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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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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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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빛과 함께 깊은 수면에 빠졌다가, 창밖의 보름 달빛에 깨어났다. 문을 열자, 은빛 서리가 밤하늘을 떠돌며 밤의 쓸쓸함을 그려내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얼마 남지 않은 잠기운을 날려버렸다. 그래서 일어난 김에 바람을 쐬며 파도를 향해 걸어갔다.

파도가 남긴 흔적을 따라 산책하다 보니, 어느새 멀리까지 오게 됐다. 뒤를 돌아보자, 외로운 등불 모두와 멀어져 있었다.

얼음처럼 하얀 달빛 아래, 익숙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안녕. 지휘관.

노안의 손에 들린 반딧불이는 호흡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빛을 내며, 어둠 속에서 동료를 부르고 있었다.

지휘관이랑 밤에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잖아.

서로 마주 보며 웃은 지휘관과 노안은 약속이나 한 듯 맑은 별하늘을 바라봤다.

같이 산책할래? 너랑 얘기하고 싶어.

노안은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깨끗한 달빛이 지휘관과 노안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러자 그의 그림자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던 그날 밤이 생각났다.

어. 지휘관과 함께 돌아온 게 얼마 전의 일처럼 느껴져.

노안이 뒤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마치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노안이 처음 공중 정원에 왔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승격자와 연관된 노안을 무서워했고, 그를 위험인물로 취급했다. 심지어 같은 훈련실을 사용하는 것조차 꺼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 일들이라면 이제 괜찮아. 적어도 일부는 해결됐어. 모든 이들의 인식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소한 일부터 시작할 생각이야.

얼마 전, 블랙 램 소대가 공중 정원에서 나오게 됐을 때, 훈련실 교관이 나에게 과자 한 봉지를 선물해 줬었어.

미안. 난 시몬이 참깨 알레르기가 있는 줄 몰랐어. 그래도 증상이 심각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

그랬구나.

훈련실 일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건가? 음... 하지만 그 일들 덕분에 시몬 지휘관이 도서관 직원 자격을 신청해 줬잖아.

훈련실과 도서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후자를 선택할 거야.

노안은 이 추측에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처음엔 노안이 어떤 실험에 협력하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리의 검사 결과를 받으러 과학 이사회에 갔을 때...

산산이 해체된 기체와 그 속에 자신의 기체와 부품 속에 앉아 있는 청년을 봤다.

음... 이게 내가 공중 정원에 오는 조건이었어. 그래서 나에겐 약속을 이행할 의무가 있었어. 게다가 나도 궁금했거든.

혹사가 내게 무슨 짓을 했기에, 승격자도 수격자도 아닌 상태에서 승격자와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걸까?

내 의식의 바다 안정성이 검증됐으니, 이 실험의 안정성도 보장할 수 있어. 그리고 그들도 실험의 필요성에 관해 설명해 줬어.

이 말을 들은 노안이 대답하지 않고 반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노안은 손을 뻗어 옆 사람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돌이켜보면, 그 사건으로 쿠로노와 마찰이 생긴 뒤였다. 시몬은 어떻게 하면 소대의 대원들이 그레이 레이븐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를 지휘관에게 물었다.

시몬도 다른 지휘관들처럼 파오스에서 지휘관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대원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전투 계획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와 같은 걸 배웠다.

때문에 "지휘관"과 "대원" 간의 관계만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소대의 운영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소대가 여러 차례 재편되자, 시몬도 지휘관의 본분 외의 일에 대해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어떨 땐 지휘관도 구체적 계획을 세우기 위해 시몬이나 상대적으로 익숙한 노안에게 물어보곤 했다.

이렇게 지휘관은 블랙 램 소대를 돕는 동시에 노안과도 점점 가까워졌다.

도서관에서 벌어진 도피 행동 후, 지휘관과 노안은 무언의 협의를 했다.

