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이벤트 스토리 / 황무지 삼중주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CER-24 황무지 삼중주

>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모래 폭풍도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젠장.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녹티스의 앞 수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희미하게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어두운 그림자를 목표로 힘겹게 전진한 녹티스는 이런 날씨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모래바람을 피할 장소를 찾을 거로 생각했다.

물론, "수염"이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멍청하게 바람을 피할 곳조차 못 찾는 건 아니겠지.

펑...

요란한 모래바람 속에서 총성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바로 전방에서 들려왔다.

???

누구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넌 대체 누구야?

???

여기로 와.

"수염"?

"수염"

맞아. 나야.

녹티스는 무릎까지 차오른 모래바람을 헤치며 갔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마다, 새로운 모래가 녹티스의 발자국을 바로 덮어버렸다.

녹티스가 마침내 총성이 들렸던 곳까지 걸어가자, 바위에 기대어 앉은 "수염"이 보였다. 그는 오른손에 방금 경고용으로 발사했던 권총을 쥐고 있었고, 녹티스를 보자, 쓴 미소를 지었다.

[삐삐]. 이런 날씨에 돌아다니면서 도둑놈이나 쫓고 있어?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네?

하... 그렇게 보여.

"수염"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모래가 그의 몸에서 흘러내렸다. 그때 녹티스는 "수염"의 곁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생명 징후가 없는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쫓아와서 이 두 놈을... 처리했어.

이런 짓을 하다니... 보복당할 각오 정도는 한 거겠지.

네 체온이 너무 낮아. 야. 이 상처는...

녹티스는 "수염"이 쇼크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수염"의 바지와 하반신은 이미 황사와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폭풍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고, 피는 황사 속에서 소리 없이 흘렀다.

나... 방금 꿈속에서 그를 봤어.

우리같이 그 공원에서... 그리고... 그가... 이것밖에 남지 않았어.

야! 야!

피를 많이 흘린 데다 체온까지 떨어져서 "수염"의 의식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의학엔 전혀 관심 없었지만, 녹티스는 베라와 오랜 기간 협력 작전을 하면서 조금씩 긴급 구조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됐다.

어.

"수염"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필름과 영사기를 녹티스에게 건네려 했다. 하지만 이미 경직된 신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난 네 거지 같은 물건은 원하지 않아. 그냥 계속 가지고 있어.

네가 남자라면 이런 구질구질한 곳에서 겁쟁이처럼 죽지 마.

"수염"의 바지에서 천 조각을 찢어낸 녹티스는 그의 다리에 생긴 끔찍한 상처 위에 묶었다.

야! 날 봐! 잠들면 안 돼!

지금 널 업고 베라한테 가서 긴급 구조를 받게 할 거야. 알겠어?

"수염"의 머리를 받친 녹티스는 그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며 정신을 차리게 했다.

정화 부대에 있을 때 녹티스는 수많은 비밀 임무를 수행했고, 여러 사람을 직접 죽여야만 했다.

많은 사람의 눈에 반짝이던 그 "마지막 순간"은 어떤 이들은 절망으로, 어떤 이들은 두려움으로, 어떤 이들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녹티스는 "수염"의 눈에서도 그 "마지막 순간"을 보게 됐다.

하지만 그건 절망, 두려움, 분노가 아니었다. 그건 살고자 하는 생의 희망이었다.

[삐삐]. 난... 겁쟁이가 아니야.

그럼, 됐어!

주변을 둘러본 녹티스는 폭풍이 완전히 멈춘 것을 발견했다.

녹티스는 "수염"의 의식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그를 업으려고 하던 중 발밑에 있는 시체 위에 비수가 박혀있는 것을 봤다.

녹티스가 주저하지 않고 비수를 뽑아내자, 비수가 박혀 있던 자리를 시체 위에 쌓여있던 모래가 덮어버렸다.

이거 네 것이지?

"수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수를 이미 굳어버린 "수염"의 손에 쥐여 준 녹티스는 "수염"의 손을 움켜쥐게 만들어서 비수뿐만 아니라 필름과 영사기까지 함께 꽉 붙잡도록 했다.

가자.

21호

녹티스.

녹티스가 오는 시각과 동일한 방향, 21호와 베라의 모습이 밤하늘 아래서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때야 녹티스는 몰아치던 모래 폭풍이 잦아들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어. 베라도 왔네.

녹티스는 다시 "수염"의 얼굴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번엔 좀 더 힘을 줬다. 이대로 의식을 잃게 된다면, 영원히 잠들 수도 있다는 걸 녹티스는 알고 있었다.

