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벽은 우리 거야. 저리 비켜!
내가 그림을 더 잘 그리니까 이 벽은 내 것이라고. 컨스텔레이션 규칙 몰라?
헛소리하지 마. 누가 널 잘 그린다고 인정했냐? *로봇 은어*!
아이라와 그라피티 거리를 지나가던 중, 몇몇 로봇들이 벽 모퉁이에서 떠들썩하게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이란 키워드를 들은 아이라는 눈이 갑자기 반짝거리더니, 신이 난 듯 지휘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player name], 저기 봐...
응응! 너랑 같이 다니면 정말 편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항상 알아채니까 말이야.
아이라는 지휘관에게 안심과 신뢰가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라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챘다기보다는, 그녀의 즉흥적인 행동에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분홍 머리 구조체는 지휘관의 손을 잡고 로봇들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며,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이 그라피티 벽은 그라피티 애호가들 사이에서 "챔피언의 벽"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라피티 대결에서 우승해야만 이곳에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 데이트 데이라서, 위원회 로봇들이 벽화를 특별 데이트 데이 테마로 바꾸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다른 "그라피티 패거리"의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
음... 그럼 지금 여기서 화판으로 대결해 보면 되잖아?
저희도 그럴 생각입니다만, 이놈이 심판이 없다면서 대결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 하지만 지금은 당신들이 심판과 모델이 되어주면 될 것 같습니다.
로봇이 자신을 가리키자, 지휘관은 저도 모르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맞습니다. 저희 모델이 되어주십시오. 마침 특별 데이트 데이이니, "연인 초상화" 주제로 대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인간이 심판을 본다면 나도 이의 없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로봇들이 재빠르게 소품을 가져오더니, 지휘관과 아이라를 화판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밀어냈다.
그중 한 로봇은 아이라에게 "여자친구" 역할을 맡기려는 듯, 그녀의 손에 꽃다발을 쥐여줬다.
꽃다발을 받아 든 아이라는 지휘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어... 근데 난 모델 해본 경험이 없는데...
[player name],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아이라는 난처한 듯 지휘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아, 이렇게 손을 잡으면 되는 거야?
좋아, 이렇게 서 있으면 되는 거지?
근데... 착각인가? [player name], 솜씨가 장난 아닌데?
아이라를 도와 꽃다발을 든 "여자 친구"의 자세를 자연스럽게 취해줬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볼을 부풀리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알겠어.
됐어... 바보 [player name].
삐진 듯한 아이라는 고개를 홱 돌더니,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 이런 건 굳이 설명 안 해도 안다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지휘관의 시선을 피했다.
근데... 설명해 줘서... 기뻐.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어서 봐주십시오. 어느 그림이 더 마음에 듭니까?
바로 그때, 로봇들이 화판 두 장을 들고 신나게 달려왔다.
두 그림에는 모두 지휘관과 아이라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아이라의 얼굴에 잠깐 스친 홍조까지도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두 작품은 모두 완성도가 높아, 한눈에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음... 둘 다 너무 괜찮네. 고르기 참 힘들 것 같아.
아이라와 지휘관은 마음이 통한 듯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다 같이 "우승자"가 되는 건 어때?
특별 데이트 데이 홍보는... 컨스텔레이션에서 제일 눈에 띄는 광고판을 사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해줄게. 어때?
정, 정말입니까? 하지만 그 광고판 엄청 비싼 거 아닙니까...
물론, 대가가 있어.
장난기 어린 표정의 아이라는 로봇들의 손에서 그림 두 장을 가져오고는 가슴에 꼭 안았다.
대신 이 그림들은 내가 가져갈게.
안 줄 거야~
아이라는 꽃다발을 지휘관에게 던지고는 웃으면서 내달렸다.
석양 아래, 역광 속에 비친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 눈부셔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갖고 싶으면, 와서 가져가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