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따라 컨스텔레이션 거리를 걷다 보니, 그 소리가 넓은 가로수길에 선명히 울려 퍼졌다. 이 구역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그런지 관광객이 드물었다.
여름 하늘을 가득 채운 햇살이 멀리 보이는 깨끗한 모래사장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이전에 리와 함께 잠수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자고 초대했었는데, 이제 약속한 시각이 다 돼 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돌발적인 "갑작스러운 기습"을 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하지만 리는 지휘관이 뒤에 다가갈 때까지 반응이 없었다.
다음 행동을 생각하고 있던 그때, 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28초.
목표 경계 구역에 도착한 뒤, 지휘관님께서 놓친 최적의 행동 시간이요.
그럼요. 지휘관님의 발걸음 소리와 행동 습관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알아요.
다만 지휘관님께서 수상하게 행동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잠시 기다렸던 것뿐이에요.
지휘관님께서는 이 단어의 정의를 다시 배워야 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기회를 더 드리진 않을 거예요.
언제나처럼 평온한 어투였지만, 눈빛에는 가벼운 웃음기가 보였다.
적막한 얼음 바다와 같았던 푸른 눈동자는 날이 갈수록 부서진 얼음 아래 감춰진 따뜻한 색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요. 준비할 게 좀 있어서, 저도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뒤로 잠수 장비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모든 유형의 장비가 갖춰져 있는 더미를 보며, 리가 어떻게 이런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잠수 장비를 구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만일을 대비해 필요할 법한 물건들을 확인하고, 준비하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산소통과 구명조끼보다 더 눈에 띄는 건, 리 본인이었다.
리의 짙은 파란색 유선형 잠수복을 보자,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노란색 오리 그림이 지휘관의 시선을 끌었다.
지휘관의 시선을 느낀 리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잠수복은 지휘관님께서 추천해 주신 거예요.
때는 리에게 잠수하자고 약속한 직후였다.
예정된 일정에 없었던 사항이라, 지휘관과 리는 잠수 장비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서 지휘관과 리는 열정적인 로봇의 강력한 추천으로 해안가에 있는 잠수용품 가게에서 잠수복을 고르기로 했다.
과거 임무에서 만나 침식되지 않은 로봇 중 상당수가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로봇들은 원래 주인처럼 대부분 온화하고 예의 바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잠수용품 가게 주인은 구식 모델의 친절한 로봇이었다. 우리의 목적을 설명하자, 로봇의 머리가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돈 뒤, 환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로봇의 전자 스크린에 글자가 나타났다.
로봇은 유리문에 붙인 포스터를 가리켰다. 거기엔 이 매장은 구조체와 생체공학 로봇을 위해 만든 수중 코팅을 제공한다고 쓰여있었다.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한 로봇은 상품 검색 단말기를 지휘관에게 건넨 뒤, 휴면 모드에 진입했다. 그리고 매장을 지휘관과 리, 단 두 명의 손님에게 넘겼다.
지휘관과 리는 선반에 진열된 상품들을 봤다. 매장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 잠수복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
빠르게 상품 리스트를 훑어본 리는 말이 없었다.
전 아무거나 다 돼요.
지휘관님께서 골라 주세요.
리는 주저하지 않고 이 문제를 지휘관에게 떠넘겼다.
잠시 생각한 지휘관은 코팅의 피팅 리스트에서 리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잠수복을 골랐다.
황금시대에 유행한 스타일이라고 소개된 짙은 파란 잠수복이었다. 이걸 보자마자 일순간 향수를 느꼈다.
네.
손에 있던 단말기를 리에게 건네준 뒤, 지휘관은 자기 사이즈에 맞을 것 같은 잠수복을 가져다 입었다.
지휘관이 탈의실을 나왔을 때, 마침 코팅을 바꾼 리가 거울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코팅이 공중 정원의 표준 규격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고, 기체에 미리 적응해 놓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아니요. 딱 맞아요. 다만...
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에 쓴 스노클링 안경을 조절했다. 그러자 무시할 수 없는 노란 오리 장식이 움직임에 따라 소리를 냈다.
삑...
이게 대체 뭐죠?
리가 손에 있는 잠수복 세트를 들어 올렸다. 밝은 색깔과 귀여운 문양이 리의 담담한 표정과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휘관을 바라봤다.
상품 웹페이지 설명을 가리켰다. 그 위에는 화려한 색상의 폰트로 "유행의 마스터 바지유가 만든 작품. 컨스텔레이션의 제1 패션 브랜드."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네요.
