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정원
컨스텔레이션으로 출발하기 전
교차하는 긴 복도를 지나 다음 교차로에서 발걸음을 늦추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왼쪽 갈림길로 접어들었다.
통로의 양쪽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고,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번호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문이었다.
계속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마침내 가장 깊은 곳, 가장 마지막 번호가 붙은 문 앞에서 멈췄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한참 후에야 안에서 조심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누구?
문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굳게 닫혀있던 문이 순식간에 열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도 전에 옷깃이 잡힌 듯한 느낌과 함께 안으로 휙 끌려들어 갔다.
창고 같은 방 안에서 분홍 머리 구조체가 살짝 열린 문 앞에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밖을 살피고 있었다.
휴가 기간이라서 다들 평소처럼 자기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넌 워낙 유명하니까.
탁자 위에 나란히 놓인 두 잔의 홍차 중 자신의 것을 찾아 옆 칸에서 찻잎을 꺼내 차를 우렸다.
한 모금 마시니 온도나 맛이 딱 좋았다.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법이거든.
카레니나는 절대 상상도 못 할 거야. 내가 정비 부대 창고에, 그것도 바로 그녀의 눈앞에 숨어 있을 거라고.
여기 찾느라 고생 좀 했다고. 너만 아는 곳이니까 절대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해. 난 다른 곳을 또 찾고 싶진 않거든.
테디베어는 밖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문을 꼭 닫았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 반이나 남아 있잖아.
그리고 미리 말해 주지... 갑자기 노크하니까 놀랐어.
테디베어는 소파로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지휘관의 손에 있던 홍차 잔을 집어 들었다.
이건 나의 보상이라고 생각할게~
괜찮아. 난 맛에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으니까.
테디베어는 소파에 웅크린 채, 손가락을 튕겨 단말기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공중에 투사했다.
스크린은 세 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왼쪽과 가운데는 빽빽한 글자들이, 오른쪽에는 컨스텔레이션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조감도가 보였다.
말도 안 돼. 내가 휴가 때 일할 리가 없잖아.
테디베어는 옆의 빈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자, 여기 앉아봐. 컨스텔레이션 여행을 즐기기 위해 만든 완벽한 공략을 보여줄게.
테디베어 옆에 앉은 지휘관은 그녀가 손가락을 휘저으며 왼쪽과 가운데 목록의 내용을 오른쪽 지도의 좌표와 하나씩 매칭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난번 공중 정원에서 잡아준 단체 숙소는 방도 작은 데다 인터넷도 느려서 게시판 하나 보는 데도 한참 걸렸잖아.
이거 봐.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객실과 프라이빗 비치! 거기에 내려가면 바로 해변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전용 광케이블이 있어서 인터넷 속도가 진짜 끝내준다는 거야!
그리고 선셋 록, 해저 산책로, 씨 솔트 피싱 빌리지...
다 내가 조사해서 엄선한 곳들이야. 루트도 프로그램으로 계산했으니까, 하루 안에 모든 곳을 다 체험할 수 있어.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공략 계획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테디베어가 손가락을 가로로 쓸자 세 개의 스크린이 하나로 합쳐지며 웅장한 무대가 나타났다.
캠프파이어 콘서트~
캠프파이어 콘서트는 예전에 테디베어가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 규모가 크고 실력 있는 밴드들이 많이 참가한다고 했다.
자, 서프라이즈! 이게 뭔지 알아?
테디베어가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티켓 두 장을 꺼냈다.
받아서 보니 놀랍게도 캠프파이어 콘서트 티켓이었고, 그것도 앞줄 귀빈석이었다!
레오나르도 그 녀석이 큰일은 믿을 게 못 되지만, 이런 자잘한 일에는 의외로 쓸만하단 말이지.
어때? 지휘관.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되지 않아?
전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그 짧은 순간, 테디베어는 이미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 버렸다.
테디베어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 제복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옷을 갈아입어야 해. 누가 휴가 때 제복을 입고 다녀...
해변에 어울리는 옷 없어?
컨스텔레이션에 기계체가 운영하는 옷 가게가 있어. 재단이 빠르니까 거기가 딱 맞아. 내가 너를 위해 디자인한 옷이 몇 벌 있는데, 하나 골라볼까?
