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고층 건물들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도시 전체가 정전되었다.
더 앞으로 나아갔을 때, 인간 병사들이 쳐놓은 방어선이 나타났고 그들은 걸음을 멈췄다.
여기에서 교전이 있었군.
그냥 대피소로 갈까?
진실을 알릴 필요는 없어. 감정이 있는 인간에게 진실만을 따지는 것은 좋지 않아. 제일 성숙된 방법도 아니고 가장 안전한 의사소통 방식도 아니야.
내가 들은 이야기로 분석하면, 지금 교전지에 갔을 때 사망률은 89%, 아빠가 살아있을 확률은 3%야. 난 철수 지점의 구체적인 좌표도 이미 알고 있어.
좋아. 그럼 이 방법 밖에 없어.
이 차를 버려야 할 것 같아. 나는 이 차에서 나오는 노래가 너무 좋았어, 차주분은 아마 품격있는 사람일거야.
행방불명된 차 주인을 떠올렸는지 HNB1은 잠시 침묵했다.
깨워야겠어. 몇시간 동안 잔 것 같은데, 아마 엄청 피곤했을거야.
내가 깨울테니까, 너는 차를 세워.
음...우린...도착했어?
앞길이 막혀서 우린 걸어가야 돼.
끼익——
그제서야 그들은… 멀지 않은 다리에 두 눈에서 시뻘건 핏빛을 발하는 '괴물'들을 발견했다.
끼익——
불과 백 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육중한 기계체가 몸을 뒤틀며 땅을 기어갔다. 마치 지옥에서 기어나온 괴물처럼 찌그러진 울음소리를 냈다.
HNB1은 이 괴물을 똑바로 보았다. 괴물을 마치 어두운 밤의 그림자처럼 절벽 위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그 괴물 뒤에서 한차례 눈부신 불길이 치솟아 상대방과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괴물은... 타이아였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타이아였던 것이다.
두 그림자가 현실에서 치졸하게 겹쳐지는 것처럼 윤곽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한쪽은 타이아 다른 한쪽은 끔찍한 소리를 내는 괴물이었다.
이쪽으로!
HNB1은 잠깐 경직되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여길 빠져나가야 돼.
방금 그건...
어른들은 저걸 '침식체'라고 불러.
저....저것들이 인간을 공격했어.
그것들이 아직 많지 않은 틈을 타서 우리는 신속하게 이 방어선을 통과해야 해. 내가 선두 설 테니 너는 그녀를 데리고 날 바짝 따라와.
발각되면 우린 끝이야.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