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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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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1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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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바다를 비추자 물결이 반짝거렸다.

여름은 바다 밑으로 이미 가라앉았지만, 매미는 여전히 밤중에도 힘차게 울어대며 자신의 존재를 소리로 알려주고 있었다.

창가의 소녀는 달빛을 받으며 손에 든 책을 넘기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무언가가 느껴졌다.

하얀 머리의 소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입가에서 나온 낮은 속삭임이 달과 바다 사이에서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왜...

이곳에 온 걸까?

며칠 전

눈을 떴을 때는 이 방 안에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텅 비어 있었다. 분명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방 안에는 누군가가 머물렀던 흔적이 몇 가지 보였다. 오래되지는 않았고 하루 정도 지낸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었는데,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책들이었다.

<토목 공사 기초 입문>, <처음부터 배우는 나만의 집 짓기!>, <당신도 가질 수 있는 나만의 정원>, <초보자도 마스터할 수 있는 화초 키우기>.

책들은 오래되어 보였다. 오래 사용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초보자도 마스터할 수 있는 화초 키우기>를 집어 들고는 대충 훑어보았다.

앞쪽 수십 페이지에는 꼼꼼한 필기와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여백에는 작은 글씨로 쓴 메모가 가득했다.

글씨는 특별히 잘 쓴 것도 못 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깔끔하고 정돈돼 있어서 정성 들여 쓴 게 느껴졌다.

페이지를 넘기다 책갈피처럼 끼워둔 쪽지 하나가 떨어졌다.

쪽지를 들어서 읽어보니... 시 혹은 노래 가사 같았다.

쪽지의 내용을 읽자 머릿속에 어떤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중요한 것이었다.

안갯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흐릿했고, 어렴풋한 멜로디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단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이 책들은 분명 자신의 것이었다. 쪽지를 보았을 때 기억의 단편이 떠올랐으니, 이것이 기억을 되찾는 열쇠가 될 것이었다.

창밖을 보니 달이 외롭게 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중요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 여기를 떠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기억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단말기로 받은 메시지를 보며 침묵에 잠겼다.

메시지에는 좌표가 있었지만, 발신자 이름은 알 수 없는 문자들이었다.

다행히 단말기에는 간단한 역추적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리의 방어 프로그램을 뚫을 수 있는 정도라면, 추적 프로그램도 열에 여덟은 쓸모없을 것이다.

이런 통신 방식을 보니 익숙한 이가 한 명 떠올랐다.

역추적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발신자를 목표로 설정했다. 하지만 진행률이 30%에서 멈췄다.

그러다 프로그램이 몇 번 버벅대더니 그대로 꺼져버렸다.

당장은 역추적이 안 되는 상황이라 일단 좌표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단말기에 좌표를 입력하자 커서가 해변가의 어떤 건물을 가리켰다.

얼마 전에 들었던 그 성에 대한 소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뱀파이어다.

아니. 인면 박쥐일 가능성이 더 높아.

혹시... 바다 요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에 지휘관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에 기계체들도 지휘관을 발견하게 됐다.

[player name] 님, 안녕하세요.

바닷가에 있는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요즘 그 성에서 밤마다 무서운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해서요. 안에 어떤 괴물이 있는지 토론하고 있었어요.

[player name] 님, 당분간 그쪽에 가시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위험할 수 있거든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저 멀리 성이 보였다.

지휘관은 결국 이곳에 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단말기를 2시간 후 자동으로 위치 정보를 보내도록 설정해 뒀고, 무기도 챙겼다.

그 괴담 같은 메시지들이 꼭 믿을 만한 건 아니었지만, 보내온 메시지가 좌표였다는 건, 일종의 초대장으로 봐도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걸 보니 어떤 이가 떠올랐다.

혹시 너야?

보육 구역에서 있었던 그 일이 있고 나서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동안 그녀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래도 휴게실에 있는 그 난초는 잘 자라고 있다.

