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산책하다 보니 어느새 숲에 도착했다. 컨스텔레이션이 이렇게 넓은 녹지 공간을 남겨놓았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매미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멀지 않은 곳에서는 반딧불이가 쌍으로 날아다녔다. 이게 기계체가 만들어낸 시뮬레이션인지 아니면 진짜 곤충들이 서식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낮은 수풀 옆을 지날 때, 멀리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좋아요. 우리 연극 제목은 <가장 비극적인 희극, 그리고...
목소리가 매미 소리에 묻혀 희미했다.
명단대로 여러분의 배역을 불러주세요. 그리고 여러분, 좀 떨어져 서 주세요.
어디서 들어본 대사 같았다.
소리를 따라가자 시야가 트였고, 숲속 공터에서 몇몇 기계체들이 무언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지휘관님.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돌 위에 앉아있던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세레나는 옆자리를 비워주며 지휘관에게 앉으라고 했다.
세레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한여름 밤의 꿈>이에요.
숲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숲속에서 연습하고 있어요.
기계체들은 이곳이 실제 무대인 듯 자연스럽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연기에 몰입해 있었다.
새들과 곤충들 그리고 이 초목들을 빼고 말씀하시는 거라면요.
바람이 불어와 꽃잎 하나가 세레나의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 옆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되니 둘도 극중 인물이 된 것 같았다.
둘은 잠시 말없이 연기하는 로봇들을 바라보았다.
피라모스가 누구죠? 연인인가요, 아니면 폭군인가요?
이 연극을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보고 싶어지네요.
작가 본인조차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새로운 생각이 들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예전에 썼던 것들을 떠올려야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세레나가 특별한 표정 없이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서로 마주 보는 동안에도 세레나의 눈에 숨겨진 과거나 현재의 심정을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저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죠.
그때는 지휘관님과 등장인물들, 줄거리 또는 극중 인물들의 운명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괜찮아요. 지휘관님.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누구도 우리의 미래를 쓰거나 논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니까 모든 걸 그냥 이대로 흘러가게 두시죠.
그래야만 이런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세레나는 시냇물처럼 맑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계체들은 관객들의 대화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연기를 이어갔다.
지휘관도 세레나와 암묵적으로 침묵을 지켰다.
짧은 시간이었네요.
세레나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그 모습이 별빛 아래 아이리스 한 송이가 우아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세레나는 어디선가 펜 하나를 꺼냈다. 그 펜은 풍파를 겪은 듯했고, 그것이 주인과 줄곧 함께였는지 아니면 어떤 폐허에서 주워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휘관님, 손 내밀어 주시겠어요?
의아했지만 세레나가 하자는 대로 했다.
세레나가 지휘관의 손바닥을 펼쳤고, 바람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한 향기가 전해왔다.
세레나가 지휘관의 손바닥을 펼쳤고, 바람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한 향기가 전해왔다.
손바닥에 간지러운 듯한 가벼운 따끔거림이 전해졌다.
아직 보지 마세요.
세레나가 몸을 숙여 인사했다.
길 잃은 연인이 찾아올 거예요. 장난기 많은 요정이 이곳에 팬지 꽃물을 떨어뜨릴 테고요.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장 비극적인 희극일지라도 저는 막이 내릴 때까지 연기할 거예요. 지휘관님.
티스베는 누구죠? 떠돌이 기사인가요?
피라모스가 반드시 사랑해야 할 여인이에요.
공연은 계속되었고, 이런 고요함이 한동안 이어졌다. 소녀가 잡아달라던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있었다.
세레나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것은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단 몇 글자였지만, 마침내 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곧 다시 사라질 운명의 답장이 눈앞에 전해졌다.
한여름 밤, 인간은 특별한 감정을 안은 채 조심스럽게 손바닥의 잉크를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