언제든 노안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는 언제나 지휘관을 데리고 문제와 곤경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할 수 없을 땐 지휘관 곁에 머물며, 복잡한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결재 프로세스를 도와주기도 했다. 심지어 위장 소프트웨어를 빌려 지휘관으로 위장한 채, 지휘관을 대신해 화상 회의를 하기도 했다.

강의도 하고 전투 대기실에서 화상 회의도 하니까?

어차피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난 그냥 변조기를 통해 우리가 정리한 보고서를 읽은 것뿐이야.

나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가짜 처방전으로 병가 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뿐이야.

동영상 참고 자료를 많이 받았어. 그걸 다 보고 조금만 더 연습한 뒤에 긴급 구조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려고 해.

노안은 이 말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해안을 따라 오래 걸은 것 같은데 잠시 앉아서 쉬지 않을래?

모래사장에 앉은 지휘관과 노안은 달이 구름 뒤로 몸을 숨길 때까지 파도의 속삭임을 들으며, 별하늘을 바라봤다.

임무를 위해서도 아니고, 서둘러 떠날 필요가 없는 한가한 상태에서 지휘관을 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네.

마지막이 공중 정원에서였지?

블랙 램 소대가 컨스텔레이션으로 이동하기 전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광장 근처를 산책하던 지휘관은 자기도 모르게 도서관 근처까지 걸어갔다.

노안의 말처럼 지휘관과 노안이 밤에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엔 최근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리브의 상태가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일이라든지, 정화 부대에서 정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일이라는 등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숨겨 놓았던 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됐다.

끊임없는 배신자, 이합 재난 구역의 변화, 실종한 사람들, 루시아에 대한 감시 그리고 여전히 재결합하지 못하는 그레이 레이븐.

노안은 좋은 이야기 상대였다.

표면적인 위로를 해주거나 실행하기 어려운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고, 지금의 슬픔이 사소한 일에서 온 것인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지휘관은 천막이 밝아질 때까지 노안과 이야기하고 난 뒤에야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휘관은 2시간 뒤에 전투 회의를 해야 했고, 그다음엔 지상 거점으로 이동해야 했다.

자책의 말을 들은 노안은 바 카운터에서 아이스커피를 꺼내, 인간의 뺨에 가볍게 갖다 댔다.

방금 앉을 때는 돌아가도 잠자지 못할 거라고 했으면서.

조금만 더 버텨. 수송기 타면 잘 수 있을 거야.

곧 다가올 폭풍우를 알아채지 못한 채, 노안이 건넨 커피를 받은 지휘관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지휘관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찾아보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블랙 램 소대가 활동할 수 있는 구역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가서 찾을 수가 없었어.

지휘관의 상황을 가장 잘 알 것 같은 이들은 날 경계하고 있었어. 이유는 잘 몰라도 분명 근거가 있는 것 같았어.

그러다 지휘관이 드디어 돌아오게 됐고... 나도 지휘관한테서 진짜 이유를 알게 됐어.

깊은 한숨을 쉰 청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응. 미안해.

노안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고는 상처가 아물었는지 확인하듯 상처가 났던 인간의 목에 손을 뻗었다.

많은 사람의 인상 속 노안은 그에게 무슨 짓을 해도 화를 내지 않는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감시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았다.

그러므로 블랙 램 소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노안이 그런 무모한 행동을 저지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고, 이번엔 그가 도망치도록 놔두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

노안의 목소리는 평범한 임무를 말하는 것처럼 매우 차분했다.

필요한 부분은 말했어. 시몬 지휘관도 지휘관이나 불필요한 일들은 내게 말하지 않아.

난 시몬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애매하게 알고 있어. 시몬이 이 일이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면, 난 더욱 행동하기 힘들어질 거야.

응. 어떤 이들은 애초에 살아 있어선 안 돼. 그가 반드시 올 거라면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더 빠를 거야. 게다가 이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관련된 일이니까.

노안이 상처를 확인하던 손을 뗐다.

응. 알겠어. 다음엔 꼭...

좋아.

달빛이 사라지면서 하늘이 조금씩 검게 물들었다. 곧 여명이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