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짧은 머리 구조체의 실루엣을 감쌌고, 따스한 빛줄기 속에 그림자가 스러졌다.
우리 고향에선 이 시간을 요마가 깨어나는 순간이라 전해 내려왔어. 귀신들의 숨결이 가장 짙어지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지.
침묵이 길어졌네... 혹시 두려운 거야? 걱정 말아, 내가 곁을 지킬 테니.
오늘 누가 방해하러 오면 말발굽에 채이는 건 기본이고, 주먹 여섯 개로 혼쭐을 내줄 테니까.
구조체는 멋진 포즈와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의 어깨를 살며시 감쌌다.
로봇 팔이 건넨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입가에 하얀 설탕가루가 둥글게 묻어났다.
하하하! 먹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네. 그런데 말이야, 날 여기로 부른 이유가 뭐지?
팔지는 양손을 등 뒤로 숨긴 채, 긴장을 감추려 애썼지만 발끝은 바닥을 살랑살랑 문지르고 있었다.
지휘관은 인연 초대권을 내밀며, 예술 협회에서 마련한 명절 특별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뭐야... 도시 세 바퀴 달리기?
기껏해야 세 바퀴라니, 식은 죽 먹기네.
팔지는 마침내 인연 초대권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눈빛이 반짝이며 적힌 내용을 하나하나 음미했다.
도전... 손잡고... 도시... 세 바퀴 달리기.
어... 이런 거였어?
아니야. 손잡기 정도로 내가 물러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내 로봇 손이 여러 개인데, 아무거나 골라서 잡아도 돼.
아니면 내가 안고 달리는 건 어때? 그것도 충분히 규칙을 만족시킬 텐데.
낙하지점을 정확히 계산해 받아낸 뒤, 포물선을 그리며 회전력을 활용하는 거지.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좋아,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자.
평소의 자연스러운 접촉과 달리, 이번엔 팔지가 수줍어하며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손이 맞닿자마자 아무 말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player name] 동창, 따라오지 않으면 이번엔 진짜 큰일 날 거야! 널 끌고라도 갈 거야...
처음엔 어색해하던 짧은 머리의 구조체도 달리는 동안 자연스레 긴장이 풀렸다. 이제는 뒤돌아보며 환한 미소와 함께 힘찬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왔다.
마지막 한 바퀴야! [player name] 동창, 조금만 더 힘내!
외골격 장치 없이는 상대의 속도를 쫓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팔지가 알맞게 보폭을 조절해 주었다.
팔지는 파트너를 이끌다시피 하면서도 놀라운 속도로 세 바퀴를 완주했다. 지휘관은 군인의 불굴의 의지로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도전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기 상품이 준비되어 있어요. 정말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셨네요!
손을 꼭 잡고 달리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과속으로 인해 발이 거의 땅에 닿지 않았던 순간들은 다행히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예술 협회 관계자가 정성스레 포장된 초콜릿을 건넸다.
운동으로 생긴 허기를 달래려 포장을 뜯으려는 순간, 팔지가 재빨리 손을 저었다.
잠깐, 초콜릿은 아직 먹지 마.
먼저 이걸 받아.
팔지가 건넨 선물을 받는 순간, 기억 속의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포장지 안에는 정성 들여 만든 수제 초콜릿이 담겨있었다.
마음을 담아 전하는 선물하는 게 이날의 진정한 의미 아니야?
의리로 주는 초콜릿이든 진심을 담은 초콜릿이든... 네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여도 돼. 난 오직 이 하나만 정성껏 만들었거든.
말해둘 게 있는데, 서툴러서 여러 번 도전했어. 모양이 좀 투박하고 매장에서 파는 것처럼 화려하진 않아...
하지만 맛만큼은 자신 있어.
아... 미리 예상했더라면 초콜릿 만드는 법부터 제대로 익혀둘걸!
평소의 차분한 구조체와 달리 어쩔 줄 모르는 듯, 로봇 손으로 짧은 머리칼을 어설프게 쓸어 올렸다.
포장지에서 꺼낸 수제 초콜릿을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팔지는 지휘관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운동장을 세 바퀴나 달려도 미동 없던 구조체의 얼굴이 붉어진 듯했다. 석양 빛 때문이 아니라면... 착시일까?
솜사탕보다 달아?
다코야키보다 맛있어?
하... 다행이다. 왠지 달리기보다 더 숨차네...
밝아진 얼굴의 팔지는 지휘관과 함께 도시를 거닐었다. 그녀는 손안의 초콜릿을 매만지며 생각 속으로 잠겨 들었다.
정원 학교 시절엔 명절마다 학생들이 마음에 품은 이에게 건네려고 초콜릿 만들기에 열중했는데, 난 그런 추억을 만들어볼 기회조차 없었어.
이번에 직접 만들어보고서야 이해하게 됐어. 밤늦도록 애쓰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그 순간을.
그때엔 미처 누리지 못한 것들이 참 많았는데...
이제는 [player name] 동창과 함께라면 그 빈자리도 하나둘 채워갈 수 있겠어.
흠,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이런 감상에 빠지는 건 평소의 내가 아닌걸.
그녀는 양손으로 볼을 살짝 두드리더니 지휘관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여유가 있으니, 우리만의 은밀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겨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