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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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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2 바다

부디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 줘.

소녀의 노래가 서서히 멈췄다. 며칠 밤 동안 [player name]은(는) 이곳에 찾아와 루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고, 루나는 오늘 마침내 그 노래를 완벽히 익혔다.

어때? 잘했어?

아니.

"루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앞의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player name]이(가) 자신이 노래를 익힌 것에 대해 기뻐하는 건 분명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미묘한 부정적인 감정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루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인간에게 제안했다.

바닷가에 산책하러 갈래?

놀랐어?

왜?

음... 네가 아는 나는 여기 없어.

말을 마친 루나는 아래층으로 향했다.

지휘관은 잠시 침묵했다.

둘은 밤하늘 아래에서 말없이 걸었다. 모래사장 위에는 깊이가 서로 다른 두 줄의 발자국이 이어졌고, 이내 밀려온 파도에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한여름인데도 밤에는 여전히 쌀쌀했다. 그래서 다음 날 밤부터는 후드티를 입고 나왔다.

지휘관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루나의 기억상실 때문에 어떻게 대화를 이어갈지 난감했다.

역시 현실은 드라마처럼 되지 않았다.

과학 이사회조차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의식의 바다는 애초부터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옆에 있는 소녀의 말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player name], 듣고 있어?

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음... 그렇구나.

효과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사실 이 며칠 동안 많은 걸 기억해 냈거든. 네가 원하는 그 "루나"와 아직 거리가 멀긴 하지만 말이야.

적응이 잘 안되긴 했지만, 확실히 예전의 루나보다 훨씬 밝은 것 같았다.

다 단편적인 기억들인데, 주로 평범한 일상이야.

살짝 미간을 찌푸린 루나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기억나는 대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언니랑... 되게 큰 곳에 있었어. 재미있었던 것 같아. 또래 친구들도 많았고, 다 같이 공부도 하고...

음... 기억났어...

나는 여고생이었구나.

응. 정말 좋은 세상이었어. 여기랑은 달랐지.

다른 기억 조각들이랑도 많이 달라. 거기엔 퍼니싱 같은 건 없었거든.

루나가 어깨를 살짝 툭 쳤다.

너희가 더 이상한 거 아냐? 파니니라든가...

황금시대라고 불렸어.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했고, 자유롭게 배울 수 있었어. 여기에 비하면... 꿈같은 세상이었어.

언니는 요리를 잘해서 항상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나한테 맛보게 했었어.

난 사진 찍는 게 좋았어.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도 많이 올리고... 나중엔 사진작가가 될 생각이었나 봐.

인터넷에서 요리 채널도 운영했었어.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날들이었지.

그건 그렇고, 어제 그 성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발견했어.

그러고 보니 기계체한테 그 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바다를 지배하는 여신이 처음으로 인간 세상에 와서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야.

아참, 내가 입고 있는 이 옷도 그 여신의 의상을 참고해서 만든 거래.

그래서 저런 옷을 입고 있었던 거였다. 지휘관은 루나의 기억이 너무 걱정되어 옷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근데 원래 루나의 성격이었다면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었을까?

맞아.

여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게 금기라서 저주를 받았대.

바다의 여신은 성에서 깊은 잠에 빠져버렸고, 그 인간이 죽는 날까지 깨어나지 못하게 됐어.

그 인간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

첫 번째는 여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죽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거야. 인간이 죽으면, 여신이 깨어난다고 해.

두 번째는 저주를 풀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거야. 달을 깨우고, 정화의 달빛으로 바다를 비추는 거지. 하지만 대가로 여신은 그 인간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게 돼.

이 이야기...

루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너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을 것 같아?

그래.

그렇게 생각해?

마치 동화 같은 결말이네.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처럼...

음...

그건 비밀로 해둘게.

밀물이 둘의 발을 적시며 발자국을 지웠고, 그렇게 이야기의 결말도 함께 지워갔다.

아!

모래가 신발에 들어갔는지 루나가 신발 끈을 풀더니, 웃으면서 신발을 휙 던졌다가 달려가서 주워왔다.

