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자 일지 8940호.
임무 수행 464시간째, 버려진 로봇에게 "퍼니싱" 관련 자료를 획득했습니다. 위험도: 매우 높습니다. 모든 침식 위험을 엄격히 거부합니다. 침식될 시 임무 실패로 간주합니다.
대응 전략: 모든 [여과탑] 시설을 파악해 임무 지역으로 이동은 여과탑 범위 내에 한합니다. 그리고 구역 간 고공비행 모드를 선택해, 침식 위험을 감소시킵니다.
임무 수행 진행도: 제5대 구역에서 제4구역의 A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목표 지점까지 100m... 50m...
목표 지점 도착으로 저공비행 모드를 종료합니다.
꼬리 부분의 제트 시스템이 꺼지고, 광휘의 추종자의 육중한 몸이 다시 땅을 밟았다. 순간, 앞쪽에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대예배당에서 진동을 감지한 것 같았다..
주위에 적이 없는걸 확인했습니다. 열 배출을 수행합니다. 예상 시간: 189초입니다.
장시간 이동과 때론 침식 지역 회피를 위해서 고공비행해야 했기 때문에, 광휘의 추종자 기체는 과열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광휘의 추종자는 예배당 한구석에 서 있었다. 그리고 온몸의 열 배출 구멍에서 증기가 한꺼번에 뿜어져 나오는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열 배출에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공격처럼 순식간에 완료되는 것은 아니었다.
행동이 완료되면 목표를 확인합니다.
실례지만, 고해실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신가요?
광휘의 추종자가 열 배출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기대어 있던 고해실에서 소리가 났다. 이 소리에 광휘의 추종자는 준비하던 무기를 즉시 꺼내 그 고해실을 향해 겨눴다.
아, 겁먹지 마시고,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전 심리 상담사로서, 이 고해실에서 신부의 직책을 맡고 있어요.
지금 이 지역은 퍼니싱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픈 상태죠. 그래서 이 근처에 살고 있는 전 이 주위 사람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 쪽에서 당신을 볼 수 없고, 저도 당신이 절 보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고해실 안의 남자 목소리는 떨리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밖은 볼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광휘의 추종자가 겨눈 포관을 보고, 깜짝 놀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역시 대부분의 인간이 광휘의 추종자를 만났을 때의 표현이었다. 광휘의 추종자가 다가갈 때마다, 인간의 눈에 비친 두려움과 손에 든 무기로 그를 쫓아냈다. 사실 광휘의 추종자는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도는 없었고, 단지 이동 경로가 인간과 겹쳤을 뿐이었다.
광휘의 추종자에게는 인간과 이런 식으로 직접 대화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방금 당신이 이쪽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아니면... 여기에 아무도 없었으면 하나요?
고해실 안 남자는 재촉하지 않고,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대답하겠습니다. 물건을 찾고 있습니다.
물건을 찾고 있군요. 혹시 찾고 있는 물건이 뭔가요? 제가 본 적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대답하겠습니다. 정보가 부족해 위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빅토르 교수가 철수하기 직전, 자신에게 소중한 거라고 절망적으로 외쳤기 때문에, 광휘의 추종자는 교수가 어떤 고출력의 무기를 숨겼을 것으로만 추측하고 있었다.
게다가 빅토르 교수는 모든 화력 무기 개발에 능통했기 때문에, 광휘의 추종자는 교수가 말하는 비밀 무기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찾고 계시니, 지금 많이 고민하고 되시죠?
하지만 괜찮아요. 우리가 함께 답을 찾으면 돼요.
우선, 이름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 무기들을 탑재한 넌 평화를 위해 태어났어.
……
제 이름은 광휘의 추종자입니다. 이 이름은 평화의 빛이 우주를 비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평화를 위해 태어난 전쟁 로봇으로, 수십 년을 한결같이 임무 때문에 오고 갔습니다.
수십 년이라면 황금시대부터... 당신은 유화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나요? 음, 스스로를 전쟁 로봇이라고 부르시다니, 자신의 사명에 충성을 다해 따르는 것처럼 들리네요.
맞습니다. 저는 평화의 수호자입니다.
인간이 서로 전쟁한 역사...
