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도로 위를 베라가 몰고 있는 차량이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질주하면서 먼지를 일으켰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볼 때, 베라의 운전 기술은 케르베로스 소대 중 가장 뛰어났다. 적어도 녹티스나 21호처럼 운전하다 차를 박살 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가끔 자신이 운전할 때 차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지는 베라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기는 건 녹티스나 21호 때문이 아니라 케르베로스 소대 전체 때문인 거 같았다.
이번 임무를 시작할 때 베라는 차 밀 때를 제외하고는 녹티스가 핸들을 잡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낡은 차는 도중에 고장이 나고 말았다.
야. 대장. 잠깐 쉬는 게 어때?
차 고치고 나서 벌써 17시간째 운전만 하고 있잖아.
어, 너 언제부터 그렇게 남을 신경 썼냐?
베라는 녹티스의 속셈을 눈치챘다. 그냥 손이 근질근질한 거였다.
녹티스는 할 수 없이 창밖으로 끝없이 지나가는 단조로운 회색빛 사막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두 팔의 소매를 차창 밖으로 늘어뜨리고 있는 21호를 지켜봤다.
233... 33... 34...
21호, 뭘 그렇게 세고 있어?
우리가 지나간 선인장 수.
21호의 널찍한 소매가 바람에 펄럭이며 소리를 냈다. 가끔 21호는 소매 끝을 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향하게 만든 뒤 바람으로 가득 채워, 두 개의 풍선처럼 부풀게 했다.
선인장... 뭐 특별한 거라도 있어?
내가 들은 건데, 어떤 선인장은 아르마딜로를 좋아해서 품에 안고 있대.
그래서 그런 선인장을 본 거야?
아니. 그래서 21호는 세고 있는 거야.
…………
한숨 쉰 녹티스가 고개를 돌려 다시 자기 창밖의 단조로운 풍경을 바라봤다.
야. 대장.
또 뭐야?
이번에 우리 뭘 하러 가는 거야? 이렇게 지루한 임무는 처음이야.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 길을 가면서 동물 한 마리 본 적 없어. 다... 선인장뿐이야.
녹티스는 혼자 재미있게 선인장을 세고 있는 21호를 힐끗 쳐다보며 불평했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이번 임무는 머레이가 직접 준 거야. 하지만 목적지만 알려줬어.
다 네 탓이잖아?
녹티스는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케르베로스 소대는 다른 집행 부대보다 훨씬 자유로운 자체 행동권과 처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대에서 독단적으로 떨어져 나와 여러 조직과 관련되어 외교적 영향까지 미쳐버린 행동은 머레이라도 권한상 케르베로스를 잠시 "감금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쳇.
235……
21호. 나중에 우리 둘이 한번...
거대한 충돌 소리가 마침내 잦아들었고, 차량은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매우 드물게 욕설을 내뱉은 베라가 꽉 밟고 있던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다리를 들어 차 문을 걷어찼다. 그리고 녹티스와 21호도 차에서 내렸다.
봐봐. 그러니까 내가 운전하겠다고 했잖아.
어떡하면 좋아? 차 문도 부서졌고, 앞 유리도 산산조각이 났잖아.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떡해?
녹티스를 한쪽으로 밀친 베라가 하얗게 깨진 유리창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유리 전체가 떨어져 나갔다.
이제 보이지?
대장... 누군가 있어.
뭐?
방금 네가 뭘 들이받았는지 봤어?
모르겠어. 근데 이 바닥에 있는 걸 보면... 뭔가 쓰레기 같은 거겠지.
베라는 발로 바닥에 흩어져 있는 부품 하나를 걷어차며 21호에게 물었다.
누구야?
차 뒤, 땅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빨간색 오토바이도 하나 있어.
21호는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를 반쯤 부러진 선인장을 들고 차 뒤쪽 불과 몇 걸음 떨어진 차 사고 현장을 가리켰다.
뭐! 혹시 승격자라던가...
승격자가 바보처럼 길 한복판에 서서 날 맞이할 거로 생각해? 그리고 빨간색 오토바이 타는 사람이 다 승격자냐?
