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지키는 자의 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의 장막이 드리운 뒤였다.
우리 기지는 숲 남쪽의 더 깊은 곳에 있어.
하지만 너희들은 북부의 신무르만스크 항구로 가야 한다며? 그래서 일단 근처의 임시 영지로 온 거야.
오늘 밤은 일단 여기서 쉬어, 불편한 게 없었으면 좋겠네.
아, 잠깐만...
말을 마친 다이아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더니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전혀 실감이 안 나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가요? 전 나름 신기한 체험인 것 같아요.
저런 형태의 구조체는 전설에서만 들어봤거든요.
전설... 이요?
맞아요. 제 추측이 맞다면, 그녀들은 구조체 기술 종류 중 보기 드문 부류인 휴머노이드 구조체일 겁니다.
휴머노이드라면... 구조체는 인간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아닌 육체를 가졌다면 사고 모형 또한...
그렇죠. 쉽게 말하면 일정한 의식 안정성을 포기한 대신, 더 강한 전투력을 얻은 방안이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안정성이 워낙 많이 떨어지고, 개조 후 온전한 인격조차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중 정원에선 이미 해당 방안을 금지시켰어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여러분, 불은 다 피워뒀어.
이건 뭐예요?
우리 지역의 특산품인데, 솔잎차라고 해. 그리고...
이건 우리 숲을 지키는 자들만의 비법으로 만든 후르츠 케이크야.
고마워요. 우와! 진짜 맛있어 보이네요.
(지휘관님께서 미리 약을 드셔서 참 다행이야.)
그런데 그쪽 대장은 어디로 갔나요?
로제타는 야간 순찰 나갔어. 요즘 숲에 침식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말이야.
우리 지역에선 정말 이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여긴 고위도 지역이라 평소에는 퍼니싱 농도가 낮고 침식체 수량도 적을 텐데요.
혹시 이 숲만 지키고 있는 건가요?
방금 항구 출입을 금지당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그런 거죠?
별거 아니야. 그냥... 전통이 그렇지 뭐...
전통이라고요?
……
와, 저것 좀 보세요!
잔뜩 흥분한 리브의 목소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정말 예쁘네요.
마치 흐르는 비단과도 같아요.
모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보기 드문 광경을 감상했다.
평소라면 뭐라고 구시렁댔을 리도 그저 찻잔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리 잔인한 전투가 벌어져도...
산과 강, 그리고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은 한점의 변화도 없네요.
지구는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시 되찾아야겠죠?
네...
다이아나는 불빛을 사이에 두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를 묵묵히 관찰했다.
그들한테서 마치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물들을 볼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은 그들에게 사치나 마찬가지였다.
아!!!
무슨 소리죠?
모두가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고 다이아나도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장창을 꽉 쥐었다.
인간 신호가 감지됐어, 북쪽에서 온 거야...
그리고 그 뒤로... 침식체 신호도 있어!
살, 살려줘!
이 목소리는...
이반?
다이아나는 앞발을 들더니 숲 깊은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지휘관님...
네!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숲의 깊은 곳, 로제타가 벼랑 끝의 공터 위에 우뚝 서 있었고, 회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해수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드레이크, 그렇구나...
……
하지만 난 이미 결정했어.
신무르만스크 항구는 이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어...
내 결정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
왜? 드레이크, 넌 항상 날 이해해 줬잖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로제타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장!
……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로제타는 방금 전 표정을 숨기고 다시 평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로, 로제타 누나!
이반?
이반이라는 남자아이가 비틀거리며 눈밭을 달려 로제타를 향해 다가왔다.
얘가... 어제 또 혼자 숲을 넘어 우릴 만나러 왔더라고...
우리가 먼저 발견했고, 게다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도와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침식체들한테 잡아먹혔을 거야!
이반이 너한테 직접 전할 말이 있다고 했어.
그냥 대장이 보고 싶었던 거겠지.
아, 아니거든!
로제타 누나, 저기...
무슨 일이야?
드레이크에 관한 일인데... 드레이크가 또 다시 항구로 돌아왔어...
그 정도 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한테 올 필요는 없잖아.
난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번엔 좀 달라, 항구 사람들이 모두... 무기를 준비하고 있단 말이야.
……
요즘 침식체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어른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고...
어제 항구의 항해사들이 드레이크를 발견했는데, 드레이크가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다들 엄청 화난 상태였어.
행여나...
알겠어.
로제타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시간을 질질 끌어선 안 돼, 올라와.
응...
이반은 잠깐 망설이더니 쑥스러운 얼굴로 힘겹게 로제타 등에 올라탔다.
내가 앞장서 신무르만스크 항구로 가는 길을 알려줄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
억지로 따라붙을 필요는 없어. 내 발자국을 따라와.
기타 숲을 지키는 자들은 계속 이곳에 주둔하고, 항구 쪽으로는 가까이 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