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지휘관은 늘 그랬듯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가 눈을 가린 검은 천을 휙 걷어내고는 들뜬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하하하, 널 납치하면 많은 이들이 갈 곳을 잃고 우왕좌왕하겠지! 웰컴 투 "지옥"! 지휘관 씨, 이게 바로 진정한 악당이라고!
"납치"됐다는 상황을 파악한 뒤, 지휘관은 주변 환경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었고, 새들이 하늘에서 조용히 지저귀고 있었다. 옥상으로 보이는 이곳이 혹시 컨스텔레이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풍차가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으아아악...
"납치범"은 말을 마친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붉은 그림자가 옥상 가장자리에서 나타나 순식간에 그를 쓰러뜨렸다.
지휘관은 붉은 그림자를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다.
어라? 우리 "잠꾸러기"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네? 걱정 마, 이번엔 납치범이 아니야.
베라가 다가와 지휘관을 묶고 있던 밧줄을 천천히 풀었다.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내가 어제 네 메시지를 가로챘어. 왜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장난 같은 협박장을 봤는데, 너희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이거 가지고도 난리가 날 것 같더라고.
또 지난번처럼 될 게 뻔하잖아. 네가 어디를 가든 구조체 3명이 붙어 다닐 거고...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엔 좀 "자유롭게" 지내야 하지 않겠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잘 된 거 아니야? 악당도 때려잡았고, 자유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잖아. 그것도 완전한 자유로. 아무도 안 따라다니고 네 맘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베라가 입을 열려는 순간, 옥상 가장자리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악당" 무리가 고개를 내밀고는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저 둘을 잡아! 절대 놓치면 안 돼!
대장님의 원수를 갚자!
흥, 아직은 널 풀어줄 수 없겠네.
일단 숨자. 이렇게 좋은 날에 새벽부터 싸움이나 하고 싶진 않아.
베라는 순식간에 밧줄로 지휘관의 허리를 단단히 묶었다. 곧바로 옥상 문을 힘껏 차며 지휘관을 끌고 아래로 달렸다.
지휘관은 폐건물에서 살짝 열린 비상문을 발견했다. 하지만 손을 대기도 전에 베라가 갑자기 입을 막더니, 지휘관을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
베라는 지휘관의 코와 입을 막은 채, 조용히 뒤에 붙어 서서 자신의 발광 부품을 모두 껐다.
베라의 내부 순환 시스템마저 잠잠해졌고, 어둠 속에서는 가벼운 숨소리만 맴돌았다.
"악당"들이 쿵쾅대며 아래층으로 달려가는 동안, 정비실의 이 작은 옆문을 그냥 지나쳐갔다.
그럼 이제 충격적인 소식 하나 알려줄까? 사실 이번 납치 사건을 계획한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야. 넌 지금... 보스한테 잡힌 거라고.
하하, 농담이야. 설마 진짜로 믿었어?
아 진짜 재미없네. 재밌게 흘러가고 있는데 모른 척 좀 해주면 안 되나?
정비실이 워낙 좁아서, 허리에 밧줄이 없어도 둘은 바짝 붙어있어야 했다.
베라가 지휘관의 손을 잡았다. 생체공학 피부를 통해 인간과 다름없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자, 이제 나가자. 이제는 안전하니까 네 맘대로 해도 돼.
하지만 지휘관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하고 있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널 "잡아가는" 건 몰라도, 네가 내 일정을 물어볼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싫어.
베라는 "흥"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에 있던 지휘관을 밀어냈다.
혼자 가. 네 자리인 그레이 레이븐으로 돌아가. 매일 임무로 태양 보는 게 지겨울 만도 한데, 무슨 일출이야.
지휘관은 둘의 허리를 묶은 밧줄을 가리키며 살짝 당겼다.
밧줄이 살짝 흔들리자, 그림자 속에 있던 베라도 조심스레 반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 속도 못 따라올까 봐 묶은 거야. 혼자 뒤처져서 그 코스프레 로봇들한테 잡히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
유치하군.
둘은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서서히 떠올라 구름 한쪽을 베라의 머리카락처럼 붉게 물들였다. 반대쪽 하늘은 아직 깊은 밤의 푸른빛 속에 잠겨있었다.
베라는 그렇게 말없이 옥상 계단 끝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악당"들의 방해도, 다른 동료들의 동행도 없었다.
"내 시선이 드넓은 하늘과 맞닿았다... 사파이어처럼 아름다운 빛을 띠었고, 맑고 시원한 공기가 하늘 끝까지 가득했다."
아무것도 아냐. 저 태양 좀 봐. 노른자 같지 않아? 그것도 엄청 큰 온천계란처럼 말이야.
베라는 갑자기 지휘관의 눈을 바라보며 둘 사이의 밧줄을 꽉 쥐었다. 그 밧줄은 여전히 풀려있지 않았다.
원래는 뭐... "더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 이런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우리 이렇게 묶여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만족스러운 대답에 베라가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앙증맞은 송곳니가 은은하게 빛났다.
아쉽게도 나랑 좀 더 도망가야 할 것 같네! 하하하!
이 도시 위에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서 끝없이 "도망"가는 거야.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