인간이 서로 전쟁한 역사는 매우 깁니다. 국가와 국가, 심지어 국가 내에서도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죽이느라 바빴던 인간은 별하늘 한 번 올려다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역시 평화의 수호자다운 생각을 하시네요! 이것도 당신이 말한 것처럼, 어디 있는지 찾고 있나요?
그럼, 이런 평화는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이루어질지 생각해 보셨나요?
거부합니다. 생각한 적 없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지금 멀지 않은 곳에 전투가 발생했는데, 마침 당신이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자원 낭비일 뿐이므로, 시뮬레이션 요청을 거부합니다.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잠시 멈춘 후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군요. 평화로 가는 길은 이렇게 멀고 지금, 이 환경에선 더욱 어려워요. 당신도 오랜 시간을 생각해 봐야 하겠네요.
그럼, 이 화제에 말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하죠.
전쟁 로봇. 평화라는 큰 이상 말고 진행할 수 있는 다른 목표가 있나요?
없습니다. 지금 제 목표는 오직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제가 새로운 목표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군요... 하지만, 전 당신이 목표로 가는 방식을 찾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럼, 동료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생명은 함께 있어야 해요. 자신에게 조언해 주고, 자신과 대화하며, 항상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생명은 중요해요.
혼자 가면 길을 잃을 수 있지만, 동료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료가 필요하다면 제가 장소 하나를 소개해 줄게요. 분명히 당신은 그곳에서 동료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여기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3킬로미터 간 뒤, 북쪽으로...
대화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끊겼다.
동료의 정의는 대화하고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개체입니다. 이것으로 판단한다면, 전 동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말에 뒤따른 건, 고해실과 광휘의 추종자의 육중한 몸을 덮는 침묵이었다.
지금까지 광휘의 추종자는 많은 로봇을 만났는데, 대부분은 성능이 높지 않고, 단순 작업만 반복하는 거였다. 게다가 더 많은 기능의 로봇이 이미 침식되어 더 간단한 살육 작업만 하고 있었다.
광휘의 추종자는 어떤 로봇이든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저도 강요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당신이 찾고 있는 물건에 대해 우린 답을 찾은 것 같아요. 바로...
위험합니다.
……?
침식체 신호가 감지되어, 10초 후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즉시 피하십시오.
많은 설명을 할 겨를도 없이, 광휘의 추종자는 일어난 뒤, 비행 모드로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무장이 등에서 모두 나타났다.
10초 후, 모든 화력이 고해실로 집중됐다.
침식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이탈 중인 대상을 처치합니다.
광휘의 추종자는 대화 도중 침식 신호를 감지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수신하면서 일부 침식체의 표식 데이터를 얻어 내, 침식체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광휘의 추종자에게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화력으로 폭격하는 것이었다.
몇 분 후, 화력이 멈췄고, 일시적으로 과열된 포관에선 연기가 나고 있었다.
폭격이 완료됐습니다. 감지 회로 가동합니다. 적외선 감지 부품에 연결되지 않아서 카메라로 감지를 진행합니다.
감지 실패했습니다. 확인되는 생명체의 활동이 없습니다.
이상한 말을 했던 그 남자는 제때에 도망갔을 수도, 침식된 로봇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을 수도 있었다.
어떤 결과든, 광휘의 추종자는 경고했고 수행해야 할 책임을 다했다.
에너지 충전을 검사해, 화력이 정확한지 확인한 뒤, 임무를 계속 수행합니다.
하나의 책임 뒤엔 또 다른 책임이 뒤따랐다.
목표 임무 감지 중입니다.
광휘의 추종자는 빅토르 교수가 말한 물건을 꼭 찾아야 했다.
가지고, 거기에 갑니다.
어디로 가져가야 하나요?
고철 덩어리. 절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예요?
순간, 광휘의 추종자는 경계하며 무기를 꺼냈고, 온몸의 카메라는 뒤쪽에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스캐빈저로 보이는 아이가 두 손을 망토 속에 숨긴 채, 광휘의 추종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이의 눈엔 두려움이 없었고, 손에는 무기도 없이 차분히 서 있었다. 무기를 든 광휘의 추종자를 마주하는 모습이 키 큰 동포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고철 덩어리, 날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 거예요?