지금 루나의 모습은 완전히 소녀 그 자체였다.

멀리서 루나가 손을 흔들며 이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발 좀 들고 있어 줄래?

그러게… 내가 여고생이라서? 이건 여고생만의 특권이거든.

루나가 바다를 등지고 서자, 반짝이는 파도가 그녀의 뒤에서 춤을 추듯 빛났다. 달빛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미소 때문인지, 깊은 밤인데도 눈이 부시게 느껴졌다.

루나의 신발을 받아서 들었다.

그럼, 네가 알던 그 루나에 대해 말해 줘.

대행자로서의 루나를 떠올린 지휘관은 고민 끝에 "자신감"과 "강함"이란 표현을 골랐다.

다시 생각해 보니 "강인"하다는 말이 그녀를 더 잘 표현할 것 같았다.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은 둘 옆에 루나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게 우리의 과거 이야기구나.

음. 기억나는 게 없어.

… 잘 모르겠어.

일단 언니를 찾아야겠지. 지금의 언니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루나가 오른손을 들자 붉은빛이 손바닥에서 빠르게 모였다가 흩어졌다.

지금의 나는 여고생인 데다가 마법 소녀까지 됐을지도 모르겠네.

내일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지도 몰라. 마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

루나의 미소에는 순수함과 두려움 없는 용기가 가득했다.

그럼,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기억을 되찾는 거 도와줄 거지?

루나에게 과거의 일들을 들려주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루나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멈칫했다. 무언가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지만, 이내 다시 잠잠해졌다.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 루나는 눈앞의 인간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벌써 포기하는 거야? 우리의 과거 기억을 중시하지 않아?

루나는 이 인간 지휘관을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이 설렜다.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휘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음 대답을 진지하게 기다렸다.

[player name]

중시하지 않은 게 아니야.

다만,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어떤 일들은...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고, 인생은 만화책처럼 되진 않으니까.

다른 방법을 더 찾아볼게.

정말로 바꿀 수 없다면... 그때는 받아들여야겠지.

지휘관은 잠시 말을 멈추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player name]

아직 미래가 있잖아. 우리를 믿어.

그리고 너 자신도 몇 년 후면 기억이 날 거라고 했잖아.

미래라...

루나는 인간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알고 싶어.

루나는 [player name]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사실 루나는 그를 속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휘관이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문제의 관건은 그 루나에게 있었다.

물론, 루나는 자신의 마음도 잘 알고 있었다.

여고생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풋풋하면서도 설레는 감정이었다.

(정말 바보구나. <phonetic=나>루나</phonetic>. 이런 걸로 고민하다니.)

(한 번 더 도와줄게. 용기를 내서 사랑해 봐.)

바로 그 순간, 인간이 따뜻한 손길로 루나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지휘관과 루나는 서로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모든 것이 드러났다.

[player name]의 눈동자에는 어쩔 줄 모르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루나는 그도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루나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제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동안 이성적인 말만 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자신도 감정이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의 루나가 더 다정하고 활발해서 좋지만, 중요한 건... 그녀는 예전의 그 루나가 아니다.

지금의 루나는 서로가 함께한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다.

바로 이 말이 둘의 운명을 이어주기 시작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키고, 햇살이 얼음을 녹이고,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듯, 소녀의 기억도 그렇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루나는 자신의 얼굴 위에 있는 지휘관의 손을 꼭 잡았다.

…여신 이야기의 결말에서, 인간은 달을 깨웠고, 여신은 인간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게 돼.

하지만 그 인간을 다시 만났을 때, 여신은 다시 한번 사랑에 빠졌어.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루나의 기억이 돌아온 것이었다.

눈을 감아봐. 내가 "마법"을 보여줄게.

지휘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루나는 [player name]의 손을 잡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물 위를 밟는 순간, 대행자가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붉은빛이 수면 아래로 퍼져나가 해수면보다 낮은 다리를 만들어냈다.

한 걸음, 두 걸음, 둘은 바다 위를 걸었다.

