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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9 광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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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휘의 추종자는 달리고 또 달렸다. 어두운 참호를 통과한 뒤, 다시 태양을 봤을 때, 큰 붉은빛이 광휘의 추종자의 카메라에 들어왔다.

멀리 지평선에서 침식체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광휘의 추종자는 탐측 범위를 지평선을 넘겨 계속해서 넓혔다.

적의 전투력이 아군을 훨씬 뛰어넘었고, 에너지가 매우 부족해서 침식 위험이 매우 높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그들을 이길 수 있어요?…

판단 결과: 즉시 진지 이동을 수행하겠습니다.

광휘의 추종자가 이렇게 판단하자, 정면에서 불빛 하나가 그의 장갑을 공격했다. 깊은 상처는 상대가 더 이상 여과탑 옆에 돌아다니는 일반 침식체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서 올라오십시오.

광휘의 추종자가 웅크리고 앉아, 위현이 그의 가슴 위로 올라갈 수 있게끔 두 손을 벌렸다. 침식을 피하고 위현이 예기치 못한 사고에서 피할 수 있도록 이곳을 떠나야 했다.

네.

철수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하지? 명령이 없는 상황에서 광휘의 추종자는 반드시 안전한 위치를 찾아, 위현을 데려가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왜 그러야 하지?

중추 안의 생각은 광휘의 추종자가 무기를 꺼내는 동작을 멈칫하게 했다.

광휘의 추종자는 이미 임무를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위현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빅토르가 약속했던 좋은 곳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위현을 지킨다 해도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적은 광휘의 추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여러 개의 총알이 광휘의 추종자 옆을 스쳐 지나갔다.

치직! 손끝에서 번쩍이는 화염 광날이 총알을 단칼에 두 동강 냈다. 그러자 광휘의 추종자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살짝 떨었다.

광휘의 추종자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휘의 추종자는 누군가가 지시를 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빅토르는 죽었고, 뒤엔 아무것도 모르는 위현만 있었다. 전장에 있는 것처럼, 광휘의 추종자가 다음 대책을 생각해야만 했다.

광휘의 추종자는 이전 기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과거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추종자 일지 9950호. >>>추종자 일지 9454호. >>>추종자 일지 8741호.

빅토르

난 수많은 이유를 대서 이 진정한 목적을 포장하려 했다. 난 그들이 말한 대로, 이 전쟁들을 일으킨 건 평화...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인간은 평화롭고 걱정이 없었을 때, 자신의 이상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다.

>>>추종자 일지 8650호. >>>추종자 일지 8454호. >>>추종자 일지 7741호.

괜찮아요?

포기하지 마세요! 여기서 끝낼 순 없습니다!

인간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직면했을 때, 마지막 힘을 다해 버텨낼 것이었다.

>>>추종자 일지 7612호. >>>추종자 일지 7213호. >>>추종자 일지 6321호.

삼촌 말대로... 인간은 투쟁의 욕망뿐만 아니라, 평화의 욕망도 가지고 있거든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도 평화로운 시대에만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빅토르

죽기 전에 이 녹음을 듣는 사람에게 힘이 되기를... 버텨낼 힘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인간은 죽더라도 마지막 유산을 산 자들에게 넘겨주어 계속 싸울 수 있게 했다.

인간의 핏속에는 투쟁이 새겨져 있었다.

광휘의 추종자는 이 피 때문에 태어났고, 이 여정에서 이 피의 표현을 지켜봐 왔다.

하지만 광휘의 추종자는 투쟁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럼, 자기를 위해 하나 더 찾으면 되지 않을까?

>>>추종자 일지 9955호.

빅토르는 자신의 모든 약속을 배신했고, 인간이 추앙하는 평화와 동료도 배신했다.

그럼, 광휘의 추종자가 이것을 수행할 것이다.

인간은 할 수 없고, 배신한 것을 광휘의 추종자가 수행할 것이다.

광휘의 추종자, 철수합니다!

철수했다. 더 이상 적의 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돌진하지 않고, 아군을 지키기 위해 뒤로 이동했다.

추진기는 예열 없이 최대 효율을 강행됐고, 열기는 대지를 뒤틀며, 광휘의 추종자의 몸을 들어 올린 뒤, 하늘 높이 던졌다.

