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맵07 겨울 요새
서버 시간 13:07
좌표 11.00#00.10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이 요새에 다시 들어왔다. 데이터로 복원된 겨울 요새는 붕괴 전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루시아는 기억을 되살려 일행을 유전자 공사 실험실 근처까지 신속하게 안내했다.
어두운 통로에 곰팡내가 가득했고, 눈앞의 탄흔, 움푹 파인 자국들 그리고 깨진 스크린과 뒤집힌 가구들이 이곳의 과거를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배양 탱크에서 탈출한 실험체들이 있나 봐요. 조심하세요.
루시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검은 그림자가 앞에서 스쳐 지나갔고, 쨍그랑하는 칼 소리와 함께 그 그림자가 튕겨 나갔다.
비켜.
붉은 뇌광이 공중에서 자유롭게 춤추며 도망치는 실험체들을 정확하게 쫓아가 그들을 산산조각 냈다.
뒷모습만 보이던 백발의 승격자는 태도를 칼집에 넣고 몸을 돌렸다.
여기에 왜 온 거지? 겨울 요새엔 너희들이 찾고 있는 BUG는 없다.
일행은 알파가 지휘관의 처지와 방문자들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지? 난 승격 네트워크에서 이런 종류의 시뮬레이션은 수도 없이 봐왔다. 인간들의 수작 따위는 내게 더 이상 새롭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NPC가 되고 나니 이렇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지.
난 너희들이 설정해 놓은 속박 따위는 쉽게 벗어날 수 있지만, 이 세계는 너무 작아서 싸울 의욕도 나지 않더군.
게다가 너희들도 지금 큰 골칫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흥, 자승자박이군.
하지만 알파에게서는 "파괴 정보"에 오염된 몬스터들과 같은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를 들어보니, 방금 도움을 준 것도 단순히 기분에 따른 행동인 것 같았다.
알파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짜증 내지 않았고, 꼭 타파해야 할 상황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단순히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파괴 정보"를 물리치는 걸 도와줘.
게임 데이터의 일부인 너라면, 그 BUG의 위치를 알고 있을 텐데.
거절하겠어.
예상했던 거절이 들렸다.
내겐 아무런 이득도 없는 걸 왜 그래야 하지?
이 BUG는 게임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위협으로 보지 않아. 위험한 건 너희 같은 플레이어 계정뿐이야.
왜 그렇게 확신하지?
"파괴 정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데이터를 흡수하면서 성장하고 있어.
언젠가는 외부 데이터만 사냥하는 게 싫증 나서, 주변에 있는 더 손쉬운 존재들에게 눈을 돌릴 거야. 지금 우리와 함께 그들을 물리치는 건 너에게도 이로운 협력이야.
아니면 다른 걱정거리라도 있는 건가?
눈썹을 찌푸린 알파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때,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알파의 통신 장비에서 들렸다.
언니, 그들은 내 "대행자"라는 상태 정보를 노리는 것 같아.
직접 상대하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난 일단 이중합 탑 근처에서 저들을 막아볼게.
게임 세계에 오랫동안 외부인의 방문이 없었기에 알파의 통신 시설은 스피커 모드가 기본 설정이었다. 그 덕분에 이 대화를 자리에 있던 모두가 똑똑히 듣게 됐다.
루나는 서둘러 말을 끝내고는 알파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통신을 끊어버렸다. 그쪽 상황이 매우 긴박한 듯 보였다.
알파가 했던 말은 저절로 무너졌지만, 그녀는 일행에게 추가 설명을 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려 바로 떠나려고 했다.
백발의 승격자가 걸음을 멈췄다.
나 혼자서도 내 동생은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루나는 내 동생이기도 해.
몇 초간 침묵한 알파는 화제를 바꾸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심층 학습으로 시뮬레이션 된 상태 정보일 뿐이다. 진화를 추구하는 이 데이터 포식자들과 싸워야 하는 운명이지.
너희들은 이런 결과도 없는 싸움에 끼어들 필요 없다. 어서 게임에서 로그아웃하는 게 좋을 거야.