지금의 대행자는 예전과 달랐다. 손쉽게 퍼니싱을 다루어 이중합 물질을 만들면서도 눈앞의 인간이 침식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루나는 가끔 [player name]을(를) 돌아보았다. 인간은 눈을 꼭 감은 채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루나는 이 인간이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반이중합 탑 아래에서 루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루나

나와 내 밑에 있는 승격자들은 오직 [player name]만을 믿어.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정말 단순히 이득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걸음을 걸을 때마다, 루나의 의식의 바닷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승격 네트워크에 잠겼을 때 연산했던 미래였다.

하늘을 뒤덮은 기계의 파도 앞에서.

붉은 파도가 세상을 삼키는 미래에서.

황폐화된 폭풍의 종말 속에서.

얼음과 눈에 파묻힌 도시 폐허에서.

아침 햇살이 비치는 정원에서.

매번, 루나의 곁에는 [player name]의 모습이 있었다.

열 번, 스무 번, 수백 번...

얼마나 많은 연산을 거쳤을까?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옆에 있는 그 인간만은 변함없었다는 것이다.

그 인간은 늘 한결같이 루나의 곁에 있었다.

루나는 의문을 안고 미래를 연산했지만, 얻은 것은 더 많은 의문뿐이었다.

루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 마음속의 이 <phonetic=사랑>[감정]</phonetic>은 대체 뭐지?

…………

자신감, 강인함, 담담함...

이것들은 대행자인 그녀를 감싸고 있는 <phonetic=태그>갑옷</phonetic>이었다.

하지만 그 <phonetic=태그>갑옷</phonetic> 아래에는?

운명은 루나에게 절묘한 장난을 쳤다. 홀가분하게 죽지도 못하게 하고, 평온하게 살지도 못하게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증오에 시달리고.

원망에 휘둘리고.

거짓말에 속고.

타인의 기대에 얽매이게 했다.

흑과 백은 없었다. 오직 억압과 답답함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뿐이었다.

핏빛 하늘을 향해 날아간 대행자는 결국 폐허에 버려진 한 아이일 뿐이었다.

버려진 아이는 상처투성이가 된 세상을 향해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 끝에, 루나는 이제 담담하게 과거의 그 <phonetic=루나>아이</phonetic>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phonetic=자신>[그 아이]</phonetic>에게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루나는 소중한 이들이 모두 무사한 미래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니 가야 했다. 그 미래를 보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붙잡기 위해 나아가야 했다.

그래서 승격 네트워크의 힘으로 몇 번이고 연산을 거듭했다.

하지만 늘 곁에 있던 그 인간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망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바로 앞에 있는 그 손을 마주하니 잠시 망설여졌다.

자신에게도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빈틈을 보이자 힘의 대가가 곧바로 따라왔다. 수없이 많은 연산으로 인한 엄청난 정보와 기억이 의식의 바다를 덮쳐왔고, 루나는 길을 잃어갔다.

모든 것이 통제를 벗어나기 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의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존했다.

사랑으로 자라난 순수한 소녀였다.

그건 루나가 가질 수도 있었던 인생이었다.

눈을 감으려는 찰나, 시간의 흐름을 타고 한 마디 따스한 <phonetic=사랑>말</phonetic>이 루나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흐릿한 기억 속, 침대 옆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따뜻한 축복이었다.

어머니

우리 귀여운 루나가 언제나 사랑받기를 바라.

둘은 발걸음을 멈추고 바다와 보름달 사이에 나란히 섰다.

여러 가지 생각이 루나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살며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수많은 붉은 퍼니싱이 그녀의 <phonetic=사랑>힘</phonetic>에 이끌려 머리 위로 이중합하여 미슬토 모양으로 변했다.

루나

이제 눈을 떠도 돼.

눈앞의 인간을 바라본 루나는 문득 창가에 앉아 있을 때 들었던 그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곳에 온 거지?

루나

(그야... 네가 여기 있으니까.)

루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간이 응답했다.

지휘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루나는 [player name]의 손을 잡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물 위를 밟는 순간, 대행자가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붉은빛이 수면 아래로 퍼져나가 해수면보다 낮은 다리를 만들어냈다.