광휘의 추종자는 이런 명령을 수행해 본 적이 없었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런 행동은 더더욱 없었다.

침식체들의 파도는 방향을 바꿨고, 수많은 포관이 광휘의 추종자의 큰 몸을 조준하며, 공격을 준비했다.

광휘의 추종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 떠나야 했었다.

매서운 바람이 날개를 스쳐 갔고, 쏟아지는 총알이 단단한 철갑을 때리면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광휘의 추종자는 총알이 두 손의 장벽을 관통하지 못하도록 품에 생명을 꼭 껴안은 채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하지만,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는...

고, 고철 덩어리! 조심해요...

그는...?

위현의 비명에 광휘의 추종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빛이 꺼졌다.

침식된 붉은빛이 카메라 전체를 뒤덮은 중형 반정찰 전투기 한 대가 집중 사격을 우회해 광휘의 추종자 앞에 나타났다.

수많은 전투 자료가 입력된 광휘의 추종자는 숱한 단련을 거친 반응과 계산 속도 덕분에 전진 방향을 즉시 조정해 공격해 오는 전투기의 결정타를 몸을 돌려받아냈다.

그래서 이 공격으로 광휘의 추종자는 팔에 중상을 입었다.

위현!

아... 덩어...

위현의 목소리가 광휘의 추종자의 부서진 팔 부품과 함께, 지구 인력에 이끌려 땅으로 떨어졌다.

쾅! 순식간에 발사된 포관은 근거리에 있는 적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광휘의 추종자는 상대방의 손상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재빨리 고도를 낮춰, 자신의 모든 연산 능력으로 위현의 낙하지점을 계산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온 여정을 돌이켜보면, 광휘의 추종자는 항상 인간 전쟁의 피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전쟁 너머에 인간의 투쟁 말고, 또 다른 핏줄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 생명이 광휘의 추종자에게 가르쳐 줬다.

그 핏줄은 인간을 서로 함께하게 했다. 그 핏줄은 인간이 별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그 핏줄은... 인간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념하는 법을 배우게 했다.

광휘의 추종자에게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생명이 깃털처럼 그의 품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물이 물속에 빠진 듯, 소리 없이 침식체의 파도로 떨어졌다.

위현

그것들을 쓰러뜨릴 수 있어요?

추락하는 순간, 광휘의 추종자는 아이의 작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것들을 쓰러뜨린다라...

평화를 위해서? 자기가 침식되지 않기 위해서? 참호 안 사람들의 의지를 이어받기 위해서? 이 침식체들에 의해 위협받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었다. 모두가 아니었다.

단지 동료가 광휘의 추종자에게 이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임무를 확인합니다.

아닙니다. 이건 임무가 아닙니다.

이것은 동료의 부탁입니다.

광휘의 추종자, 전략적 위치를 확인합니다.

지형을 스캔해, 적이 별로 없는 고지를 찾았다. 광휘의 추종자는 추진기를 멈춰서 중력이 자신을 끌어내리도록 유도했다.

목표 고지의 침식된 로봇들을 날려버려 공격에 적합한 공터를 만들기 위해, 무거운 몸을 추락시켰다.

광휘의 추종자, 최대로 출력을 올립니다.

모든 방어를 제거했고, 연산 능력과 에너지를 출력 모듈에 주입했다.

거대한 열에너지가 광휘의 추종자의 포관에 축적되자, 로봇의 몸이 태양처럼 뜨거워졌다. 광휘의 추종자에게 뜨거운 갑옷을 입힌 것처럼 냉각수가 하얀 안개로 변해 흩어지면서 온몸을 감쌌다.

이 갑옷은 몇 초 동안 걸치지 못했고, 다음 순간, 광휘의 추종자의 몸에서 불꽃이 튀어나오면서 갑옷에 날카로운 뿔을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튀어나온 뿔은 습격하는 침식체들을 세게 찔렸다!

뿔이 닿는 모든 곳이 끓는 기름에 던져진 물방울 같았고, 포탄은 수많은 파편으로 폭발했다. 그러자 파편이 다시 터지면서 폭파 범위가 몇 배로 확산했다.