참고로 하나 더 알려줄게, 그 옷 가게에는 깜짝 선물도 숨겨져 있어. 기대해 봐.
테디베어의 말투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지휘관은 그녀가 이렇게 신나 하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터라, 자신과의 여행을 정말 기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갑작스러운 업무 때문에 같이 놀러 갈 수 없을 거 같아"라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 디자인 중에선 이게 제일 좋을 것 같아. 색감이...
지휘관, 표정이 왜 그래?
뭔가를 눈치챈 듯, 테디베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지휘관 쪽으로 몸을 돌린 뒤, 한동안 유심히 살펴보았다.
잠깐만... 뭔가 숨기는 게 있어?
흠, 누굴 속이려고? 지난번에 회의 중에 졸던 사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지~
솔직히 말해, 무슨 일이?
들통나 버렸다.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응?
……
테디베어의 눈썹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럴 수가...
테디베어가 단말기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너의 스케줄을 확인해 봤는데, 별다른 일정은 없던데—
테디베어의 눈이 커지더니, 스크린을 넘기던 손가락이 멈췄다.
당직? 언제 추가된 거지?
테디베어의 의아한 눈길을 마주한 지휘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게 뭔데? 난 들은 적 없거든?
전원 추첨으로 열 명을 뽑는데, 네가 뽑혔다는 거야?
그럼, 이 공략은 전부 헛수고였다는 거야?
……
테디베어는 침묵에 빠졌다. 좀 전의 들뜬 모습과는 정반대의 침묵이었다.
이 침묵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지만, 결국 지휘관의 문제로 테디베어의 기대와 정성스레 준비한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알겠어... 그런 거였구나.
무거운 한숨 소리에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
어쩐지 내가 설계한 프로그램 오류가 지휘관 때문이었군!
지난주에 너한테 보여줬던 그거. 내가 설계한 프로그램에서 왜 오류가 났는지...
알고 보니 지휘관 때문이었군. 애초에 "가동" 버튼을 누르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의 나쁜 운이 전염됐나 봐.
왜 그렇게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거지? 전원 추첨이었고, 열 명만 뽑는데 너 뽑혔잖아. 이제 와서 운이 나쁜 게 아니라고 할 거야?
근데, 하하하... 전원 추첨으로 열 명만 뽑았는데, 네가 당첨됐다니, 하하...
쿨럭, "존경하는 [player name] 님. 휴가 기간에 이런 식으로 근무하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재 당신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테디베어가 마이크를 잡은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더니, 웃음을 참으면서 진지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대가 무너진 서글픔도, 열심히 준비한 계획이 물거품이 된 아쉬움도 없이, 그저 남의 불행을 즐기는 듯한 미소만이 입가에 걸려 있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방금 표정이 심각해서 컨스텔레이션이 폭파라도 된 줄 알았는데, 고작 이런 일이었군.
그나저나, 이렇게 낮은 확률을 뚫고 당첨됐다니, 진짜 운이 없네. 하하...
왜 아직도 그런 표정이야? 설마 내가 착한 언니처럼 머리 쓰다듬으며 "괜찮아"라고 해 주길 바라는 거야?
장난하지 마. 빅토리아가 너보다 더 어른스럽잖아.
장난스러운 전개였지만, 우려했던 무거운 분위기는 없었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훨씬 가벼워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얌전히 당직을 설 건가? 아니면...
당직 구역은 폐기된 아파트로,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공중 정원이 조사를 몇 번 했지만, 매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직의 목적은 아파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 막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사고를 치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그래서 지휘관은 이 폐기된 아파트의 진상을 빨리 밝혀낸다면, 남은 시간에 테디베어와 함께 원래 계획했던 대로 놀러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는 좋긴 한데, 너는 어디까지 조사했어?
통지를 받자마자 바로 여기에 달려왔기 때문에 제대로 조사를 해볼 시간조차 없었다.
이런 괴담 같은 사건은 단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단서 수집"만 해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려. 게다가 단서들끼리 서로 모순되거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워.
