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에서 손이 멈췄고, 음악이 끊겼다.
세레나는 오랫동안 건반을 응시했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안개는 흑과 백 사이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안개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걸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사랑으로 이끄는 곡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과거의 자신이 아니고,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이 아닐지라도 반드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 안개를 뚫고 다른 별하늘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반짝이며, 우리를 갈라놓았어요.
알려줘. 이리스.
또 다른 24시간 전.
정오 태양이 컨스텔레이션 모래사장을 따스하게 비쳤다. 그건 지휘관의 휴가가 끝나기까지 마지막 오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이전에 바쁜 일정에 비하면, 이번 오후는 어마어마하게 한가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예전 업무가 너무나 고된 탓일 것인 거 같았다.
지휘관은 지금처럼 모래사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태양이 하늘 끝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시야를 가렸다.
[player name] 님 맞습니까?
본능적으로 선글라스를 벗고 눈 앞을 가린 게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을 끝나기도 전에, 직사각형의 얇은 물체가 모래와 함께 지휘관의 몸에 떨어졌다.
배송 완료됐습니다. 서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건 컨스텔레이션에 소속된 배송 로봇이었다. 그 로봇은 카메라로 지휘관의 모습을 스캔한 뒤, 작은 캐터필러를 굴리며 떠났다.
배송 로봇에게 물으려 했지만, 로봇은 이미 저 멀리 떠나간 후였다. 아마 다른 택배도 있는 모양이었다.
지휘관 몸에 떨어진 건 손바닥 정도 되는 크기의 종이봉투였다. 노란 크라프트지 봉투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햇빛은 지휘관에게 편지를 열라고 권하는 듯 봉투 위 모래를 따뜻하게 데워줬다.
주변에 편지 칼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짧은 변 모서리를 따라 편지봉투를 찢어, 출처 불명의 편지를 열었다.
손바닥에 떨어진 건 가루로 부서질 것 같은 연보라색 꽃 한 송이였다.
칼날이 칼집을 닳게 하듯, 이름 하나에 꽁꽁 묶인 마음과 영혼이 가슴을 애달프게 했다.
그 이름은 밤과 글자 사이에서 흔들리며, 이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이름은 폭풍우를 말하고 있었다. 밤하늘 가득한 별과 다 써버린 잉크 세 병으로 꽃들 사이를 산책하는 정령과 그녀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기억이 밀물처럼 모래사장을 덮쳤지만, 힘없이 밀려오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컨스텔레이션의 긴 해안선은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지휘관의 발자국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친절한 로봇들도 문제의 답을 주진 못했다.
이렇게 걸으며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부드러웠던 모래가 발바닥을 찌르기 시작하자, 지휘관은 잠시 앉아 쉴 수밖에 없었다.
지휘관은 흰색 돌담 앞에 앉아 있었다. 순백색의 매끄러운 돌담은 이 모래사장에서 눈에 띄게 빛났다.
한쪽은 낮고 한쪽은 높은 돌담은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그건 바닷가에서 만들어진 볼레로 같기도 선회하는 미로 같기도 했다.
깨끗하고 매끄러운 돌담의 바깥 모래사장에는 검은색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었다. 해안을 향한 돌담에는 이런 나무 표지판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위에는 "해안가 예술 정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전에 아이라한테서 이 도시의 옛 관리자가 예술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래서 컨스텔레이션에 이런 곳을 만든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피아노도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바닷바람과 모래 때문에 원래의 칠이 떨어지면서, 그 아래에 있는 금속과 나무 구조를 드러냈다.
까만 칠에 반사된 햇빛은 순백색 돌담 못지않게 반짝거렸다. 피아노를 맴도는 햇빛은 블랙홀 주변의 부착원반 같았다.
어떤 충동이 지휘관을 피아노 앞으로 이끌었고, 지휘관의 손가락이 건반을 스쳤다.
"일체의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에 지나지 않으리."
"지난날 미치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일어났으리."
"형언할 수 없는 것들도 여기에서는 이루어지리."
천 명이 완성해야 할 위대한 합창이 마지막에는 한 우주의 열정으로 모아졌다.
지휘관/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음표를 건드렸다.
두꺼운 편지지 묶음 속에 묻혀 있던 악보가 이제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선지가 손을 꼭 잡고 망설이듯 다음 음표를 찾아갔다.
이 감각은 무슨 감각일까?
잠시 망설인 지휘관은 결국 다음 음표를 연주하지 않았다.
손님? 왜 멈추셨습니까?
부드러운 로봇 음성이 흰색 돌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로봇은 작은 화분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화분 안에 삽도 꽂혀 있는 것이 이곳 원예사인 것 같았다.
아닙니다. 당신의 연주가 파도 소리와 잘 어울렸습니다.
왜 계속 연주하지 않으십니까?
안타깝습니다. 어젯밤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눈앞의 로봇은 뭔가를 떠올리듯, 머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렸다.
어젯밤, 제가 이곳에서 근무하던 중, 비슷한 피아노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연주를 방해하게 된 건지, 제가 상황을 확인하러 갔을 땐 이미 음악이 멈춰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로봇은 머리를 한 바퀴 돌린 다음 이어서 말했다.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전 제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정원에서 꽃을 감상하고 싶으실 경우, 얼마든지 둘러보셔도 됩니다.
