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내용은... "동료에게 진심을 담아 고백하기"이네요.
너무 "직설적"인데요. 역시 황금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축제답네요.
세레나는 카드 뒷면의 글자를 읽었다. 그리고 카드를 가슴팍에 붙이고 지휘관을 돌아봤다.
지휘자님은 이런 도전이 별로이신가요?
세레나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지휘관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편지에 써왔던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전하는 거라 저한텐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세레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번에는 쉽게 꺼내지 못할 말을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한 고백을 그냥 길거리에서 하기는 좀 아쉽네요.
오페라처럼 좀 더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무대도 예쁘게 꾸며야 감정도 제대로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좀 제대로 준비하고 싶어요.
지휘자님... 저와 함께 준비해 주실래요?
음... 조용한 곳부터 찾아볼까요?
뚜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이랑 예술 협회 멤버! 드디어 찾았네요!
로봇 케이시가 나팔을 불어 뚜뚜 소리를 내면서 지휘관과 세레나 앞으로 달려왔다.
[player name] 님이랑 세레나 님! 두 분을 대극장의 임시 배우로 모시고 싶어서 왔어요.
꼭 와주세요!
케이시는 지휘관과 세레나의 손에 극장 임시 출입증을 재빨리 쥐여주고는, 반짝이를 뿌리며 나팔 소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대극장... 길 건너편에 있었던 것 같아요.
세레나는 티켓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지휘자님,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요. 한번 가보실래요?
그리고... 이 극장을 빌려서 도전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구경이나 할까 하고 극장에 왔는데, 들어가자마자 매표소 앞에 로봇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알고 보니 공연 예정이었던 로봇 극단이 약속을 어겨버린 모양이었다. 입구에 임시 배우 모집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오페라를 보러 온 로봇들이 입구 앞에 모여 주최 측에 따지고 있었다.
너무하잖아! 우릴 가지고 논 거야? 이게 말이 돼? *로봇 은어*, 환불해!
환불! 환불!!
너무하네요... 이렇게 많은 관객을 실망시키다니, 아티스트로서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거잖아요.
지휘자님, 우리가 도와드려야겠어요.
저만 믿으세요.
제가 지휘자님을 이 환상적인 이야기 속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지휘자님, 저만 믿고 모든 걸 맡겨주세요.
예술 협회 관계자의 임시 배우 지원 소식에 극장 측은 천만다행이라는 듯 곧바로 의상을 가져왔다. 지휘관과 세레나는 서둘러 대본을 익히고 간단한 연습을 마친 뒤 무대에 올랐다.
세레나 말로는 이번에 선택한 <폭풍우>는 아주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오페라였다. 지휘관이 맡은 정령 역할은 대사를 많이 외우지 않아도 됐고, 단지 미란다의 지시에 맞춰 반응만 하면 되었다.
막이 천천히 올라가고, 무대 중앙에 나선 세레나는 로봇 음악단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기 시작했다.
"위풍당당한 정령이여! 내 간절한 기도를 듣고 복수의 폭풍우를 아버지의 원수들에게 퍼부었느냐?"
"어서 오너라, 나의 종이여. 내 부름에 답하거라!"
극 중에서 밀라노 공작과 그의 딸 미란다는 간신들 때문에 황량한 섬으로 쫓겨났다. 12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들의 원수인 나브레스 왕이 섬 근처를 지나가자, 밀라노 공작은 섬의 정령에게 마법으로 폭풍우를 일으켜 그들의 배를 전복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배우가 부족해서 세레나는 밀라노 공작의 딸 미란다가 직접 복수를 하는 걸로 대본을 수정했다.
방금 급하게 외운 대본에 따르면 이제 무대에 올라가 세레나와 합류할 차례였다.
"아무도 죽지 않았지? 제발, 다들 무사하다고 말해줘."
세레나가 지휘관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세한 긴장감이 얼굴에 묻어났지만, 세레나는 능숙한 연기로 장면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다행이야. 모두 섬 곳곳에 흩어져 있고, 무사하더군. 내 기도를 들어줘서 고마워."
"정령, 난 증오에 사로잡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아."
"비록 내 육신은 진흙탕에 빠져있어도, 내 영혼만큼은 순결하게 지키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난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될 테니까."
"정령" 앞에 무릎 꿇고 앉은 "미란다 공주"는 가슴을 움켜쥐며 정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세레나의 연기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단순히 대본을 읽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독특한 미란다 공주를 표현하고 있었다.
관객석의 로봇들은 모두 넋을 잃고, 카메라 눈을 무대에 고정한 채 공연에 집중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복수는 내 목표가 아니야. 난 진정한 자유를 향해 나아갈 거야!"
세레나는 갑자기 속삭임을 멈추더니, "정령"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대본에 없던 대사인데, 또 각색한 건가?
"난 더 이상 여기서 그들의 뒤늦은 후회를 기다리지 않을 거야."
폭풍우를 뚫고 날아오르는 제비처럼,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거야!
세레나가 오른팔을 높이 들어 유리 돔 천장을 가리켰다. 그 찰나, 무대에 설치된 폭죽이 터져 올랐고, 반짝이는 리본들이 공중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이제 알았어. 이 섬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내가 찾는 자유도 여기엔 없어.
운명이 준 고통은 이미 오래전에 극복했어. 이제 그들이 아무리 울며 사과해도 더 이상 동정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저 배를 타고 이 좁은 섬을 벗어나자. 함께 세상 끝까지 가서... 별빛이 닿는 모든 곳을 함께 탐험해 보고 싶어.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가야 할 미래야.
세레나는 유리 돔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저 멀리 섬 밖에 진정한 "자유의 땅"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세레나의 "연기"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대사는 원작과 완전히 달라졌다.
미란다 공주는 대본 속 운명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결말에 다다랐다.
화려하게 흩날리는 반짝이 사이로, 세레나의 결연한 눈빛이 선명하게 비쳤다.
그리고 이번엔, 죽음조차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거야.
지휘관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지금의 세레나는 더 이상 "미란다"가 아닌, 자신의 속마음을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이 알아채기 전, 세레나는 살며시 다가와 지휘관의 귀에 속삭였다.
지휘자님을 위해 이 공연을 특별히 준비했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