짧은 시간 안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더라도, "과거"만 알게 되는 거야. 과거를 토대로 현재의 진상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야.
지금 진행 상황이 제로인데, 설마 운에 맡길 생각이야? 그... "운"으로?
혼자서는 당연히 늦었지.
하지만 네트워크에 능숙하고, 정보 수집과 단서 분석이 빠르고, 거기다 머리까지 똑똑한 조수가 있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런 우수한 인재를 찾기는 쉽지 않은데, 마침 내가 아는 이가 있어. 조건도 다 맞고, 가격도 적당해. 체리 맛 전해액 한 잔이면 되거든.
어때, 지휘관. 고용할래?
휴가 시간을 활용한다면...
한 번 해봐도 되잖아. 어쩌면…
지휘관은 고개를 저으며 테디베어의 말을 끊었다. 운이 없는 건 자신의 문제일 뿐, 그녀가 그토록 기대하던 휴가까지 망치고 싶지 않았다.
어라, 정말 고용 안 할 거야? 지금은 체리 맛 전해액 한 잔이면 되는데, 나중엔 가격이 올라서 원해도 고용 못 할지도 몰라.
아니면... 날 무시하는 건가?
턱을 치켜든 테디베어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흥, 그럼 이제...
잠깐만!
테디베어가 벌떡 일어나 앞의 테이블을 팡 하고 내리쳤다.
반쯤 비어 있는 전해액을 가리키자, 테디베어는 입을 열려다 말고 다시 다물었다.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테디베어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 빨리 가.
테디베어가 손을 휘휘 저었다.
지휘관이 떠나고 방은 조용해졌다. 테디베어는 소파에 웅크린 채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테디베어는 옆으로 돌렸던 머리를 바로 하고 분홍빛 눈동자로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열려 있는, 아무것도 없는...
열려 있는?
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두 걸음에 달려가 문손잡이를 꽉 잡고 쾅 닫아버렸다.
나갈 때 문 좀 닫고 가라고!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던 테디베어는 잠시 문에 머리를 기대더니, 이내 힘이 빠진 듯 비틀거리며 천천히 소파로 돌아와 털썩 누워버렸다.
그리고 시선은 테이블 위에 놓인 캠프파이어 콘서트 티켓 두 장과 단말기 스크린의 공략을 지나, 컨스텔레이션 조감도에 표시된 기계체가 운영하는 옷 가게에서 멈췄다.
터치하자 메시지가 하나 떴다.
"고객님, 주문번호 KH7004215303642가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코팅 커스텀과 관련된 상담은 고객센터로..."
지휘관한테 제일 먼저 평가받고 싶었는데...
테디베어는 소파에 옆으로 누워 손가락으로 아무 생각 없이 단말기 스크린을 터치했다.
정신 차려고 보니, 자기도 모르게 "컨스텔레이션", "폐기된 아파트"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멍하니 있다가 테디베어는 스크린을 끄고 단말기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소파에 엎드려 쿠션에 얼굴을 파묻었다.
필요 없다고 한 건 지휘관이잖아...
그러다 십여 초도 안 돼서, 분홍 머리의 구조체는 벌떡 일어나 던져뒀던 단말기를 주워들었다.
스크린을 켜자 방금 검색했던 컨스텔레이션의 폐기된 아파트에 관한 내용이 보였다.
도시 전설... 이상한 소리...
테디베어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컨스텔레이션의 밤
폐기된 아파트 입구
최선을 다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미리 파악하는 덴 결국 실패했다.
이 불행한 소식을 단말기로 테디베어에게 보내자, 그녀는 약 올리듯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라고 말하는 브라우니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성실하게 순찰 구역을 돌았지만, 정말...
처음부터 지금까지 눈에 띄는 건 텅 빈 공간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컨스텔레이션에 화려한 야경이 가득한데, 굳이 이런 황폐한 폐허에 일부러 들어올 리 없었다.
결국 순찰이라는 게 그저 이리저리 서성이거나, 긴 풀 줄기를 뽑아 귀찮게 달라붙는 모기떼나 쫓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생각을 하니...
