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갈 무렵, 정원 광장 밖 불꽃놀이가 커플로 온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정원 광장 한쪽 구석에서 하얀 기계체가 혼자 장의자에 앉아 눈앞의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관님?
이것들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보세요.
갈색 아마천에는 미적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낙서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곳곳에 어지럽게 그려진 도형들과 서명들이 널려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 관람객들이 남긴 것들입니다.
검색 결과에 따르면, 황금시대 공공장소에서도 이와 비슷한 물건들을 두어서 방문객들이 낙서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그림 실력과는 관계없지만, 그린 사람의 당시 감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 "기록"이 떠올랐습니다. 지휘관님께서 그림으로 매일을 "기록"하라고 추천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계산해 보니, 낙서에 참여한 관람객들은 거의 100% 확률로 남은 생애 동안 이 "기록"을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입니까?
하카마 옆에 앉아 캔버스를 바라보니, 곳곳에 커플들의 낙서가 보였다. 심지어 어떤 이름들은 하트로 둘러싸여 있기도 했다.
그런 겁니까?
인간이 팔레트를 무릎 위에 올려놓자 기계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좋습니다. 지휘관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 속에서 장의자에 앉은 인간이 안료를 섞으며 어디서부터 그릴지 고민했다.
하지만 하카마는 재빨리 조색하여 붓을 들어 올렸지만, 팔이 공중에서 멈춰버렸다.
한참이 지나, 마지막 노을빛이 하늘에서 사라질 무렵, 인간은 이미 그림의 구상을 마쳤으나 하카마는 아직도 붓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고 싶은데, 몇 가지 방안의 데이터 예측이 거의 비슷합니다.
지금 그리고 싶은 것 말입니까?
?
살짝 힘을 주어 붓을 눌러서, 하카마와 함께 첫 번째 색을 칠했다.
지휘관님 손바닥의 온기가... 기억 속 그것과 똑같습니다.
기계체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집중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이 낙서들 사이를 정교하게 움직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름다운 백합꽃이 캔버스 위에 피어났다.
층층이 겹친 꽃잎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 위로 원래 있던 어지러운 낙서들이 아침 이슬처럼 맑게 비쳐 보였다.
낙서들을 지우는 대신 꽃잎 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여 백합꽃 그림의 일부가 되게 했다.
캔버스에 남겨진 모든 기쁨과 추억이 기계체의 붓 아래서 색채로 피어났다.
지휘관님, 이 그림은 어떻습니까?
데이터 분석 모듈을 끄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작품이어야 지휘관님과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하기에 충분할지를 말입니다.
불꽃 하나가 밤하늘을 가르며 은하수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인간이 고개를 들자, 하카마는 상대방 얼굴에 묻은 물감 자국을 발견했다.
그림 그리실 때 조금 부주의하셨나 봅니다. 얼굴과 캔버스 사이 거리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하카마가 손을 뻗어 인간의 얼굴에 묻은 물감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지휘관님을 보니 그 오래된 전설이 또 떠오릅니다.
거문고자리 α와 독수리자리 α가 주기적으로 만날 수는 없는데도, 사람들은 특별 이벤트 때면 둘이 서로 만난다고 믿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저도 소원을 빈 적이 있습니다. 매년 이날만큼은 우리가 만날 확률이 100%이기를 바란다고 말입니다.
매번 재회할 확률이 희박한데도, 지휘관님은 항상 제 곁에 나타나셨습니다.
전설처럼, 은하수를 건너 오작교를 지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카마가 은하수를 올려다보자, 불꽃들이 깊어지는 밤하늘을 수놓으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졌다.
수천수만 년 전의 빛이 현재의 불꽃과 함께 어우러져 색채의 향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날씨가 좀 쌀쌀해졌습니다. 제가 항온 시스템을 켰으니, 괜찮으시다면 이쪽으로 좀 더 가까이 오셔도 됩니다.
오늘 밤, 지휘관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아직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