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님, 지휘관님, 정신 차리세요!
눈을 떠보니 뼈를 깎는 듯한 추위가 느껴졌다...
날숨과 함께 나온 입김이 회색 하늘을 가렸다...
드디어 의식을 회복하셨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후... 다행이군요...
시베리아 동북부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판단한 거죠?
날짜, 태양의 높이, 그리고 기재에 따르면 이 구역 특유의...
지하에 매립된 핵폐기물로 생성된 전자 이온 방사능을 통해 판단한 겁니다...
저번에 와타나베 씨를 만난 뒤로 지형에 대해 분석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네요.
전 그쪽과 다릅니다.
흠, 어쨌든 공중 정원과 우주 정거장이 다시 교전을 벌인 탓에 여러분들께 파견한 지원 병력이 길을 우회해서 가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14시간 뒤에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미 북극 항로 연합의 영지에 진입했어요... 그러니 그쪽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신변 보호를 부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북극 항로 연합이라면... 면역 시대부터 굉장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지역으로 발전한 걸로 알고 있어요.
대철수 작전에도 반대했던 탓에 결국 극소수의 인원만이 공중 정원에 진입했어요.
리브 씨 말대로 북극 항로 연합 세력은 지금까지도 공중 정원과의 연락을 회피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와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에요.
그럼 다행이네요...
일단 북쪽으로 이동해요. 이 침엽수림을 벗어나면 신무르만스크라는 거점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그곳에서 지원 병력이 합류할 때까지 대기하세요.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움직일 수... 있으시겠어요?
지휘관님의 작전복은 고지대의 추운 기후를 대비하여 위해 준비한 건데, 여기서 쓸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하지만 이걸로 방사능을 막는 건 역부족입니다.
지휘관님과 함께 최대한 빨리 여길 벗어납시다. 앗, 방사능 저항 약물을 드리는 것도 잊지 말고요.
네, 제가 챙겼어요!
지휘관님, 아——
이 근처엔 우리의 발자국 말고도 다른 흔적들이 꽤 많네요.
현지 주민들이 남긴 걸 수도 있고... 침식체들이 남긴 걸 수도 있어요.
생각보다 이동속도가 훨씬 더 느리네요.
눈 위에서 움직이는 거니까요.
만약 지금 침식체들과 마주친다면...
스스슥...
삐삐——! 삐삐——!
쯧...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방심하지 말아요. 침식체 수량은 별로 많지 않지만 지형조건이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합니다.
삐——————!
쳇! 아직 더 남았어요!
삐——! 삐삐————!
앗! 지휘관님!
비켜!
눈으로 덮인 숲에서 몸놀림이 힘차고 건장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
그리고 장창이 하늘을 가르더니 침식체가 깔끔하게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쪽은 누구시죠?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자들이 숲에서 튀어나와 전투에 참여했다.
나스카, 저쪽이야!
알겠어!
삐——————!
그레이 레이븐이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의 침식체들은 전부 쓰러져 있었다.
……
상대가 점차 압도적으로 다가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일행을 둘러싼 뒤에야,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
그들은 모두 거대하고 늘씬한 체격을 가졌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당황한 외부인들을 굽어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완전무장한 로봇 슈트에 머리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뿔 모양 설비가 달려있었다.
이것은 구조체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인 역원 장치였다.
그리고...
켄타... 우로스...
그들은 모두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다리 네 개를 가진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들이었다.
……
그들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의아한 표정에 익숙한 듯했다. 가장 앞에 선 켄타우로스 구조체가 당당히 한발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숲을 지키는 자들이다. 허가를 받지 않고 영지에 침입한 외부인들을 추방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지.
저기... 사실 저희는...
물러서!
으악!
상대는 장창을 휘둘러 리브의 말을 잘랐다.
리브!
루시아는 리브를 뒤로 숨겼다.
방금 전에 도와준 건 감사합니다. 우리는 사고로 인해 이곳에 추락한 인류 전선 집행 부대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인데, 북부의 신무르만스크 항구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말했지. 허락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순 없다! 내 말을 거역한다면——
상대가 다시 장창을 든 순간!
다이아나!
힘찬 목소리가 숲의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그만해...
로제타?
또 다른 거대한 그림자가 장창을 든 채 천천히 다가왔다.
새하얀 햇빛이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비추었다.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앗! 그 장창은!
맞아. 내가 너희들을 구한 거야.
뭐라고요? 지상에서 던진 장창이 수천 미터 상공까지 날아올랐다는 말인가요?
로제타, 그래서 방금 장창을 던진 거였어?
응, 갑자기 그러고 싶어서.
하지만 이건... 우리의 전통을 어기는 일이잖아...
우리 전통에 따르자면 이 사람들은 진작 네 창에 의해 쓰러졌어야 해, 다이아나.
넌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어. 그 정도 각오로 그들을 죽일 수 있겠어?
……
그리고... 숲을 지키는 자 자매들 중 외부인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장 기대했던 건 너 아니었나?
로... 로제타!
풉...
순간,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주위에서 울려 퍼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라...
다이아나, 일단 저들을 데리고 영지로 돌아가자.
정말 그래도...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