남서쪽을 바라보니 캠프파이어 콘서트의 현란한 조명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쪽과는 다르게, 테디베어는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을 게 분명했다.
너무 신난 나머지 잊어버린 것 같았다. 테디베어는 브라우니 이모티콘을 보낸 뒤로 약속했던 영상은 물론, 어떤 메시지도 보내오지 않았다.
찰싹...
얼음같이 차가운 무언가가 볼에 닿자,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게으름 피우는 거 딱 걸렸어. 근무 중에 이렇게 느긋하다니, 설마 월급 깎이고 싶은 건 아니겠지?
옆을 보니 분홍 머리의 구조체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방울이 맺힌 차가운 캔을 들고 있었다.
받아—
정신을 차렸을 땐, 체리색 캔이 이미 눈앞에 있었다. 지휘관은 허둥지둥 손을 뻗어 가까스로 캔을 받아냈다.
차가운 음료가 손바닥에 닿자 그 냉기가 정신을 들게 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중 하나가 유독 강렬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새로운 코팅. 내가 디자인한 거야. 어때?
테디베어가 뽐내듯 한 바퀴 돌았다.
알겠어, 그럼 좋아한다는 거지?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달랐다.
이 짧은 망설임을 눈치챈 듯, 테디베어는 장난이 통한 것처럼 깔깔 웃었다.
코팅이 나한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물어본 거야. 코팅 자체가 어떠냐가 아니라, 내가 입었을 때의 느낌에 대해 말하는 거야. 어때?
"놀랄"만큼의 반응은 아니지만, 뭐 이 정도로 됐어.
테디베어는 뭔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자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이 무더운 여름날에 온몸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응, 가지 않았어. 캠프파이어 콘서트보다 이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걱정 마. 티켓은 낭비하지 않았어. 다른 이를 줬거든.
주위의 잡초와 덩굴을 둘러보았다.
그러저나, 지휘관은 이 폐기된 아파트를 조사하면서 알아낸 게 있어?
단서들을 통해 얻은 것이 있긴 했다. 테디베어의 예상대로, 그것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다.
듣기로는, 예전에 아이들이 밤에 여기서 숨바꼭질하곤 했는데, 항상 제일 먼저 들키던 한 여자아이가 이번에는 끝까지 안 들키겠다며 무너진 옷장 속으로 숨어버렸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금세 그녀를 제외한 모두를 찾았다. 늘 제일 먼저 들키곤 하던 그 아이가 이번엔 재미없어서 먼저 집에 갔을 거라 생각하며, 더 이상 찾지 않기로 했다.
한편, 옷장 속에 숨어 있던 그 아이는 오랫동안 들키지 않은 것을 기뻐하며 옷장에서 나오려 했지만, 심하게 녹슨 금속 부품이 어긋나면서 문이 걸려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 아이는 필사적으로 소리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아이는 평소에도 집안에서 존재감이 희미한 아이였기에, 실종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늦어 버린 뒤였다.
슬픈 이야기네.
그 이후로, 누군가가 아직도 출구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이 폐기된 아파트에서는 밤마다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거... 완전 도시 전설이 아니야?
넌 그 이상한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 있어?
테디베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생각해 봐. 만약 누군가 몰래 이 아파트에 들어가다가 사고가 딱 일어나, 그리고 마치 옷장에 갇힌 여자애처럼 구출을 기다리고 있어...
정말 안 돼?
그래, 알겠어.
테디베어는 예상외로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지나치게 순순한 모습에 오히려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테디베어가 손을 내밀었다.
그 음료, 돌려줘. 돌려주면 집에 갈게.
거의 다 마신 빈 캔을 보고, 다시 테디베어를 바라보았다.
응? 난 잠깐 들어달라고 한 건데. "받아"라고만 했지. "마셔"라고는 안 했잖아.
테디베어는 다시 계략이 통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다 마셨으니, 뭐라도 보상을 해줘야지~
낯익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상대방이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자~ 이미 늦었으니까.
테디베어는 지휘관의 팔을 잡아당기며 폐기된 아파트의 정문 쪽으로 달려갔다.
규칙 같은 건 잠시 제쳐둬. 나중에 뭐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
잠자코 나만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