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었고,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골목 상점들은 활기가 넘쳤고, 연인들은 이벤트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왔으며, 컨스텔레이션은 밸런타인데이의 분위기 속에서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 분홍빛 배경이 화려할수록,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누군가가 더욱 눈에 띄었다.
아침에 알파를 우연히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같이 구경할래?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따라와.
그때만 해도 알파는 드디어 축제를 즐기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반나절을 함께 돌아다녔는데도 알파는 어떤 이벤트도 참여하지 않았고, 인연 초대권 이벤트도 멀리서 구경만 했다.
조용한 건물 한 켠에서 벽에 기대어 있던 알파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시큰둥하게 지휘관을 쳐다보았다.
하고 싶으면 해. 말리진 않을 테니까.
알파의 태도를 보면 축제 이벤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 자발적으로 참여할 만큼 눈에 띄는 이벤트가 없었을 뿐이었다.
축제 분위기에 진짜로 녹아들게 하려면, 누군가 이끌어줘야 할 것 같았다.
지휘관은 주머니에서 인연 초대권을 꺼냈다. 방금 길모퉁이에서 스태프가 지휘관을 알아보고 건네준 것이었다.
진실 혹은 도전 말인가?
뭘 물어보든, 뭘 하든 상관없어. 단, 각오는 하고.
적어도 거절은 하지 않았다. 지휘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연 초대권을 펼쳤고, 그 위에는 눈에 띄는 색상으로 큰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도전! 상대방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벽치기'!"
벽치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참가자를 위해 아래에 동작 설명이 그려져 있었다. 상대를 벽으로 몰아 손으로 벽을 치는 모습은... 꽤나 과감해 보였다.
지휘관이 말을 잇지 못하자, 알파가 관심이 생겼는지 지휘관 쪽을 쳐다봤다.
"재밌는 거" 걸렸나 보네.
알파는 말없이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지휘관이 먼저 말을 꺼냈으니, 물러설 수 없었다.
잠깐...
지휘관이 다가오자 알파는 뭔가 말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한 걸음, 두 걸음... 말도 꺼내기 전에 지휘관은 이미 그녀 앞에 서 있었다.
……
알파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휘관을 쳐다봤다.
하지만 알파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알파는 지휘관의 손을 따라 잠시 옆을 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알파는 지휘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혹은 파헤치려는 듯 진지했다.
…………
서로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감정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로 가까워서, 처음에는 무심해 보였던 알파의 눈동자 속에서...
평소의 차분함과는 다른 미묘한 동요가 느껴졌다.
시선이 얽히면서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간이 흐르고 표정 관리가 한계에 다다를 즈음, 지휘관이 아무것도 하지 않자 알파의 눈빛에 의심이 스쳤다.
끝난 거야?
인연 초대권의 설명대로라면 여기까지가 미션이었다.
후...
알파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진짜 한숨인지 안도의 숨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인연 초대권 좀 줘봐.
알파는 말하며 지휘관의 다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지휘관이 쥐고 있던 인연 초대권을 꺼내 들고는 내용을 훑어봤다.
이게 다였군.
네 표정을 보니까 뭔가 대단한 걸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언제까지 그 자세로 있을 거냐는 거지.
알파가 지휘관의 팔 아래에 손등을 대고 살짝 위로 밀어 올리자, 손쉽게 빠져나왔다.
알파는 두어 걸음 밖으로 나와 골목을 바라봤다. 빛과 그림자에 가려져서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역시 예상대로 재미없네.
알파가 부담 없이 축제를 즐기게 하려고 했던 건데...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 같았다.
근데...
알파가 몸을 돌리자 햇살이 그녀의 입가에 비치며, 희미한 미소가 살짝 드러났다.
꽤 좋은 인내심 훈련이었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람이 휙 스쳤다. 지휘관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고, 어느새 등이 벽에 닿아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알파가 눈앞에 나타났고, 그녀의 손이 "쿵" 소리와 함께 벽을 내리쳤다.
방금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왔다. 단지 위치가 바뀌었고, 거리도 더 가까워졌다.
이따가 몇 장 더 뽑으러 가자.
비슷한 미션 걸리면 이번엔 내가 할 거야.
방금 네가 한 행동 대한 "대가"라고 생각해.
도망치진 못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