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나, 네 어머니의 건의에 따라 나는 다시 그 이야기를 쓰기로 했어.
그 이후로는…… 잘 진행되고 있어. 당분간은 공유해줄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어.
보상으로 첨부파일에 내가 창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재밌는 이야기들을 추가했어.
만약 지난 편지가 너를 불안하게 했다면, 편지 안의 작은 농담이 너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기를 바랄게.
네가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어.
난 종종 네 미소를 봤지만, 그건 네가 어머니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은 어색한 미소였어.
나조차도 너의 완전히 내려놓은 진정한 웃음은 거의 보지 못했어.
하지만 한 번 본 적이 있다면 그 웃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지.
네가 구조체가 되고 나서 고고학 소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느 오페라를 복원하는 작업에 합류했었지. 그건 황금시대의 어느 오페라 가수의 작품이었어.
당신은 구시대의 오페라를 듣고, 제일 먼저 나에게 연락해서 빨리 이 이야기를 나와 공유하고 싶다고 했지.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의 얼굴에 나타난 그 환한 미소가 어쩌면 당신은 진짜 웃음일지도 모르지.
당신은 오페라의 내용을 되새겼고 웃으면서 나에게 말해줬어.
이 오페라를 쓴 사람은 당시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어떤 이유로 전장에 나갔는지 상상해보라고 했어.
만약 당신이 그와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자신의 감동을 말할 거지?
지금 내 귓가에서 그 오페라가 흘러나오고 있어.
그것은 이미 예술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됐고, 누구든, 언제든 너를 웃게 만든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이걸 들었을 때 당신의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은 어떤 화면일까?
만약 여행 중에 당신이…… 그 오페라 가수를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무슨 말을 또 할 거지?
나에게 알려줘, 세레나.
세레나 양, 세레나 양?
이 구역에 들어오면서부터 여기 오래 서 있었어. 뭘 하고 있었지?
아……
생각의 바다에서 고개를 젖히자 세레나는 곳곳에 널려 있는 꽃들과 유적들을 보았다.
도시의 폐허로 말하자면, 이 지역은 너무 황폐했다. 황야로서 이곳에는 무수한 문명의 메아리가 남아 있었다.
이곳은 아카디아 대철수 철수 지점의 유적 중 하나다. 수십일 전, 이 지역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그 전투의 핵심 인물이 지금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전 고고학 소대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 철수 지점 유적에서 예술 자료를 찾고 있어요.
방금은…… 그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대답한 후, 세레나는 몇 가닥의 색깔을 뿜어내고 있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고쳤는지 아님 자연적으로 생성됐는지 전쟁으로 황폐해진 대지에 금세 꽃이 피어났다.
그중, 몇 송이의 꽃은 밟혀서 꺾였고, 작은 발자국이 몇 개가 남았다.
…… 동시에 전 플로라라는 소녀를 찾고 있어요. 제가 듣기로는 그녀가 보육 구역을 떠난 지 오래됐고, 저농도 퍼니싱 구역에서 그녀는 언제든지 침식될 수 있어요.
저는 단지 예술의 흔적을 따라 이곳을 찾았고, 그 여자애의 행방을 찾고 있는 당신을 만났을 뿐이에요.
그녀는 작은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어린 한 여자애가 어둠을 파헤치고 급하게 이 꽃밭을 지나갔다.
협조해줘서 고맙다만, 실종자를 찾는 건 사람이 많다고 되는 게 아냐.
실종된 보육 구역 주민들의 행방을 찾는 것이 내 임무이자 전공이다. 그리고 넌 예술 협회의 사람으로, 여기 와서 표창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임무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베르야드는 옆에 있는 돌벽을 가리켰다. 돌벽에는 옅은 무늬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 예술적 질감을 자아냈다. 박힌 명패는 퇴색된 지 오래지만 '아카디아 대철수 184호 철수 지점'이라는 문구는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의 흔적을 찾는 거…… 맞나? 서로 자신의 임무에만 관심을 가지면 된다.
당신 말이 맞아요.
그렇다면 제가 업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도와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실 수 있나요?
?
세레나는 웃으며 베르야드가 가리키는 돌벽을 따라 앞으로 갔지만 시선은 돌벽 너머를 향했다.
이 돌벽의 무늬를 보세요. 이건 대형 미술관의 표준 장식인데, 종종 본관 앞에 설치되죠.