베라는 차량 시트 아래에서 약물 상자를 꺼낸 뒤, 21호가 가리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뭐지?
빨간색 오토바이 타는 사람.
어?
그... 영화에서 빨간색 오토바이 타는 사람 말이야. 녹티스 안 봤어?
녹티스! 21호!
멀지 않은 곳에서 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녹티스와 21호도 함께 오라는 신호였다.
음... 나중에 얘기하자. 언젠가 나도 오토바이 모는 거 배워봐야겠다.
녹티스는 분명 못할 거야.
왜! 나 충분한 재능이 있어!
으익... 아파! 아파!
야! 뭐 하는 거야... 읍...
녹티스는 도로변에 기대어 있던 스캐빈저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이, 그의 입에 수건을 쑤셔 넣고 베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라는 힘을 주어 스캐빈저 발목에 박힌 나뭇조각을 뽑아냈고, 익숙한 솜씨로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침식을 막을 수 있는 항생제를 뿌린 다음 붕대를 감았다.
읍... 읍...
됐어. 뭔가 물고 있으면 좀 나아질 거야. 죽을 정도로 숨 막히게 하지는 말고.
으익... 진짜... 이렇게 큰 나무 조각이...
괜찮아?
훨씬 나아졌어. 근데... 좀 간지러운데?
간지러운 건 정상이야.
너 정말 운이 좋았어. 네가 아닌 오토바이에 박았잖아.
그런데 말이야. 대장은 이 기체로도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할 수 있어? 정말 신기하네.
허...
이 오토바이 본래 고장 났었는데, 이젠 거의 폐차 직전이 돼버렸네.
일단 말해두는데, 네 상처는 우리 때문에 생긴 건 아니야.
너희 탓이 아니야. 이 오토바이가 고장 나면서 날 내던졌거든. 젠장... 게다가 머리부터 땅에 처박혀서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 셈이지.
쳇. 위험하네. 하지만 난 이런 거 좋아해.
그래?
아. 고맙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내 오토바이를 보상받아야 할 지 모르겠네.
베라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스캐빈저는 베라의 미소 뒤에 숨은 위협을 느끼고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맞다. 쿨럭. 내 이름은 "수염"이야. 영화를 상영하는 일을 해.
"수염"은 뒤쪽에 잘 보관된 영화 상영기와 한 무더기의 필름을 가리켰다.
오? 너 영화 상영하는 사람이야?
본 적 있어?
본 적은 없고, 마을에 있을 때 들은 적은 있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영화 상영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맞아. 네가 들은 사람이 나야.
다행히 오토바이만 좀 망가지고, 필름이나 영사기는 멀쩡해.
영화 상영할 수 있어?
21호가 "수염"에게 다가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의 뒤에 있는 영사기를 살펴봤다.
그럼, 꽤 많은 영화가 있어. 예를 들면, 아아...
미안. 21호가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영화 중에 사람 하나가...
21호는 손에 들고 있던 선인장을 숨겼고, "수염"은 어쩔 수 없이 팔에서 가시를 빼며 쓴웃음을 지었다.
21호가 "수염"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녹티스는 베라의 손을 잡아끌고 "오토바이" 더미 옆으로 갔다.
쳇. 무슨 일이야?
대장. 우리 이 사람 데리고 가자?
뭐?
우리가... 오토바이를 실수로 망가뜨렸잖아.
방금 그 말 못 들었어? 우리 오기 전부터 이미 오토바이는 고장 났었거든. 내가 상처까지 치료해 줬는데,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그렇긴 한데, 저것 좀 봐. 수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녹티스가 눈앞에 쌓인 부품 더미를 가리켰다.
원래 못 타던 걸 못 타게 된 건데. 뭔 차이가 있어?
그럼, 차라리 내가 운전하는 게 낫겠다. 내가 운전하면 절대로 안 부딪히니까!
오? 재주가 좀 있으신가 보네?
대장...
베라는 뒤돌아 21호에게 무슨 일인지 물으려 했지만, 21호는 그들이 다가온 길을 향해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뒤에서... 적 냄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