…………

"수염"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염"이랑 녹티스가 여기 있어!

대장. 피 냄새가 나는데...

나한테 두 번 빚졌다.

베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긴급 구조 상자를 꺼내 "수염"에게 긴급 치료를 시작했다.

이 붕대는?

내가 한 거야.

음. 나쁘지 않아. 합격까지는 아니지만, 쓸만해.

상처에 모래가 가득해. 먼저 상처를 깨끗이 해야 해. "수염"에게 물 수 있는 걸 줘.

하지만 "수염"은 고개를 저으며 베라의 제안을 거절했다.

통증이... 정신을 차리게 해줄 거야.

알았어.

베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바로 상처를 깨끗이 하고, 소독한 후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정말 운이 좋았어. 대퇴동맥이 다치지 않았어.

간단하게 붕대를 감은 후, 베라는 대용혈장이 담긴 주머니를 "수염"의 몸에 걸고, 옅은 황색 액체가 그의 몸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이렇게 하면 돼?

우선 이렇게 해야 해. 원래 이번 임무엔 사람을 치료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게 쓸모가 있긴 하네.

여기를 어떻게 찾아냈어?

폭풍이 가라앉은 뒤, 21호가 "수염"의 냄새를 감지했어.

21호는 "수염"의 곁에 서서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21호는 "수염"의 상의에서 바늘 끝처럼 생긴 물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 물건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위치 추적용이야. 네 몸에도 있어.

하? 내 몸에도 있어? 어디에?

이번 임무가 신호 먹통 지역에 들어가는 거라, 대장이 위치 추적 장치를 가져오라고 했어.

근데 최대 추적 거리가 3킬로미터밖에 안 돼.

그랬구나.

왜 이렇게 체온과 혈압이 안 올라오지.

녹티스. 불 좀 피워. 체온이 너무 낮아. 피를 많이 흘려 죽기 전에 여기서 얼어 죽을지도 몰라.

쳇. 싸울 때 다 써버려서 폭탄이 없어.

여기. 내가 가져왔어.

베라는 기창 옆에 놓인 한 묶음의 수제 폭탄을 가리켰다.

저번에 차 수리하던 사람이 남긴 거야.

이건 안 되겠는데. 이런 거로는 불을 피울 수 없어.

다 오래되고 질이 나쁜 화약이라... 불을 붙이면 순식간에 사라져서 불 피우기엔 쓸모가 없어.

이런 거 잘 다루는 거 아니었나?

맞아. 그래서 이걸로는 불 피울 순 없다는 걸 아는 거야.

???

삐삐.... 깍...

갑작스럽게 근처에서 어울리지 않는 잡음이 들려왔다.

여러 형태의 침식체들이 잇따라 모래 속에서 기어 나왔다. 그들도 모래 폭풍을 피해 땅속에 잠시 숨어있다가 폭풍이 잦아들자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정말 귀찮게 하네.

여기뿐만이 아니야. 주위에... 더 있어...

그럼... 후퇴할까?

부상자를 쉽게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럼, 또 다른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거네.

녹티스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폭탄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낯선 유리병을 잡았다.

술?

으.

아. 맞다. 저번에 주점 사장이 준 거야.

이거 "수염" 꺼 아냐?

녹티스는 맑고 투명한 독주 한 병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하더니, 돌아서서 "수염"이 있는 곳에 쭈그려 앉았다.

야. 너. 죽는 게 두렵냐?

……

난... 자크한테 목숨... 하나를 빚졌어.

지금은... 또... 너희들한테 두 개의 목숨을 빚졌고.

자크? 자크가 누구야?

"수염"은 고개를 흔들었지만, 눈가엔 이미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난 죽음이 두렵지 않아.

하지만 살고 싶어.

녹티스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를 뽑은 술병을 "수염"에게 건넸다.

"수염"의 손은 추위와 출혈 때문에 다소 경직돼 있었지만, 녹티스가 건네준 술병을 받은 뒤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런 뒤, 다시 술병을 녹티스에게 돌려줬다.

녹티스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수염"의 어깨를 토닥인 뒤, 베라 옆에 놓인 폭탄을 들고 일어섰다.

"수염"의 눈빛에 담긴 소원은 녹티스에게 이미 전달됐다.

옛날처럼 이 침식체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겠어.

녹티스는 손에 든 독주와 화약을 묶은 뒤, 멀지 않은 곳에 모여든 침식체들에게 던졌다.

술과 불, 철과 피는 죽음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밝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