이것은 일차 공세에 불과했다. 몇 초 동안 식힌 후, 침식체들이 다시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광휘의 추종자는 몸에 또 다른 갑옷을 입혔다.

공격합니다! 공격합니다! 공격합니다!

뒤에 지켜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방어에 신경 쓰지 않았다. 모든 수단을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했다. 이것은 광휘의 추종자가 원래 가장 잘하는 일이었고, 가장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광휘의 추종자는 왜 자신이 임무를 완수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화력 투하가 끝납니다. 적의 생존 상황을 확인합니다. 움직이는 개체가 없습니다.

공격이 얼마나 진행됐었는지, 포관이 완전히 과열되어 냉각수가 증발한 하얀 연기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많은 침식체가 조금씩 소멸해 가는 듯한 전세를 보였다.

위현! 위현! 들리면 응답하길 바랍니다!

광휘의 추종자는 빠르게 고지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 침식체 잔해로 만들어진 금속 더미를 걸으며 소리쳤다.

응답이 없었다.

어쩌면 그 아이가 떨어지는 순간 죽었을지도 아니면 모든 침식체의 파도와 함께 먼지로 폭파됐을 수도 있었다.

광휘의 추종자는 수많은 침식체의 시체를 밟으며, 위현이 떨어진 지역에 머물렀다. 그러다 갑자기 쭈그리고 앉아 파헤치길 시작했다.

광휘의 추종자가 자신이 침식 구역에 있으면 침식될 위험이 높을까? 큰 파도에 쓸려간 위현은 생존했을까?

이 문제들을 광휘의 추종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남은 모든 검색 기능을 이용해, 그 마른 아이를 찾을 뿐이었다.

문득, 광휘의 추종자는 이 장면이 매우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디에 봤었더라? 어디였더라?

맞다. 오래전, 그 전장에서 광휘의 추종자는 자기 가족을 이렇게 파헤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세상이 무너졌고, 집이 다 사라져도 동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서서 버틸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침식체를 마주하든, 무서운 로봇을 마주했든, 그곳의 사람들은 광휘의 추종자가 무의식적으로 동료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해했었다.

하지만 광휘의 추종자는 그 평민처럼 자신의 동료를 찾아내지 못했다.

생명은 함께 있어야 한다. 생명은 투쟁이 필요하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운명과 싸우기 위해 생긴 생명력이 공중에 뜬 도깨비불처럼 의지할 곳 없이 사라졌다.

한 시간, 두 시간... 광휘의 추종자가 같은 곳을 이미 여러 번을 파헤쳤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에너지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광휘의 추종자를 끝없는 수색 작업에서 깨어나게 한 건 소리 수신기에서 갑자기 울리는 목소리였다.

빅토르

콜록, 콜록... 이 총이 위력이 없을 줄은 몰랐네. 아, 녹음기가 켜져 있다니...

콜록, 공백이 두 시간이나 되네. 어차피 여기까지 듣는 사람도 없을 테니, 이제 부끄러운 얘기 좀 하지.

사실... 성수라 예배당에 아직 추억이 남아있어... 그건 내가 오빠로서, 아이로서 가진 유일한 끈이야.

그곳에 내 형과 여동생이 함께 그린 그림이 보존돼 있거든. 아직도 그 안에 내가 그린 별하늘이 몇 장이 있는지 그리고 형들이 그려준 별자리와 로켓 모두를 기억하고 있어.

내가 전쟁상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난 그 그림들을 가져다 예배당의 지하 창고에 보관했어.

그건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마지막 끈이야... 난 철수하기 전에, 그 끈을 되찾는 데 집착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됐어. 난 곧 가족과 함께 있을 거니까.

안녕... 내 사랑하는...

뚝...

빅토르가 별하늘과 가족에 대한 마지막의 그리움은 총성과 잡음 속에서 사라졌다.

거대한 궁금증이 광휘의 추종자의 본체에서 생겨났다.

임무가 잘못됐다. 빅토르가 말한 중요한 물건은 무기도 위현도 아닌 그림 몇 장뿐이었다.

그럼, 위현은 대체 누구인가? 위현이 가려고 했던 곳은 도대체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