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혹시 "노을을 쫓아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컨스텔레이션 거리에서 한 열정적인 로봇이 갑자기 지휘관 앞을 가로막으며, 전단지를 건넸다.
연구에 따르면, 노을은 해가 진 후 천천히 사라지지만, 지평선을 향해 계속 달리면 시각적으로 노을이 사라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합니다. 즉, 그 찬란한 광경을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를 위해 특별히 전망대와 지평선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마련했습니다. 구체적인 위치와 참여 방법은 전단지 뒷면에 안내되어 있으니, 꼭 한번 체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전단지를 받은 지휘관은 이벤트 장소를 힐끗 쳐다보았다. 단말기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시간을 보니 때마침 해 질 무렵이었다. 지금 천천히 걸어가면 마침 지평선에 노을이 물드는 순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단어를 되뇌다 보니, 무의식중에 그 분홍 머리 구조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벤트 장소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이스마엘이 있었다. 높은 단상 가장자리에 선 그녀는 난간에 손을 얹은 채, 하늘 끝의 노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왔네. 이리 와봐. 마침 좋은 자리를 찾았어.
봐. 노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지.
그녀의 말투는 평소처럼 담담했고, 마치 지휘관이 올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미리 약속한 적도 없고, 일부러 찾아온 것도 아닌데, 지휘관은 그녀를 보고 싶을 때마다 항상 어김없이 만나게 되었다.
지휘관은 이스마엘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붉은빛과 주황빛이 어우러진 노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빛은 부드럽게 내려앉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황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226|153|170}~
따스한 노을빛이 이름 모를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이스마엘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평소에 신비롭고 거리감 있던 이 구조체가 지금은 의외로 친근하게 느껴졌다.
기억 속의 이스마엘은 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봉우리든, 해변이든, 심지어 공중 정원의 인공 천막이든... 어디서든 기회만 있다면, 그녀는 이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사람들이 어떤 풍경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데에는 보통 특별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야.
지휘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스마엘은 이쪽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자연의 순환과 변화에 심취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마음속 복잡한 생각을 비슷한 풍경에 비춰보고 싶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눈앞의 풍경을 매개로 삼아 어떤 기억을 되새기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
그레이 레이븐, 네 생각엔 난 어떤 경우일 것 같아?
기억 속 그녀가 하늘 끝에 펼쳐진 노을을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시선은 늘 눈앞의 풍경을 넘어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놓인 듯했다.
이스마엘은 지휘관의 추측을 인정한 듯,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녀는 노을이 많이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점점 사라져가는 석양빛 속에서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잊지 못할 추억이 있지만, 그건 내가 노을을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일 뿐이야. 이런 습관이 생긴 건... 노을도 "끝"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맞아. 난 처음엔 오늘의 노을이 사라져도, 내일에 또다시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됐지. 안타깝게도 이 세상엔 영원한 건 없어.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것들도 결국엔 바위가 모래로 되듯, 긴 시간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
노을을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어. 아마도 이 두 가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수평선 너머로 마지막 붉은빛이 서서히 가라앉자, 하늘은 점차 먹물 빛으로 물들었다. 이스마엘의 눈 속에 담겨 있던 노을빛도 어느새 사라지고, 깊은 바다와 같은 고요함만이 남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 속에서, 이스마엘은 이내 먼 생각에서 깨어난 듯했다.
아, 노을이 저물었네...
그럼, 우리도 돌아갈까?
이스마엘이 난간 옆을 떠나자, 거리 양옆의 가로등이 일제히 켜졌다. 그녀는 바닥에서 길게 드리운 불빛을 따라 천천히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지휘관은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방금 본 이스마엘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오늘을 이대로 끝내기에는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옆을 스쳐 지나가자, 지휘관은 그제야 많은 사람들이 산책로를 따라 해가 진 지평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휘관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곧바로 이스마엘의 손을 잡았다.
숨이 가득 차오르면서, 전력으로 달리던 몸은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점점 느려지는 걸음 끝에, 지휘관은 결국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어보자, 옆에는 이스마엘밖에 없었다. 전력 질주하는 동안 어느새 다른 관광객들을 뒤에 뿌리친 모양이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렸지만, 지평선 너머의 하늘은 여전히 짙은 어둠에 물들어 갔다. 노을빛은 지휘관의 노력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서서히 사라져 갔다.
노을은 해가 진 후 햇빛이 고공에서 산란되며 생기는 현상이야. 그래서 노을을 따라잡으려면 지는 해를 따라잡아야 하는 것이지. 하지만 이건 인간의 두 다리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구조체인 이스마엘에게는 지휘관의 전력 질주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녀는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가면서, 지휘관의 가쁜 숨을 가라앉히려는 듯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달린 거야?
이스마엘은 고개를 살짝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은회색 눈동자 깊은 곳에는 호기심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이스마엘은 대답 없이 지휘관을 바라보기만 했다. 괜한 핑계로 그녀를 끌고 뛴 것이 좀 심했나 싶어 반성하려던 찰나,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 은은히 번진 미소였지만, 왠지 무척 즐거워 보였다.
넌 그때랑 똑같구나...
이스마엘은 의아해하는 지휘관에게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하늘에 남아 있는 마지막 노을빛을 잠시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노을을 따라잡으려면, 지평선을 쫓는 것 말고도 더 쉬운 방법이 있어.
그레이 레이븐, 나를 꽉 잡아.
이스마엘은 조용히 다가오더니, 무도회의 파트너를 껴안듯 지휘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발밑이 순식간에 공중에 떠오른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멀어지는 땅과 푸른 하늘, 커다란 구름... 여러 화면이 한꺼번에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 어지러움이 가라앉자, 지휘관은 그제야 자신이 이미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력에 의해 몸이 아래로 떨어지려 했지만, 옆에서 분홍 머리 구조체가 따뜻하게 안아 주어 지휘관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지평선을 쫓는 것 말고도 더 쉬운 방법이 있다고 했지? 지평선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면, 태양이 우리를 위해 구름을 다시 한번 붉게 물들여 줄 거야.
이스마엘의 시선을 따라가자, 붉게 물든 구름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저물던 태양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뜨거운 빛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황금빛 햇살이 구름 하나하나를 불타는 앰버로 물들이자, 둘만의 하늘에는 시간도 소리도 멈춘 듯한 고요가 내려앉았다. 온 세상은 눈앞에 펼쳐진 이 장엄하고 영원한 황혼만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러게. 그때와 똑같아.
우리가 함께 따라잡은 노을인 만큼,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까지 조금만 더 있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