플로라라는 소녀는 이 장식 흔적을 알아보고 미술관 안으로 뛰어갔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세레나는 돌벽 쪽을 가리켰다.
그 방향으로 가요.
플로라의 딸을 조사하셨나요?
제가 보육 구역의 아이들에게 물어봤는데 플로라라는 이름의 어린 여자아이는 184호 보육 구역에서도 유명한 예술 애호가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녀는 많은 그림, 노트, 그녀의 꿈과 그녀가 원하는 이야기를 남겼어요. 분명 플로라는 그녀에게 많은 교육을 했을 거예요.
그녀는 지금 '집을 나간' 상태이고…… 보육 구역에서 무단으로 퍼니싱 농도가 낮지 않은 이곳으로 빠져나와 종적을 감췄어요.
이유는 그녀 엄마의 제한 때문이에요.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플로라 부인은 슬픔 속에서 남편의 유작 대부분을 버렸어요. 그러나 그들의 딸은 유작을 하나씩 몰래 주웠어요…… 이런 일이 여러 번 일어나자 어린 플로라는 시나리오와 단말기를 들고 모두가 한눈판 사이에 조용히 보육 구역을 빠져나갔어요.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뛰쳐나갔고, 마음속으로 슬픔에 빠진 엄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목적지가 애매할 수도 있지만…… 이곳까지 달려온 김에 예술을 사랑하는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유적들을 둘러봤을 거예요.
그녀는 이 장소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하지 시작했을 거예요.
이곳은 밀, 보리, 호밀, 귀리, 들콩, 완두콩이 왕성하게 자라던 기름진 땅이었을 거예요.
그녀는 앞으로 걸어 나와 팔을 가볍게 들어 허리 높이에서 손바닥을 펼쳐 그녀가 말한 이 모든 것이 여기에 있는 것처럼 이 작물들을 만졌다.
양 떼가 서식했던 산비탈이고, 그들을 기르던 풀이 무성하게 자란 평원이며, 금잔화와 갈대가 자라는 제방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이곳은 아무것도 아니다.
베르야드의 말 한마디에 작물과 논밭이 모두 사라졌다. 눈앞에는 황야와 드문드문 나있는 꽃밭만이 있을 뿐이었다.
음…… 어쩌면 제가 실례했을지도 몰라요.
…… 어쨌든 도와줘서 고맙군. 난 이 노선을 따라 발자국을 탐사할 거다.
베르야드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몇 걸음 걸어갔다. 역시나 다른 꽃밭에서 그 작은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는 찾아낸 발자국 경로를 따라 주변 지형과 결합해 실종자의 행방을 분석하며 전진했다.
세레나는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그런데요. 베르야드 씨, 이 폐허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이곳은 한때 미술관이었고, 그 그림은 여기에 걸려 있었어요.
폐허 깊은 곳에서 세레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서는 옆에 아무것도 없는 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밤하늘의 별을 그린 그림으로, 아마 벽의 이쪽 면부터 저쪽 면까지 차지했을 거예요. 이 그림의 화가는 가장 배고픈 시기에 그렸어요.
세레나는 무너진 벽에 가볍게 손을 대어 거친 벽면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이미 없어진 그림이 지금 그녀 앞에 나타난 것처럼 그녀의 손끝에 닿은 것처럼.
이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그 태양은 수억 년 전부터 이곳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별들은 이곳에 빛을 던지기 전에 몇 광년 동안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 지구는 마치 하나의 눈처럼 어디를 보든 별들의 그리운 빛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음…… 하지만 항성의 발광은 행성과는 관계가 없어. 그 표현에 따르면, 모든 행성은 눈이어야 해.
맞는 말씀이십니다.
세레나는 모처럼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 듯 웃었다.
우주에는 지구라는 눈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별과 별이 서로 교감하는 눈빛이 가득합니다. 앞으로 언젠가 우리는 다른 별에서 온 시선을 마주칠 수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서로 교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교류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매우 기발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편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베르야드 씨?
그림으로부터 외계 문명까지 얘기한다고? 오페라 가수라 그런지 확실히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군.