강제 로그아웃 기능은 그들에게 장악당했어. 강제로 연결을 끊으면 지휘관님의 의식의 바다에 부담이 될 거야.
그래서 소스 코드에서 그 BUG를 제거해야만 안전하게 나갈 수 있어.
쳇, 저것들이 벌써 이렇게 귀찮아진 건가?
알파는 낮은 소리로 혀를 찼다.
알았다. 따라와.
하지만 넌 우리와는 다르니까, 조심해라. 방어력을 무시하는 특수 몬스터를 만나면, 내가 처리하지.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나도 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시간이 없어. 출발하자.
특별 맵011 이중합 탑 외곽의 폐허 도시
서버 시간 13:37
좌표 72.45#32.87
파괴 정보로 시뮬레이션 된 "적조"가 폐허가 된 거리를 계속 덮쳤다. 이것들은 진짜 적조가 아닌, 적조의 포식 특성을 시뮬레이션한 정보의 흐름이었다. 이런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도 전투 영상을 심층 학습한 결과일 것이다.
루나가 혼자 부서진 건물 옥상에서 "적조"를 막아내고 있었다.
루시아의 추측대로 파괴 정보는 이제 외부 계정을 사냥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맵에서 정보 밀도가 높은 이중합 탑과 "대행자"의 상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루나를 노렸다.
이런 고급 데이터가 삼켜지게 된다면, 게임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루나는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롤랑과 라미아를 각 맵으로 보내 그것들을 막도록 했다.
알파가 여러 명을 데리고 도착하자, 루나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지만,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언니가 너희와 협력하기로 한 모양이군.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그 BUG의 근원... 너희가 말하는 "파괴 정보"는 바로 데이터로 복원된 이 이중합 탑 안에 숨어있다.
흥, 어느 세계든 이 탑이 소용돌이의 중심이군.
너희가 이 귀찮은 적조를 막아준다면, 내가 언니와 탑 안으로 들어가서 저들을 해결할 수 있다.
작전 계획은 단순하군.
이건 내가 설계한 자기장 실드다. 일단 받아둬라.
루나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몇 개의 빛나는 점이 그녀의 손바닥에서 떠올라 천천히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점이 몸에 닿는 순간, 각자의 가방 안에 장비 한 세트가 갑자기 생겨났다.
현실에서도 할 수 있는데, 다음엔 네가 직접 체험해 볼래?
역시 넌 유머 감각이 없어.
하지만... 그래서 너다워.
루나는 살짝 웃으며 등의 날개를 펼치고 이중합 탑 쪽으로 날아가려 했다.
그 순간, 잠잠하던 적조의 바다가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시뮬레이션 된 적조에서 생겨난 수많은 허상이 메마른 손을 뻗어 루나의 발목을 꽉 붙잡았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루나는 공중에서 급격히 추락해 적조에 빠질 뻔했다.
이곳의 루나는 진정한 대행자의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일 현실과 같았다면 이런 정보 스트리밍 따위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루나가 허상의 근원을 깨달은 순간, 극도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의미 없는 모방품 주제에 남의 기억을 마음대로 엿보지 마라!
발끝이 수면에 닿기 직전,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은 루나는 정보 스트리밍으로 이루어진 허상들을 베어냈다.
하지만 또 다른 허상들이 빠르게 달라붙으며, 무방비 상태인 루나의 등을 노렸다.
루나!!!
알파와 루시아는 동시에 태도를 뽑아 들고 적조 속으로 뛰어들었다.
칼날이 번쩍이면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허상들은 몸에서 끈적한 붉은 진흙을 내뿜으며 아무런 비명도 내지 못한 채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그 붉은 액체는 다시 새로운 허상으로 뭉쳐져 셋을 향해 말없이 걸어왔다.
순식간에 적조 속은 그림자들로 가득 찼지만, 모두가 얼굴이 흐릿해서 알아볼 수 없는 허상뿐이었다.
"어떤 개체의 의지에도 속하지 않는 증오", 루나는 과거에 이런 적을 상대로 승리했었다.
심층 학습 논리는 획득한 자료로 충실히 재현하고 확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게임 세계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이점들을 정확하게 부여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렇게 까다로운 강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루시아, 지금 갈게요!
