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아까 다치진 않았죠?
그래. 정말 고맙다, 성녀여.
성녀라는 칭호는 왠지 이상하네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성녀는 성녀라고 불러야한다. 난 호칭을 바꿀 생각 따위 없다.
휴.
탈영병들을 따돌린 뒤 리브와 스스로를 마왕이라고 부르는 정찰병은 다시 길을 떠났다.
실례되는 질문이긴 하지만 당신 정말 마왕인가요? 전 마왕이라면 온몸이 다 시커먼 거인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의 나라면 분명 그런 모습이었겠지만 용사들에게 패배하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이런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당신이 날 처음 보던 순간 날 이중합이라는 물건이라고 착각했던 거 기억나나?
네, 당신과 똑같이 생겼더군요.
성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런 거겠지. 우리의 이 세계는 현실 세계의 투영일 뿐이니.
리브와 마왕은 생성 포인트에서 알게 되었다.비록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그의 말을 듣고 리브는 이 세계를 구하는 걸 돕기로 했다.
마왕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국왕에게 버그가 생겼고 그 버그 때문에 국왕은 이곳이 게임 세계에 불과하며 그 자신도 사람들의 오락을 위해 만들어진 AI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확실한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이 세계를 삭제하고 다시 만드려는 걸 거야... 스스로가 게임의 신이 되는 거지.
삭제... 그럼 이 세계에서 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당연히 데이터가 전부 지워지겠지. 이 게임의 하드웨어에는 용량이 별로 없겠지. 원래 데이터를 유지하면서 새 세계를 창조할 수는 없어.
모두들... 사라지는 건가요? 그들은 자신이 NPC이라는 것도 모를 텐데요.
모두들 스스로가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지만.
그렇다면 국왕은 버그 때문에 스스로가 게임 캐릭터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죠? 그럼 당신은 어떻게 안 거죠?
나도 버그가 생겼거든.
원래대로라면 용사들은 쿠로로로 변한 그를 다시 토벌하면 게임이 종료되는 거였다. 하지만 용사들이 너무 일찍 이 세계를 떠나버렸다.
모든게 불완전한 상태에서 종료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리셋되었다. 리셋된 후에 새 용사들, 그러니까 리브 일행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나한테는 이런 오류가 쌓여 또 다른 버그가 생긴 거다.
미리 말하지만 난 이 세계를 통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프로그램 설정대로 도시가 파괴되고 인류가 소멸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더군. 지금의 나는 사랑과 평화를 위해 태어난 마왕이다.
하하...
귀여운 모습으로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리브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마왕은 불평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큼큼, 어쨌든 적들은 계속 봉쇄선을 만드는 방법으로 우리 행동을 제한하려고 할 거다.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은 단 하나 뿐이지.
그건 바로 마지막 악마 장군 카루나의 성이지. 아직 보물을 빼앗기지 않은 악마 장군은 아마 그 뿐일 거다.
하나라도 좋다. 보물을 얻으면 내 힘도 커질 거다. 그럼 나도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