베르야드는 몸을 구부리고 대충 대답만 하고 황야를 계속 주시하며 발자국 찾기에 몰두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바로잡아야 할 것은 외계 문명은 우리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설령 정말 교류할 수 있더라도 정보가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지. 우리가 추구하는 문명은 이미 소멸됐을 거야…… 물론 그 반대로 해도 마찬가지고.
시간차이요? 음……그럼 아쉽겠네요. 그러나 소멸된 문명도 반드시 자신의 흔적을 남겨요. 다른 쪽의 문명은 꽤 오래되었으니 그 흔적들을 구경할 수 있겠네요.
우리가 계속 주시하고 이 예술들의 빛이 우주를 누비고 있는 한,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전 그 생명들이 고통과 소멸 속에서도 반드시 자신의 삶 마지막 빛을 표현하고 자신의 흔적을 남길 것이라고 믿어요.——그때 우리는 그 흔적을 예술이라고 부를 거예요.
참, 표현. 이것이 예술의 본질이예요.
붓에 호소하든, 글에 호소하든, 다른 매개체에 호소하든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예요.
——이 그림처럼,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도 그 화가는 진심으로 이 별하늘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어요.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 수만 년 후의 미래에 전달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기록으로 남기려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더라도 기꺼이 희생할 거예요.
그러고 보면 예술은 먹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세레나는 기대를 품고 옆에 있는 늙은 병사를 바라보았다.
…… 하.
그녀에게 돌아온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경멸하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경멸인가…… 세레나는 그 답에 확신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 속에서 또 다른 감정을 느꼈다.
당신 말대로라면, 전장에서 죽은 생명들, 자비 없는 싸움에서 인간답지 않게 죽은 생명들도 예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나?
세레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음…… 제가 바로 '네'라고 대답하면 너무 거만해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생각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목숨을 맡기는 것도, 전우에게 말을 전달하는 병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만 해도 그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장에서 예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제 대답은 바로 당신입니다——베르야드 씨.
베르야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실 이 관점은 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연극의 한 장면에서 빌려온 거예요.
세레나는 두 손을 배 앞에 얹어 작은 소리로 낭송했다.
'상상하라. 자유로운 상상이 당신들의 죽음을 초월할 수 있기를.'
'그 자유로운 미래에서 사랑과 광명이 반드시 그대들과 함께 할 것이다.'
《영웅의 작별》 제3막, 제6장.
이 연극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의 걸작이예요. 베르야드 씨.
이 작품은 상상력과 죽음으로 결말을 맺어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어요.
이런 미숙한 상상을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신의 작품을 보았기 때문이예요. 당신의 상상력은 저보다 훨씬 뛰어나요.
베르야드는 세레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잠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날, 그 작품을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니.
당신이 황금시대 때 남긴 작품은 예술 협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어요. 예술 협회에 가입하기를 거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저희가 존경하는 선배예요.
세레나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상대방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늙은 오페라 가수는 젊은 후배의 예의를 거부하지도, 그의 찬사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고맙지만 잊어버리게. 그것은 단지 허위의 작품일 뿐이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젊었을 때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결국에는 전해졌어요.
하……
세레나는 늙은 병사의 쓴웃음을 들었다.
당신은 감정 전달에 매우 열심이군.
그것이 바로 예술이 할 일이에요.
…… 그래.
늙은 병사는 침묵했다.
…… 세레나,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서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한 이유는 플로라의 딸을 찾아 뭔가를 물어보고 싶은 건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다른 태도로 화제를 바꿔 세레나의 이름을 불렀다.
…… 네. 그래서 당신의 허락을 받고 싶어요…… 그녀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허락을.
그럼…… 직접적으로 말하지. 그의 결말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면?
당신은 이곳에서 사망한 병사들을 조사했고, 그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어…… 그래. 좋아. 전장의 망령들은 당신의 노력에 감사할 거야. 하지만 그것뿐이야.
전장에 나가면, 내뱉었던 호언장담들은 죽을 때의 총알 한 발에도 미치지 못하지.
당신은 정말 그들이 말한 것처럼 정의를 위해 희생한 거로 생각하는 건가?
혹시 제가 모르는 내막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베르야드는 낮은 노랫소리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처음에 세레나는 베르야드가 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론 시작할 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한 사람만 기다리며 그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급하니 가면서 이야기하지.
깊고, 무겁고, 천천히 시작되는 남자의 저음은 마치 연극의 서곡으로 막을 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