참. 이 정원은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항상 왼쪽으로 가신다면 길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친 원예사는 작은 통과 삽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주머니 속 편지봉투를 꼭 쥔 지휘관은 피아노에서 손을 뗐다.
어젯밤 피아노를 연주한 이는 틀림없이 그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
햇빛이 정원 돌담 위에 비쳤다. 자갈처럼 매끄러운 순백의 표면은 천 명의 합창단 같기도 했다.
이 교향곡은 수천 명의 악단과 합창단이 함께 완성해야 했어요.
천사들이 사랑과 즐거움의 불로 메피스토를 물리쳤고, 그와 파우스트의 계약을 무효화시켰어요.
하지만 파우스트의 이상과 열정은 절대 변하지 않았어요.
악마가 어떻게 유혹하든, 현실이 얼마나 무겁든, 파우스트는 자신의 추구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세레나는 벨벳 피아노 의자에 앉아 피아노 덮개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파우스트가 진리를 진정으로 소유한 적은 없었겠지만, 그는 항상 진리를 추구했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리라."
정원으로 들어서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모래사장 위에 지어진 이 정원에는 수많은 식물과 꽃을 키우는 흙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도 원예사의 솜씨인 것 같았다.
순백색 돌담과 대조하니, 각양각색의 백합, 튤립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더욱 돋보였다.
처음에는 돌담들이 낮아 푸릇푸릇한 식물들 사이로 그늘진 산책로가 형성됐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담은 높아졌고 꽃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겹겹이 쌓인 파도와도 같았다.
양쪽 돌담 사이로 이어진 오솔길은 언제나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았다.
이렇게 정원 안 깊은 곳을 향해 가다 보니, 벽 가까이 핀 작은 꽃들이 좌우로 번갈아 보였다.
이제 해는 서서히 지평선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무엇을 찾으려고 온 걸까?
주머니 속 손이 다시 한번 그 편지를 꼭 쥐었다.
봉투 안에 담긴 조각들의 무늬가 꽃처럼 보였을 뿐, 들어 있던 것이 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것이 한때 피었다가 이제는 말라서 가루가 된 아이리스였다는 것조차 확실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꽃 한 송이였을 것이다.
정원의 오솔길엔 바닷바람의 습기가 묻어있었다. 흰 돌담에도 마른 이슬 자국들이 보였다.
공기가 너무 습해서였을까. 불안감이 봉투에서 퍼져 나오며, 지휘관의 손에도 이슬 같은 자국을 남겼다.
"참. 이 정원은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항상 왼쪽으로 가신다면 길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원예사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모든 갈림길의 왼쪽 오솔길에는 얕은 발자국이 있었다.
이건 로봇 원예사의 발자국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발자국에 가까웠다.
왼쪽. 왼쪽. 왼쪽. 왼쪽.
왼쪽 길에는 언제나 발자국이 있었다.
점점 높아지는 주변의 돌담이 정원 깊숙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돌담 아래 심어진 꽃들도 조금씩 무성해졌다.
그 발자국을 따라 계속 왼쪽으로 향했다.
모든 갈림길에서 이 발자국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왼쪽을 향했다.
그 발자국이 지휘관을 이끌었고, 또 뒤에 새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모든 발자국은 좁은 꽃밭 앞에서 멈췄다.
그 꽃밭에는 아이리스 한 송이가 조용히 피어있었다. 가볍게 흔들리는 꽃은 언제라도 부서질 듯 연약해 보였다.
그래도 흔들리며 꿋꿋이 서 있었다.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상태로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꽃밭 옆에는 플루트 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더 큰 침묵으로부터 돌아오리라.
새벽에 떠도는 안개도 들판에 이슬로 남고, 이내 날아올라 구름으로 뭉개져 결국 비가 되어 내리니.
나 역시 안개와 다르지 않으니.
태양이 지려 하자, 여명은 아직 멀리 있었고, 저녁 파도는 이 도시를 감쌌다.
정원을 떠나 다시 컨스텔레이션의 모래사장에 섰다.
몇 시간 후면 공중 정원의 수송기가 컨스텔레이션에 도착할 것이고, 지휘관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래와 파도 사이에 사진 한 장이 선명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이도, 그녀의 글을 본 이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는 이조차 드물었다. 시간도 더는 말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답처럼 그녀를 버렸다.
심지어 그녀 자신도 기억의 우물에서 맑은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자발적으로 잊히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어떤 이는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어떤 이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누군가는 시대와 기억이 무엇을 보여줄지 조종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으로 남겨야 할 것들을 보여주지 않아도 됐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하고 쓰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음표가 아쉬운 듯 밤하늘에 녹아들자, 컨스텔레이션의 밤은 다시 고요함에 잠겼다.
피아노가 어떻게 열리고 닫혔는지는 알지 못했다.
일어설 때, 피아노에서 떨어진 작은 사진 한 장을 세레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건 이 정원이 세계에 남긴 유일한 것이자, "기념"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금 전 손끝 감촉을 여전히 되새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인력은 그녀를 새로운 여정으로 이끌고 있었다.
저도... 들었어요.
당신이 절 찾으리라 믿는 것처럼, 저도 당신을 찾을 거예요.
별이여, 당신이 별들을 바라보는 동안, 전
하늘이 되어 천만 개의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