한 걸음, 두 걸음, 둘은 바다 위를 걸었다.

지금의 대행자는 예전과 달랐다. 손쉽게 퍼니싱을 다루어 이중합 물질을 만들면서도 눈앞의 인간이 침식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루나는 가끔 [player name]을(를) 돌아보았다. 인간은 눈을 꼭 감은 채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루나는 이 인간이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반이중합 탑 아래에서 루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루나

나와 내 밑에 있는 승격자들은 오직 [player name]만을 믿어.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정말 단순히 이득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걸음을 걸을 때마다, 루나의 의식의 바닷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승격 네트워크에 잠겼을 때 연산했던 미래였다.

하늘을 뒤덮은 기계의 파도 앞에서.

붉은 파도가 세상을 삼키는 미래에서.

황폐화된 폭풍의 종말 속에서.

얼음과 눈에 파묻힌 도시 폐허에서.

아침 햇살이 비치는 정원에서.

매번, 루나의 곁에는 [player name]의 모습이 있었다.

열 번, 스무 번, 수백 번...

얼마나 많은 연산을 거쳤을까?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옆에 있는 그 인간만은 변함없었다는 것이다.

그 인간은 늘 한결같이 루나의 곁에 있었다.

루나는 의문을 안고 미래를 연산했지만, 얻은 것은 더 많은 의문뿐이었다.

루나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 마음속의 이 <phonetic=사랑>[감정]</phonetic>은 대체 뭐지?

…………

자신감, 강인함, 담담함...

이것들은 대행자인 그녀를 감싸고 있는 <phonetic=태그>갑옷</phonetic>이었다.

하지만 그 <phonetic=태그>갑옷</phonetic> 아래에는?

운명은 루나에게 절묘한 장난을 쳤다. 홀가분하게 죽지도 못하게 하고, 평온하게 살지도 못하게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증오에 시달리고.

원망에 휘둘리고.

거짓말에 속고.

타인의 기대에 얽매이게 했다.

흑과 백은 없었다. 오직 억압과 답답함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뿐이었다.

핏빛 하늘을 향해 날아간 대행자는 결국 폐허에 버려진 한 아이일 뿐이었다.

버려진 아이는 상처투성이가 된 세상을 향해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 끝에, 루나는 이제 담담하게 과거의 그 <phonetic=루나>아이</phonetic>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phonetic=자신>[그 아이]</phonetic>에게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루나는 소중한 이들이 모두 무사한 미래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니 가야 했다. 그 미래를 보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붙잡기 위해 나아가야 했다.

그래서 승격 네트워크의 힘으로 몇 번이고 연산을 거듭했다.

하지만 늘 곁에 있던 그 인간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망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바로 앞에 있는 그 손을 마주하니 잠시 망설여졌다.

자신에게도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빈틈을 보이자 힘의 대가가 곧바로 따라왔다. 수없이 많은 연산으로 인한 엄청난 정보와 기억이 의식의 바다를 덮쳐왔고, 루나는 길을 잃어갔다.

모든 것이 통제를 벗어나기 전,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의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존했다.

사랑으로 자라난 순수한 소녀였다.

그건 루나가 가질 수도 있었던 인생이었다.

눈을 감으려는 찰나, 시간의 흐름을 타고 한 마디 따스한 <phonetic=사랑>말</phonetic>이 루나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흐릿한 기억 속, 침대 옆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따뜻한 축복이었다.

어머니

우리 귀여운 루나가 언제나 사랑받기를 바라.

둘은 발걸음을 멈추고 바다와 보름달 사이에 나란히 섰다.

여러 가지 생각이 루나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살며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수많은 붉은 퍼니싱이 그녀의 <phonetic=사랑>힘</phonetic>에 이끌려 머리 위로 이중합하여 미슬토 모양으로 변했다.

루나

이제 눈을 떠도 돼.

눈앞의 인간을 바라본 루나는 문득 창가에 앉아 있을 때 들었던 그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곳에 온 거지?

루나

(그야... 네가 여기 있으니까.)

루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간이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