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몸을 꿰뚫는 순간 난 그런 기대를 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난 하지 못했다. 내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로제타는 엄청난 속도로 엠베리아의 기체를 스쳐 지나가고, 엠베리아는 계속해서 유도탄을 발사해 로제타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하지만 로제타는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엠베리아의 상반신을 향해 돌진했다.
지휘관!
로제타는 다음 명령을 내려달라고 외쳤다. 연결된 지금의 그녀가 보고 지배하고 있는 건 눈에 보이는 전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답하는 대신 로제타는 손에 든 방패를 높이 들어 올려 머리와 가슴을 보호했지만, 그래도 모든 총알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총알이 방패에 명중하는 순간, 로제타는 빛나는 날개를 완전히 거뒀다.
중력으로 자신의 기체를 제어하면서 그 중에 빛나는 날개를 교묘하게 이용해 추진력을 가하며 흩어져나온 입자로 총알을 빗나가게 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소용돌이 같은 난사를 무사히 뚫고 엠베리아의 앞까지 도달했다.
이제...!
로제타는 추진력을 이용해 따라오는 추적탄과 함께 얼음 동굴의 최상단을 향해 돌진해 난류 같은 총알을 일직선으로 만들었다.
발사!
그리고 로제타는 공중에서 몸을 돌려 그대로 그 직선을 향하면서 방패를 펼쳐 총알을 발사했다.
양측의 공격이 충돌하자 전장을 뒤흔드는 격한 진동이 일어났다. 로제타는 폭발로 연기가 일어난 틈을 타 곧바로 엠베리아 앞까지 돌격했다.
로제타, 너!!!!
지금은... 완전한 "엠베리아"가 되어버렸네...
라미아가 말한 의식 융합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엠베리아는 방금처럼 뚜렷하게 나눠진 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하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왜 우리를 막는 거야! 로제타!
엠베리아는 사격을 멈추고 직접 손을 이용해 로제타를 공격했다. 그리고 로제타는 창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방금 의식의 바다가 연결되면서 너희들의 의지와 갈망을 느끼게 됐어. 고통과 분노도 함께 나의 의식의 바다로 흘러 들어왔어.
그럼 나와 함께 항로 연합에 복수하고, 이 세상에 복수하자고!
그럼 이다음에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겨주게 될 뿐이야!
네게 이해나 용서를 바라는 게 아니야. 휴머노이드형 구조체로서, 나의 의식의 바다도 대부분이 전투 같은 야성의 본능으로 뒤덮여 있으니까.
지금 일어난 모든 것이 네게 어떤 의미가 있던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야. 모두가 과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그 미래를 향해!
로제타!
다음 순간 로제타는 잘못된 자세로 인해 앞다리를 다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균형을 유지했다.
지휘관, 코어 기능의 사용 허가를 다시 내려줘!
로제타는 모든 남은 에너지를 이용한 공격을 요청했다. 그것이 바로 공중 정원에서 개조 받은 로제타가 지닌 마지막 패였다.
엠베리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로제타는 하늘로 날아올라 변형된 창을 방패에 찔러넣었다.
이건!?
엠베리아, 그리고 에티르.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희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뭐...?
미안해.
근접 발사를 하기 전에 마지막 한 마디였다. 로제타는 전투 중에 이미 엠베리아의 코어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방패로 조준하고 있었다.
창은 모든 것을 끝내는 열쇠가 되었다.
——엄청난 에너지와 엠베리아의 코어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면서 그 주변의 모든 것이 폭발에 휘말리게 되었다.
너희는 지금까지 이 말을 기다려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