색상, 모양 그리고 종 전부 다른 것 같은데요.
그 당시 리는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결국엔 이 코팅을 선택했다.
지휘관과 리는 다른 일 때문에 잠시 떨어져 있게 됐다. 여가 시간에 단말기를 확인한 지휘관은 그제야 리에게 온 전투 사전 브리핑 메일이 수신된 것을 발견했다.
휴가 중이라 전투 임무는 없을 거로 생각한 지휘관은 메일을 열어보니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한 지형도가 첨부된 메일에는 컨스텔레이션 연안에서 잠수하기 가장 좋은 지점, 최근 날씨, 해류, 수심 등의 정보와 산호초를 관측할 수 있는 천해 좌표, 잠수 시 주의 사항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익숙한 전투 사전 브리핑 포맷에 담긴 내용은 간결한 잠수 가이드였다.
모든 장비 세트를 장착하고 출발할 준비를 한 리를 보며,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리는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기대하고 있는 거 같았다.
왜 웃으시는 거죠?
역시 일부러 그러신 거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가시죠. 시간이 얼추 다 된 것 같아요.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웠다. 바다는 깊게 숨을 쉬듯, 흰 파도를 모래사장 위로 밀어 올렸다.
리와 함께 천해 쪽으로 걸어가다가, 발목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내려다봤다. 그러자 지휘관의 발끝에 부딪힌 소라게 한 마리가 순식간에 몸을 움츠리고 모래 속으로 숨어드는 게 보였다.
왜 그러세요?
이 해역에는 독성이 있는 생물이 좌초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그럼, 다행이네요.
제가 보내드린 메일을 하나도 읽지 않으신 것 같네요.
그럼, 다행이고요.
그렇게 부르시지 않아도 돼요.
네.
기억 속에 한때 평화로웠던 시간이 있었던 거 같다. 전투는 위험과 상처를 동반했지만, 평온함과 웃음이 없었던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언뜻 봤던 광풍과 폭우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건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다.
거친 파도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헤엄친 탓인지, 숨 돌릴 틈이 생겨서 평화로운 바닷가를 걸을 수 있었을 땐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최근 지휘관이 겪은 일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 떨쳐내지 못한 것 같았다.
가끔은...
아직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마음속 불안을 입증하듯, 옆에 있던 리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휘관님. 방금 멍하니 계시던데, 무슨 생각 하고 계셨어요?
멍하니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목적지를 지나치고 있다는 걸 눈치채셨어야죠.
지휘관님께서 그만큼 편안하시다는 거니, 바쁜 일은 아닌 거 같아요.
리는 보기 드물게 어색한 말 대신, 지휘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가시죠. 잠수하고 싶어 하셨잖아요.
전 지휘관님 바로 옆에 있을게요.
쿨럭. 잠수 준비하러 가시죠.
리는 무언가 숨기려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정해 놓은 입수 지점에 도착한 뒤, 입수 전 간단한 훈련을 하려고 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지휘관님께서는 이번이 첫 실전 잠수인 거죠?
예전 휴가 때 해변에 간 적은 있었지만, 모래사장에 눕거나 물놀이만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렇게 제대로 준비한 잠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휘관님께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시다면, 가장 기초적인 훈련부터 시작할까요?
파오스의 훈련 과목에 유사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지휘관은 잠수 관련 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지휘관님을 마음대로 하시게 놔둬도 되는지 의심이 되네요.
그 대답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누군가 때문에, 한동안 관절에 낀 소금기와 모래를 처리해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모른 척해도 소용없어요. 그때 찍은 사진을 보여드릴까요?
그걸 증거라고 하죠.
전혀 아니에요!
적어도 지휘관님만큼 흥분하진 않았어요.
지휘관님을 잘 알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휘관님의 지능이 어린애 수준으로 퇴보한 게 아닌지 의심했을 거예요.
지휘관님. 자기 생명을 다른 이에게 쉽게 맡기지 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항상 지켜드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모든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평소처럼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지휘관은 리가 조용히 움켜쥔 오른손을 알아챘다. 이건 리가 참고 있을 때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됐어요.
긴급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단으로 사용하실 거라면, 지휘관님께서는 가능한 한 많은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으세요. 기회가 드물기도 하고, 연습하실 시간도 충분해요.
훈련이 다소 엄격할 수도 있으니, 지휘관님께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주세요.
뭔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려는 듯 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근데... 우리 쉬러 온 거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