리브가 긴 활을 꺼내 들고 적조로 뛰어들려는 순간, 루시아의 손짓을 눈치챈 이스마엘이 그녀를 막았다.
잠깐, 루시아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오지 마세요. 여러분은 알파와 루나가 이중합 탑으로 가는 걸 엄호해 주세요.
알파, 이곳은 내가 막을 테니, 넌 루나와 어서 가.
소용없어. 저들은 내가 "대행자"라는 상태 정보를 쫓아오는 거라 너한텐 관심도 없을... 잠깐.
루나의 말은 끝맺지 못한 채 멈추고 말았다.
시뮬레이션 된 적조가 루나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루시아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루나는 루시아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백금색 코팅 기체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새로운 Ω 코어 특화 기체군. 저들에겐 신선한 고급 정보원이 되겠어.
하지만 저들은 네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지휘관님께서 무사히 로그아웃할 때까지만 버티면 돼.
게다가 네가 준 "이게" 있잖아.
루시아는 태도를 내려놓고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 달빛 같은 하얀 구슬이 환하게 빛났다.
고마워. 루나.
이번엔 반드시 내가 너희를 지켜줄게. 믿어줘.
언니.
루나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마음속으로 억눌러버렸다.
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알파의 손을 잡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따라와라. 저 탑 안에서 모든 걸 끝내자.
루시아가 벌어준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넌 누구보다 루시아를 믿잖아. 안 그래?
이번엔 내가 너한테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됐군. 그쪽의 "내"가 이걸 봤으면 좋았을 텐데.
탁정에 타라. 내가 이중합 탑까지 데려다줄게.
지휘관이 탁정의 뒷자리에 앉자, 알파는 번개 같은 속도로 달리며 적조에서 생겨난 허상들을 날려버렸다. 덕분에 일행은 도시 중심부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루시아는 일행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뒤따랐다. 지휘관이 고개를 들자, 유성 같은 불빛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다가, 찬란한 불꽃을 터뜨린 후 옆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루시아가 허상들을 잠시 막아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언제 붉은 이름의 몬스터들이 허상 속에서 다시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리브와 리의 경고가 떠오르자, 마음이 다시 급해졌다.
루시아가 걱정돼?
앞좌석에서 전속력으로 운전하던 알파가 왜인지 모르게 뒷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난 네가 루시아는 무조건 믿을 줄 알았는데.
흥... 그래도 네가 루시아 곁에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성장했겠지.
다음엔 직접 말해줘. 루시아가 엄청나게 기뻐할 거야.
꽉 잡아! 급정거할 거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정은 거대한 벽 앞에서 급정거했다. 지휘관은 관성 때문에 앞쪽의 알파와 거의 부딪힐 뻔했다.
하지만 정신 차려 보니 그건 벽이 아닌 거대한 붉은 이름의 몬스터였다.
물러나.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거야?
알파가 탁정에서 내려 커다란 대도를 꺼내려는 순간, 익숙한 불빛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모두의 시야를 밝게 비췄다.
여기서 멈추면 안 돼. 이건 나한테 맡겨.
전에 말한 걸 잊었어? 이런 몬스터를 만나면 내가 처리한다고 했잖아.
알파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한 걸음 내딛자, 기체에서 번개가 터져 나왔다.
[player name], 이제 혼자 가라. 루나가 그쪽에 있을 거다.
그리고 이쪽은... 함께 싸운 지 오래됐는데, 날 실망하게 하지 마.
그럼, 직접 확인해 보든가!
...
적조가 넘실거리는 거리를 지휘관은 끊임없이 달렸고 몇 번이나 허상들에 쫓길 뻔했지만, 이스마엘 일행의 지원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데이터로 복원된 가상 백야 기체의 출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게임 속이라 리브의 의식의 바다에는 부담이 가지 않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조금씩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루... 루나가 보여요!
리브, 마지막 구간은 지휘관님을 모시고 날아가요!
네!
백야 기체의 날개가 펼쳐지자, 지휘관은 리브의 팔에 몸을 맡기고 끝없는 적조를 날아서 건넜다.