키워드가 감지되어 확인을 시작합니다.
임무 대상이 바로 이 아이인가? 광휘의 추종자는 궁금했다. 이유가 어쨌든 광휘의 추종자를 봤지만, 두려움과 도망칠 반응이 없는 인간이라면, 광휘의 추종자는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인체 외형을 스캔합니다. 완료했습니다. 특정 검사를 스캔합니다. 장비가 손상됐습니다. 특정 스캔에 실패했습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 확인합니다.
질문입니다. 10m가 넘는 화염을 분출할 수 있습니까?
네...? 못해요.
초입자 빔을 발사할 수 있습니까?
그게 뭐예요?... 못해요.
10만 단위 효율 이상의 공격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그게 뭐... 십만 개... 구슬이에요?
확인했습니다. 임무 대상이 아닙니다.
광휘의 추종자는 불을 분출하지 못하고, 초입자 빔을 발사하지 못하며, 심지어 10만 단위의 효율 공격을 수행할 수 없는 생물을 빅토르 교수의 소중한 "최종 무기"로 인정하지 않았다.
광휘의 추종자는 카메라를 돌려, 버려진 예배당을 계속 스캔했다.
스캔 후, 광휘의 추종자는 거대한 무기나 에너지 공격을 할 수 있는 어떤 물건도 찾지 못했다.
뭐가 임무 대상이죠... 아니죠. 아직 저에게 대답해 주지 않았잖아요. 절 어디로 데려갈 건가요?
삼촌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며, 로봇이 절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갈 거라고 말했었어요. 그게 당신인가요?
"삼촌". 광휘의 추종자는 기억체 속에 빅토르 교수가 우연히 언급했던 가족이 생각났다.
생명은 함께 있어야 해요. 빅토르 교수가 그중 한 명인가요?
질문입니다. 당신은 다른 생명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까?
함께... 당연하죠.
질문입니다. 당신이 말한 "삼촌"은 당신과 함께 있길 원합니까?
네! 물론이죠! 제가 너무 필요하다고 말했었어요.
임무 목표를 다시 확인합니다.
어쩌면, 광휘의 추종자가 잘못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빅토르 교수는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최종 무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호송해야 할 것은 그저 한 아이일 뿐이었다.
광휘의 추종자는 아이의 앞에 서서 자세히 관찰했다.
임무 목표 무력 수준은... 최하입니다. 지능 수준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판단 대상은 보호가 필요한 분류에 속합니다.
당신을 때릴 거예요!
반대합니다. 절 때리는 건 당신 몸에 손상만 입게 됩니다.
……
아이는 광휘의 추종자의 기체를 여러 번 두드렸다가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가기 전에 여기와 작별 인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입을 삐쭉 내민 아이는 삐진 상태로 광휘의 추종자의 포화에 폐허가 된 고해실로 걸어갔다.
저 갈게요. 절 데리고 가는 그 로봇이 좀 멍청하고, 화를 돋우는 능력이 있지만, 전 여기를 떠나야 해요... 그동안 계속 대화해 주셔서 감사해요.
알립니다. 여기 사람은 떠났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심리 상담사가 어떻게 죽을 수 있어요? 잠시 말을 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거부합니다. 대상은 높은 확률로 사망했습니다.
아니요. 그럴 리 없어요...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서 임무 목표의 운반을 바로 진행합니다.
임무 목표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에겐 위현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잠깐만요. 절 운반하겠다고요? 와, 뭐 하는 거예요!
광휘의 추종자가 아이의 손을 잡은 뒤, 위현을 한 번에 안아 올렸다. 그러자 위현은 광휘의 추종자의 어깨에 올라타게 됐다.
딱딱하네요. 절 안에다 앉힐 줄 알았어요.
다른 로봇에겐 그런 운송 방식이 있지만, 전 전투에 특화된 로봇이기 때문에 이런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습니다.
아니면, 제 기체의 팔로 당신을 안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투에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됐어요. 고철 덩어리에 안기는 건, 하나도 재미없어요.
아이가 광휘의 추종자의 머리에 기대고, 입을 삐죽 내민 채 말했다.
그냥 이렇게 데려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