의식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건 어디서 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미래의 루나를 만났다니, 더더욱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감정이 작용했던 걸까? 지휘관은 이 일을 보고하지 않고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숲을 지나 참나무 옆 작은 길을 따라가니, 앞에 세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은 바다로 향했고, 오른쪽은 더 어두운 먼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비춰주는 덕분에 앞의 작은 길은 별다른 방해 없이 지날 수 있었다. 가운데 길을 따라 걸어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성 앞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만난 기계체의 말로는 이 성이 지어진 지 수십 년이나 지났다고 했다.

수십 년간 버려진 성에서는 현대 과학기술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요하고, 예스럽고, 신비로웠다.

성에서 받은 첫인상은 이랬다.

눈앞의 성은 중세 시대 군사 방어용 성보다는 판타지 스토리에서나 나올 법한 마법사의 성 같았다.

성문 앞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바닥의 어떤 흔적이 시선을 끌었다.

몸을 숙여서 보니 희미하게 새겨진 글자가 보였다.

"운명의 사람이여, 달을 깨우라."

연극의 신이 손가락을 움직인 것처럼, 괴담 속 그 노랫소리가 절묘한 타이밍에 들려왔다.

노랫소리

무덤 앞에서... 울지...

노랫소리가 멀리서 불어오는 밤바람에 흩어져서 일부 내용만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가사와 멜로디를 주의 깊게 듣다 보니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기억 속 그 난초가 살며시 피어났다.

문을 열고 성안으로 들어섰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노랫소리를 따라 성안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러자 노랫소리는 조금씩 선명해졌고, 가사도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노랫소리

나는... 바람이 되어...

틀림없다. 이건 루나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 가사는 바로 그 노래였다.

계단 앞에 도착했다. 위로 올려다보니 꼭대기 층에 작은방이 보였다.

발소리를 눈치챈 듯 노래가 멈췄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자 열린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커져 보이는 문과 함께, 방 안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그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여기까지 온 거지?

소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곧 보름달이네.

그녀는 며칠째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내일 떠날 거야.

소녀는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었다.

소녀는 손에 든 쪽지를 내려다보며, 기억 속 멜로디를 따라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소녀는 이런 헛수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헛수고라고 하기엔... 뭔가 기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더 혼란스러워졌을 뿐이었다.

떠오른 기억들은 시간의 순서가 제각각이었고, 서로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어릴 때 언니와 헤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가, 그다음엔 어른이 된 언니와 쇼핑했던 기억이 나왔다.

온갖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여 있는데, 정작 자기 이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응?

아래층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조용히 상대를 기다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player name]

루나.

루나는 눈앞의 인간을 바라봤다.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 가슴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 이 인간이 자신이 기다리던 그 사람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안녕.

루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지휘관을 빤히 쳐다봤다.

한참 후에야 루나는 정신을 차린 듯했다.

미안. 잠시 딴생각을 했어.

지금의 나는 네가 말하는 그 루나와 좀 다를지도 몰라.

간단히 말하면, 내 기억에 문제가 생겼어.

아니.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인데.

방금 날 루나라고 부르던데... 그게 내 이름인가?

눈앞의 상황이 매우 황당했다. 기억상실이라니, 마치 싸구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진부한 전개였다.

음... 동맹이라...

친구...

응?

테이블 위에 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럴 거야. 좀 특이한 주제네. 왜 이런 책을 읽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다가가서 책 제목을 보니, 루나가 왜 이런 책을 읽었는지 알 것 같았다.

[player name]

여기는 네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야?

응. 언니와 함께 이곳을 다시 지었어.

건축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배워가면서, 조금씩 수선했어.

응.

루나의 말로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기억이 조금씩 떠오른다고 했다.

응. 어쩌면... 이 노래를 완벽하게 부를 수 있게 될 때쯤 모든 걸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몰라.

근데 혼자서 기억을 되찾는 건, 꽤 어려울 것 같아...

이 노래는 예전에 의식이 "미래"로 이동했을 때 루나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리고 지휘관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는 아마 기억을 잃기 전의 루나일 것이다. 그럼, 지휘관이 기억을 잃은 루나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주길 바란 걸까?

이 노래가 기억을 되찾는 열쇠인 것 같았다.

하지만 루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뭐, 굳이 외우지 않아도 돼.

이 며칠 동안 알게 됐어.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

3~5년 정도 지나면, 모든 기억이 되살릴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