이중합 탑 앞에 선 루나는 마지막 섬멸을 위해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이제부터 너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백발의 대행자 소녀가 손끝을 들어 올리는 순간, 블랙홀 같은 에너지가 공중에서 모여들었다.
루나는 허상들을 향해 오른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모두 사라져 버려!
쿵쾅!
거대한 진동이 이중합 탑을 뒤흔들었지만, 이 격렬한 폭발을 일으킨 주인공은 루나가 아니었다.
먼지와 불빛 속에서 눈을 뜬 일행은 전에 마주친 거대한 붉은 이름의 몬스터가 눈앞에 보였다. 몬스터는 루시아와 함께 이중합 탑의 외벽을 뚫고 더 깊숙한 경계 밖 구역으로 돌진했다.
그 구역은 원래 직접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지만, 침식된 몬스터가 이 제한을 강제로 돌파한 것이었다. 그 결과 루시아와 몬스터는 몸의 정보가 붕괴하여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일행을 이중합 탑으로 호송하려던 루시아가 오히려 가장 먼저 탑 내부의 경계 밖 구역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일행은 재빨리 이중합 탑으로 들어가 경계 밖 구역으로 진입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루시아의 흐릿한 뒷모습만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가상 서염 기체에 노화의 흔적과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루시아는 아머가 부서져 나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몬스터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루시아, 들려요?
리브, 부유 캐논으로 차단막을 공격해 보세요.
소용없다. 저건 "공기 벽"이다. 안쪽에서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고, BUG에 침식된 몬스터만이 경계 밖 구역과 일반 구역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루시아의 정보가 실제로 사라진 건 아니다. 그녀의 기체가 노화되는 게 보인다는 건, 정보가 점점 "숨겨지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루시아가 몬스터들과 직접 싸우는 걸 피하려고 했던 거야.
내가 말했을 텐데, 이 게임 세계는 모든 이에게 각자의 규칙 제한이 있다. 설계자가 정한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것도 그중 하나지.
하지만 침식된 몬스터들은 이 제한을 쉽게 뚫을 수 있으면서도 규칙의 처벌은 받지 않는다.
루시아가 격리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어서 결정해야 한다.
알파. 그럼, 너희는? 어떻게 하고 싶지?
너희는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어. 그리고 우리를 돕는 게 너희가 말한 경계를 위반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여기서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질 건가?
...
루나가 말하려는 순간, 알파가 먼저 대답했다.
내 신조는 늘 하나뿐이었다.
그건 어느 세계에 있어라도, 내 마음을 따르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더 이상 쓸데없는 대화는 그만하지.
너희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만 말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내가 결정할 거니까.
리와 리브는 지휘관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들은 지금 지휘관의 생각이 자신들이 하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파와 루나의 표정은 살짝 긴장돼 보였다. 하지만 지휘관이 내릴 결정을 믿기로 했다.
이스마엘은 말없이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지휘관이 할 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의 입에서 직접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미친 후 몇 초가 지나자, 루시아의 흐릿한 그림자가 경계 밖 구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루시아의 위치 신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스크린에서 몇 초간 깜빡인 후 단말기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하지만 지휘관의 부탁을 들은 알파는 아무것도 없는 경계 밖 구역을 보지 않았고, 반대 방향인 이중합 탑 상층부로 향했다.
그럼, 서둘러야겠군. 시간이 별로 없어.
루나, 저 꼭대기의 골칫거리를 해결하고, 녀석들이 빼앗아 간 로그아웃 권한도 되찾아오자.
루시아는 너희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이스마엘은 재빨리 몸을 돌려 루시아가 사라진 방향을 쫓아 플랫폼을 떠났다.
지휘관 일행이 떠난 후, 루나는 조용히 알파의 발걸음을 뒤따라갔다.
언니도 지휘관 때문에 많이 변한 것 같아.
내가? 틀렸어.
백발의 승격자는 청 푸른 번개가 감도는 태도를 다시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칼날을 눈앞으로 들어 올려 끈질기게 달라붙는 허상들을 겨누었다.
난 여전히 나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