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감사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을 보며 베라는 정말로 소대 이름을 케르베로스 봉사단으로 바꿔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전투에서 베라는 21호에게 몰래 차 트렁크에 있던 침식체를 유인하는 부품을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많은 불필요한 집과 시설들이 녹티스가 생각 없이 난사한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했고, 베라가 녹티스의 뒷수습을 하기도 전에 주민들은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구해줬는데, 이 정도 손실쯤은 괜찮잖아?
하지만 케르베로스 때문에 이런 재앙이 닥쳐왔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많은 감사와 칭찬을 받자 베라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떠날 준비는 다 됐나 보군?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군. 너희들 북서쪽으로 가려는 거야?
77호 도로야. 하지만 북서쪽으로 가야 해.
그럼, 딱 좋군. 같이 가자.
모든 것이 정돈된 것을 확인한 "수염"은 자기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네 오토바이 아직 고칠 수 있어?
나하고 이 녀석이 망가진 게 처음은 아니야.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진 잘 모르겠네.
큰 방향만 봤을 때, 같은 길 위에 있는 거잖아?
어쨌든, 먼저 이야기해 둘게.
길에서 어떤 위험을 만나게 될 진 굳이 말 안 해도 네가 잘 알 거야.
우리에겐 우리의 임무가 있어. 그래서 케르베로스는 네가 뒤처져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물론이지.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럼, 출발하자.
잠깐만.
21호, 앞에 타.
어?
차에 타. 네 오토바이는 뒤에 묶어둬.
내가 연료 한 박스 싣고 가는 셈 칠게.
그럼, 정말 고맙지.
아니야.
아. 그리고 말인데.
보험에 가입한 적 있어? 교통사고나 인명 사고에 대한 보험 말이야.
77호 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야 끝까지 도로가 이어져 있었지만, 끝에 가면 항상 그 이상으로 이어져 있었다.
야! "수염"!
뭐?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잖아! "전쟁을 멈추는 신비한 보물" 같은 게 어디 있어!
흥.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니야?
그런 보물이 있다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래서 소년은 그런 신념을 안고 떠났어. 그리고 소년 앞에 놓인 첫 번째 시련이 바로 귀신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숲이었어.
그 숲은 어떤 모습이야?
온갖 기괴한 넝쿨이 자라나 있었고,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괴물들이 살고 있었어.
그 괴물들은 숲을 찾는 사람들의 정체와 마음 상태에 따라 모습을 바꿨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말이지.
그건 사람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혼란과 약함의 투영이었어.
음... 왜 숲은 항상 이런 식인 거야.
근데 아무도 소년과 함께 그 숲을 통과한 사람은 없었던 거야?
내가 기억하기론 그래.
그 숲속에서 소년은 많은 사람들의 뼈와 귀신을 봤어. 그들은 모두 보물을 찾아 기사가 되기 위해 숲을 통과하려던 사람들이었지.
모든 사람이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죽었어. 어떤 이는 거미에게 먹혔고, 어떤 이는 넝쿨에 목이 졸렸고, 또 어떤 이는 나무 말뚝에 가슴을 관통...
이거 완전 B급 쓰레기 영화잖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기가 싫어하는 것도 이겨내지 못하면서 무슨 기사 노릇이야.
그래서 주인공만 살아남는 거지.
그다음엔 어떻게 돼?
소년은 매일 괴물들과 싸웠고, 그들은 결국 소년을 막지 못했어.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결국 그 숲에서 벗어났지.
정말로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영화에선 있어.
그건 감독이 바라는 일방적인 바람일 뿐이야. 내 생각엔 황금시대에 나온 거의 모든 게 쓰레기였어.
어느 시대든 쓰레기 영화가 없던 시대는 없었어. 아니면 좋은 영화가 뭔지 어떻게 알았겠어?
정말 짜증 나. 난 받아들일 수 없어.
왜 그때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구하려고 했을까? 모두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걸까?
세상을 구하는 게... 나쁜 거야?
그래도 생각만으로도 엄청 힘들 거 같아.
관객들은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들을 구해줄 영웅이 필요해서 그런 거야.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네.
차라리 현실적인 걸로 가자, 지금은 살아남는 것만 해도 쉽지 않잖아!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구해줄 영웅이 필요한 거야.
맞아! 음... 아니. 내가 지금 반대로 말했지?
잠깐. 생각을 좀 정리해 보자.
푸하하...
앞줄에 앉아 있던 21호가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네 이해력으론 영화 평론은 기대하기 힘들겠는걸.
그렇게 단정짓긴 일러. 황금시대에도 모든 영화 평론가가 전문가는 아니었어.
영화 평론가 중에 평생 세 마디만 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
어떤 세 마디?
내가 안다면 나도 영화 평론가가 됐겠지?
하지만 영화 평론하기도 참 어려워. 영화 찍는 것만큼이나 말이야.
그냥 영화잖아! 나도 찍을 수 있어! 다음에 찍을 때 나 불러. 이 B급 쓰레기보다 훨씬 낫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다음에 어떻게 됐어?
그다음엔 말이지. 숲을 통과하니 소년 앞에 검은 구름과 연기로 뒤덮여 있는 높은 탑이 나타났어.
그때, 모래바람이 하늘을 가득 채우며 불어오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베라. 너 혹시... 아픈 거 아니지?
헛소리 마. 구조체가 어떻게 아파.
너도 입 좀 다물어. 모래가 발성 장치에 들어가면 정리하기 귀찮아.
음...
21호가 갑자기 들고 있던 손을 내리자, 그녀의 넓은 소매에서 모래가 쏟아져 내렸다.
모래가 엄청 많아.
콜록... 2... 1호... 콜록... 콜록...
녹티스는 21호가 자신에게 모래를 뿌리는 것에 대해 꾸짖기도 전에, 녹티스의 발성 장치가 모래바람에 콜록거렸다.
이 모래 폭풍... 차 뒤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어. 모래 폭풍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
쳇...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지도, 지도 있어?
21호가 "수염"에게 낡은 지도책을 건네줬다.
그 차 수리하는 사장한테서 주워 온 거야.
어? 그놈 죽으면서 조금은 쓸모 있는 일을 했네. 내가 봐볼게.
4시간 정도 달렸다면... 남쪽에 작은 골짜기가 있을 거야. 거기라면 숨을 만해.
이 모래 폭풍은 언제쯤 그칠까?
고개를 저은 "수염"이 얼굴에 걸친 낡은 천으로 만든 임시 마스크를 단단히 조여 맸다.
짧으면 몇 시간, 길면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어. 말하기가 곤란해.
그럼, 네가 말한 곳으로 가자.
차를 길가에 세워둔다고? 누가 가져간다면 어쩌려고.
이 날씨에 사람이 어디 있어. 하지만 눈먼 다른 차와 또 부딪히지 않게 길가에 세워두는 건 좋은 생각인 거 같아.
내가 도로변에 차 세울게.
베라가 일어서서 몸에 붙은 모래를 털어내려 했지만, 차 문을 열자마자 바로 포기했다.
봐봐. 그러니까 내가 운전하겠다고 했잖아.
어떡하면 좋아? 차 문도 부서졌고, 앞 유리도 산산조각이 났잖아.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떡해?
녹티스를 한쪽으로 밀친 베라가 하얗게 깨진 유리창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유리 전체가 떨어져 나갔다.
이제 보이지?
아. 진짜...
21호. 와서 날 좀 도와줘. 차 안에 있는 모래 좀 치워줄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어디지? 출발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