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수많은 추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리브는 그녀가 칼리 손에 자란 것이 생각났다. 옐례나 장관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찾은 것도 그녀였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도 그녀였다.
리브, 어서 돌아오렴.
리브 아가씨……
리브, 누가 한 짓이지?
병사 리브!
……리브…… 너야……?
그 뚜렷하게 들리는 이름이 바로 그녀의 이름이었다.
너희들 봤잖아. 그가 어떻게 오르락 내리락했는지……
……나는 우주 반대편에서 억만 년을 여행하며 온갖 고생을 겪은 섬광을 봤어. 그 하늘색 밝은 빛은 미래의 어느 날 폭발해 인간의 신이 부끄러워하는 천계 속에서 그 근처 태양계에 있는 모든 생명과 삶의 희망을 파괴할 거야.
그건 아주 멀리까지 뻗어 있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멈춰서는 안 돼. 리브…… 난 지금껏 널 떠난 적이 없단다.
그 목소리 주인들의 모습이 리브의 머릿속에서 점차 분명해졌다.
퍼니싱이 가져온 혼란의 영향은 그 기억 데이터들 중의 산산조각 난 문구들을 한데 모아서 그녀를 끊임없이 앞으로 이끌어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게 했다. 그런 목소리의 외침이 그녀를 다시 끌어당겨 진짜 길을 찾게 했다.
그녀는 이미 그 돌아갈 곳이 없는 리브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이 격렬히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브는 어둠 속에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메마른 인동화를 지나가고 있을 때, 휘감긴 꽃가지 밑에서 다정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꼭 지금껏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세요……
……칼리…… 고마워요…… 칼리가 절 보살펴 준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미안해요. 예전 꿈은 포기했어요. 하지만 이제……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 걱정마세요. 칼리
리브는 눈을 닦았다.
칼리…… 보고 싶어요.
그녀는 몇 초 동안 멈춰 서서 그 벽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계속 걸어갔다.
조금 더 가니 한 전투 구역의 폐허 위에 손상된 흰색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저, 내 흰색드레스, 항상 마음에 들어 했잖아? 나도 알고 있었어…… 선물로 줄게.
언니…… 언니가 준 선물 잘 보관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언니랑 오빠, 엄마 그리고 아빠랑 같이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랄게요.
리브는 지금 스스로의 노력으로 저만의 행복을 얻었어요.
전 그 미래의 가능성을 잡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러니 우리 가족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펄럭이는 흰색드레스를 지나자 그녀는 처음에 자신을 구조체로 개조한 그 수술대를 보았다.
사람에겐 별로 좋은 일이 아니야. 전부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서……
옐레나 장관님, 결국 장관님의 조언을 따르지 못했어요……
하지만 전 장관님께서 한 말을 꼭 명심하고 영혼의 본래 모습을 유지할 거예요.
앞으로 더 가자 그레이 레이븐의 휴게실이 보였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걱정하고 있는 거였어요. 이 길은 그녀 혼자만 방향을 찾을 수 있거든요.
지휘관님……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거예요. 루시아, 리, 꼭 돌아갈게요.
리브는 심호흡하며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몸의 환상이 캔버스처럼 그녀의 뒤에서 말려들며 뒤로 밀려났고, 퍼니싱의 속박이 뒤에 있는 어둠 속에서 그녀를 잡아당겼다. 칼끝에 발을 디디며 걷듯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의식의 바다의 고통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늘은 곧 햇빛이다.’
‘——사라져가는 신이 내 앞에서 영혼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그 속삭임이 다시 울렸다. 마치 그녀를 퍼니싱 적조 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 스스로를 삼켜지게끔 뒤에서 미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높은 승격 네트워크에 녹아들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 최고의 결말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 그녀는 지금 현실 세계에 도달하려 했다.
경건한 기도, 빛나는 별과 물불 가리지 않는 전쟁이 있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동료가 있는 곳.
어둠의 끝에서 그녀는 무언가가 희미한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더 먼 곳에서…… 모두가 그곳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 ‘구원’은 더 이상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래, 모두가 있는 미래, 그녀가 직접 잡아야 했다.
그 빛에 가까워질수록 따끔거림이 심해졌다. 밀려오는 데이터 홍수에 그녀는 무너질 뻔했지만 발버둥 치며 힘껏 손을 내밀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엄청난 통증이 그녀를 덮치며 퍼니싱의 물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손끝은 바다를 건너 그 무덤을 지나고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깨지지 않은 모든 희망과 깊은 그리움이 여행의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마치 두 손이 그녀를 잡은 것 같았다. 숨 쉬는 사이 퍼니싱의 조수가 빠지고 의식의 바다의 부서진 데이터 흐름이 별빛을 뿜어냈다. 그녀는 부드러운 물에 떨어진 것처럼 밝고 따뜻한 빛에 이끌려 들어갔다.
맞은편에는 또 다른 자신이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모든 슬픔이 그 안에 녹아 있는 듯 고통 없이 평온하고 고요했다.
그녀는 이 거대한 우주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했다. 자아는 끝없는 안개처럼 대지를 가득 채웠고, 항성의 모래알갱이로 이루어진 은빛 사막은 그녀의 몸 안에서 타오르며 희미한 빛을 발산했다.
넓은 별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별들이 모여서 만든 홍수가 빙빙 돌며 솟구쳤다.
리브는 눈가의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맞은편의 환영이 미소를 지으며 포옹하려는 자세를 취하며 리브를 품에 안았다. 두 모습이 한곳에 겹쳐졌다.
무한한 힘이 리브의 몸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순식간에 붉은 적조 아래서 수많은 파랑새가 쏟아져 나와 하늘 끝까지 조화롭게 위치를 바꿨는데, 마치 푸른 하늘이 내뿜는 숨결 같았다.
수많은 파랑새 속에서 그녀는 눈을 떴고, 반짝이는 두 눈에는 더 이상 고통과 애잔함만이 아니라 걱정과 용기가 있었다.
시선 중 한 손이 그녀를 향해 꿈에서 끌어당겨 흔들어 깨웠는데 낯익은 목소리였다.
그녀도 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